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선생 놈이 미래를 보는 것 같다니, 보통 사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과거로 돌아온 나로선, 그놈이 정말 미래를 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도 얼마 전까진 그놈이 전생의 날 알고 있는 이유가 회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게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만약 선생 놈의 능력이 미래를 보는 거라면, 아마 내 전생에서 일어났던 일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자,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그냥 해 본 말이다. 세상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아…….”
“근데, 정말 그렇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치밀한 놈이야. 항상 한발 앞서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긴 하죠.”
회귀든, 미래시든 실제로 다른 사람들보다 정보에서 항상 앞서 있는 놈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일단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함부로 말해 주긴 어려워.”
“감사합니다. 아저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공리회’라는 이름을 알게 됐으니, 그걸 따라 추적하면 놈에게 다가갈 수 있겠지.
“감사는 무슨. 그럼 나도 할 일이 아직 남아서 슬슬 가 봐야겠다.”
“일이요?”
“그래 인마. 내가 감방 한번 갔다 왔다고 평생 백수로 살 줄 알았냐?”
“뭐 하시려고요?”
아저씨가 얼굴을 긁적였다.
“다시 복귀해야지. 난 사업 체질은 영 아니라서.”
아저씨의 국회 복귀라. 이러면 내가 또 도와드려야지.
“혹시 정치자금 같은 거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무이자로 빌려드릴 테니까.”
내 말에 아저씨가 코웃음을 쳤다.
“참나. 내가 빌릴 사람이 없어서 너한테 빌리냐? 네 사람들한테나 더 써라.”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젓는 아저씨한테 내가 지금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슬쩍 말해 줬다.
“뭐? 지, 진짜냐?”
“당연하죠. 저 부자 됐어요.”
“음……. 솔직히 혹하긴 하는데, 그래도 괜찮다. 아저씨도 자존심이 있어, 인마.”
“그래요? 그럼 경호라도 붙여 드릴게요. 명색이 경호업첸데.
“뭐? 경호는 무슨. 됐어.”
“제 성격 아시죠?”
그전까지는 괜찮았다 하더라도, 선생의 최대 변수인 나와 접촉한 아저씨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우리 팀원 하나 정도는 붙여 놔야 내가 좀 안심을 하지.
아저씨는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알았어. 싫다 해도 어떻게든 붙일 거지? 다시 연락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저희 회사 들러서 건한이라는 녀석 찾아가요.”
“음? 바로 데려가라고?”
“네. 빠릿빠릿한 녀석이니까 제가 시켰다고 하면 준비해서 나갈 겁니다.”
“건한이? 오케이.”
윤건한. 극진공수도를 15년 수련한 우직한 녀석이다.
부대에서도 맷집 하나는 최고 수준이었지.
공리횐지 뭔지 하는 놈들이 갑자기 공격해도 충분히 버텨 줄 인선이다.
드르륵-.
“진짜 간다. 그리고 계산은 내가 했다.”
“네? 아니…….”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아저씨는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래도 식사는 내가 사려고 했는데, 이미 계산하셨을 줄이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아저씨인가 해서 보니 라세흠 부장이었다.
“어, 부장님.”
“오랜만이다 야. 저분은 누군데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해?”
“아버지 친구분이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입니다.”
“아. 그래? 근데 이거 남은 거냐?”
상 위에는 아직 손대지 않은 반찬들이 남아있었다. 워낙 찬의 가짓수와 양이 많은 탓이었다.
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뭐 이리 많이 시켰는지. 심지어 못 보던 음식도 몇 개 있었다.
“앉아서 드세요. 얘기할 것도 있고.”
“오케이.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잘됐네. 무슨 얘긴데?”
나는 부장님한테 아까 회의실에서 말했던 내용을 전달했다.
부장님의 대답은 명쾌했다.
“난 당연히 가는 거지. 우리 부모님도 요새 장사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네가 좀 보태 줘.”
“당연하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부장님.”
“음?”
“혹시 뒷마당에서 뭐 하세요?”
수정과를 마시려던 부장님의 손이 멈췄다.
“하하. 그게 무슨 말이냐?”
“여기 직원이 말해 주더라고요. 부장님이 유나 씨랑 뒷마당에 있다고.”
“아니, 뭐 별건 아니고…….”
부장님의 뭔가 있는 듯한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요?”
“그냥, 임 사장님이 호신술 정도 알려 달라 하더라고.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고 싶다면서….”
“……그래요?”
기특하네. 그런 생각도 하고.
부장님이 가르친다는 게 조금 불안하긴 한데, 호신술 정도라니 괜찮겠지.
“그럼 지금은 어디 계세요?”
“사장님? 지금은 휴게실에 계실 거다.”
남은 음식은 부장이 맛있게 먹도록 두고, 난 유나 씨를 만나기 위해 휴게실을 향했다.
“유나 씨?”
직원 휴게실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들어가자,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는 유나 씨가 보였다.
호신술을 배운다더니,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었다. 저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유나 씨가 휴게실로 들어온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주혁 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아, 예원이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어쩐 일이세요?”
“그냥 얼굴도 뵐 겸, 유나 씨한테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내 말에 유나 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단 앉으세요.”
임유나가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라줬다.
“어유, 감사합니다.”
“대접할 만한 게 마땅히 없네요. 죄송해요.”
“에이, 괜찮아요. 식사도 맛있게 했는데요.”
“다음에 제가 식사 한번 대접할게요.”
유나 씨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
이게 힐링이지.
“근데 주혁 씨. 광철 아저씨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나는 유나 씨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깜짝 놀랐다.
“유나 씨도 아세요?”
“네. 아버지 친구분이라 어릴 때 몇 번 뵀거든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그, 혹시 아버님 성함이 임 성자 국자 되세요?”
“네. 아버지 이름 맞아요. 그건 왜…….”
“제 아버지랑 유나 씨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 사이더라고요.”
내 말에 임유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요?”
“네. 광철이 아저씨랑 셋이서요.”
“와, 신기하네요. 저희 인연이 보통이 아닌데요?”
“그러게요. 저흰 만날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하.”
신기하다는 듯 손을 마주치던 임유나가 순간 얼굴을 붉혔다.
“으, 흠. 그런가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예전에 주혁 씨 아버님이 절 구해 주셨을 때 두 분이 막 반갑게 인사한다든가 그러지 않으셨거든요.”
“흠. 그래요?”
“네. 답례도 받지 않으시고 그냥 그 자리에서 떠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예상은 했지만, 아무래도 두 분의 관계가 좋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성격이 좋아서 어지간한 문제로 얼굴 붉히거나 인연을 끊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당시 상황을 물어볼 사람이 없네. 광철이 아저씨는 알고 있으려나?
‘안타깝네.’
유나 씨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것만 아니었다면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높으신 분들의 밀담이 이루어지던 풍원요정을 관리하셨으니, 선생 놈이나 공리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았을까?
혹시 유나 씨가 아버님께 뭐 들은 게 없을까 싶긴 한데, 이 자리에서 그 주제를 꺼내기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군요. 답해 줘서 고마워요.”
“뭘요. 숨겨야 할 얘기도 아닌데요. 다시 가시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마음 같아선 그때처럼 유나 씨랑 데이트나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순 없는 노릇이다.
다시 한번 선생 놈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어떻게든 정체를 알아낸다. 그리고 족쳐 버린 뒤 유나 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다.
나는 타들어 가는 속내를 숨기고 유나 씨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네. 꼭 봐요.”
환하게 웃는 유나 씨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휴게실을 나왔다.
카운터에서 맡겨 놓은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어느새 짬 처리를 끝냈는지 복도로 나온 부장님이 날 불렀다.
“뭐야. 벌써 가냐?”
“아, 예. 찾아갈 데가 좀 있어서요.”
“같이 갈…… 아, 난 가면 안 되는구나.”
“네. 부장님은 우재성 씨랑 연락하면서 서울 내의 상황을 지켜봐 주세요. 지금쯤 서울 내 조직들의 동향을 확인하고 있을 겁니다.”
“알았다. 이번엔 어디 가는데?”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가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천안이요.”
“천안? 천안이면…….”
“네. 맞아요.”
“병천순대?”
“아니. 그거 말고요.”
날아온 서류에서 선생 놈에 관한 정보를 삭제한 놈.
그놈이 흥신소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흥신소를 관리 중인 최용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최 사장님. 바빠요?”
***
이주혁이 떠나고, 임유나는 테이블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빠랑 주혁 씨 아버님이 친구였다니……. 상상도 못 했어.’
그런데 둘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보였던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고등학교 동창이고, 광철 아저씨까지 셋이서 아는 사이였다면 원래는 가까웠을 것 같은데.
이주혁에게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임유나는 둘이 만났을 때의 기억이 어느 정도 있었다.
과거 임유나가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을 때의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셈이냐?
-어쩔 수 없잖아.
-그래.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 임유나로서는 그때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그나저나 그 오빠는 어떻게 지내려나.’
임유나가 사고를 당했을 때, 같이 휘말린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이주혁의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고 바로 뒤이어 구하러 갔었다.
임유나의 차는 크게 찌그러진 정도였지만, 상대 차는 몇 바퀴를 굴러 전복된 상태라 걱정했었는데.
‘기적같이 크게 다친 데는 없었지.’
사고를 당했는데도 이상하게 차분해서 괜찮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본 게 맞았구나…….
그 뒤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잘살고 있겠지?’
***
다음 날, 나는 배상훈의 차를 타고 천안으로 이동했다.
끼익-.
“여기 맞냐?.”
“이야 차 좋네. 역시 돈이 좋기는 좋아?”
내가 차에서 내려 보닛을 퉁퉁 두드리자 배상훈이 따라 내리며 발작했다.
“X발. 찌그러지면 뒤진다? 아직 할부도 안 끝났어. 성과금으로 겨우 갚고 있는데.”
“집에 돈도 많은 놈이 쪼잔하게……. 밥이나 먹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에 왔던 순대 맛집이었다.
배상훈이 눈앞의 가게 간판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날 돌아봤다.
“돈도 많은 새끼가 짜치게 순대냐. 좀 비싼 걸로 사 주지.”
“공짜 밥 먹으면서 말이 많네. 여기가 순대 원탑이다. 닥치고 따라오도록.”
“에이 씨…….”
하여튼, 입맛은 더럽게 고급스러워요.
그 긴 시간 동안 짬밥은 어떻게 먹었냐?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사장님에게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 또 왔어요.”
“잉? 아, 그…… 그때 서울 총각 아녀?”
“오, 기억하시네요. 순대국밥 둘에 병천순대 한 판 주세요.”
“그려. 좀만 기달려유.”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뒤 손짓했다.
“수저랑 물.”
“맡겨 놨냐?”
“내가 사잖아.”
“썅…….”
탁. 탁.
배상훈이 테이블을 세팅하는 사이 핸드폰을 꺼내 최용달한테 전화를 걸었다.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으니, 밥 먹고 흥신소로 가면 되겠지.
뚜르르-.
신호음이 울리고 시간이 지났다.
뚜르르-.
수신음이 한참을 울렸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스멀스멀 몰려드는 불길한 예감에 핸드폰을 닫으며 미간을 좁혔다.
……왜 전화를 안 받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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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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