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마디? 아하, 마리구나.”
옛 이름은 마리였다.
당연히 수녀님들께서 지어 주신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마리, 슥삭슥삭, 잘해요.”
“마리는 말도 금방 늘고 아주 똑똑하구나. 고마워.”
“헤헷.”
갓 발견됐을 때는 또래 애들보다 말이 느려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고 했다.
꿈속에서 과거가 더 스쳐 지나갔다.
칭찬과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서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칭찬받고.
‘타고난 습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 터지듯 찌릿하고 두통이 치밀었다.
폭풍우가 우르릉 몰아치던 불길한 날. 혼자 있던 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어.
“듣던 대로 영특하구나.”
그건 누구였을까? 엄마? 아니야, 아빠도 아니야.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말한 이름은 뭐였을까. 마디아?
이 기억은, 나는, 혹시…….
‘처음부터 내가 이곳 사람이었던 거야?’
쿨럭!
머리를 몽롱하게 흔드는 목소리들에 심장이 훅 뛰고 눈이 번쩍 뜨였다.
“……델.”
“눈 좀 떠 봐, 누이!”
“요이델, 정신이 드니? 아무나 지금 당장 가서 의원을 데려와. 어서!”
어느새 방의 불이 전부 켜진 상태였다.
가족들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울 듯 빨간 얼굴로 자신을 안고 다독였다. 흐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쉬이. 괜찮아, 아가. 악몽은 여기에 없단다.”
“……엄마.”
“그래, 엄마야. 괜찮아, 엄마 여기에 있어, 어? ……잠깐만 아가, 방금 네가 말했니?”
라히에와 샨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였다.
“……고마워요. 엄마, 아빠.”
“어, 어, 엄마, 라고 한 거지? 맙소사, 방금 요이델이, 여보!”
“아빠라고?!”
요이델은 흐린 눈으로 엄마와 아빠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모두 얼음처럼 멈춰 어쩔 줄을 몰랐다.
라히에와 샨은 입을 틀어막고 떨리는 시선으로 요이델을 쳐다봤다. 멋쩍은 미소를 짓던 요이델이 조심조심 입을 뗐다.
“저, 엄마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시간이 멈춘 듯 얼어 있던 그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당연하지!”
“이날만을 기다렸단다.”
“오라버니는? 나도 불러 줘!”
휘르무트는 힘을 주체 못 하고 요이델을 와락 끌어안았다.
“꺄악, 오라버니! 숨 막혀요!”
“맞아! 내가 네 오빠야!”
행복에 겨워 죽을 듯한 웃음소리가 본성의 아침을 밝혔다.
━━━━⊱⋆⊰━━━━
이른 아침.
메디아의 궁정 마법사들은 일찍부터 수장들의 부름을 받고 덜덜 떨었다.
‘그동안 성과가 별로 없어서 꼼짝없이 목이 달아나겠구나!’
“고개를 들어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문책하기 위해 부른 게 아니다. 오늘은 그대들에게 부탁이 있어서 불렀지.”
샨이 엄숙하게 말하고 라히에도 싸늘한 눈으로 재촉했다.
“이것이다.”
“이건 녹음기 아닙니까?”
의아하던 마법사는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적의 녹취록이 담긴 중요한 아티팩트군요.”
“아니지만 그만큼 중요하지.”
“외람되지만 어떤 성분인지 확인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수장님들이 간만에 기분이 좋은 듯 웃어 의아했다. 적의 목이라도 치고 오신 것인가? 하긴 그동안 잠잠하셨지.
궁정 마법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 녹음기를 재생했다.
“엄마, 아빠!”
“……?”
이게 뭐지? 그냥 목소리 아니야?
삑. 다시 앞으로 감기.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다시.
“엄마, 아빠!”
마법사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하지만 대체 뭐냐고 물었다간 목을 칠 것 같은 표정이신데.
마법사들이 몇 번을 다시 재생하는 동안 녹음된 소리를 감미로운 음악인 듯 듣고 있던 수장 일가가 뿌듯한 얼굴로 씩 웃었다.
“이 안의 목소리를 빼서 휴대 가능한 장신구로 만들어 와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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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를 위한 정찬 자리에 모시고 싶습니다. 단, 가능하면 딸아이는 몰랐으면 합니다.]율리시스는 취조라는 걸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살벌한 분위기의 홀, 율리시스는 평안을 가장하고 칼질을 이었다. 수장은 그를 관찰했다.
“성하께서 저희 요이델의 반려자라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그들은 전혀 납득 못 하는 표정으로 율리시스를 대면했다.
율리시스는 메디아의 아름다운 햇살 아래 유독 청초하게 빛나는 외모로 그들을 잔잔히 응시했다.
수장들은 슬며시 눈빛을 나눴다.
‘얼굴이겠지?’
‘얼굴이야. 틀림없어. 우리 딸이 날 닮아서 미감이 뛰어난가 봐.’
툭.
―엄마, 아빠.
“……어머.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군요.”
모든 시종을 물리고 단 셋이 남은 식사 자리. 요이델의 어머니인 라히에가 뜬금없이 목소리가 나오는 마법 장신구를 떨어뜨렸다.
그들은 율리시스를 의식하며 가식적인 웃음으로 아주 느릿느릿 주워 들었다.
율리시스의 눈매가 티가 안 날 만큼만 날카로워졌다.
“요이델 님의 목소리군요.”
“네. 저희의 보물입니다.”
율리시스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아무것도 안 묻은 입가를 톡 닦았다.
이번엔 수장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창의적이고 괴상한 그림.
“그 자수는 설마……!”
“지난 사냥대회 당시 요이델 님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혹시 넘길 생각은 없습니까?”
“안타깝지만 어렵겠습니다.”
파지직!
숨 막히는 질투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들은 서로의 물건을 탐내다가 결국 수를 접었다. 눈으로는 미련을 뚝뚝 흘린 채.
식사는 이미 중단됐다. 맞은편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그들은 이 식사 자리가 망했음을 직감했다.
라히에는 식사용 나이프를 신경 안정제처럼 거머쥐고 분노를 꾹 참은 채 말도 안 되는 사윗감을 쳐다봤다.
서로 웃는 낯이었지만 눈빛만은 짐승들이었다.
“어쩌다가 페어링을 맺게 되셨습니까? 지금은 성행하지 않는 드문 방법인데 말입니다.”
율리시스는 붉은 입술을 벌리다가 애매하게 다물었다.
굳이 따지자면 “두 분의 따님께서 멱살을 잡고 제 입술을 빼앗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쪽이 진실이지만 그리하기 싫었다.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율리시스의 나직하고 잔잔한 목소리에는 진심이 실려 있었다.
“수장님들께서 정하지 않은 이름을 언급하여 결례인 것을 알고 있으나, 제가 만났을 때는 요이델 님이셨기에 그 이름으로 칭하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애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단호한 말에 율리시스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그분은 누구를 닮으셨나 내심 궁금했는데, 부모님과 성정이 똑같다.
‘붉은 눈은 어머니를, 분홍 머리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심지는 어머니와 닮았으나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온유함을 품었나.’
그는 그들에게서 요이델의 모습을 찾았다.
“당시에는 브리칼트 출신의 신관으로 알았습니다. 많은 곤란이 있었고, 보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앞뒤의 순서가 다르지만 그는 거리낌 없이 거짓을 말했다.
율리시스는 원래 이 정도쯤은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썩 들키고 싶은 모습은 아니지만.
“단순히 보호를 위한 사이라는 말씀입니까?”
“대신전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성황으로서의 의무이지만, 반려를 맞이하는 건 다분히 개인적인 욕심이고 의사입니다.”
“그 애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들의 날카로운 말에 율리시스는 차분히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그 마음의 무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군요.”
율리시스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을 손으로 넘기며 피식 웃었다.
“제게 사랑을 논하는 말을 들으실 분은, 메디아의 수장님들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저희 딸에게 사랑한다고도 말하지도 않으셨단 겁니까!”
“보호가 우선이라, 아직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습니다.”
그 대답에 수장들의 긴장이 누그러졌다.
“그렇다면 그날 저녁에 저희 딸아이가 한 말이 오해라는 말씀이시군요.”
“혼란하고 불안한 그분의 마음을 저로 인해 더욱 곤경에 빠뜨릴 마음은 없었습니다. 먼저 부모님을 찾아야 했고, 좋아한다는 고백만으로도 몇 주를 고심하시는 분이시라.”
“그랬군요…….”
라히에는 꽉 잡아서 부서지기 직전인 테이블 다리를 복구시켰다. 그리고 가만히 고민하다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페어링에 대해 아는바, 신체적 접촉을 매개로 발생하는 마법일 텐데요. 처음 실행 때도 그렇고.”
“가벼운 입맞춤은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말 다 하셨습니까?”
“여보! 여보, 라히에, 제발!”
샨은 그녀의 노기를 누그러뜨리며 진땀을 흘렸다. 그들은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애썼다.
“우선 성하께서 저희 아이를 보호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아이의 첫 연인이 성하라는 것도 큰 배움이고 경험이 되리란 걸 압니다.”
라히에의 똑똑한 목소리와 예리한 눈이 율리시스에게 향했다.
“그러나 감사와 아이의 장래에 대한 문제는 별개의 이야기임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못 해 준 게 많은 아이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차츰 떨렸다.
진심이었지만 어느 정도 그를 떼어 놓기 위한 과장도 있었다. 왜냐하면 진짜 반대할 생각이었으니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여러모로 차이가 심하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대륙이 다르다는 것.
겨우 되찾은 딸과 다시 멀어지고 싶지 않다.
그는 성황. 자애롭기로 유명하니 잘 설득하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왠지 예전에 봤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기분 탓이겠지.
수장들은 알 수 없이 꺼림칙한 느낌을 떨치며 단호한 눈빛을 했다.
“다시 만났으나 여전히 미안한 게 많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선택한 짝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쉬운 말씀이지만, 성하. 저희 쪽에서도 해 주고 싶은 게 많습니다. 가르쳐 주지 못한 세상을 자유롭게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고, 그 아이의 자산으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이 마음은 부모로서 거짓 한 점 없는 새하얀 진심이었다.
물론 그가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것도 사감 가득한 진심이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율리시스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거다. 이제 됐다.
“많은 것을 알기도 전에 한 사람의 반려가 되어, 한 나라의 책임을 나눠 질 사람이 되어 많은 제약 아래 살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여―”
세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수장들은 물러날 기색 없는 눈빛으로 율리시스를 똑똑히 직시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이와 헤어져 주십시오.”
“못 합니다.”
즉답에 수장들의 입이 벌어졌다.
수심에 찬 척하던 율리시스는 고민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나른하고 여유로운 낯으로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헤어지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