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레펠을 타고 외벽에 매달려 있던 백기준이 땅에 떨어진 캐리어를 보며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에이 썅. 다시 주워와야 하잖아?”
탓. 지익-.
백기준은 벽을 박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가 착지했다.
이어 고무탄을 쏘던 새총을 집어넣고 방 한복판에 누워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마에 혹이 난 채로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이 새끼가 불곰인가?”
백기준은 불곰을 발로 툭툭 쳐서 정말 기절했는지 확인한 뒤 복도로 나갔다.
“어이고.”
질질.
복면을 쓴 라세흠이 축 늘어진 마피아들을 복도에 던져놓고 있었다.
백기준은 쓰고 있던 복면을 벗으며 그를 향해 물었다.
“다 처리하셨어요?”
“어.”
“배상훈은요?”
-여깄다.
달칵.
맞은편 객실의 문을 열고 나온 배상훈이 눌린 머리를 만지다 코로 들어오는 연기에 손을 휘저었다.
“아유, X팔. 그냥 부장님이 다 때려잡으시게 놔두면 되지, 왜 굳이 이 지랄을 펼친 거야?”
“이게 낭만 있잖아?”
“염병.”
투덜대던 배상훈이 라세흠을 힐끗 보며 말했다.
“부장님도 그게 낫지 않았겠어요?”
“중간에 다 빼먹으니까 별로 남은 것도 없구만.”
배상훈의 말대로, 팀원들은 먼저 추적장치가 달린 조직원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 조직원을 심문해 마피아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이곳으로 모이는 조직원들을 길목에 숨어있던 팀원들이 도중에 처리했다.
그 때문에 사실상 라세흠이 처리한 인원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라세흠은 웬일인지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냥 깡패들이었으면 기분 나빴을 거다. 근데 이놈들은 총 들고 있잖냐. 괜히 내 욕심 때문에 우리 팀원들을 다치게 할 순 없지.”
그 말에 배상훈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감동 받을 만한 말인데, 왠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내 라세흠은 그 의심에 부응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특히 너희 둘은 허접하니까 말이야.”
배상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또 자존심을 건드시네.”
“맞잖아? 둘이 덤벼도 나한테 안 되는데. 이주혁이 정도는 되야 비빌 만하지. 특히 백기준 너는 더 그래.”
“허허. 힘만 세다고 다가 아닌데.”
“한 놈은 얼굴 믿고 여자나 만나러 다니고, 한 놈은 이상한 데 빠져서 잡기술만 익히고. 명색이 내 부대원들이 이래서 되겠냐? 엉?”
그렇게 셋은 기절한 조직원들 앞에서 한참을 유치하게 다퉜다.
“저 예전 감 다 찾았습니다. 부장님.”
“그거 찾는다고 나한테 되나?”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려던 그때.
“아니, 거기서 뭐 해요?”
계단으로 올라온 팀원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 손에는 아까 1층으로 떨어진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이거나 챙겨요. 연기 때문에 119 출동했을 겁니다.”
팀원의 핀잔에 대치하던 라세흠과 배상훈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싸우는 걸 한심하게 보던 백기준이 캐리어를 받아들고 열어봤다.
척.
“오?”
그 안에 든 지폐를 확인한 백기준이 깜짝 놀랐다.
“전부 달러잖아?”
“이만큼의 달러를 세탁했다라.”
옆에 있던 배상훈이 몸을 숙여 달러 묶음을 하나 집어 들며 몰래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양이 많네?’
***
강예원을 다시 로비로 내려보내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서 그런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최철호 의원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우재성이 작업해 놓은 작전주도 슬슬 돌려야 하고, 판교 리스트에 있는 놈들도 하나하나 족쳐봐야 한다.
그리고 선생 놈이 러시아 마피아한테까지 손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확인한 상황.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싸움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래도, 놈의 손발을 하나씩 날리다 보면 언젠가 골로 보낼 수 있을 거다.
전생의 커다란 벽이었던 강남파를 결국 무너뜨린 것처럼 말이다.
‘긴 싸움이 되겠어.’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서해결 검사는 잘하고 있나 싶어서 오랜만에 TV를 켰다.
꾹.
TV에선 얼마 전 경찰에 넘어간 성자와 정 목사의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뭣 모르는 신도들의 돈을 갈취한 비리 목사들로 말이다.
하지만 선생 놈이 수를 쓴 건지, 새사람 교회의 큰 규모나 상세한 피해 상황 같은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이상한 사이비에서 사건이 터졌구나. 이 정도의 감상만 들 정도.
“역시.”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선생이라는 거물 놈이 언론사나 방송국에 손을 대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주철수 때와는 달리, 이번엔 직접적으로 자신한테 피해가 올 수도 있는 건이니 수를 쓴 거다.
탁.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을 열어 최근 기사를 확인했다.
정치, 경제 뭐 다양한 주제의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내가 찾던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항구 사건은 아예 묻어버린 건가?’
부산의 한 항구에서 러시아 마피아 놈들이 총을 갈겼고, 분명 경찰까지 출동했었다.
그런데 기사 하나 나지 않았네.
검찰 측에 이미 넘어가 버린 교회 건과는 다르게, 이건 아예 묻을 생각인가 보다.
어차피 경찰이 잡아봤자 놈들은 마피아 말단 몇 놈으로 꼬리를 잘라버릴 테니 큰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이미 내 손에 들어왔거든.
슥.
나는 책상 위에 엎어져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불법 무기가 든 상자에 달려있던 위치추적기. 그 추적기가 이동한 경로를 출력한 서류였다.
거기 마지막으로 찍힌 위치는 여기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걸로 강유찬에게 한 번 더 엿을 먹일 거다.
러시아 놈들도 곤경에 처했으니, 놈은 복잡한 상황을 처리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겠지.
만약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공리회의 중요한 장소까지 털어버린다면?
씨익.
상처에 소금을 팍팍 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강 권사. 조금만 기다려라.’
큰 거로 한 방 날려줄 테니까.
나는 사무실에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우재성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예. 대표님.
“황성빈, 슬슬 써먹읍시다.”
우선 금고에 관한 정보부터 흘려 보자고.
***
우재성의 사무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SA시큐리티에 잠입한 황성빈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이곳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털썩.
우재성과 마주 앉은 황성빈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황성빈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 우재성이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이번에 강 권사한테 새로 받은 지령이 있지 않습니까?”
“…….”
아직 완전히 넘어오지 않은 황성빈은 대답을 망설였지만, 그 반응으로 우재성의 말이 사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못 믿으시는 것 같은데, 저도 금고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황성빈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강 권사에게 들은 것과 똑같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재성이 정말 선생의 편이 아니라면, 강 권사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한 지시사항을 알 리가 없었다.
그 반응을 본 우재성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제 좀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말이었습니까.”
황성빈은 우재성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 저도 이주혁 대표에게 금고의 정보를 물어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한인석이 말한 주소로 찾아가 보니 이미 금고는 누가 가져간 후였답니다.”
“예? 금고가 이주혁한테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정보를 가져오라길래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주혁 대표가 중책을 맡은 저한테 정보를 숨길 리는 없습니다.”
“흠…….”
“그래서 이번엔 그 금고에 있던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여기서 황성빈 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를 들은 황성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 역할 말입니까? 신입 사원이라 제가 우재성 씨보다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대표 말로는, 이번 일에 황성빈 씨도 참여시킬 거랍니다. 신입 사원도 슬슬 경험을 쌓아야 한다더군요.”
“음.”
“아무래도 저는 현장에서 뛸 일은 없다 보니, 그쪽에서 나오는 정보는 황성빈 씨가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서 뭔가 일이 있으면 일단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황성빈을 보며 우재성이 내심 미소를 지었다.
황성빈이 조금만 더 똑똑하거나 의심이 많았다면 이렇게 속여 넘기긴 힘들었을 것이다.
우웅-.
한고비 넘겼단 생각에 안심하던 우재성에게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이주혁 대표님 – 작전팀 복귀했습니다. 잠깐 회의하시죠.] [네. 바로 가겠습니다.]드륵.
우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성빈에게 말했다.
“대표가 절 부르네요.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그럼,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자, 황성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턱.
“가보겠습니다.”
“네.”
복도로 나온 우재성은 멀어지는 황성빈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사람 좋은 척하기도 힘들군.’
사실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우재성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였다.
그런 우재성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황성빈은 안도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떻게 보면 적의 소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들어온 상황이다.
하지만 다행히 강 권사가 정말로 조력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야.’
***
쿵.
회의실 책상 위에 묵직한 캐리어가 올려졌다.
근데 캐리어 한쪽이 좀 긁히고 부서져 있었다.
“뭐야 이거. 누가 갖다 던졌냐?”
“어. 그 러시아 놈이 3층에서 떨궜다.”
“하이고. 많이 놀랐나 보네. 웬 괴물들이 덮쳤으니.”
턱.
나는 캐리어를 열며 기대감에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이거 얼마나 되려나? 적은 액수는 아닐 것 같은데.”
강유찬이 깨끗하게 세탁해놓은 현금일 테니, 또 내가 좋은 곳에 써 줘야지.
척.
“오. 이게 다 얼마야?”
캐리어 안에는 20달러짜리 지폐 묶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추적이 들어오는 100달러짜리보다 훨씬 더 실용적인 20달러 지폐가.
마약에 불법 총화기까지 갖다 판 돈이니, 역시 예상대로 보통 액수가 아니었다.
내가 감탄하는 걸 보던 배상훈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성과급은 있겠지?”
“뭐?”
“솔직히 이 만큼 물어다 줬으면 좀 떼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
“이 새끼가 점점 당당해지네. 오케이. 그래도 총 든 애들 잡았으니까 성과급은 다 챙겨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부장님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상훈이는 안 줘도 된다. 저 새끼는 따로 주머니에 좀 챙겨놨거든.”
“아니…….”
“미친놈이네, 이거. 갖고 와.”
“와. 지 혼자 주머니 채운 거냐?”
“쓰레기 새끼!”
퍽! 콰직!
“아악!”
쓰러져 있는 배상훈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회수했다.
연봉 삭감해버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소소한 횡령이라 한 번은 봐준다.
그걸 지켜보던 우재성이 말했다.
“대표님. 일단 황성빈 씨는 해결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제가 스파이란 걸 믿는 눈치였습니다.”
그래. 슬슬 넘어올 때가 됐지.
전생의 황성빈은 꽤 능력 있는 놈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력적인 측면에서다.
오더가 내려왔을 때 기가 막히게 처리하긴 하는데, 정치적 능력은 좀 딸리던 놈이었다.
우재성이 감언이설로 조금씩 긁었으니, 분명 스파이가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을 거다.
그리고 몇 번 보니까 아직 20대라 어리바리하더라. 충분히 낚을 수 있을 정도로.
“오케이. 그럼 바로 다음 작전 들어갑시다. 다들 체력 괜찮으시죠?”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부장님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체력은 무슨…… 제발 제대로 좀 해보자. 요새 너무 찔끔찔끔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진짜니까.”
“정말이냐?”
턱.
나는 기대감에 입꼬리를 히죽 올리는 부장님을 보며 마주 웃어줬다.
“이번에는 선생 놈의 주요 시설 중 하나를 박살 낼 예정이거든요. 밤에.”
그 말에 부장님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야습이라. 또 내 전문이지.”
라세흠 부장의 팔 근육이 기대감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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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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