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네? 뭐가 됐나요?”
“……글쎄요.”
묘하게 다정한 말과 달리 표정은 점점 험상궂어졌다.
요이델로서는 뭐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흘리며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하…….”
그러고는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과 함께 자신의 입술을 벅벅 문질렀다.
옷소매로 문지르는 힘이 얼마나 센지, 그의 입술뿐만 아니라 요이델의 입술까지 상처가 나듯 부풀었다.
그 모습을 본 율리시스는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빴나 보다. 얼른 다른 화제로 돌리자.
“아! 맞다! 아하하하, 연무장에 마수가 들어왔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성하께서는 안 다치셨나요?”
율리시스는 여전히 가라앉은 눈으로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
“마수는 없었습니다.”
“네? 그럼 일시 폐쇄했던 게 혹시 다른 사건을 위한 연막이었나요?”
어쩐지 마수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설마 성하께서 내 통증을 느끼셔서 연무장에 오신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그만큼 페어링이 깊어졌을 리가 없는데.
게다가 그가 자신을 구해 주러 올 이유도 없었다.
“그대의 호위기사들이 말을 안 해 주었습니까.”
“그게……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징계를 받는 중이라 그렇습니까?”
“그, 성하. 둘의 징계를 줄여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요이델은 오늘따라 기분이 저조한 그를 보며 용기를 쥐어짜 내 외쳤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을 더 짜증 난 듯 바라보았다.
“라이오스와 휘스테론 경을 너무 감싸 주지 마십시오. 그들은 좀 더 제대로 그대를 지켰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도 라이와 휘스 덕분인걸요.”
말을 하자마자 그가 하던 것을 우뚝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좁은 공간에 몇 시간이고 쓰러져 있었을지도 몰라요. 성하께서 두 사람을 호위기사로 지정해 주신 덕에 제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었어요.”
이상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의 표정이 굳어 갔다.
무심히 괴고 있던 손을 뗀 그는 안 그래도 얼음장 같던 눈에 서릿발까지 담고 이쪽을 바라봤다.
“누구라고 했습니까.”
“네? 두 사람이요?”
“거기서 요이델 님을 구한 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휘스랑 라이가 아닌가?
하지만 물어봤을 때 휘스테론은 “응. 내가 구해 줬어, 델.”이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냐고 물었더니 재차 정말이라고 대답했다.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긴 했지만, 그런 걸로 장난을 칠 리는 없었다.
그렇게 짓궂지 않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예요, 성하. 성하께서도 모르고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어쩐지, 그래서 징계를 내리신 거예요?”
“…….”
“둘은 최선을 다해 줬으니까, 너무 궂은일은 시키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이델은 당차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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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 이후부터 이유 모를 연장 근무가 연속되었다.
고작 잡무인데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붙잡아 놓았다.
남쪽 관과 마르셀리나의 수업을 틈틈이 오가며 배우는 것으로도 힘들어서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그는 조금도 요이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성하는 잠도 없나 봐. 플로의 반만큼만 잠들어 주시면 좋을 텐데.’
요이델은 낮잠에 빠진 플로테스를 요람에 눕히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요즘 플로테스가 오래 자네.’
갓 태어나서 그런가?
서재의 자료에서 본 적이 있다. 아기 신수는 오래 잔다고.
어쨌든 율리시스의 알 수 없는 분노로 처리할 일이 많아진 그녀로서는 좋은 상황이었다.
“델!”
“앗, 깜짝이야! 휘스!”
집무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휘스테론이 뛰어나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델, 나 징계 끝났어! 오늘부터 완전히 복귀야!”
쾅!
그들을 지켜보던 율리시스가 침착하게 마법으로 문을 닫았다.
“이곳은 제 집무실입니다, 휘스테론 경.”
“알아, 성하. 여기만 성하 거겠어? 이 땅이 전부 부자 성하 건데.”
역시 휘스는 간이 크다.
요이델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율리시스를 보았다. 그는 파리의 날갯짓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꺄악! 저기 마, 마수가!”
그때 얼핏 돌린 시선에 마수가 보여 놀라 소리쳤다.
저게 다 뭐야? 웬 마수?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 너머로 저 밖에 고래처럼 거대하고 시커먼 마수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시선을 깨달은 휘스테론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선가 개미 소굴이 만들어지긴 했나 봐. 우리가 잡은 건데 델, 원하면 가져도 좋아.”
“고맙지만 징그러운 건 싫어.”
“못 본 새에 단호해졌네, 우리 델.”
휘스테론은 씩 웃으며 율리시스를 돌아보았다.
그사이 라이오스가 요이델을 보고 짧게 인사를 했다. 마주 보고 웃어 주자 깜짝 놀란 듯 굳어 버렸지만.
휘스테론은 제집인 듯 기지개를 켜며 율리시스에게 다가갔다.
“아무튼 그래서 성하, 보고드리려던 건 저 마수야. 곧 있으면 축제인데 마수가 너무 많아. 이런 적은 처음인데 좀 미뤄야 하지 않아?”
주신을 기리는 성 시엘로 대축제는 10년 주기로 개최됐다.
심심할 만큼 평온한 삶을 사는 성국인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유희거리이자, 주신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일깨워 주는 뜻깊은 축제였다.
최근 몇 년 들어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일부 무역에 혼란이 있는 지금, 축제로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었다.
축제가 한 번 열리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게 되니까.
‘마수가 늘어난 걸로 중단하거나 미루기는 곤란한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마수 때문에 미룬다고 선포를 하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게 뻔했고.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곤란함을 이해했다.
하지만 휘스테론은 또 다른 고민이 생긴 듯 끙끙거리다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예전에는 안 보이던 마수가 갑자기 나타나고 많아졌어. 무슨 뜻이야, 성하?”
“아크만 설원 근방에 새로 등장한 마수로 보입니다.”
이 성국에는 만년설이 쌓인 산이 있었다. 가장 대륙의 중심부에 가까운 그곳.
“라크라스 산맥에 있는 그 눈밭? 거긴 왜?”
“확실한 건 기존의 마수와 달리 신성력에 적응한 일부 마수들이 등장했단 사실입니다. 미물급에 불과하나, 이 마수들은 토벌에 훼방을 놓고 오히려 성기사들의 신성력을 추출해 이득을 취합니다.”
“그거 귀찮게 됐네. 기생한다는 거야? 그런 마수도 있었어? 우웅, 나 무서운데, 델.”
“경.”
요이델에게 달라붙는 휘스테론을 본 율리시스는 책상을 두드려 주의를 줬다.
“이 성국에 신성력을 가지지 않은 기사는 없습니다. 하여 쉬이 토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요이델은 말을 경청하다가 토끼 눈을 뜨고 입을 떼었다.
“그럼 축제 대신 사냥대회를 열면 어떨까요?”
“사냥대회?”
“네. 신성력이 없는 기사는 없지만, 신성력이 없는 성국인들은 많으니까요.”
거대한 마수가 아닌 미물이라고 했으니 검이나 무술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에게 무리가 가지도 않을 거다.
“축제는 건국 이후 여러 차례 개최되었지만, 사냥대회는 전례가 없었잖아요. 모두 더 흥미로워하지 않을까요?”
“그거 말 된다, 델. 아니면 사냥대회랑 축제를 나눠서 축제를 사냥하느라 고생한 것을 달래는 보상처럼 열거나!”
“초입에서 그들이 미물을 물리쳐 준다면 기사단도 진입이 쉬울 거예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사냥대회의 범위는 거기까지로 제한을 두고요.”
율리시스가 손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만큼 중한 사안은 아니니까.
그의 힘은 가장 위험한 마수가 나올 때를 대비해 두는 게 낫다.
게다가 축제 준비가 한창이라 최종 권한을 쥔 그가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성하가 무리라도 하면.
‘제 몸이 힘들어져요…….’
요이델은 자신의 까만 속셈에 내심 뿌듯해했다. 이제는 그를 상대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웃음이 음험합니다.”
“제, 제가요?”
역시 성하는 눈치가 빨라. 속을 들킨 요이델은 눈을 깜빡거리며 아닌 척했다.
“사냥대회라는 명목의 축제를 열면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도 속일 수 있겠죠.”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요이델은 이제 웬만한 눈총도 끄떡 않고 견딜 자신이 있었다.
요보힐데 부부를 봤을 때 그들의 기대만큼 떨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에게 단련됐기 때문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게 있어요.”
율리시스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무언의 허락인 그 태도에, 요이델은 어떤 물건을 가리켰다.
“이거예요.”
요이델은 사냥대회 외에 또 하나의 제안을 내놓았다.
‘손수건에 자수를 놓아 상대에게 선물하는 것.’
메디아와의 교류가 열려 있을 때에는 사치품들이 성행했었다.
그러나 연회가 줄어들고 연회용 드레스나 예복을 입을 일이 없어져 재단사의 업무가 줄어드니, 직물 시장은 자연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냥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에게 자수가 놓인 손수건을 선물하는 문화를 만들어 고착시킨다면 조금이나마 직물 시장에 활기가 돌 터.
요이델이 내다본 것은 그거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 마련이고, 손수건의 자수는 다른 선물보다 의미 전달에 용이하다.
“사냥대회에 참가하는 이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게다가 참가자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칼이나 활, 둔기를 선물하는 건 값이 비싸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손수건은 그렇지 않아. 값도 상대적으로 싸고 오래 간직하기에도 좋고 실용적이니까.’
사냥대회의 참가자들은 성년 이상으로 제한을 두었다.
이 대회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면 인기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꽤 괜찮은 상금을 받아 갈 수 있다.
‘젊고 건강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참여할 거야. 혈기가 넘쳐서 멋진 모습을 뽐내고 싶고, 힘을 자랑하고 명예도 얻기에 최적이니까.’
그 말은 즉 결혼 적령기의 참가자가 많을 거라는 뜻. 손수건 선물은 이 젊은이들이 직물을 소비하기 좋은 이벤트였다.
“손바닥만 한 천에 수놓아 건네는 마음이라.”
율리시스는 모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사냥대회에서 부상을 입었을 때, 그 상황에서 당장 지혈할 만한 깨끗한 천을 구하기는 힘들 거예요. 길을 잃었을 때 나뭇가지에 걸어 길목을 표시하기도 좋고요. 실용성이 있어요. 분명히 쓸모가 있을 거예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율리시스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십시오.”
“네? 정말요?”
“회의에 올려 보겠습니다.”
요이델은 놀라움과 감격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자신을 보는 율리시스의 눈빛이 이전과 조금은 달라진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