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하일은 그의 물음에 자신 있게 꽃잎점 결과를 내놓았다.
“하하하! 올해 안에 경사가 생길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율리시스는 꽃줄기를 한참 쳐다봤다.
그리고 하일이 가고 난 후 조용히 집무실에 앉아 턱을 괴었다.
“한다, 안 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가만히 꽃잎을 뜯다가 자괴감이 들어 꽃줄기를 툭 놓았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조용히 주워 들었다.
“……젠장.”
원로가 이 짓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러니 효험이 영 없지도 않겠지. 수치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미약하게 붉어졌다.
“한다, 안 한다. 한다.”
이제 잎은 두 개 남았다. 지금 그의 입에서는 ‘한다’까지 나왔다.
남은 잎이 두 개였으니, 즉 요이델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이 되는 거다.
율리시스는 저도 모르게 진지한 낯빛을 했다. 처음에는 의심이 반이었는데, 이제 보니 과연 믿을 만하다.
그는 다시 꽃잎을 뗐다.
“안 한다…….”
“성하 뭐 해? 이거 먹는 거야? 맛있어?”
뚝.
그때 별안간 나타난 휘스테론이 꽃을 가져가 우물우물 씹었다.
“어? 성하, 표정이 왜 그래? 무슨 큰일 있어? 그보다 이거, 성하가 시켰던 자료 가져왔어. 깜빡했지 뭐야.”
율리시스의 상태는 ‘안 한다.’에서 끝장나 버렸다.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그게 꽃잎점이 내린 점괘였다.
━━━━⊱⋆⊰━━━━
“있잖아, 라이. 휘스는 왜 갑자기 극기 훈련을 떠난 거야?”
“자발로 간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멍청한 짓을 저질러서 끌려갔겠죠.”
“정말? 그럼 휘스 괜찮을까?”
“바보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요이델은 걱정에 얼굴을 찌푸리다 마저 글쓰기에 속도를 냈다. 잘 안 해 봐서 그런가, 엄청 낯설다.
“그런데 신관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아, 이거? 그냥 일기 쓰는 거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
요이델은 은근슬쩍 커다란 종이를 가렸다.
카렐로의 조언대로 해 봤는데, 정말 좋아해 주실까? 하긴 본인이 예전에 했던 말도 있으니…….
그러고 보니 오늘도 카렐로가 대신전에 온다고 들었다. 성하와 만난다고 했었지? 둘은 겉은 비슷한 느낌이지만 속은 아주 다르니까, 잘 맞을지 모르겠다.
성하는 왠지 모르게 카렐로에게 썩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전에 이름을 꺼내니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 걸 보면 분명히 그래.
요이델이 서재에서 가만히 생각하던 때, 둘은 때마침 만나고 있었다.
“카렐로 엘파임 인사드립니다.”
“앉으십시오.”
행정 관련 업무와 학술원의 전반적인 일을 도맡아 줄 이들과 성황의 간단한 대면이 있었다.
‘저 남자인가. 마르셀리나 가문의 인간이.’
율리시스도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쩐지 자신과 분위기나 얼굴이 많이 비슷했다.
‘어쩌면 다행인가.’
요이델이 카렐로에게 편안함을 느꼈다면, 그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뜻이니까.
취향이 일관적이라 참 다행이었다. 곧 자신이 그녀의 취향이라는 뜻 아닌가?
율리시스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생각만 늘어날 것 같아서.
내면의 어둠을 잠재운 그는 평소처럼 미소 지었다.
그러자 그를 주시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영광인 듯 두 손을 모으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율리시스는 천천히 그들을 살폈다.
“앞으로의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일을 마친 율리시스가 밖으로 나가던 그때.
“성하……!”
누군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그는 카렐로였다.
“저, 성하…… 죄송하지만.”
“개인적으로 말씀을 거시는 건 곤란합니다.”
“괜찮습니다.”
율리시스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만류하는 이들을 물렸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악수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율리시스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청을 받아 주었다. 어쩐지 그 미소가 요이델과 닮았단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감사합니다, 성하!”
카렐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마음은 더욱 썩어 들었다.
하필이면 웃는 모습마저 요이델과 닮았다. 그게 꼭 하늘이 정한 운명 같기라도 해서 불쾌했다.
‘변변치 않은 의미 부여를 하는군.’
이상하게도 자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불길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 안 가 대신전에 그 남자가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정확하게는 로사리움에서 요이델과 만나는 일이.
훈련에서 귀환한 휘스테론은 율리시스의 집무실에 보고를 하러 갔다.
“성하, 표정이 안 좋네?”
“경이 신경 쓰실 일 아닙니다.”
“꽃을 먹어 버린 건 미안해. 그렇게 소중하게 기르던 건지 몰랐지. 새로 사 줄까?”
휘스테론은 영문 모를 그의 불쾌함에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썼다.
“경, 요이델 님에게 귀환 보고는 했습니까.”
“응? 했지. 근데 바빠 보이고 또 누가 있기도 해서 오래 얘기는 못 했어.”
“사람?”
그 거슬리는 말에 율리시스의 눈썹이 무의식적으로 삐뚤게 올라갔다.
“아아, 그 마르셀리나 할멈 손주. 근데 되게 착해. 나한테 선물이라고 쿠키 세트도 줬어.”
“그자가 자주 방문합니까?”
율리시스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휘스테론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델이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낄까 봐 그래?”
휘스테론은 손사래를 쳤다.
“델이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델은 눈도 높고 의사 표현도 확실하다고!”
바로 그때, 휘스테론은 집무실의 창밖으로 카렐로와 웃고 떠드는 델을 목격했다. 딱 봐도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 아, 아니…… 어, 절대 그럴 리 없지. 아무튼 없어, 성하!”
“밖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니!”
그러나 휘스테론이 다급하게 율리시스를 말렸을 땐 이미 늦었다.
“그래도 델이 그럴 리가 없을…….”
요이델과 카를로는 함께 뭔가를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가까이 붙어 눈을 찌푸렸다.
“없을…… 텐데?”
으드득.
그 다정한 모습에 율리시스의 이가 갈렸다.
━━━━⊱⋆⊰━━━━
연인의 날 당일.
요이델은 함께 상점 거리로 나가 보자는 율리시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얼굴은 이 정도면 못 알아보겠죠?”
“밤이라 어두우니 괜찮을 겁니다.”
율리시스는 계속 재잘재잘 지저귀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로브를 고쳐 묶어 주었다.
다 된 후 몸을 일으키던 그때, 율리시스가 잠시 멈칫했다.
“응?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하마터면 입 맞출 뻔했다. 미친 게 아닌가. 율리시스는 눈을 감고 정신을 다잡았다.
그녀에게 연인의 날은 조금 들뜨는 야시장 방문 정도일 텐데 뭘 기대하는 건지. 실제로도 축제는 아닌, 소소한 날이기도 하고.
“그런데요, 성하. 밖에 나가면 ‘성하’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르게 불러도 될까요?”
“그렇군요. 칭호는 금세 들키니 좋으실 대로 불러 주십시오.”
“그럼 저는 율리시스 님이라고 부를게요! 아, 아니에요, 잠시만요.”
요이델은 재차 고민했다. 그건 너무 애매한데. 뭔가 다른 게 없을까?
“그 얼굴에 율리시스라는 이름이면 금방 들킬 것 같아요. 그럼 음, 아! 율 님은 괜찮나요?”
고개를 확 들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불쑥 물었다.
“성하, 얼굴이 왜 빨개지셨어요?”
혹시 성하, 부끄러워하는 걸까? 말도 안 돼. 극한의 분노를 느껴서 붉어진 거면 몰라도. 아니, 정말인가?
그때 율리시스가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부끄러워하는 게 맞구나! 우와, 신기해…….
“타십시오.”
시선을 흘긴 율리시스는 평범하게 위장한 마차에 요이델을 태웠다. 하지만 요이델은 마차 안에서도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귀는 더 빨개요. 그거 아세요?”
“자꾸 저를 놀리시는군요.”
“이렇게 빨간 성하는 처음 보는걸요. 그래서 신기해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는 다리를 꼰 채 요이델을 가볍게 흘겨보았다. 눈에는 묘한 열기를 담고서.
“좋아하는 사람이 애칭을 불러 주는데 어떻게 안 좋아하고 배깁니까.”
그 순간 정적이 짓눌렀다.
“아하하, 하…… 하아.”
어색한 웃음만 뱉은 요이델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별거 없는 창밖만 쳐다봤다.
그건 율리시스도 마찬가지였다. 요이델은 말 없는 그를 힐끔 보았다가, 그가 고개를 돌리려 하면 바로 후다닥 시선을 무릎으로 가져왔다.
‘어떡해! 괜히 말했나 봐.’
정적이 가득 깔린 마차 안이었지만 똑같이 서로를 의식했다.
상대를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떻게 앉아 있는지, 숨은 언제 쉬는지, 침은 어떻게 삼키는지 느껴질 정도였고, 그걸 둘 다 알고 있으나 누구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 미묘한 긴장감에 입안이 바짝 마르고 목이 타들어 갔다.
덜컹.
“엄마야.”
모난 길을 넘자 마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중심을 잃은 요이델의 몸이 비틀비틀 흔들리다 휙 쏠린 순간.
“괜찮으십니까.”
율리시스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얼굴이 그의 심장 쪽에 닿자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아, 어떡해.’
얼떨결에 품에 안긴 요이델은 손 둘 곳을 몰라 당황했다.
어쩌지? 성하는 품에 접촉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
하지만 오히려 벗어나지 말라는 듯 그가 자신을 감싸 안자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렇게 안겨 있어도 되는 걸까? 언제까지?
근데 품이 너무 좋아.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쳤나 봐. 좋긴 뭐가 좋아?’
……하지만 좋아.
얼른 일어나야 하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품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렇지만 나만 싫지 않으면 뭐 해.
안겨 있어서 수상한 생각이나 하는 사람은 딱 변태나 다름없잖아.
정신 차린 요이델은 머쓱한 마음에 위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정면에 보이자 바로 시선을 돌렸다.
“죄, 죄송해요, 너무 안겨 있었죠!”
“방금 넘어지지 않으셨습니까. 언제 시간이 흘렀습니까?”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가볍게 툭 머리를 기댔다.
“날이 춥습니다.”
“……네?”
지금은 겨울을 벗어난 봄이었다.
“제가 추위를 많이 탑니다.”
요이델의 의문에 율리시스는 미소 지으며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차가 계속 덜컹거려서 안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손을 맞잡았다.
절대 풀지 않은 손깍지는 여전히 두근두근했고, 뜨거운 열이 느껴졌다.
하지만 율리시스의 표정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