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되게 작죠?”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 자신의 옛 방을 소개시켜 주었다.
알고 보니 요이델의 옛 방은 본성과 휘르무트의 성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많이 있었다.
부지가 넓어서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한 이후로 가는 곳마다 족족 방을 만들어 줘서라고 했다.
율리시스는 방 안을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이만큼 작으셨군요.”
“신기하죠? 이 작은 소파에 몸이 맞았나 봐요. 지금은 끼어 앉기도 힘든데 말이에요.”
세월이 흘렀지만 낡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은 늘 내가 관리했어. 부모님은 보기만 해도 우셨지.”
단란한 연인 사이에 끼어 있던 휘르무트가 썩은 표정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오라버니는 섬세하네요.”
“그래? 정말로?”
“여기를 잘 보존해 줘서 고마워요. 오라버니 덕분에 저도 이렇게 볼 수 있네요.”
요이델의 칭찬에 그는 금세 헤벌쭉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요이델이 이상하다.
방을 구경해 보고 싶다는 건 좋았는데, 왜 하필 제가 성황과 약속을 잡은 시간에 만나자고 했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미안하지만 요이델, 나는 성하와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어.”
“네!”
활짝 웃은 요이델은 발랄하게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그들은 방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았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하는 게 어때요?”
“여기? 아니, 여긴 좀…….”
“왜요?”
“어?”
“오라버니 설마 또 율리시스 님에게 헤어져 달라거나 나쁜 소리를 할 건 아니죠? 그래서 제가 빠져 줬으면 하는 건 아니겠죠?”
요이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내가?”
“네. 오라버니가요.”
“나는 그런 말 안 하지. 그건 부모님이 하셨거든, 헙.”
금방 입을 닫았지만, 이미 요이델의 눈빛은 근엄하게 변했다
“삼대륙 회의 시작도 곧이고 저도 못 들을 이유는 없어요. 브리칼트에 대한 기억이 점점 떠오르기도 했고 저도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걸요. 오라버니, 그리고 성하랑요.”
“그건…….”
“제가 방해되나요?”
“그럴 리가! 다만―”
“앞으로 성화와 이야기하실 때는 언제나 저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라버니. 제가 보는 앞에서요.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죠?”
순진무구하게 묻는 동생의 부탁이자 협박에 휘르무트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을 흐렸다.
내 동생이 웃으며 협박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다니, 훌륭하구나.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런 얘기가 아니고 정말로 반드시 해야 할 말이야, 요이델. 오라버니도 매번 방해만 하고 살진 않아.”
“알겠어요. 그럼 무슨 말인지 저한테 먼저 말해 줘요.”
요이델이 귀를 들이밀며 철저히 방어하자 휘르무트는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방해하려는 심산이 아니었다.
회의 준비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통에, 성황에게 페어링에 대해 말할 적기를 놓쳤다.
그건 성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따로 만남을 청해 왔으니까. 다만 갑자기 나오지 않은 건 이상했다.
그를 데리러 갔던 신하들이 빈손으로 돌아와 기침만 하면서 이유를 보고하지 않는 것도 수상하고.
“알겠어, 요이델. 네 뜻대로 하자.”
휘르무트는 결국 요이델의 요구에 승복했다.
“그래. 그럼 앞으로의 얘기부터 할까.”
“좋아요.”
“회의가 목전으로 다가왔어. 알고 있지?”
요이델이 고개를 끄덕이자 휘르무트는 기특한 듯 웃었다.
“우선, 지금까지 삼대륙 회의에서는 대부분 요보힐데 공작이 황제의 대리자로서 참석해 왔지. 이번에도 그럴 거다.”
“요보힐데가 오는군요.”
“긴장되니?”
“아니요, 하지만 이상한 게 있어서요.”
부모님께 찾아간 날은 거짓말만 잔뜩 하고 정작 브리칼트에 대한 건 묻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혼자 기억을 살폈다. 능력을 오랫동안 빌려 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확신하게 된 게 있다.
요이델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제가 아는 한, 황제와 요보힐데 공작가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둘은 왜 함께 금술을 사용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쩌면 공작이 황제를 속인 게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둘이 원하는 게 달랐을 테니까요. 왜냐하면 황제는 어렸을 때 저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아이 둘을 얻은 걸 축하한다고 말한 게 전부였거든요.”
그게 너무 이상했다. 황제가 안다면, 메디아에서 데려오기까지 한 자신을 신경도 안 쓸 리가 없었다.
그는 손익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원작에서도 그랬다.
‘지금은 원작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수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어 낸 금술의 결과물이 고작 나.
현 황제는 후계자조차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그가 한낱 요보힐데 공작가의 후계를 위해서 나를 제물 삼아서 데려왔다는 상황은, 있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공작가도 한낱 수족에 불과할 테니까.
“라보르비치의 금술 규모는 상당했지.”
휘르무트는 어느새 보좌관을 불러들여 넘겨받은 서류를 넘기며 확인했다.
“금술은 본래 시전자의 몸에 타격을 미쳐. 아주 조그맣게라도 말이지. 속이 안 좋거나 두통이 생기든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멀쩡하려면…….”
휘르무트는 율리시스를 응시했다.
“저 정도는 되어야겠지.”
“아.”
요이델은 라보르비치에서 그가 자신에게 힘을 나눠 줬던 것을 기억했다. 물론 그건 금술이 아니었지만, 율리시스는 끄떡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럼 공작 부인이 큰 타격을 입었을까요?”
요이델의 물음에 율리시스는 차분한 미소로 답해 주었다.
“요이델 님께서 추측하시는 세 명 중에서는 마법사가 두 명 존재합니다.”
공작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럼 셋 중 남는 사람은 하나.
“황제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공작 부인의 힘도 맞아요. 추적 마법을 제가 썼잖아요?”
“힘을 합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황제가 요보힐데 공작가를 위해서 그런 금술을 써 줬을 것 같진 않아요.”
“당연하지, 네 추측은 타당해. 황제는 절대 그럴 인간은 못 되거든.”
그건 요이델도 동의하는 바였다. 옛 기억 속에서 황제가 뭐라고 했더라?
“황제는…… 소원의 돌을 얻었다고 했어요.”
“소원?”
그 말에 율리시스와 휘르무트 둘의 표정이 모두 의아해졌다.
“소원의 돌은 고서적에 등장하는 허구의 존재입니다.”
“먼 과거에 연금술이 성행했었지. 그건 그때쯤 나온 책일 거야.”
“그럼 황제가 가진 건 뭘까요? 엄청 보물처럼 아낀다고 했어요. 메디아에서 가져온 게 제가 아니라 그 소원의 돌인 것처럼요.”
요이델은 고민에 빠졌다.
“황제가 원한 건 확실히 저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몇 번이고 위협을 가했겠죠. 지금보다 훨씬 더요.”
“그래, 황제는 네게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어. 요보힐데 쪽에서는 안달이 난 것 같지만.”
휘르무트는 갈가리 찢었다가 다시 꿰맨 인형을 툭 던져 놓았다.
“인형에 염탐 마법이나 붙이는 별 볼 일 없는 짓이나 할 정도로 말이지.”
“또 그랬나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요보힐데는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니까.
“율리시스 님, 지난 물증들은 잘 보관되고 있는 거죠?”
“네. 현재는 대신전에 있으나 언제든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혹시 제 반지도요?”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는 금세 조각난 반지를 소환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게 요보힐데 공작가에서 받은 환각 마법 반지였어요.”
설명을 들은 휘르무트는 산산조각 난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마법이 걸려 있는데, 그냥 마법이 아니네.”
“그럼요?”
“이건 메디아의 힘이 깃들어 있어.”
휘르무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혹시 요이델, 황제를 따라 소원의 돌을 본 적이 있니?”
“아니요. 저택 밖으로 거의 나가지 못했어요. 황제를 만난 것도 공작가를 찾아왔을 때 목소리만 들은 게 전부예요.”
뚜둑, 갇혀 산 거나 다름없다는 말에 휘르무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율리시스의 눈빛도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워졌다.
“금술을 주도적으로 행한 사람은 요보힐데 공작 부인이 아닐 수 있겠군요.”
“그럼 황제라는 말씀이신가요?”
“자신의 수족이어도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럼…….”
그러고 보니 의문이었다.
“황제는 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을까요?”
어쩌면 자의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요이델은 곰곰이 옛 기억을 떠올렸다.
다소 신경질적이고 킬킬 웃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아, 빛을 싫어했어.’
황제가 방문한 날이면 가뜩이나 어두컴컴한 공작 저택에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더욱 답답해졌다.
야욕이 대단하긴 하지만 제국의 위세도 상당하다. 그런데 브리칼트의 황제가 뭐가 모자라 메디아 것까지 빼앗으려 했을까? 그가 악감정을 가진 곳은 메디아보다는 성국일 텐데. 성국을 괴롭히는 게 순서 아닌가?
제국의 대단함을 온 대륙에 떨치고 싶어 하며 지상 대륙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배포가 크고 과시욕이 대단한 황제가 일부러 숨어 지낸다는 것.
그리고 성국이 아니라 메디아를 향해 금술을 썼다는 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율리시스 님은 황제를 잘 알고 계시죠?”
“네. 썩 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옛날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성하께서는 현 황제가 제위에 오르는 걸 반대하셨다고요.”
요이델의 물음에 율리시스는 옛 기억을 되짚었다.
“그가 황제가 되는 순간, 브리칼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황제는 황자였을 시절부터 안 좋은 쪽으로 두각을 드러냈으니.”
“오라버니도 아셨나요?”
“난 그렇게까지 옛날 사람 아니야.”
목적이 뚜렷한 휘르무트의 대답에 율리시스가 피식 웃었다.
다시 파지직 붙기 시작한 스파크에, 요이델은 얼른 손을 뻗어 둘 사이의 시선을 가렸다.
“황제는 성국을 무척 싫어하는 걸로 알아요.”
“선대 황제와의 담화 당시, 황자였던 현 황제를 황태자로 올리면 안 된다고 얘기했던 걸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이후부터 대신전 따위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업신여겼습니다.”
“그전에는요?”
“의외로 신실했습니다.”
의외였다. 그건 그렇고, 율리시스는 성국을 욕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재연했다.
“그러나 결국 지금의 황제가 즉위하더군요. 제 손으로 피붙이들을 전부 죽이고서.”
“브리칼트의 다른 황족들을 도와주지는 않으셨나요?”
“네.”
“왜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
“본래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율리시스는 심각해진 요이델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기분을 살살 풀어 주었다.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그의 진실된 다정함은 요이델에게만 한정되었다.
똑똑.
그때 휘르무트의 보좌가 긴박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휘르무트 님, 그것이…….”
전달받은 그의 표정에 차가운 웃음기가 피어났다. 문이 닫히고 휘르무트의 안색에 조금 짜증이 드러났다.
“이번 회의에 요보힐데 공작은 오지 않아.”
“네? 불참 선언인가요?”
회의가 개최된 이상, 아무리 제국이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말을 들은 율리시스가 무언가를 느낀 듯 서늘한 얼굴을 했다.
“황제가 직접 오는가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