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7
126화
탁.
우재성이 테이블 위에 종이 하나를 던졌다.
올라온 종이에 SA시큐리티 팀원들의 시선이 몰렸다.
풍원한정식에 있던 라세흠 부장과 정태섭도 잠시 시간을 내 복귀한 상태였다.
팀원들의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재성을 보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여러분을 불러 모은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급한 사안이니 부르셨겠죠.”
어차피 빈둥대고 있던 배상훈은 우재성의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성과금으로 투자나 좀 해 보려는데, 우재성이 경영학 전공의 투자 고수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주혁도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그놈이 곱게 도와줄 것 같진 않았다.
“말씀만 하시죠. 저희는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하하.”
“국정원에서 대표님을 소환했습니다.”
“구, 국정원이요?”
배상훈은 우재성의 말에 깜짝 놀랐고, 돼지와 난쟁이가 목청을 높였다.
“국정원이면 그 막 선그라스 낀 요원들 있는데 아이가?”
“맞을 낀데. 행님이 금마들한테 잡히갔단 말이가.”
국정원. 듣기만 해도 뭔가 위축되는 단어였다.
작은 나이프를 만지작대던 백기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쪽에서 주혁이를 왜 데려간 겁니까?”
우재성은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팔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추측할 순 있죠. 국정원이 대표님을 건드릴 만한 사건은 딱 두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습니다.”
“뭐죠?”
“미국에서 있었던 비스트 갱 섬멸. 그리고 얼마 전 삼합회 소속 왕후성이 사망한 사건.”
잠자코 듣고 있던 배상훈이 우재성을 보며 말했다.
“둘 다 타국과 엮인 사건이네요.”
“국정원의 주요 업무니까요. 충분히 관심이 쏠릴 만한 건이죠.”
“음. 그런데 분명 주혁이는 문제 생길 일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겁니까?”
우재성은 팔짱을 끼며 턱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대표님이 그 사람들을 따라가기 전에 말씀하신 게 있었습니다. 방금도 연락이 왔습니다.”
“그 녀석이 뭐라고 했습니까?”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하더군요. 국정원이 자신만 조사할 것 같진 않다면서요.”
“허…….”
배상훈이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간 동고동락한 녀석이기도 하고, 연봉도 최고 수준으로 쳐 주길래 취직했는데.
‘조폭 기업 잠입에, 이젠 국정원까지 나오냐?’
배상훈은 헛웃음을 지으며 우재성에게 물었다.
“대응 매뉴얼 같은 건 따로 있습니까?”
“법적으로 문제 될 사항은 흥신소밖에 없긴 합니다. 공식적인 조직이 아니라 언급하지 않으면 책잡히진 않을 겁니다. 다만…….”
“다만?”
우재성이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과잉 진압이라고 엮일 만한 폭력 사건이 또 없는 건 아니라서……. 만약 이게 누군가가 의도한 상황이라면, 저희가 발이 묶인 사이 뒤에서 작업을 칠 수도 있습니다.”
“허.”
우재성의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지금껏 육체적인 위협은 있었어도, 이런 식으로 압박을 당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해 주셔야 할 건 하나입니다. 불리하게 작용할 진술은 거부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면 대표님한테 물어보라고 하세요.”
그 말에 라세흠 부장이 손을 들고 말했다.
“주혁이 녀석은 계속 거기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잡아 둘 명분도 없으니까요. 저흰 혹시 모를 공격이 들어올 걸 대비해야 합니다.”
우재성은 팀원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 있는 걸 확인하고 책상에 손을 짚었다.
“대표님이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하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항상 방법을 찾던 놈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난 이렇게 머리 굴리는 건 젬병이라.”
라세흠 부장의 물음에 우재성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니 지시가 있으면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를 제외한 분들은 직원으로 등록되지 않으셔서 소환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굳이 계약서 쓸 필요는 없다던 게 이런 일을 대비하려고 그런 건가. 난 처음에 이 새끼가 떼먹으려고 이러나 했는데.”
“역시 행님은 허투루 하는 기 없다니까예.”
상황을 지켜보던 배상훈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직원 등록이 돼 있는데요.”
언더커버 시절, 혹시 경찰에게 쫓길 수도 있었기에 이를 대비해 배상훈이 SA시큐리티 소속이라는 증거를 남겨 놓았다.
우재성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배상훈 씨는 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예? 아니……. 알겠습니다. 더 전달하실 사항 있습니까?”
“더 생기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전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담배가 확 말리네.”
회의실에서 나온 배상훈은 로비로 내려갔다.
성과금을 빨리 받아야 뭐라도 하는데, 이주혁이 잡혀 있으면 수령할 수가 없다.
일단 잡혀간 그놈이 풀려나야 한다.
계속해서 눈앞에 억 단위의 돈이 아른거리기만 하니, 끊었던 담배가 당겨 왔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남은 담배를 확인하려던 배상훈의 눈에 로비로 들어오려는 남자들이 보였다.
“누구십니까?”
배상훈은 의아한 얼굴로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선두에 떡대가 제법 있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183cm의 피지컬을 가진 배상훈과 맞먹을 정도의 덩치였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말이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도착한 그들을 배상훈이 당황한 눈으로 쳐다봤다.
떡대가 그런 배상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여기 직원이십니까.”
“어…….”
배상훈은 순간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
“예. 직원 맞습니다.”
“여기 사무실은 몇 층에 있습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지…….”
의아해하던 배상훈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떡대 뒤에 선 남자들이 든 빈 상자. 흔히 검사나 경찰들이 압수수색을 할 때 물건을 담는 곳이다.
‘이 새끼들……. 우리 사무실 털러 왔구만?’
배상훈은 일단 입구에서 비켜섰다.
시간을 좀 끌어 볼까 생각했지만, 괜히 그러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아직 이주혁한테 성과금도 못 받았는데, 그걸 써 보기도 전에 감옥신세를 질 순 없었다.
상자를 든 남자들이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고 몇 놈은 배상훈을 보면서 비웃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저 새끼들이…….’
아무래도 국정원이 단단히 마음먹은 거 같다.
‘뭐 하고 있냐…….’
이주혁은 아직 연락이 없는 건가.
핸드폰을 꺼내 이주혁의 번호를 급하게 누를 때였다.
“뭐야?”
국정원에서 왔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배상훈은 계단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올라가려는 남자들을 웬 덩치 큰 놈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백기준이 막아선 것이다.
“뭡니까?”
양옆의 팀원들을 뒤로 계단을 떡하니 막은 백기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떡대도 그에 지지 않고 대꾸했다.
“비키시죠. 공무집행 중입니다.”
“아, 그러세요?”
백기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길을 내주지 않았다.
“비키라니까. 당신 여기 직원이야?”
“아닌데요?”
떡대의 말에 백기준이 보기만 해도 열 받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엘리베이터로 가면 되겠네요. 사무실은 10층이라 걸어가긴 좀 힘들 텐데.”
“…….”
험악해지려던 분위기가 살짝 잦아들었다.
떡대는 팀원들의 얼굴을 기억하겠다는 듯이 둘러보더니, 이내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을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춘 채 내려오지 않았다. 그 옆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를 위에서 붙잡고 있는 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뿌득.
표정을 일그러뜨린 떡대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새끼들이…….”
***
“지금쯤 압수수색 들어갔겠네요?”
김민규 파트장은 내 말을 무시하고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미국에서 의뢰를 받았다는 건 사실입니까?”
“어차피 제 사무실 털 건데, 거기서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요?”
나는 팔짱을 끼고 의자 뒤로 기댔다.
증거도 없는데 내가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우웅-.
핸드폰이 울리는 걸 본 김민규가 밖으로 나갔다.
취조실 같은 곳에 혼자 남은 나는 문 바깥에 서 있는 직원 하나를 불렀다.
“저기요.”
“예?”
“전화 한 통만 합시다.”
“음……. 그건.”
“제가 통화할 권리를 박탈하신 건 아니잖아요?”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취조실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화는 녹음될 수 있습니다.”
그래. 당연히 녹음기가 있겠지.
김민규가 자꾸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우던데, 녹음을 통해 뭘 캐내려는 것 같더라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우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의 뒷배로 유력한 선생 놈의 뒷조사를 좀 해 봐야겠다.
뚜르르.
“여보세요? 우재성 씨?”
-……예.
전화 너머로 뭔가 다급한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쪽도 들어갔습니까?”
-네?
“한 명이니까 편하게 하세요.”
혼자 있다는 뜻을 전하자 우재성이 상황을 설명했다.
-압수수색은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밑에서 잠시 시간 끄는 사이에 흥신소에서 날아온 서류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여유 생기면 순대 하나만 부탁합시다.”
부장님이 하도 천안은 순대가 맛있다면서 말하고 다녀서, 눈치 빠른 우재성이라면 내 의도를 알아챌 거다.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나는 김민규 파트장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작게 말했다.
“순대‘선생’이라고, 강남에 있는 가겝니다. 확인해 보라고 전해 줘요.”
-주철수를 움직이던 게 선생이라는 사람이군요. 그럼 분명 강남파와 연관된 일이나 사업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겠네요. 어쨌든 주철수를 조종해서 얻었던 이득이 있었을 테니까요.
역시 척하면 척이구만?
“좋네요.”
-알겠습니다. 곧 시작될 거 같네요. 압수수색만 넘기면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뚝.
“어우, 배고파. 순대가 확 땡기네.”
녹음을 의식한 대사를 뱉어 주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후.”
거대 조직인 강남파의 수장이었던 주철수한테 지시를 내리던 놈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숨기려고 해도 분명 흘린 게 있겠지.
이른 시일 내에 결과가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이건 이번 소환에 대한 내 대답이다.
‘숨지 말고 정면으로 나와라.’
국정원은 명백히 밝혀진 혐의가 없으니 애초에 날 오래 잡아 두지 못한다. 선생 놈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국정에 데려온 이유는 하나다.
‘경고지.’
자신은 언제든지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내게 보여 주려는 거다. 어쩌면 내 반응을 살펴보려 한 걸지도 모르고.
내가 한 수 접고 물러날지, 아니면 계속 설치면서 심기를 건드릴지 확인하려는 의도라면.
씨익.
난 방금의 통화로 대답한 셈이다.
날 건드리려면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이런 대답 말이야.
통화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국정원의 윗선을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기까지.
이런 놈이 대외적인 신분 하나 없을 수가 없다.
어디 회장이든, 무슨 의원이든, 저기 보스든.
선생.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
어쨌든 네 생각대론 되지 않을 테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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