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사냥대회 말씀이십니까, 성하?”
“아크만 설원 근방에서 신성력을 역이용하는 마수가 나타난다는 기사단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오, 세상에…… 그런 마수가 있다니요.”
대회의장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보통의 마수들은 신성력에 취약하다. 그런데 신성력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먹잇감으로 삼는 마수가 나온다니.
“그저 정기 토벌이면 될 줄 알았더니…… 성국의 기사단이 대부분 신성력을 기반으로 하는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군요.”
신관들은 놀라움에 혀를 찼다.
그건 마르셀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그런 마수는 듣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역시 성하의 혜안은 놀라우십니다!”
대회의장에 모인 신관들이 웅성웅성하다가 율리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거대한 원형 대회의장의 상석에 앉아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 의안은 제가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아, 아니, 그렇다면…….”
신관들은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거렸다. 발의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요이델 신관입니다.”
“그분이 또 말입니까?”
“놀랍군요…….”
“이제 대회의에 참가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요이델은 과거 지은 죄가 있었기에 보수적인 몇몇 신관들에게는 아직도 평판이 안 좋았다.
그중 요이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몇 재판관들이 가장 그랬다.
하지만 요이델의 실효성을 느낀 이들도 많아 멋쩍은 척 시선을 피했다.
“흠, 흠…….”
“좋은 생각이라고 사료됩니다, 성하.”
반대했던 이들도 목을 큼큼 가다듬으며 받아들였다. 율리시스는 그들의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또 한 명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럼 그렇지.’
마르셀리나였다.
마르셀리나는 대회의가 파한 후 가벼운 걸음으로 연구실에 돌아갔다.
요즘 들어 가끔 마법 상담을 하는 동료가 방문했다.
“마르셀리나 님!”
“요이델 군, 오래 기다렸나요?”
“방금 왔어요!”
마르셀리나는 웃으며 먼저 앉아 있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금방 왔다기에는 더워서 흘린 땀이며 카펫에 눌린 의자 자국이 선명했다.
이 귀여운 거짓말엔 속아 주기로 할까.
“이번에 사냥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들었답니다. 요이델 군의 안건이었다면서요?”
조금 놀란 듯한 마르셀리나의 표정을 보고 요이델은 주저했다.
너무 자극적인 얘기였을까? 학문을 좋아하는 그녀는 놀랄 수도 있다.
“그게 어떤 거냐면요, 마르셀리나 님.”
“아휴, 아쉬워라. 조금만 젊었어도 나도 참가하는 건데. 오호호호.”
“사냥을 좋아하세요?”
“물론이죠, 요이델 군. 이 연구실에 있는 생물 마법 실험체들이 어디서 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스윽 둘러보니 수많은 마수들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거 모형이 아니었나요?
요이델은 섬뜩해진 마음을 진정시키고 따라 웃었다. 내가 있는 곳이 마수들의 묘지였다니.
‘하일 님이나 성하보다 훨씬 무서운 분이셨어.’
마르셀리나는 눈이 휘게 웃으며 요이델의 입에 쿠키를 물려 주었다.
“긴장하지 말아요, 당연히 농담이지요.”
“정말요?”
“……오호호, 아무튼 이번 축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것도 요이델 군의 의견인가요?”
“원래 있던 축제가 사라진 건 아니에요. 본래 축제 기간이 7일이었던 걸 사냥대회로 닷새, 축제로 닷새 해서 총 열흘로 조정하게 될 거예요.”
“그것도 좋군요. 사냥대회 이후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도 좋은 선택이에요.”
그녀는 기특한 눈빛으로 요이델을 자꾸 쓰다듬었다.
“어쩜 이렇게 출구를 잘 찾아 나가는지.”
“마, 마르셀리나 님?”
“맛있는 걸 많이 드시고 무럭무럭 자라셔야 할 텐데.”
“저는 이미 1년 전에 성년이 지났는걸요.”
“올해 열아홉이던가요?”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에 생일도 지나서 완전한 열아홉이었다. 이곳의 성년은 대륙 공통 열여덟이었고.
“그럼 요이델 군도 사냥대회에 나갈 예정인지요?”
“아뇨, 저는 신수님이 있어서 참가는 할 수 없어요. 동행은 하지만요.”
“잘했어요. 마수도 요이델 군을 보면 귀여워서 한입에 먹어 버리고 싶을지도 모르니까요.”
“네?”
“그런데 요이델 군, 성하와 너무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지는 마세요.”
‘설마 마르셀리나 님도 성하의 이중성을 아는 건가?’
요이델은 깜짝 놀랐다.
“마수는 괜찮아도 성하께 삼켜지면 곤란하니까요.”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마르셀리나의 표정은 묘하고도 진지했다.
식인종도 아니고 뭘까? 일단 요이델은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요이델 군, 손수건도 요이델 군의 묘안이었다지요? 요이델 군의 나이에 벌써 그 정도의 실력이면 곧장 늙은이들을 따라잡겠군요.”
“마르셀리나 님은 늙은이가 아니세요!”
요이델이 놀라 대답하자 마르셀리나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당연히 알죠, 요이델 군. 원로원에 있는 노인네 둘 말이에요.”
“하일 님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그들은 많아야 중년 정도의 외관밖에 되지 않았다. 마르셀리나는 다시 호호 웃었다.
“그거랑 다른 하나도 더 있죠. 약재상이나 다름없어서 각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중이라 만나지 못했겠지만.”
셋은 절친한 사이다 보니 말을 스스럼없이 낮추곤 했다.
요이델은 내심 부러워하고 감탄했다. 깊은 친구 관계는 요이델의 꿈이었으니까.
“오늘은 이 문제 하나만 더 풀어 볼까요? 그럼 자유 시간을 드릴게요.”
그녀는 웃으며 회유했다.
그러고 보니 마르셀리나에게 할 말이 있었다.
“저번에 제가 읽었던 게 고대 메디아 언어의 철자라고 하셨던 것, 혹시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죠. 더 궁금한 게 있나요, 요이델 군?”
“저…… 혼자 생각해 봤는데요.”
마르셀리나는 책을 덮고 요이델에게 집중했다. 이번엔 무슨 흥미로운 생각을 했을까?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그게 무엇이죠?”
“마르셀리나 님께서 말씀해 주신 소문대로, 메디아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폐쇄적으로 변해 버린 거라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잃어버리면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밖에서 찾기 마련이잖아요?”
“그렇죠?”
“도움을 요청하면 더 위험해질 상황이라든가, 내부의 일이 알려지면 안 될 때 문을 걸어 잠그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비밀스러워야 하니까요. 그래서 제 생각은…….”
요이델은 조심스럽게 진지한 눈빛을 했다.
“혹시 찾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지배층과 관련이 있는 누군가요.”
순간 주르륵, 마르셀리나가 허브 티를 폭포처럼 뱉어 냈다.
“……사람. 맙소사.”
뒤이어 그녀의 눈이 크게 뜨이더니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먼지를 날리며 책상이 주저앉은 것도 동시였다.
마르셀리나가 오래 고민해 온 문제의 실마리가 별똥별처럼 쏟아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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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뭘로 보이나요?”
“훌륭한 드래곤이네요, 신관님!”
바느질을 알려 주던 남관 신관의 대답에 요이델은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였다.
신관은 재빠르게 모든 지식을 총동원했다.
“그럼 천사? 아! 라크라스의 괴수 베리군요. 앗, 혹시 와이번?”
“괜찮아요. 그런데…… 강아지였어요.”
요이델은 씁쓸하게 웃었다.
휘스테론이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손수건에 강아지를 수놓아 주려던 건데…….
“어쩐지 딱 봐도 강아지 같았어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저, 신관님. 제가 해 드릴까요? 바느질도 타고난 재능이 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하는 데까지는 해 볼게요. 고마워요.”
그러나 말과 달리 요이델은 자꾸 바늘에 손을 찔렸다.
율리시스가 눈치챌까 봐 치유 마법을 계속 걸면서 바느질하는 것도 일이었다.
요이델은 그와 사냥대회 일을 얘기할 때에도 졸음에 시달렸다.
“요이델 님, 요즘 뭘 하고 지내십니까.”
“네?!”
쿵!
서류를 잔뜩 들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던 요이델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앗, 서류들이!”
덕분에 그의 등에 부딪쳐 종이가 몽땅 흩날렸다.
요이델의 당황을 빤히 보던 율리시스는 마법으로 금방 서류를 정리해서 본인이 대신 들었다.
애초에 저 소년에 비해 서류의 양이 너무 비대해 보였다.
“많이 놀라시는군요. 무슨 일이 있으시긴 한가 봅니다.”
그의 물음에 요이델은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근래 들어 손이 따갑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 뭘 하시는지 몰라도 자제 부탁드립니다.”
“앗, 네!”
율리시스는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요이델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양심이 찔린 요이델이 활짝 웃자 율리시스는 조금 멈칫했다가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갔다.
“휴…… 들킬 뻔했어.”
‘나도 받고 싶다……. 우리 델에게 받고 싶다……. 손수건 받고 죽은 기사는 때깔도 좋다던데…….’
요이델은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의 노골적인 재촉에 준비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소중한 친구니까. 플로의 것도 준비해 볼까?
하지만 성하는 이런 선물을 달가워하지 않으시겠지. “이 거적데기는 뭡니까?” 하면서 단호하게 버릴 수도 있다.
“성하는…… 혹시 좋아하는 식물이나 광물 혹은 보석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즉답했다.
‘역시 성하는 싫어하시는구나.’
그리고 시무룩하게 생각을 접었다. 성하의 손수건은 절대 준비하면 안 되겠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다 시선이 딱 마주쳐 버렸다. 요이델은 후다닥 눈을 피했다.
사실 요이델이 축제 시작 날짜를 미루려고 했던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성하는 그날 축제에 참가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