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나는 강남파의 주 사업과 활동 내역이 적힌 종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뒷면을 돌려 봐도 선생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우재성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어지간한 정보는 다 확인해 봤는데, 대표님이 말씀하신 ‘선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건 없었습니다. 아니, 지워졌습니다.”
“지워졌다고요.”
“네. 누군가 일부러 도려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겠네요. 선생이란 놈은 자기 정보가 노출되는 걸 꺼리는 성향이니까요.”
그래서 자기 수족들이 잡히면 주저 없이 자결을 명령하는 거겠지. 혹시 정보가 새어 나갈까 봐.
“그럼 애초에 이 정보들이 조작된 채로 흥신소로 들어온 겁니까?”
내 물음에 우재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으로선 그렇지만, 흥신소 내부에서 삭제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부라면…….”
“이미 그쪽이 선생에게 먹혔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허.”
듣고 보니 정말 내부 직원이 정보를 없애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최용달이 SA흥신소를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원래 일하던 직원이나 내가 흡수한 깡패들을 쓰고 있으니까.
날 믿고 따르는 녀석들이 아니니 선생 쪽에 의해 배신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놈 편이었을 수도 있다.
“한번 내려가 봐야겠네요.”
“바로 찾아가시면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의심이 간다고 바로 찾아가면, 혹시 존재할지도 모를 배신자가 눈치채고 튈 거다.
자연스럽게 명분을 만들어서 내려가는 게 베스트. 오늘 중으로 최용달한테 연락해 봐야겠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모든 팀원이 회의실로 모였다.
그런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사발은?”
전직 사기꾼이자 현직 SA의 영업이사.
우재성이 오기 전 난쟁이와 돈 관리를 맡아 주던 녀석이었다.
“설마, 돈 들고 튀었어요?”
“아뇨. 국정원이 자길 알아볼 수도 있다면서 잠시 피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복귀 중이십니다.”
“아…….”
뒤통수 맞은 건 아니네.
“다행이네요. 회사 임원을 제 손으로 묻을 일은 없어서.”
아무래도 처리하긴 아까운 놈이지.
전생에선 비록 강남파에 붙긴 했어도, 이번 생엔 나한테 꽤 도움이 됐거든.
“대표님. 일단 현재 상황을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재성의 말에 앞을 보니 팀원들의 시선 모두가 나를 향해 있었다.
“여러분. 제가 국정원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 많이 했을 겁니다.”
“국정원 걱정을 했지.”
“닥치시고. 우선 상황 설명을 좀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회의실에 모인 이들한테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풀어 줬다.
주철수 뒤에 있던 놈이 선생이라는 사실과 홍콩에서 왕후성을 건너오게 만든 게 놈이라는 것.
또 이번 국정원 사건도 선생이 개입한 것 같다고 설명하자 팀원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던 배상훈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접는 게 맞지 않냐? 그런 놈을 상대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모가지만 따는 것도 안 되잖아. 누군지도 모른다며?”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배상훈의 의견이 맞다.
보통 사람이면 그런 거대한 존재에 맞서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발을 빼기엔 이미 늦었다.
“선생 놈은 날 주시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여기서 흩어진다 해서 우릴 가만히 둘 거란 보장은 없잖아?”
“아, X발. 그건 맞지. 더럽게 엮였네.”
배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다 물었다.
“난 그렇다 쳐도, 다른 애들 가족은 어떡하냐. 안전은 보장해 줘야 마음 놓고 다니지 않겠어?”
“그건 당연히 해 줘야지.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가족은 내가 다 보호해 줄 거야. 안전 가옥에 경호원까지 붙이면 그놈도 함부로 건들 생각은 못 하겠지.”
나는 고민하는 티가 역력한 팀원들을 살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걸리는 모양이다.
“얘들아. 빠질 사람은 지금 빠져. 지금 타이밍에 빠져야 선생이란 작자도 너희를 안 건드릴 거야.”
“…….”
내 말에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다 한다는 거냐?”
“당연하지.”
백기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난 가족 없다.”
“나도 알아. 넌 필수 참가였어.”
“이런 X발.”
“나도 한다.”
또 손을 들길래 보니, 성질 더러운 손정택이 책상을 탕 쳤다.
“그 선생이라는 놈만 날리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냐?”
“그렇지.”
“나도 남는다.”
“어차피 조진 거, 우리가 뒈지기 전에 먼저 무너뜨리면 되는 거잖아?”
둘을 시작으로 팀원들이 다들 잔류 의사를 표했다.
역시 의리의 부대원들. 믿고 있었지.
부장님은 당연히 하실 거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은 배상훈 한 명.
나는 녀석한테 그윽한 시선을 보내며 대답을 종용했다.
“우리 상훈이. 어떡할래?”
얼굴을 구기며 고민하던 배상훈이 숨을 길게 토해 냈다.
“X발……. 성과금부터 통장에 꽂아.”
“오케이. 바로 보내 줄게.”
내 흔쾌한 대답에 배상훈이 벌떡 일어났다.
“야, 이 개새끼야! 뭐 처리할 게 많다고 계속 미루더니, 지금은 또 바로 보내 준다고?”
“마침 딱 보내려던 타이밍이었어.”
배상훈은 속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중간에 빠지진 않을 거 다 안다.
“모두 남아 줘서 고맙다. 보상은 확실하게 할게. 너희들은?”
구석으로 고개를 돌리며 묻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후배 녀석들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행님. 저희는 끝까지 따라갑니더.”
“중간에 빠질 순 없지예.”
녀석들은 선생 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날 따라온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좋아. 부장님이랑 태섭이한텐 내가 따로 전달할게. 그리고 여기서 차 있는 사람?”
“…….”
훈훈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이것들이…….
“박살 날 일 없으니까 안심하고 말해라.”
“배상훈.”
“상훈이가 차 샀다고 자랑하더라.”
“썅!”
나는 히죽 웃으며 배상훈을 향해 물었다.
“차는 또 언제 샀대?”
“성과금 들어온다길래 할부로 미리 질렀다. 됐냐? 차는 왜 필요한데?”
“내일쯤 천안에 내려갈 것 같은데, 좀 태워 달라고.”
“알았다. 몇 시에 가는데?”
“11시쯤 출발하자.”
배상훈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당분간은 대기해. 조만간 큰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부장님 안 계신다고 놀지 말고. 사무실 정리는 좀 부탁한다.”
“오케이.”
“부장님은 거기 좀 더 계시라고 해.”
“그냥 거기 취직하면 안 되나?”
부장님. 얼마나 애들을 굴렸으면 이런 취급이십니까.
나는 회의를 파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슬슬 풍원한정식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탁.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아저씨랑 얘기 끝나면 부장님과 정태섭한테도 알아낸 정보를 공유해야겠다.
……가는 김에 유나 씨랑 시간도 보내고 말이야.
부릉-.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액셀을 밟았다.
***
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전히 손님들이 북적댔다.
그래도 아까 예약해 놨으니 자리는 있을 거다.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 카트를 밀며 지나가던 강예원이 날 보며 인사했다.
“왔네? 일행분은 8번 방에 계셔.”
“어. 고맙다. 혹시 유나 씨 바쁘셔?”
“음. 그 라세흠 부장님이랑 뒷마당에 계시던데. 너 왔다고 말씀드릴까?”
둘이 뒷마당에 나가 있다니, 뭔가 느낌이 싸했다.
이거, 부장님이 또 뭘 가르친답시고 이상한 거 하고 있진 않겠지?
“아냐. 내가 따로 말씀드릴게. 수고해.”
“어.”
아니길 빌며 한광철이 있을 8번 방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어, 왔냐? 앉아.”
“네. 먼저 드시고 계셨네요?”
후룩!
백숙 국물을 야무지게 흡입하던 아저씨가 머쓱하게 웃었다.
“허허. 어제저녁부터 밥을 못 먹어서. 미안하다. 배고프지? 주혁이 너도 먹어라.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아저씨 말대로 배가 고프긴 했다.
수저를 들고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 먹던 중 아저씨가 물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최철호가 깡패 놈들이랑 연관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냐? 허술한 놈은 아닌데.”
“아, 그거요?”
나는 깡패를 사칭해 최철호와 잠깐 마주했던 이야기를 풀어 줬다.
“푸핫! 이 또라이 같은 자식. 그 녹음본은 가지고 있냐?”
“그럼요.”
최철호와 다른 사람들의 밀회 내용이 담긴 녹음기. 최용달을 통해 놈에게 넘겼지만, 당연히 안에 든 내용은 복사해 놨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겨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저씨. 근데 뭐 때문에 최철호를 의심하고 계시던 거예요?”
“음…….”
아저씨는 내 말에 침음성을 내며 고민에 빠졌다.
이게 그 정도의 질문인가?
“그래. 여기까지 온 거 너도 알아야겠지.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결정을 내렸는지 아저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공리회(功利會)라고, 들어 봤냐?”
“공리회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되짚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낯선 단어였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아저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네가 알 리가 없겠지.”
“무슨 단체 이름이에요?”
“그래. 선생 놈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이다.”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조직폭력배이자, 사이비 종교, 테러 단체라고 할 수 있지.”
“예? 무슨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건 다 합쳐 놨네. 대체 뭐 하는 놈들인 거예요?”
“말 그대로다. 내가 말한 것들의 단점을 전부 버무려 놓은 세계적인 조직이 공리회야.”
세계적인 조직이라고? 그럼 선생 놈은 그 정도 규모의 세력을 움직일 수 있단 뜻인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저씨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놈은 세계 각지의 범죄 조직들과 협력 관계야. 네가 상대한 삼합회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레드 마피아, 미국의 갱 같은 놈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세계적인 쓰레기네요.”
“어쨌든 선생이 한국인이니, 본 거점은 한국 안에 있을 거다. 나도 정확한 이름은 파악 못 했는데, 단서를 종합해 보니 종교 단체인 것 같더라고.”
“거길 이용해서 돈과 사람을 충당하겠군요.”
“그렇지.”
고전적이고 악질적이지만, 종교는 그만큼 확실한 수법이기도 하다.
“선생 밑에 있는 놈을 붙잡은 적이 있는데,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끊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세뇌한 걸 수도 있겠네. 개X끼.”
이 새끼, 주철수는 비교도 안 될 상당한 쓰레기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럼 선생의 신상명세…… 이런 건 모르세요?”
“그건 아무도 몰라. 그놈 최측근도 정확하겐 모를 거다.”
“아…….”
뭔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쉽지 않네.
“작은 거 하나라도 없어요?”
“……나도 현직 시절에 그놈을 좀 알아봤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
“저도 따로 알아봤는데, 자기 정보를 철저하게 숨기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놈이 너한테 직접 전화했다는 말을 듣고 놀란 거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고민했지. 네 말대로 선생이 젊은 남자라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만큼의 세력을 가지게 됐을까. 여기에 대해 난 한 가지 가설을 세워 봤다.”
탁.
젓가락으로 책상을 찍은 아저씨가 몸을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속삭였다.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인데, 아무래도 선생 그 작자, 미래를 볼 수 있는 거 같다.”
아저씨의 그 말에 저절로 눈이 커졌다.
의도한 게 아니라, 정말 놀란 탓이다.
‘이 양반……. 소름 돋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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