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SA시큐리티의 로비를 떡대가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그리고 백기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당신, 여기 직원 맞지? 내가 인적사항 싹 다 뒤져볼 거야. 걸리기만 해봐!”
“허.”
백기준의 웃음에 떡대의 이마에 혈관이 돋던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험악해지려던 분위기를 끊었다.
“죄송합니다. 엘리베이터에 잠시 문제가 생겨서.”
우재성이 백기준과 덩치들 사이를 뚫고 계단을 내려왔다.
눈썹을 꿈틀거린 떡대가 우재성을 보며 물었다.
“여기 직원이십니까?”
“아, 예. 기다리시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저기, 저 사람들은…….”
“경호를 의뢰하러 온 사람들인데, 자꾸 행패를 부려서 내보내던 참입니다.”
우재성은 떡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백기준과 팀원들이 있는 쪽을 보며 소리쳤다.
“소란 그만 피우고 빨리 나가세요!”
“…….”
백기준과 팀원들은 눈치껏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건물을 떠났다.
“정말 의뢰인 맞습니까?”
“예. 말씀하신 대로 인적사항을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일단 올라가시죠. 10층입니다.”
“예.”
팀원들에게서 떡대의 시선을 돌린 우재성이 엘리베이터에 앞장서 올랐다.
방문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분위기는 썩 화기애애하진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우재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려면,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론 그건 아닌 것 같던데요.”
띵-.
10층에 도착하자 떡대가 우재성의 말을 무시하고 요원들에게 명령했다.
“시작해.”
“예.”
우재성은 흩어져 수색을 시작하는 그들을 보며 눈썹을 까딱였다.
“하긴, 국가에서 진행한다는 데 일개 개인이 따라야죠.”
요원들은 이주혁과 우재성의 사무실, 회의실을 포함한 업무를 진행하던 곳이 모두 뒤졌다.
탁.
우재성은 한참 수색 중인 이주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여유롭게 소파에 앉았다.
사무실을 수색하던 요원들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서랍을 보며 당황하는 눈치였다.
있는 거라곤 등산용 나이프나 잡동사니들뿐, 뭔가 나올 만한 서류라곤 단 한 장도 없었다.
탁.
이주혁의 책상 서랍을 닫은 요원이 우재성 쪽을 쳐다봤지만, 그런다고 튀어나오는 건 없었다.
‘찾는다고 찾아질 리가.’
흥신소에서 넘겨받은 중요한 서류들은 이미 파쇄된 채 소각장에 있으니 말이다.
거기 적혀있던 정보들은 모조리 우재성의 머릿속에 담겨있었다.
전생의 강남파 비밀 장부를 모조리 외우고 다니던 우재성이 그런 증거가 될 만한 걸 남겨놓을 리가 없었다.
“이게 다야?”
“그런 것 같은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요원들이 찾을 수 있었던 서류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되지 않는 내용뿐이었다.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수상하기에, 이럴 때를 대비해 우재성이 놔둔 것들이다.
떡대가 이주혁의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이내 인상을 구겼다.
“여기도 이게 끝이야? 제대로 턴 거 맞아?”
“예.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 일단 다 챙겨.”
그 말에 요원들은 일단 찾은 서류들을 상자에 담았다.
뒤이어 우재성에게 다가온 떡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곳도 살펴보겠습니다.”
“아, 저희가 사용하는 공간은 이게 다입니다. 나머지 층은 사용하지 않거나, 리모델링을 준비하는 곳이라서요.”
“정말입니까?”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싹 다 수색해.”
그 말에 요원들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우재성은 그걸 보며 눈을 가리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대련실 안의 지하실만 안 걸리면 끝이겠네.’
팀원들이 철저하게 위장해놨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
잠시 후, 우재성은 로비에 모여 있는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다 끝난 겁니까.”
뒤를 돌아본 떡대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예. 그럼.”
이번에도 거의 건진 게 없는 모양인지, 요원들은 어두운 낯빛으로 출구를 향했다.
‘안 걸렸나 보네.’
우재성은 씩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말없이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 우재성은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띵-.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온 우재성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
꿈틀.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마주한 우재성의 얼굴 근육이 경련했다.
우재성은 핸드폰을 꺼내 이주혁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그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어지럽혀진 공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이상 없이 끝났습니다.]다행히 압수수색은 잘 넘어간 모양이다.
우재성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취조실 바깥에서 김민규 파트장이 누군가와 통화 중인 게 보였다.
화를 내는 건지 아까보다 제스처가 좀 커진 느낌인데, 아마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현장팀한테 한소리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우재성에게 확인했다고 보낸 뒤 의자에 기댔다.
‘날 잡아둘 명분은 다 사라졌어.’
이제 날 보내줘야 할 시간이 됐다는 소리지.
안 그래도 통화가 끝났는지 김민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달칵.
“뭐랍니까. 별거 없다죠?”
“그건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애쓴다, 애써.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어떻게든 SA시큐리티를 걸고넘어져야 할 텐데, 뭐 나온 게 없으니 막막할 거다.
근데 그건 이 사람 사정이고.
“파트장님. 슬슬 나갈 때 되지 않았나요? 여기 꽤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혐의도 입증 못 하셨으면서 선량한 시민을 이렇게 잡아놔도 되나?”
우웅-.
고뇌에 빠져있던 김민규가 문자를 확인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이주혁 씨.”
“예?”
“혹시…… 한광철 전 의원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어딘가 해탈한 듯한 표정의 김민규 파트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대체 SA시큐리티가 뭐 하는 회사길래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당신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질문이 많으시네. 이제 용건도 다 끝났으니 가도 되는 거겠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김민규는 사실상 날 잡아놓길 포기한 모양이다.
체념한 듯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지도 않고 있었다.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김민규를 향해 미소를 지어줬다.
“상상도 못 할 겁니다.”
***
그 길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한테 목적지를 말해주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
“하…….”
오늘 일진 참 더럽네.
귀찮은 일을 당하니까 피로가 몰려왔다.
가는 길에라도 좀 쉬려고 눈을 감았다.
끼익-.
“도착했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뭔 5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지긴 했는지 머리만 댈 수 있으면 잠들었다.
택시비를 내고 내리니 SA시큐리티의 건물이 보였다.
로비로 들어서자 한바탕 휘젓고 간 탓인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행님! 괜찮으십니꺼!”
“행님!”
자기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던 후배 녀석들이 날 보고 달려왔다.
“괜찮다. 뭐 하고 있었길래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 하도 안 오시길래 행님 구출 작전을 한번 구상해보고 있었지예.”
씩 웃으며 말을 꺼내는 덩치의 뒤통수를 후렸다.
딱!
“악!”
“쓸데없는 데 힘쓰지 말고 따라와. 위에 정리는 덜 됐지?”
“예. 재서이햄은 자기 사무실 정리 중이고예. 다른 분들은 회의실이랑 비품실, 창고 원상 복구 중입니더.”
“찾아가서 회의실로 다 모이라고 전해. 나 복귀했다고.”
“예!”
“예! 행님!”
녀석들이 계단으로 우당탕 올라갔다.
10층인데 왜 계단으로 가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회의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때, 품 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누구 전화인지 확인해보니, 광철이 아저씨였다.
“여보세요?”
-야, 주혁아. 괜찮냐? 아직 잡혀있어?
“나와서 회사로 복귀 중이에요.”
-하이고. 이 자식아. 어쩌다 국정원한테 소환을 당한 거야?
왜긴요. 선생 놈이 제 세력을 털어버리려고 작업 들어온 거죠.
-그래도 나왔다니 다행이다. 압수수색도 들어가지 않았어?
“네. 다행히 걸릴 만한 건 없었어요.”
-하. 이 새끼들, 아직 혐의도 없는데 영장을 날려? 정신 나간 거지.
“그러게요. 근데 아저씨. 혹시 국정원 쪽에 연락했어요? 저 조사하던 사람이 아저씨랑 친분 있냐고 물어보던데.”
내 물음에 아저씨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 얘기 그대로 했지. 적당히 안 하면 혐의도 없는 사람 물고 늘어지는 남산 시절로 돌아갔다고 하면서 터뜨려버리겠다고. 내가 아직 그 정도 힘은 있으니까.
“터뜨리긴 뭘 터뜨려요. 그리고 굳이 그렇게 안 하셔도 제가 알아서 나갈 수 있었어요.”
-그래도 인마. 잡혀가서 고생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꺼내줘야지. 이 아저씨의 배려심을 모르겠냐?
“저도 다 알죠.”
-어쨌든 문제없다니 됐다. 쯧. 건방진 짜식. 뭐? 굳이 안 해도 돼? 끊는다 이 자식아.
이 아저씨. 또 서운해서 전화 끊으려고 하네.
“잠시만요. 뭐 하나 부탁드릴 게 있는데.”
-부탁? 뭔 부탁?
살짝 반색하며 말하는 아저씨에 절로 웃음이 났다.
날 도와주고 싶어 안달 난 느낌이랄까.
선생 놈은 분명히 정계 쪽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거다.
이 나라에서 잘 먹고 잘살려면 필수 코스니 말이야.
“혹시 국회의원들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어요?”
-음? 국회의원?
그놈이 접근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이 국회의원이다.
전생에서도 주철수가 국회의원 여러 명과 끈을 만들어 놓은 걸 봤기에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의원들과 만나 선생 놈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하나라도 걸리면 대박인 거지.
-그건 왜?
“아저씨 덕으로 인맥이나 좀 만들까 해서요.”
-왜. 이참에 나 대신 정계 진출이라도 하게?
“그건 아니고, 알아볼 게 있어서요.”
잠시 고민하던 아저씨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이것도 그놈 짓이냐?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선생 놈이 누구한테 줄을 대놨는지 좀 확인해 보려고요.”
-안 그래도 의심 가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해.
“누군데요?”
촉이 좋은 아저씨의 말이라면 신빙성이 있었다.
-최철호라고, 아냐?
누구?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최철호. 강남파랑 붙어먹으려던 놈이었지.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최철호 뒤처리를 해주던 용달파를 내가 먹어버렸으니까.
“주철수한테 줄을 대려던 놈이라 저도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래? 내 눈이 아주 잘못 된 건 아닌가 보네. 안 그래도 조만간 자리를 한번 만들려고 했는데, 그때 너도 함께하면 되겠다. 판은 내가 깔아주마.
뭔가 확실히 든든한 맛이 있었다.
이게 바로 백이라는 건가?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는 됐고, 우리도 자리 한번 만들자.
“네?”
-밥이나 한번 먹자고. 저녁 먹었냐?
그러고 보니 배가 슬슬 고프네.
점심도 거르고 벌써 시간이 5시가 다 됐다.
날 굶게 한 선생 놈과 김민규 파트장에 대한 적의가 물씬 솟아났다.
“아직요. 점심도 안 먹었어요.”
-에헤이. 밥을 잘 먹고 다녀야지.
탄식한 아저씨가 물었다.
-이 근처에 맛있는 데 있냐?
“있죠. 풍원한정식.”
-풍원한정식……? 풍원요정 말이냐?
“아세요? 풍원요정 폐업하고, 사장님 딸이 풍원한정식으로 리뉴얼했거든요.”
-성국이 딸내미면, 유나?
“어? 뭐예요? 유나 씨도 아세요?”
-당연히 알지.
무슨 말 하는 사람마다 다 아는 사람이야?
-나랑 너희 아버지랑 유나 아버지 셋 다 동창이었는데.
“정말요?”
우리 아버지랑 유나 씨 아버지도 동창이었다고?
-몰랐냐? 하긴, 그 둘은 좀 서먹서먹했지. 성국이는 좀 약은 면이 있었고, 네 아버지는 열혈남아였거든.
“그건 모르고 있었네요.”
-그럼 일단 거기서 보자. 몇 시에 볼까?
“7시 어떠세요?”
-오케이. 거기서 보자. 수고해.
“네.”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설마 아저씨가 최철호 의원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니.
오히려 잘 됐다.
그러고 보니 최철호가 애타게 찾던 녹음기에 담긴 이름들도 있었다.
검사, 의원, 기자. 뭐 다양한 이름들이 나오던데, 이놈들을 다 털어보면 선생 놈과 관련된 정보 하나 정도는 캐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흥신소에 뒷조사도 맡겼으니 뭐라도 나올 거다.
살아있는 사람인 이상 완벽한 유령은 될 수 없거든.
달칵.
회의실로 올라가 문을 여니 우재성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별일 없었죠?”
“네. 지하실도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다행이네요. 백기준 이 새끼, 걸렸으면 바로 퇴출이었을 텐데.”
“저, 대표님.”
말을 꺼내는 우재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흥신소에서 일단 자료를 보내왔는데…….”
“왜요. 문제 있습니까?”
“하나도 없었습니다.”
“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우재성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도 안 나왔다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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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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