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
9화
요이델은 중앙에 소속되라는 명령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뭇 사람들이 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으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완벽히 율리시스의 눈 아래에 놓이게 될 삶이니까.’
요이델은 이제 사람의 웃는 얼굴을 믿지 않기로 했다.
“……신관.”
“휴우.”
“요이델 수련신관!”
쾅!
앞을 보니 백발에 붉은 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맞다, 여긴 교육장이었지?
“앗, 네!”
“내가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는 겐가? 설마하니 허투루 듣진 않았겠지. 자네가 말해 보게.”
동시에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문제를 낸 이는 원로 중 1명인 하일로, 수련신관의 교육장에 특별 수업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는 처음부터 요이델을 마뜩잖게 보고 있었다.
“설마 딴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가장 앞자리에 앉은 자네가 말일세!”
요이델은 침착하게 칠판을 바라봤다. 거기엔 치료술이 적혀 있었다. 약초의 효능 같은 것들.
어떻게 답해야 할까?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지만 천천히 제시문을 다시 살피고 해답을 떠올렸다.
그가 낸 문제는 ‘많은 약제에 기초로 활용할 수 있는 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맞추는 거였다.
‘아!’
요이델은 바로 일어나 하일을 마주 보았다.
“답은 마솅트 나무입니다.”
“마솅트? 왜 그렇게 생각했지?”
“건국 초기, 성국 행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남쪽 분관에서 치유학을 연구할 토대를 마련하신 마샤 신관님의 이름을 딴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뜻에서요.”
“……정답일세. 정확하군.”
얼떨떨한 얼굴의 하일은 수줍게 웃는 요이델을 희한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수업이 끝나고 나올 때까지 얼떨떨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분명히 흉포하던 소년이었는데 언제 저렇게 영민해졌는가. 핀잔을 주려고 질문했는데, 오히려 그 신관을 다시 보게 되어 참 애매했다.
이것 참 이상한 일이군.
하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를 걷던 그때.
타다다닥.
“원로 예하!”
“아니, 자네는……? 어허, 뛰지 말게. 넘어진다네. 그런데 무슨 볼일인가?”
요이델은 하일의 뒤를 쫓아와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고개를 번뜩 든 요이델은 다급히 말했다.
“꿀에 절인 배에 마솅트 진액을 섞어서 끓여 드시면 목 아픈 데에 효과가 좋으실 거예요.”
“……그걸 왜 내게 말하는 겐가?”
“목이 아프신 것 같아서, 도움이 될까 해서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긁는 소리를 내시는 걸 들었어요. 그 차를 드시면 분명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건 원작에서 회의가 잦은 남자주인공이 즐겨 마시던 차였다.
“……뭐어, 일단은 고맙네. 기억하겠네.”
하일은 아리송한 얼굴로 ‘모르겠군.’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요이델은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어 속으로 헤헤 웃었다. 도움이 된 걸까? 그럼 좋을 텐데.
들뜬 마음으로 식사 홀에 들어갔는데, 이번엔 요이델의 곁에 누군가 스윽 다가와 앉았다.
말을 걸진 않아도 주위에 사람이 많아 온기가 채워졌다.
“요이델, 무화과 타르트 먹을래?”
그때 누군가가 용기를 쥐어짜 내 요이델에게 물어왔다.
“……나?”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한테 주는 건가? 왜?
놀란 붉은 눈을 보고 의문을 깨달은 상대가 조용히 말했다.
“저번에 벌레 잡아 줬던 거 기억 안 나? 그때 고마웠다고.”
“아…….”
“그리고 사실 네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 안 해. 테오가 먼저 발을 걸려는 걸 나도 봤거든.”
다들 그의 말에 숨을 죽였다. 더러는 미쳤나 봐, 라며 조용히 쑥덕거렸다. 그들이 알던 요이델이라면 ‘이딴 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라면서 길길이 날뛸 테니까.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장을 안고 지켜보았다.
어, 요이델의 눈이 커진다. 입도 벌어져. 분명 화내겠지?
“정말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어.”
그 순간 공기가 쫙 얼어붙었다.
드르륵―
“요이델! 주스 좋아해? 이거 먹어. 오다 주웠는데 내 취향 아니라!”
“혹시 이건…….”
“나 단 거 좋아, 아니 싫어하는데 디저트가 남았거든. 이것도 먹을래?”
살얼음판이 깨짐과 동시에 호의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모두 그녀에게 도움을 얻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요이델에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호의를 나누어 주었다.
이전에 요이델의 악평이 너무 높았던 만큼, 작은 호의로도 그들은 쉽게 마음을 풀었다.
평소 행실이 나빴던 만큼 작은 선행의 효과는 컸다.
“뭐, 뭐야, 요이델! 웃잖아? 나 잘못 본 거 아니지?”
그들은 두 개의 이유로 놀랐다. 하나는 요이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용감함. 다른 하나는 요이델의 수줍은 웃음.
악명에 묻혀서 그렇지, 요이델은 남자답게 잘생기진 않았지만 선이 가늘고 아름답게 생긴 편이었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 보는 요이델의 표정에 놀라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늘 화내는 모습만 봤었는데. 저렇게 웃기도 하는구나.
조금씩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요이델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감정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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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를 고깝게 보는 이도 있었다.
‘요이델 따위가 신수 관리자를 한다고?’
귀동냥으로 소식을 접한 테오는 발을 절뚝이며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길이 나오자 목발을 벗어 던져 버렸다. 그 안색은 흡사 야차처럼 사나웠다.
사실 그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조금 더 과장했을 뿐. 그래야 요이델이 큰 벌을 받을 테니까.
상처 따위야 의료신관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테오는 안경을 추켜올렸다.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대체 왜!’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손가락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제멋대로 뜯겨 나간 뾰족한 손톱 사이에서 피가 흘렀다.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겠지. 성하께서 요이델 같은 놈을, 아무리 한직이라고 해도 그런 자리에 넣을 리가 없었다.
잘못됐다. 한참 잘못됐다.
그의 눈에 들어야 하는 건 미친 요이델 따위가 아니라 자신이어야 했다.
그는 대대로 소환사를 배출한 가문 출신이었으니까. 신수든 마수든 어떤 동물이든 요이델보다 자신의 능력치가 뛰어날 터였다.
그런데 요이델이라니? 요이델이라니!
‘성하께서 내 실력을 못 보셔서 그래. 알아봐 주신다면 분명히 요이델 따위는 쫓아내고 나를 눈여겨보실 거야.’
테오는 이 기회에 요이델을 완전히 쫓아낼 생각이었다.
이미 요이델의 평판은 극도로 나쁘다.
비록 요즘 이상한 일을 행하며 조금 나아졌다곤 하나,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이럴 때에 제대로 꺾어 놓는다면 더욱 좋겠지.
테오의 신경질적인 낯에 비소가 번졌다.
끼이익.
그는 신수의 알이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보안이 꽤나 철저해서 애를 먹었다.
이미 지니고 있는 소환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소환수가 아니었다면 잠금장치를 풀지 못했을 것이다.
테오는 애초부터 존재했던 이 간극을 알지 못했다.
요이델에게는 쉽게 열렸던 문이, 그에겐 굳건히 닫혀 있었다는 걸. 그는 처음부터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테오는 자신의 손등에서 지저귀는 작은 소환수를 툭 치워 떨어뜨렸다.
다람쥐처럼 생긴 소환수는 굴하지 않고 칭찬을 바라는 듯 몸을 타고 올라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찍! 찍찍!
“시끄럽게 굴지 말고 꺼져.”
하지만 테오는 그 초롱초롱한 꼴이 보기가 싫어 소환을 해제했다.
저딴 보잘것없는 소환수는 필요 없다.
‘저 정도는 되어야지.’
저 신수 정도는 되어야 가문을 볼 낯이 선다. 성황의 신임도 얻고 자신의 명예도 드높여 줄 저것.
테오는 형형한 눈으로 분홍빛 알을 바라보았다.
저게 태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을 만나지 못해서이리라. 그는 할 수 있었다. 적어도 테오는 그렇게 믿었다.
‘요이델 따위는 방해나 되지. 아무것도 아닌 게.’
그래서 테오는 위아래를 모르는 요이델에게 세상의 따끔한 맛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아주 조금만, 조금 흠집을 내면 그 분홍 머리 놈이 범인으로 몰리겠지.’
그는 자신의 갈색 머리가 아닌, 분홍빛 가발을 쓰고 몸을 숙인 채 이곳까지 들어왔다.
혹시 몰라 떨어진 요이델의 머리카락도 줍고 지문이 남지 않는 마법 도구도 비싼 값에 구해 왔다.
그러니 그가 여기서 어떤 일을 저질러도 요이델의 안일한 관리가 문제가 될 터.
혹은 평소 행실이 나빴던 요이델이 범인으로 몰리거나.
어느 쪽이든 그가 원하는 바였다. 높이 치켜든 주먹을 알을 향해 힘껏 내리꽂았다.
휙―
“안 돼!”
쿵!
요이델은 알을 안고 몸을 힘껏 내던졌다.
“젠장. 또 너냐?”
“이게 무슨 짓이야…….”
요이델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신수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피부가 쓸리고 까여 일부는 멍이 들어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테오를 노려보았다.
“얘는 살아 있어. 말도 알아듣고 볼 수도 있다고! 왜 아무 잘못도 없는 플로를 깨뜨리려는 거야!”
이 알은 그녀의 첫 번째 친구였다.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타박상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테오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직접 괴롭히면 되지, 왜 말도 못 하는 이 알까지 못살게 굴려는 거지? 요이델은 테오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 모습은 심보가 꼬인 테오를 더욱 자극했다.
“우습게 굴긴. 벌써 관리자 행세라도 하려나 본데…….”
“플로는 내 친구야. 나머지 다리도 절고 싶지 않으면 그만둬!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요이델은 진심으로 소리쳤다. 다행히 알에는 금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놀란 듯 그녀의 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괜찮아, 플로. 내가 왔으니까 안심해도 좋아. 떨지 마, 쉬잇.”
플로는 비록 알의 모양이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였다.
요이델은 어디쯤 달려 있을지 모를 귀 부근을 추측하며 조용히 알의 겉면을 막아 주었다. 나쁜 말은 들으면 안 되니까.
“다리? 하!”
“그래, 그때도 다리를 걸려다가 네가 당한 거잖아!”
그런데 다시 보니 테오의 다리가 멀쩡했다. 게다가 저 분홍 머리카락은 내 건데?
상황을 파악한 요이델이 불쾌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앗!”
그리고 곧장 주저앉았다.
다리가 욱신거려 제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하필 이런 때에……!
‘삐었나 봐.’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곤란에 처했다.
테오는 눈을 번뜩이며 다가갔다. 요이델이 알을 안고 있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이 적기였다.
“이게 주제도 모르고……!”
휙!
손을 올렸다. 그런데 턱, 하고 뭔가에 걸렸다.
어? 왜 팔이 안 내려가지? 이상하다.
팔을 휘두르려 노력했으나 못에 박힌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점차 숨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이상했다. 몸이 이상해.
“욱, 우욱…….”
바로 그때.
테오의 등 뒤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니, 자세히 보니 빛이 아니었다. 찬란한 빛을 드리우는 은발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저놈은?’
눈앞에 있는 요이델의 얼굴이 이상했다. 테오의 뒤에 있는 뭔가를 보는 듯 눈이 점차 크게 뜨였다.
테오는 불길한 기운에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어떻게 알고…….
테오는 뻣뻣해진 고개를 들고 천천히 시선을 뒤로, 그리고 위로 올렸다.
“주제도 모르고…….”
남자는 느긋한 투로 테오의 말을 따라 읊조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곳엔 웃음기 한 점 없는 푸른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율리시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