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59)
“어제는 뭐, 이래저래 내가 양보했지만······ 오늘은 무조건! 무조건! 뛰어들 생각이야.”
주위사람들 들어라, 부러 크게 말하는 정기현.
“그런데 이 작가 정보가 없어서. 신 대표는 아는 게 좀 있나,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말이야.”
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엄청 내성적인 분인데요. 또 어떨 땐 되게 활달합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요. 그리고 너무 창백해서 가끔은 서양인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으래? 작품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정통파스러운 면이 있는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도 많이 하십니다. 정보가 많이 없어서 저도 이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기현은 알쏭달쏭한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멜레온 같은 사람인가보군?”
그게 당연했다.
내가 알쏭달쏭하게 답을 했으니.
“맞습니다.”
그리고 제 히든카드이기도 하죠.
“그래, 고맙네. 그런데 신 대표.”
“네, 말씀하십쇼.”
“경매 끝나고······ 잠깐 나랑 대화 좀 나눌 시간이 되나?”
아아아, 그럼요.
우리도 그럴 작정이었는데 잘 됐네요!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빼놓도록 하겠습니다.”
“클클클, 그럼 나중에 봅세. 절대 잊지 말게.”
정기현의 눈은 또 다시 꿀단지가 되어 있었다.
오늘도, 예감이 좋았다.
*
3층 사무실.
고태양이 안절부절 못하며 걸어다녔다.
“지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아, 요트가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네?”
그러자 미스터 빅이 푸하하 웃으며 폰을 들어 보였다. 정말 헐리웃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새하얗고 럭셔리한 요트 사진이었다.
‘미친······ 진짜 좋다.’
나는 다시 고태양에게 물었다.
“저 요트가 왜요?”
“홍콩······ 대박났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홍콩 1일차 낙찰총액이 970억 원.
우리는 640억쯤이었으니 상당한 격차였다.
‘330억 차이라······ 역전할 거 같은데?’
아니, 그리고 요트를 받아도 내가 받는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해 하시지.
오히려 내가 고태양을 위로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에요, 지사장님. 오늘 저희 라인업 세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런데······.”
“그런데, 또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닙니다······ 이제 없습니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신가.
누가 소화기를 뿌린 것처럼.
그 이글거리던 눈동자가 완전히 물러져 있었다.
“에이, 그럼 됐어요. 기운 차리세요.”
“그래, 미스터 고. 이제 시작하니까 둘 다 어서 와서 앉게.”
미스터 빅의 말대로.
2일차 경매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중계화면 속, 이형욱은 어제보다 멀끔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 크리스티 서울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럼 >20세기와 동시대, 아시아 현대미술전>, 그 둘째날 밤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오늘 출품작 소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매장 분위기는 다소 산만해 보였다.
아무래도 다들 어제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이수>와 >월광>이 등장할 피날레 전까지는 여유롭게 지켜볼 모양이었다.
그건 미스터 빅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네.”
음, 그래선 안 됐다.
“미스터 빅. 잠깐만요.”
“응?”
“진짜 중요한 전화 아니면 다음에 해요.”
“왜? 뭐 있나?”
“뭔가 있죠.”
“······.”
미스터 빅은 폰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자네 말이라면······ 알겠네.”
그리고 바로 시작된 2일차 첫 경매.
경매사 이형욱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경매장에서도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 지금 말씀드릴 사항은 전적으로 이설민 작가, 본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내용입니다. 저희 >크리스티 서울>에서는 여러분께 무언가를 숨길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밝힙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까.
장내가 고요해졌다.
이형욱은 젠틀하게 웃으며 뒤로 손을 뻗었다.
[ 스크린을 잠시 보겠습니다. ]스크린에 떠오른 것은 작가의 영문명이었다.
[ 이설민 Yi Sul Mean. 혹시 이 영문명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긴 분은 없으실까요? ]이내, 그 알파벳의 순서가 뒤바뀌기 시작했고.
그 기묘한 프리젠테이션의 의도를 제일 먼저 눈치챈 건 미스터 빅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치며 연달아 탄성을 터트렸다.
“아! 아아! 아아아!”
“크큭, 되게 빨리 찾으시네요?”
“내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게 애너그램이었는데! 이걸 못 알아봤다니! 젠장, 뛰어내리고 싶군!”
미스터 빅의 말이 맞았다.
[ Yi Sul Mean ]그 알파벳들의 순서를 바꿔서 재조합하면 나오는 두 이름.
[ I-Su & Melany ]두 천재 작가의 이름이 스크린에 완전하게 떠올랐을 때.
이형욱은 딴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이설민은 가명입니다. 정확히는 서이수와 멜라니 플로이드, 두 작가의 콜라보 네임이며······ ]경매장에서는 으와아, 미쳤다, 뭐야! 하는 감탄사들이 계속해서 터져나왔고.
이형욱은 텀을 충분히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 오늘의 첫 출품작, >명료>는 두 작가의 콜라보 작품입니다. ]어수선하고, 산만하고, 혼탁했던 경매장도.
마침내 명료해졌다.
바로 폰을 들어올리고, 분주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해외지사와 연결된 수화기에도 불이 난 듯했다.
미스터 빅은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 서프라이즈였나? 그런데 어제 마지막 작품도 이설민 작품이었지?”
“네, 맞아요. >혼탁>.”
“으······ 완전히 복권에 당첨된 셈이군. 부러워! 너무 부러워!”
사실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멜라니조차 한시적으로 내게 판매권을 위임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둘도 진짜 죽이 잘 맞아.’
시작은 멜라니의 제안이었다.
[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우리가 아닌 무명 작가의 이름으로 경매에 출품하면 어떻게 될지. ]살을 붙인 건 서이수였다.
[ 그럼 이튿날에 그 작가가 우리인 걸 공개하죠. 그래야 완전히 대조가 되니까. ]그동안 별의별 작품 활동을 해왔던 멜라니는 두 손, 두 발 다 들며 동의했고.
그렇게 둘은 콜라보 작품 2점을 만들어냈다.
‘천재와 괴짜는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감당이 안 돼.’
내가 지인들에게 이설민의 >혼탁>을 추천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서이수와 멜라니의 작품을 그 정도 가격에 살 기회는 평생 다시 없을 테니까.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작품들을 여럿 추천했으니까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고.
위너는 민채연이었다.
‘기특해 죽겠어, 크큭.’
>혼탁>의 낙찰가는 7500만 원.
그러나 그 작품의 진짜 가치는 오늘 정해질 터였다.
[ 여러분. 어제 같은 작가의 작품, >혼탁>이 7800만 원에 낙찰된 걸 아십니까? 그 시작가는 3500만 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명료>의 시작가는······ ]이형욱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경매장 곳곳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팔이 번쩍, 올라왔다.
‘크으······ 스타트 좋고.’
>명료>하게 시작해서 >월광>을 받으며 마무리될.
경매 2일차.
[ 5천, 7천, 9천······ 1억! 지금부터 5천 단위로 조정하겠습니다! 1억 5천, 2억, 2억 5천······ 응찰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내가 떼돈을 벌었으니.
오늘은 서이수를 떼부자로 만들어 줄 차례였다.
거물들이 아니라 괴물들
눈부신 조명 아래.
수많은 눈빛들이 반짝였다.
지켜보는 눈이 이렇게 많으니.
심지어 그 모든 시선이 내 얼굴과 내 손 끝으로만 향하고 있으니.
긴장되지 않고,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
그러나 가슴은 대책없이 벅차올랐고.
온몸에는 찌릿찌릿한 고양감이 치밀었다.
‘나도 저기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지······.’
크리스티 뉴욕 경매를 처음 가봤던 날.
지폐다발을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리는 저들과 나는, 정말 다른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그런데 지금 그들 앞에.
내가 이렇게 서있었다.
‘가보자.’
나는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
손바닥을 내보이며 작품을 가리켰다.
“서이수 작가가 이 작품을 제게 처음 보여주며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 말로 이 작품 소개를 갈음하겠습니다.”
그리고 청중을 둘러보며.
서이수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무음 9>보다 더 좋은 작품을 보여주겠다. 그 이름은 >월광>이다.”
단숨에 술렁이는 장내.
곳곳에서 나지막한 탄성도 터져나왔다.
‘미스터 빅이 들으면 싫어할 텐데, 크큭.’
그치만 서이수가 실제로 한 말인데 어쩌랴.
억울하면 둘 다 사시든지.
나는 몸을 바로 세우고.
준비했던 말을 던졌다.
“그럼 서이수 작가의 >월광>, 그 시작가를 공개하겠습니다.”
일제히 쏠리는 시선.
“200억에서 시작된 >무음 9>는 590억 원에 자신의 주인을 택했지요. 그렇다면 >월광>의 시작가는······.”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학창시절 선생님 왈, 여기에 서면 너희 뭐하는지 다 보여. 그 말이 맞았다.
조식으로 정어리를 바라는 돌고래떼처럼 고개를 내밀고, 얼른 말해달라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얼굴들이 보였으니.
‘좋아.’
미스터 빅이 해준 원포인트 레슨 덕분이었다.
[ 공기를 읽고, 그 온도에 자신을 맞춰라. 경매사 후보생들에게 내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라네. ]우선, 청중의 마음을 읽을 것.
다음, 그들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
그게 우스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든.
심금을 울리는 성직자든.
엄격한 재판관이든.
순간순간 가장 필요한 역할을 찾아내서 취할 것.
[ 작용, 반작용. 액션, 리액션. 알겠어요. ] [ 푸하하, 이해가 빠르군. ]거기에 미스터 빅이 덧붙인 한마디.
그럼그럼,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홍콩지사를 이기는 것도.
낙찰총액 1000억을 넘기는 것도.
서이수의 작품을 제대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보다는 후순위였다.
‘어차피 알아서 따라올 것들이야.’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150억, 아니죠.”
크큭, 경매사들 이럴 때 진짜 얄밉더라.
“160억, 아니죠. 170억도 아닙니다. 바로 >무음 9>와 동일한 시작가. 200억입니다.”
준비한 멘트는 이제 끝이었고.
지금부터는 누가 어디에서 손을 들지 알 수 없는 라이브 경매.
“지금부터 응찰 받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손을 내뻗는 동시에.
두 눈을 부릅 떴다.
‘미니맵 봐, 미니맵!’
마침, 좌우 양측에서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손을 들어올렸다.
‘왼쪽이 먼저였지? 맞아.’
그런데 그때.
의외의 우군이 나타났다.
──코로로로로로!
──퓨퓨퓨퓨퓨!
바로 탐코코였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녀석들은 좌측으로 팽그르르 날아가더니.
손을 들고 있는 남자 위를 맴돌았다.
먼저 손을 든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지목해준 것.
‘녀석들아, 격하게 사랑한다!’
나는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능한 한 젠틀하고, 부드럽게.
“좌측 신사분, 200억.”
시작부터 들뜰 필요는 없었다.
‘공기를 읽어.’
200억?
아직은 미지근한 온도였다.
역시나 바로 우측에서 올라온 손.
──코로로로로!
──퓨퓨퓨!
탐코코도 거기로 날아갔다.
“우측에서 다시 210, 210. 다음은 220.”
이어서 높은 스탠드 쪽으로 날아가는 탐.
나는 거기에 적혀있는 글귀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밀라노에서 220, 밀라노에서 220.”
해외지사라고 띄워줄 필요도 없었다.
아직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대양.
고요한 물결뿐.
그러다 제대로 된 파도가 들이닥치면······.
“뉴욕에서 전화응찰 300. 바로 300으로 응수합니다!”
그 파도의 크기만큼.
거기에 담긴 열기만큼.
나도 따라가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우리 회장님들도 살짝 자극해주고.
“신대륙의 제너럴 셔먼 호가 달빛 아래 위협 사격을 가하는군요. 이대로 괜찮을까요? 다음은 310, 310입니다.”
해외지사도 살짝 떠보고.
“샹하이, 파리, 런던······ 아직입니까? 아, 홍콩도 지금쯤이면 경매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었으니 착석하시죠. 다음은 310, 310······.”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슬슬 적응이 되는 느낌.
‘재밌네, 이거.’
순백의 털을 휘날리며 휙 날아가는 코코를 따라, 다시 한 번 손을 내뻗었다.
*
한편, 경매장 1층.
정우희는 오랜만에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어머, 어머머······.”
검푸른 만월과 네이비 정장이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 파리에서 310, 이어 좌측에서 320, 우측에서 330. 좋습니다, 왈츠를 추기 딱 좋은 템포네요. 마침 현재가도 330. 다음은 340, 340······ ]장내를 쥐락펴락하는 저 애티튜드는 얼마나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지.
‘안내방송 말대로라면 급하게 준비했을 텐데······ 대단하네.’
정우희는 민채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참 안목 있다, 엄마가 봐도 저 친구 너무 멋지다, 라고 칭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얘가 더하네······.’
하트 모양으로 활짝 열린 입술.
황홀한 무언가를 바라보듯 촉촉한 눈빛.
민채연은 마치 평생을 기다린 콘서트를 보듯 이 경매에 푹 빠져 있었다.
‘좋을 때다.’
정우희는 싱긋 웃으며 몸을 바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