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3)
63화
그런데 없었다.
“성하께서 어딜 가신 거지?!”
요이델의 예상이 완벽히 빗나갔다. 그는 집무실에 없었다.
‘혹시 지난번처럼 누구와 싸운다든가…….’
일방적인 도살 같았지만, 전투라고 치자.
어쨌든 처음 만났을 때도 비밀 도서관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늦은 밤, 흰 눈이 다시 펑펑 내렸다.
“후우, 추워라.”
요이델은 손을 호호 불며 눈을 구경했다. 그리고 저 멀리, 눈보다 아름다운 남자가 있었다.
“성하!”
그는 성궁의 종탑 쪽 다리에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가도 될까?!
요이델은 조금 망설이다가 시간을 확인한 후, 그냥 그에게 갔다.
여전히 저조한 기분으로 서 있던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젠 환각인가.”
“저는 진짠데요?!”
“……환청까지 들리는군.”
율리시스는 미쳤다고 읊조리며 다시 종탑 아래로 대신전을 내려다봤다.
“성하, 저 좀 봐 주세요.”
“이 생동감은 진짜라고 해도 믿겠군.”
“진짜라니까요!”
피곤한 듯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는 반쯤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잠시 경직됐다.
“……요이델 님?”
“진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아, 후, 휴우우…… 성하, 겨우 찾아서 만났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요이델은 활짝 웃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그를 당황시켰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생일 선물을 보면 더 당황하겠지?
요이델은 까치발을 뜨고 남몰래 푸흐흐 웃으며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왔어요.”
“…….”
“꼭 오늘 안에 드려야 할 말씀이에요. 제가 아까 드리려던 이야기, 지금 할 테니까 잘 들어 주세요.”
요이델은 장식으로 꼼꼼히 쌓인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성하 생일 선물이에요!”
“……무슨.”
편안한 차림이었던 율리시스는 조심스럽게 가운의 앞을 여몄다.
그리고 인지가 되지 않는 듯 눈을 찡그리고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아까 일!”
요이델은 가까이 다가와 속상한 듯 그를 올려다봤다. 괜히 서러워져 다시 조금 코를 훌쩍였다.
“시종과의 수다는 들을 정보가 있어서였어요! 절대 성하와의 업무를 뒤로 미룬 게 아니에요! 학술원 준비는 제게도 너무 중요한걸요!”
율리시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속사포로 쏘아 대는 병아리의 분노는 다 큰 닭보다 매서웠다.
“조찬을 피한 건, 그건, 누가 알려 줬어요. ‘서프라이즈’라는 방식이래요. 피하고 도망 다니다가 짠, 나타나서 선물을 주면…… 더 좋아할 거라고 그래서…… 그건 죄송해요.”
“휘스테론 경이 당신께 허언을 집어넣었군요.”
“그게 티가 났나요?!”
“역시 그랬군요. 그대에게 낭설을 주입할 간 큰 인물은 경밖에 없습니다.”
요이델은 조금 머뭇거렸다.
“하지만 휘스테론에게 징계를 주진 말아 주세요.”
“감싸 주시는 겁니까.”
율리시스의 안색이 더욱 불쾌해졌다.
“그, 그게 아니라…… 어, 선물 보실래요?”
“…….”
“짜잔? 선물이요.”
어색하게 웃자 율리시스는 마뜩잖게 타협해 줬다.
그는 추운 겨울날 후우, 숨을 불어 내며 선물 상자를 거두어 갔다.
요이델에게는 꽤 큰 크기였으나, 그의 손에 들어간 상자는 마치 품에 폭 안긴 것처럼 작아 보였다.
단단하고 깔끔한 손에 매끄러운 리본이 감겼다. 날씨 때문인지 손끝이 붉었다.
창공처럼 짙푸른 눈은 가늠할 수 없이 깊었다.
미끄러진 시선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바르르 떠는 요이델의 몸을 훑었다.
“제 것입니까.”
요이델이 조심스럽게 끄덕이자 율리시스는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제 것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는 리본을 끌렀다.
스르륵―
툭, 하고 푸른 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성하. 아무리 별로여도 버리시는 건, 눈앞에서는 참아 주세요. 성하를 떠올리며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생색내는 건 아니지만…….”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고 웅얼웅얼 쏟아 냈다.
“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생색이라고 보셔도 좋으니까, 아니 조금은 생색 맞아요. 어쨌든 제 선물이 성하의 마음에 들면 기쁠 것 같아요. 성하를 생각하고 의뢰한 세상 단 하나뿐인 물건이니까요.”
“…….”
“별로더라도 눈앞에서는 단 한 번만 좋아하는 척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요이델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녀의 시야는 암흑이라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싫다고 하면 울기라도 하시겠습니다.”
“으읏, 병가를 낼 수도 있어요.”
“협박입니까?”
“소망이에요.”
아주 작게 그가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이 역시 착각일까?
요이델은 여전히 긴장한 주먹을 꼼지락거리며 심판을 기다렸다.
그때 상자를 덜그럭 뒤집는 소리가 들렸다.
“편지는 없습니까?”
“네? 펴, 편지까지 써야 하나요?”
“돈으로 줬으니 편지는 없어도 된다, 이겁니까. 마음을 전한다더니 앞뒤가 상당히 다르십니다.”
“……그게, 편지 같은 종이 뭉치를 드렸다가는 찢으실까 봐서요.”
율리시스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대의 머릿속에서 제가 상당히 상종 못 할 종자라는 건 알겠습니다.”
율리시스는 포장을 풀었다.
거기엔 백금으로 만든 은백색 부토니에가 들어 있었다.
결까지 하나하나 표현된 섬세한 백합꽃 모양이었다.
중앙의 꽃술에는 푸른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서로 어우러져 황홀한 빛을 발했다.
“성국의 수련신관들은 정식신관으로 승급될 때, 지도신관에게 부토니에를 받는 관례가 있잖아요.”
요이델은 바로 고위로 올라왔지만 어쨌든 받았다.
“성하께 없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토니에가 떠올랐어요. 성하는 이 관례를 만드신 분이니까, 성하께 정식신관 부토니에를 준 사람은 없었을 것 같아서요.”
율리시스는 백금으로 만든 부토니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읽기 힘든 표정으로 상자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굳은 것 같기도, 마음에 든 것 같기도 했다.
“당신에게는 당해 낼 수가 없군요.”
“마음에 드세요?”
그의 목소리가 나직하고 부드러웠다. 율리시스는 대답 대신 뚫어지게 물건을 응시했다.
“당신처럼 참 작기도 하십니다.”
“역시 알이 커야 했나요?!”
요이델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가 성직자치고 속세적인 건 알았지만, 캐럿을 밝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달라고 하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뇨! 전 성하를 만족시킬 만큼 부자가 아니에요.”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개털이다. 더 쥐어짜 낼 주머니도 없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건 다른 나라에서 나라 대 나라로 주시지 않을까요? 이건 그냥 제 성의나 마, 마음 같은 거라서요…….”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이델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기분이 좋은 듯, 바람에 살랑 흩날리는 머리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웃고 있었다. 아찔할 정도로 황홀한 미모였다.
“마음이 너무 작아서 잃어버리겠군요.”
물론 언행은 그냥 아찔했다.
“그럼 돌려주세요!”
“싫습니다.”
“작다면서요?”
“작으니 하는 수 없이 품에 끼고 살 생각입니다.”
“그럼 마음에 드신다는 뜻이죠? 그렇죠?”
고이 닫힌 상자는 그의 손안에 포근히 안겨 있었다.
문득 잠시 눈을 찡그린 율리시스가 비스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성국의 탄신 연회까지는 시일이 더 남았습니다.”
“맞아요.”
“설혹 다른 이와 생일을 착각한 것은 아닙니까?”
잠시 멈추었던 율리시스의 시선이 의구심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처음부터 성하를 위해 의뢰한 제작품이에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물건이요.”
처음부터 네 거가 맞다는 답을 듣고 나서야 그는 날카로운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 “그렇군요.” 하며 스치듯 수긍했다.
“오늘 드린 이유는, 꼭 당일에 축하드리고 싶어서예요.”
“당일?”
“성하의 진짜 생일이요.”
선물을 조급할 만큼 서둘러 준비했던 이유였다.
율리시스의 진짜 생일.
“탄신 연회는 단순히 연회의 날짜고, 태어난 날은 오늘이시니까요.”
그 순간 율리시스의 모든 동작이 멎었다. 어쩌면 잠시간의 숨까지도.
“……당신이 어떻게 그걸.”
율리시스는 날것의 표정을 내비쳤다. 기세는 살벌하고 눈빛은 흔들렸다.
요이델은 그가 오해할까 봐 얼른 입을 열었다.
“도서관의 옛 책에서 봤어요. 진짜 생일은 30일이지만, 신년제의 의미도 있고 새로이 시작하는 뜻에서 1월 1일을 탄신제로 삼았다고요. 그 전통이 지속되었다는 것도요.”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율리시스를 제대로 설득시킬 수 없다.
내가 원작에서 봤다, 혹은 내가 예지 능력으로 봤어요, 같은 말은 할 수도 없고 후자는 맞지도 않다.
“생일 축하드려요, 성하.”
뎅―
뎅―
그 순간 한 해 마지막 날이 되었음을 알리는 종탑이 울렸다.
그의 생일이 지나, 31일이 되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시간 안에 제대로 축하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이델은 활짝 웃었다.
“성하께서는 사실 플로보다 먼저 저의 친…… 아니죠. 친구가 될 수도, 친해질 관계도 아니었지만 친밀하게 대해 주신 제일 첫 번째 사람이시니까, 생일에 반드시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나랑 친하게 지내 주세요. 또 검 같은 거 들이대면 안 돼요. 이건 일종의 뇌물이에요.
그런 속내였다.
겉대답만 들은 율리시스는 한참 동안 선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시력을 되찾은 사람처럼, 그에겐 흔했을 보석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이런 걸 왜 하나 싶었는데.”
“앗.”
“그렇군요. 마음을 전한다, 그런 의미로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거였군요.”
흐르듯이 조용한 말이었다.
“일전의 언행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네?”
“탄신제를 의미 없는 취급했던 것, 죄송했습니다. 저의 무지이니 용서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앗, 아뇨, 그건…… 용서했어요! 아니, 용서라고 할 것도 없는데…….”
요이델은 화들짝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우물쭈물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냥…… 제 말은 성하께서 성하의 탄신 연회를 좋아해 주시면, 성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훨씬 기쁘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어요. 그러니까 성하도 성하를 조금만 더 좋아해 주시면 좋겠어요.”
“…….”
“힘드시면, 다음 생일에도 선물을 드릴게요. 그럼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땐 너무 비싼 건 못 드릴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는 쉽게 수긍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달빛에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빛났다.
율리시스의 미소가 천사 같기도, 숨김없는 아이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안정된 미소였다는 것. 그게 최고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