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유나 씨의 말에 한광철이 깜짝 놀랐다.
“뭐? 민기형이 어제 여기 왔다고?”
“네. 주에 한 번씩은 가족분들이랑 꼬박꼬박 오는 분이세요. 그런데 그분은 왜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럼 유나 씨는 선생일지도 모르는 놈과 계속 마주쳤다는 건가?
꾸욱.
열이 확 올라왔지만,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나 씨에게 물었다.
“유나 씨. 혹시 지금 바쁘세요?”
“네?”
“민기형이라는 사람에 대해 여쭤볼 게 좀 있어서요.”
“아, 음식 나갈 거 다 나가서 괜찮아요.”
유나 씨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방 안으로 후다닥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슥 다가와 쪼그려 앉으며 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떤 게 궁금하신 거예요?”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와 빛나는 미모에 의식을 잃을 뻔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민기형 수석이 언제, 누구랑 왔는지 기억하세요?”
“음…….”
잠시 고민하던 유나 씨가 천천히 설명했다.
“보통 월요일에 자주 오시고…… 항상 들어오실 때는 혼자셨어요.”
“혼자요?”
“네. 먼저 방으로 들어가시고, 십분? 정도 지난 다음에 일행분이 오시더라고요.”
“혹시 기억나는 사람은 없으세요?”
“제가 카운터를 보는 게 아니라 거기까진 기억이 안 나네요. 민기형 그분도 TV에서 자주 봐서 알아보는 거라서…….”
하긴, 가게 사장이라고 손님이 누군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유나 씨.”
“도움이 됐나요?”
“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광철이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 내줘서 고맙다. 바쁠 테니 이만 가 봐.”
“네. 다들 식사 맛있게 하시고,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유나 씨가 방을 떠나자 아저씨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놈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고?”
“아직 확실한 건 없긴 한데, 저도 상상도 못 했네요.”
민기형은 월요일마다 풍원한정식을 방문한다.
마음 같아선 대기하고 있다가 붙잡고 싶지만, 아직 민기형이 선생이라는 확증이 없으니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어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근데 아저씨. 민정수석에 관한 건 어떻게 알아내신 거예요?”
“아, 그거 말이냐?”
광철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감방에 있는 남상민의 증언에 관해 설명했다.
“관사라…….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남상민도 같이 작업하려고 한 거였네요.”
“그런 거지. 그래서 나는 민기형이 그놈이라고 반쯤 확신한다. 그게 아니면 아주 밀접한 최측근이거나.”
“아무래도 본인일 확률이 높겠죠.”
“내가 거의 확신하는 건, 이거 때문이기도 하다.”
아저씨가 봉투 안에 들어있던 파일을 꺼냈다.
그걸 본 우리는 음식을 다른 테이블로 옮겨 자료를 확인할 공간을 만들었다.
“전임 민정수석 어르신 집에 찾아가서 직접 가져온 거야.”
“그분이랑 아는 사이셨어요?”
“어. 내 은사님이신데…… 어쨌든, 여기에는 어르신이 조사한 후임자 민기형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일단 뽑았다가 뭔 폭로라도 터지면 골치 아프니까 VIP한테 전달하려고 만든 파일이지.”
설명을 듣던 송태석 과장이 중얼거렸다.
“임기 도중에 문제가 생길바에 미리 검증하겠단 거군요.”
“예. 확인해 보시죠.”
대표로 파일을 열어본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저씨를 향해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래. 없지. 그래서 내가 민기형을 유력한 후보로 꼽는 거고.”
아저씨의 말대로, 보통 높으신 분들은 털어서 나오는 먼지가 꽤 되는 편이다.
심지어 광철이 아저씨조차 어떻게 뒤지다 보면 책잡힐 만한 게 나올 거다.
과속 같은 경범죄 같은 것도 찾으려고만 하면 다 알아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민기형 수석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아예 아무것도 없으니 외려 위화감이 들 정도.
옆에 있던 우재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가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확률이 높겠군요.”
“아마도요. 아니면 민기형이 정말 청렴결백하고 깨끗하게 살아왔다는 건데…….”
아저씨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놈이 선생이라면 그랬을 리는 없지.”
“그렇죠. 그래도 큰 정보를 건졌네요. 수고하셨어요, 아저씨.”
“수고는 무슨. 빽이 돼 주기로 했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않겠냐.”
“저, 이주혁 씨.”
잠자코 이야기를 들던 서해결 검사가 날 불렀다.
“네?”
“민정수석이라는 말을 듣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한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봅시다.”
“그때 이주혁 씨가 주신 수첩. 거기 적혀 있던 계좌 주인의 리스트입니다.”
내가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자 서해결이 설명했다.
“몇 개의 계좌는 주인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나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점이 있어서요.”
리스트에는 저번에 확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재계 및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본 것과 별 차이가 없어서 걸린다는 게 뭔가 생각하던 그때.
‘……잠깐.’
나는 서해결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현 민정수석비서관 민기형. 이놈은 내 전생에서 꽤 거물이었다.
새로 생긴 당의 당 대표로 취임하고 몇 년 뒤 바로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패배했었다.
하지만 당선된 대통령이 왜인지 임기 중 크고 작은 실수들을 이어 갔고, 그 탓에 민기형이 당선됐어야 한다며 놈의 주가는 점점 올라갔다.
다음 대통령은 무조건 민기형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던 시기에 내가 죽고 회귀한 것이다.
‘문제는 그거지.’
이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 전부 전생의 민기형이 당 대표로 있던 당 소속이었다.
한 마디로, 여기 있는 모두가 민기형과 같은 배를 탄 놈들이란 거다.
중요한 사실이었지만, 이 정보를 여기서 바로 풀어 버릴 순 없었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이 사람들 앞에서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자세한 정보는 검열한 후 공유하기로 하고, 난 지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전부 민기형과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은 말마따나 전부 민기형과 몇 다리만 건너도 연결되는 이들이었다.
서해결 검사가 리스트를 보며 설명했다.
“여기는 전부 검사 출신. 이 사람은 비서실에서 같이 일했을 거고, 이쪽은 아예 같은 당원들입니다.”
“음.”
“물론 이것만으론 심증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캐다 보면 뭐라도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리스트를 살피던 서해결은 썩어빠진 이놈들을 빨리 잡고 싶은지 열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 건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사님.”
“대표님.”
우재성의 부름에 옆을 돌아보니,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녀석이 묘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 됐든, 민기형이 핵심 인물인 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럼 판교신도시도……!”
저번에 확인했듯, 판교신도시로 큰 이득을 취한 투자자들의 리스트와 정 목사에게 돈을 받은 사람들의 리스트에는 겹치는 이름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걸로 미루어 볼 때, 두 집단에 모두 접점이 있는 민기형은 선생의 조직인 공리회의 핵심 인물일 수밖에 없다.
우재성이 한 말의 의미는 이런 거겠지.
“음…….”
두 개의 리스트를 번갈아 확인하던 우재성이 피식 웃었다.
“여기, 판교신도시 공사를 진행 중인 건설사들 있잖습니까.”
“네.”
“거기 사장들 이름입니다.”
우재성의 말대로, 판교신도시를 통해 돈을 쓸어 담은 건설사 사장들의 이름이 정 목사의 리스트에도 존재했다.
그걸 확인한 광철이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즈가 대체 얼마나 커지려는 건지 모르겠구만.”
“아직 새 발의 피죠, 뭐.”
부산에서 러시아 마피아랑 싸운 일까지 말씀드리면 기절하시겠네.
그래도 지금까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민정수석이라는 존재를 특정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성과다.
길을 잃은 상황에서 명확히 가야 할 방향을 찾은 거와 마찬가지니까.
“그럼 이제 송 과장님만 남았네요.”
내가 아직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그를 보며 이야기하자, 송태석이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들어서 건넸다.
“여기 그 영상이 있는 겁니까?”
“예.”
여기 오기 전 받았던 전화.
거기서 송태석은 과거 누군가 풍원한정식에서 찍은 영상을 찾았다고 말했다.
대충은 들었어도 그게 무슨 영상인지는 봐야겠지.
탁.
나는 노트북을 받아들고 송태석이 언급한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그러자 한 방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마치 CCTV처럼 벽에 달아 놓은 카메라가 찍은 듯한 앵글이었다.
조금의 음식이 올려진 테이블을 보며 송태석에게 물었다.
“여기가 풍원한정식이란 겁니까?”
“정확히는 한정식집으로 바뀌기 전이죠.”
“풍원요정 말씀이시군요.”
“예. 몇 번 가 봐서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풍원요정 시절의 영상이라면, 유나 씨가 사장이 되기 전이니 최소 몇 년은 된 영상이겠네.
조금 떨어지는 화질의 영상을 계속 지켜보니, 우리가 계속 얘기했던 민기형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이건…….”
“누군가 민기형을 몰래 찍은 건가.”
“아니면 민기형이 설치했을 수도 있고요.”
민기형은 카메라를 마주 보는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허공을 보며 계속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왜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는 거지? 뭔가 생각하고 있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영상을 조금 빨리 감자, 이내 방문이 열리며 몇 명의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셋 다 여기 적힌 사람들입니다.”
송태석의 말에 남자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정 목사와 판교신도시 리스트에 있던 국회의원들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영상을 지켜보니, 분명 남자들이 웃으며 뭐라 입은 뻐끔거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음량을 최대로 키워 봐도 이놈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걸 보던 송태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영상에 소리는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대화 하나하나가 다 증거가 될 텐데.”
“대신 한 가지는 건졌습니다. 계속 한번 보시죠.”
송태석의 말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영상 속의 민기형이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종이봉투를 테이블 너머의 의원들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은 남자는 거기서 서류 여러 장을 꺼내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화질이 낮은 탓에,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정확히 뭐라 적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미간을 팍 찌푸린 채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송태석이 다크서클이 내려온 얼굴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저 서류가 어떤 건지는 제가 이미 알아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 말에 모두가 감탄의 시선을 보내자, 송태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서해결 검사가 몸이 달았는지 물었다.
“그래서, 저게 무슨 서류인 겁니까?”
그에 송태석은 내 앞에 놓여 있던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판교신도시. 그 사업의 계획서입니다.”
“……!”
“그렇다면 이건…….”
나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업에 투자하라고 제안하는 거겠죠.”
이 영상으로 확실해졌다.
민기형이 판교신도시 투자 건을 다른 의원들에게 제안했다는 건, 놈이 선생이거나 최소한 선생의 최측근이 확실하다는 거다.
그게 말하는 것은 딱 하나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네요.”
씨익.
“지금부터, 우리는 민기형을 최우선으로 족치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던 선생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