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며칠 전.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율리시스에게 올릴 보고서를 놓고 고민했다.
“머리 터지겠네.”
만일 요이델이 수상한 의도로 신원을 속이고 있었다면, 성기사로서 성황에게 보고를 올려야 맞았다.
“델이 언제까지 성별을 속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한 거지? 그거 반지 때문인 거 맞지?”
들판에 뻗어 버린 휘스테론 옆으로, 아침 수련을 마친 라이오스가 다가와 주저앉았다.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주저 없이 보고를 올렸겠으나, 요이델이었다.
“아! 답답해서 안 되겠다. 나 가서 델한테 물어보고 올래! 왜 남장하고 다닌 거냐고!”
쾅!
휘스테론은 라이오스의 태클에 요란하게 엎어졌다.
“미쳤군.”
“뭐가!”
“신관님께서 놀라고 곤란해하실 거다.”
“젠장…… 그건 아는데. 그럼 어떡하냐고.”
휘스테론은 풀잎을 후드득 떨쳐 내고 앉아 머리를 헝클였다.
사냥대회 날 붙잡은 침입자들.
그들은 끝까지 실토하지 않았지만, 공격 방법이나 기술들에 브리칼트 제국 북부 지방 특유의 기색이 묻어 있었다.
보통 암살이 목적이라면, 그런 어설픈 흔적을 남길 이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뜻.
둘은 조사차 다녀왔던 공작령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요보힐데 가문의 권세가 제국 내에서는 황가만큼 대단했는지, 오래 살아온 이들도 영주 가문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렸다.
술주정뱅이 하나쯤은 나불댈 만함에도 불구하고 공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정신을 차리고 도망갔다.
물론 휘스테론이 멱살을 잡고 말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뭐! 그래도 성과가 아예 없진 않지.”
“사용인들이 자주 바뀌었다는 건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다.”
“응. 게다가 유모도 쫓겨났다고.”
보통 영지의 영지민들은 봉급과 일거리가 안정된 영주 성에서 일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공작령의 영지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조사한바 성황의 말대로 공작가의 공자에 대한 묘한 이야기가 돌긴 했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묘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른 사용인들은 추적해도 안 나와. 그리고 델네 그 유모,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질 않는단 말이지.”
휘스테론은 혀를 찼다.
“역시 남장은 가문 때문인가? 옛날이야기 같은 데도 나오잖아, 아들이 죽어서 모종의 이유로 딸을 남자로 둔갑시키는 그런 거.”
“소문대로 쌍둥이가 태어났으나 한쪽만 살아남았다면 가능성 있다. 요보힐데 공작가는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도 유명하니.”
“근데 성하는 왜 이런 조사를 명령했을까? 델이 여자라는 건 모르는 것 같던데.”
넌지시 의중을 물었으나 아는 티는 나지 않았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평범한 남자애처럼 대했다.
애초에 여자임을 알았다면 가까이 두지도 않았겠지. 율리시스의 혼인 압박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둘은 반려 관계고. 뭐지?”
그래서 어쩌면 요이델이 성하를 짝사랑하느라 남자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요이델과 성황의 관계는 연인이라기에는 어딘지 어색했으니까.
“사형대에서 살려 주기도 했고. 성하께서 델의 능력을 알아보신 걸까? 내가 함부로 굴어도 능력 때문에 봐주시잖아.”
“너도 주제 파악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군.”
“시끄러워.”
휘스테론은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자의는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에서 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우리는 델의 호위기사니까.”
“성하께서는 처음부터 신관님을 최우선으로 지키라고 명하셨다.”
“아, 우린 상사의 말을 너무 잘 듣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을 것 같지 않냐?”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단 셋.
마르셀리나, 휘스테론, 라이오스.
축제 날, 요이델의 뒤를 남몰래 호위하던 둘은 그녀의 정체가 탄로 날 위기가 닥치자 율리시스의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이후 요이델이 달았던 소원나무의 쪽지를 발견했다.
작은 종이에 소원을 얼마나 빽빽하게 적어 놨던지.
문제는 그 수많은 간절함 속에 자신들의 얘기도 있었다는 거다.
[플로랑 휘스, 라이, 제 친구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그런 소원을 보면 사람 마음이 찡해진단 말이야, 델.”
휘스테론은 괜히 콧잔등을 긁었다.
둘은 결정했다.
요이델의 비밀을 지켜 주기로.
━━━━⊱⋆⊰━━━━
‘요즘 성하가 이상해.’
요이델은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벌써 꽤 자랐네. 좀 빨리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음, 언제 여기까지 길었지?”
단발쯤이었던 머리카락은 빠르게 자라 어깨선에 닿았다.
요이델은 손가락에 낀 변장 마법 반지를 슥 뺐다가 다시 끼워 넣었다.
이전에도 환각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요즘 들어 더 애매모호한 건 단순히 익숙해져서인가?
‘반지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잘못 본 거겠지.’
분홍빛 앞머리를 다시 정리했다. 어쩌면 잘못 본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똑똑.
그때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시종이 미소 지으며 들어왔다.
“요이델 님, 침구를 정리해 드려도 될까요?”
“아, 네! 들어와요.”
“편안히 주무셨어요?”
“네에…… 라나도 좋은 꿈 꿨어요?”
“호호 참, 말 놓으세요. 요이델 님.”
익숙지 않은 시중에 요이델은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나이 지긋한 시종은 귀엽다는 듯 후후 웃음을 흘렸다.
처음엔 정체가 들통날까 봐 모든 일을 스스로 했지만, 어느 날 율리시스가 명을 내렸다.
‘몸이 저리는 게 당신의 노동 때문이었습니까. 오늘부터 신관의 시종들을 쓰십시오.’
요이델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쓸데없이 멍으로 물든다며 시중받기를 강요했다.
“저는 요이델 님께서 주신 주머니 덕에 잠든 줄도 몰랐어요. 눈을 떴더니 아침이 된 거 있죠? 기절한 줄 알았어요.”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일반적인 향 주머니 천은 두꺼워서 향이 잘 안 나는데, 이건 훨씬 얇고 좋더군요! 같은 걸 사서 주위에 주고 싶은데 이 주머니의 이름을 여쭤도 될까요, 신관님?”
“향낭이에요.”
“향낭!”
라나는 신기한 듯 끄덕였다.
“향낭에는 피로를 풀어 주는 꽃잎이 들어 있어서 숙면에 좋을 거예요.”
“이것도 요이델 님께서 만드신 건가요?”
이곳에는 이런 향낭이 없어서 신기한 듯했다.
드르륵.
서랍을 열자 작은 향낭 몇 개가 더 들어 있었다.
“설마, 이건…….”
“라나 주위에 수면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가져가요. 선물로 주려고 만들었어요.”
라나는 감동한 듯 입을 울컥 틀어막았다. 평범한 갈색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전에 한 번 한 말까지 기억해 주시고. 정말…… 신관님은 가만히 계세요! 여긴 제가 다 치워 드릴 테니까요.”
그녀는 의욕을 불태우며 척척 방을 정리했다.
‘수녀님이랑 비슷한 느낌 같기도 해.’
요이델은 이전 삶의 기억을 떠올렸다.
성인이 된 이후엔 바로 그곳을 나와야 했으나, 요이델은 성인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눈을 떴다.
‘여기서는 18세부터 성인이었지? 지금은 내가 19세이고.’
원래의 나이랑 비슷했다.
대단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가족도 없었지만 그곳은 성당 이곳은 성국. 수녀복은 아니나 성궁 시종들의 의복도 정갈한 게 비슷했다. 문득 떠오르는 옛 기억에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때 라나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예쁜 화병 하나를 테이블에 놓았다.
아늑하게 꾸며진 요이델의 방에 꽃 한 송이가 놓이니 화사해져서 더욱 예뻤다.
그런데 저게 무슨 꽃이지?
“라나,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신관님이라면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예쁘게 생겼죠?”
“네. 흔히 보던 꽃이랑 달라요. 라나가 기른 꽃이에요?”
주황색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어딘지 불길해 보였다.
꼭 생소한 생김새 때문은 아니었다. 화병에 꽂힌 꽃은 물의 생명을 쭉 흡수하듯 생생한 꽃을 피웠다.
“제1 정원에서 자라는 꽃이랍니다. 향도 좋고, 물과 햇볕을 보여 주지 않아도 잘 자라서 인기가 좋은 편이죠.”
“제1 정원이라면 원로원에서 관리하는 그 정원이요?”
“네, 맞아요.”
라나는 뽀송뽀송한 침구를 척척 펴며 요이델을 향해 웃었다.
“지오르베니 님의 정원이죠.”
“원로신관님의 성함이 지오르베니셨군요.”
“네. 대륙 외부의 일을 많이 하셔서 잘 뵐 수는 없지만 식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세요.”
“와, 멋진 분이네요.”
요이델의 감탄에 라나의 손짓이 잠시 멎었다.
“……그렇죠.”
순간 라나의 대답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요즘 일이 많아서 잘못 생각한 걸까?
‘지오르베니, 분명히 들어 봤는데.’
원로라서 그런가?
요이델은 일단 머릿속에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원로라면 분명히 마주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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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은 달력을 확인했다.
‘성하의 탄신 연회가 얼마 안 남았어.’
1월 1일은 탄신 연회 겸 신년제로, 그 해에 가장 첫 번째로 맞이하는 최고의 축일이었다.
어느덧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계절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대신전을 청소하는 이른 아침이면, 급격한 찬기에 기침을 토해 내곤 했다.
축제가 끝난 이후 요이델의 일상은 비슷했다.
성하의 눈빛이 묘하다는 것 빼고.
또 무슨 심기를 거스른 건가 짚어 봐도 딱히 모르겠다.
그래서 요이델은 줄곧 그를 피해 다녔다.
‘내가 여자인 걸 아셨다면 지금까지 가만히 두실 리도 없을 거야.’
요이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툭툭 두드리며 마저 빗자루질을 했다.
대신전의 바닥이 반질반질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요이델의 소소한 취미였다.
“하온데 성하, 이번 안건은…….”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저 복도 끝에서부터 다가오는 성하와 그를 보좌하는 무리.
요이델은 반대쪽으로 쏜살같이 뛰어가 아무 방에나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쿵!
“하아, 마주칠 뻔했어.”
문을 닫고 힘이 풀려 철퍼덕 주저앉았다.
“도망 다니실 때는 기척을 죽이시든가, 상대가 아예 상상할 수 없는 곳에 가시는 게 효과적일 겁니다.”
“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