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전 국회의원이자, 이주혁의 든든한 조력자.
한광철은 자신과 인연이 있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 외곽의 한 저택으로 향했다.
삐익.
“어르신. 저 광철입니다.”
초인종을 누른 한광철이 인터폰에 대고 말하자, 저택의 대문이 철컹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에 한광철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철컥.
이내 현관문이 열리며 안경을 쓴 노인이 나오더니, 한광철을 보며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인마. 대체 무슨 일인데 갑자기 이 시간에 찾아오노?”
노인의 이름은 김우천. 전(前) 민정수석을 지냈던 정치계의 거물 중 한 명이다.
한광철은 그를 보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뒷짐을 진 김우천은 한광철을 빤히 보더니, 주름진 얼굴을 팍 찌푸렸다.
“이 쌔끼 이거, 출소하고선 코빼기도 안 비치드만, 또 뭐가 필요하이까 찾아오는구마잉?”
“하하.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출소하면 얼마나 바쁜지 아시면서.”
“쯧. 일단 들어온나.”
한광철은 뒤돌아가는 김우천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주변을 슥 둘러본 한광철이 감회에 잠겼다.
‘안쪽까지 들어오는 게 몇십 년만인지.’
그러다 비어 있는 주방을 보고 계단 위로 올라가던 김우천에게 물었다.
“어르신. 식사는 하셨습니까?”
“저녁 시간 다 지나가 와 놓고 빨리도 물어본다. 진작 뭇으니까 올라오기나 해라.”
“아이고, 예.”
한광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우천이 생각보다 단단히 삐친 것 같았다.
“무릎도 안 좋으신 분이 계단을 막…….”
후다닥 달려간 한광철이 옆에 가서 부축하자, 김우천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쳐내지는 않았다.
탁.
2층으로 올라온 김우천이 어두운 서재로 들어가 벽에 달린 스위치를 켰다.
“앉어.”
김우천은 천천히 걸어가 서재 중앙의 책상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한광철을 돌아보며 물었다.
“뭔데? 뭐가 필요한 긴데?”
“에이. 방금 왔는데 금방 보내시게요?”
“또 지럴하네. 노인네 잠이나 자구로 빨리 용건만 하고 가라.”
“쩝.”
한광철은 나중에 한 번 더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본론을 꺼냈다.
“민정수석 관사 있잖습니까.”
“어. 있지.”
“혹시 거기 뭐 이상한 점이라든가, 특이한 공간이라든가. 그런 거 없었어요?”
“뭐라카노. 관사에 그란 게 어딨노. 니 이거 하나 물어볼라꼬 여까지 온 기가?”
“아뇨. 이건 그냥 여쭤본 거고……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뭔데?”
입맛을 다신 한광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정수석 말입니다.”
“……어. 와?”
“뭐 털 거 없습니까?”
한광철의 말에 김우천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이고……. 한광철이 니가 갱찰이가, 검사가? 니 출세할라꼬?”
“그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거라 그렇습니다. 그놈이 우리나라에 카르텔을 주도하고 있을 수도…….”
“선생. 금마가 민정수석일 수도 있다, 이 말이가.”
“예.”
역시 김우천도 선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또한 노쇠했다지만 대한민국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사람.
선생이 눈독을 들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한광철은 김우천에 관해선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선생에 의해 매수당하거나, 그쪽 편에 설 인물은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김우천은 미간을 구기며 손짓했다.
“그 새끼, 개새끼더만 아주.”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휙휙.
“담배 한 대 줘 봐라.”
“아, 예.”
한광철이 벌떡 일어나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였다.
치익.
잠시 담배를 뻑뻑 피운 김우천이 입을 열었다.
“야. 한광철이.”
“예, 어르신.”
“손 떼라.”
“…….”
“니 이제 출소했다이. 괜시리 일 만들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
한광철은 그의 말에 울컥했다.
“어르신. 제가 왜 감방 들어갔는지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손을 떼라고요?”
그에 김우천은 말없이 담배만 태우다 한숨을 내쉬었다.
“금마는 니 혼자 죽게 안 놔둘 끼다. 그만큼 악랄하고, 집요한 놈이라고. 근데 개털 된 니가 가를 와 건든단 말이고?”
“저보다 한참 어린 녀석도 그놈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가장 앞장서서요.”
“…….”
“어른으로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우천은 잠시 한광철의 눈빛을 살피더니, 이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튼, 예전부터 말 드럽게 안 듣는단 말이지.”
드륵.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어난 김우천이 서재 어디론가 향했다.
한광철은 황급히 일어나 그를 부축했다.
김우천이 서재에 놓인 한 책장 앞으로 걸어가더니, 거기에서 두꺼운 파일 하나를 꺼내 한광철에게 넘겼다.
턱.
“갖고 가라.”
“이건…….”
“이제 잘란다. 더 이상 내한테 와가 이런 부탁 하지 마라이.”
“예. 감사합니다!”
“알아서 잘 지내니까 자꾸 귀찮게 따라붙지 말고.”
김우천은 퉁명스럽게 내뱉고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서재를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광철이 책상으로 돌아와 파일을 펼쳤다.
슥.
민기형.
검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이놈이 현재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다.
“후…….”
입맛이 썼다.
사법연수원 동기가 이 나라를 배후에서 쥐고 흔드는 선생일 수도 있다니.
하지만 아직 명확한 증거를 찾기 전까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
탁. 탁.
왜인지 마음이 답답해 손가락으로 책상만 두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책장 사이에서 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스윽.
“일은 다 보셨습니까.”
“간 떨어지겠다, 인마.”
이주혁이 붙여 준 한광철의 경호원, 윤건한이었다.
윤건한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슬슬 돌아가시죠.”
“음?”
“오늘 회사에서 회식한답니다. 풍원한정식에서 말입니다.”
“아……. 그래?”
“예.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한광철은 눈을 빛내는 윤건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풍원이면 가야지.”
“아, 같이 가서 드시겠습니까? 아직 식사 안 하셨잖습니까.”
“됐다. 내가 거기 낄 필요 있나.”
거절하려던 한광철은 갑자기 고이는 침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다.
한광철이 고민하는데, 윤건한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가, 같이 가 주시면 안 됩니까?”
윤건한의 성격상 경호 대상인 한광철이 가지 않으면 녀석도 회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한광철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감사는 주혁이한테 해야지, 인마.”
자리에서 일어난 한광철이 민정수석의 정보가 담긴 파일을 챙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번에 큰 거 하나 건졌군.’
이거라면 선생의 정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광철은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부웅-
풍원한정식으로 향하는 차 안.
나는 조수석에 앉은 채 운전대를 잡은 황성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뒷자리에선 우재성이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고, 그 옆의 부장님은 시트에서 엉덩이를 뗀 채 버티는 중이었다.
황성빈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내가 예전에 네 과거를 조사해 봤거든.”
“아, 예.”
“형이 하나 있었더라고?”
그 말에 황성빈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네가 죽인 거냐?”
“……아뇨. 제가 직접 죽인 건 아닙니다.”
“그래?”
말하기 어려운 눈치길래 굳이 자세히 묻진 않았다.
‘직접은 아니다….’
대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선생 놈이랑 엮이게 된 건가?”
“그렇습니다.”
“음…….”
대충 사연의 사이즈가 나오긴 하네.
자세히 들어 보고 싶긴 한데, 바깥을 보니 풍원한정식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끼익-.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나는 부장님한테 말했다.
“부장님. 우재성 씨랑 저는 따로 미팅이 있어서, 얘 데리고 애들이랑 식사하고 계세요.”
“그래. 알았다.”
“우재성 씨. 갑시다.”
“예.”
우재성이 노트북을 탁 덮고 고개를 끄덕였다.
딸랑-
부장님이 가게 문을 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야. 왠지 되게 오랜만에 오는 기분인데?”
“참나. 며칠 갔다 왔다고 그러세요?”
얼마 전까지 여기서 지내 놓고 무슨 몇 달 지난 것처럼 말하시네.
내 핀잔에 부장님이 히죽거렸다.
“인마. 여기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이제 한식은 여기 말고 못 먹겠더라.”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유나 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저도 항상 잘 드시니까 기분이 좋네요.”
웃으며 말하던 유나 씨가 날 보며 인사했다.
“오늘은 다 같이 오셨네요?”
“네. 간만에 회식이나 좀 하려고요. 이번에 다들 꽤 고생했거든요.”
“안 그래도 요새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네요. 하하. 아, 그분들은 어디 계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나와 우재성은 팀원들과 따로 유나 씨를 따라갔다.
우리는 따로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
드르륵-.
유나 씨가 문을 열자, 방 안에 미리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유나 씨에게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나중에 따로 얘기해요.”
“네. 말씀 나누세요.”
탁.
우재성과 함께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밖으로 절대 새어 나가선 안 되거든.
그래서 오늘 풍원한정식을 통째로 빌린 거고.
“이야. 이렇게 다 모이기는 또 처음이네요. 안 그렇습니까?”
내 말에 서해결 검사가 옅게 웃으며 안경을 쓱 올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와 악수를 나눈 서해결이 내 옆에 있던 우재성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우재성 씨. 처음 뵙겠습니다. 서해결입니다.”
우재성은 서해결의 명함을 받고 손을 맞잡았다.
“제이슨 우, 우재성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송태석 팀장도 자신을 소개했다.
“강남서 형사과장 송태석입니다.”
“예. 우재성입니다.”
나는 송태석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손짓했다.
“일단 다들 앉으시고, 식사부터 하면서 이야기합시다.”
“예.”
달그락.
“음. 여긴 밑반찬도 진짜 맛있다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와 우재성이 스몰 토크를 하는 동안, 송태석과 서해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기 전까진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래서 내가 슬슬 화두를 던지려는데, 갑자기 광철이 아저씨한테 문자가 한 통 왔다.
[아저씨 – 오늘 풍원에서 회식? 너한테 전달해 줄 게 있어서 그리로 간다.] [아, 네. 오시면 저야 좋죠 ㅎㅎ]원래는 나중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이참에 아저씨까지 여기 껴서 얘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놓던 그때, 옆의 문이 드르륵 열리며 아저씨가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아니, 무슨 문자 보내자마자 오세요?”
“이미 오고 있었지. 짜식아. 건한이는 애들 있는데 같이 넣어 놨다. 우재성 씨는 예전에 한번 마주쳤죠?”
“예. 안녕하십니까.”
둘이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다가, 갑작스러운 아저씨의 등장에 서해결과 송태석이 어정쩡하게 일어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눈치를 보던 송태석이 한광철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의원님. 강남서 송태석 과장입니다.”
“서해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선배님.”
“오. 그래요.”
적당히 인사를 나눈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두 분 다 주혁이를 많이 도와주신다고.”
너스레를 떨며 미소를 짓던 아저씨가 말을 이으려다 멈칫하더니, 옆에 있던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주혁아.”
“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냐?”
그 말에 잠깐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해결 검사는 애초에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하고, 송태석은 내가 철저하게 뒤를 털어 봤는데도 선생 놈과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중에선 가장 불안한 인사긴 한데, 내 성격 아는 사람이니 뒤통수를 치진 않을 거다.
우재성 씨는 날 도와 선생 놈을 같이 몇 번 조졌으니 괜찮을 테고.
“네. 믿을 수 있죠.”
“그래?”
“근데 그건 왜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웬 봉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내가 선생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하나 찾아냈거든.”
“……!”
드륵-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유나 씨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갖다 놓기 시작했다.
“뜨거워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유나 씨의 눈치를 슬쩍 보곤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게 누군데요?”
“…….”
잠시 뜸을 들이던 한광철이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민정수석 민기형. 그놈한테 뭔가 있어.”
“어?”
바쁘게 음식을 들이던 유나 씨가 그 이름에 반응했다.
“왜 그러세요?”
그래서 내가 이유를 묻자, 유나 씨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그분, 어제도 오셨거든요.”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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