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71
170화
털썩.
황성빈은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쓰러진 강유찬을 보며 손을 살짝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까 이주혁이 웃음을 터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푸핫! 이야, 제대로 후려갈겼네?”
“…….”
하지만 황성빈은 그를 보며 웃을 수 없었다.
‘X발……. 저 새끼도 괴물이었구나…….’
이주혁은 강유찬을 이렇게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고도 말끔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칼을 쥐고 있던 강유찬과는 달리 맨손이었다.
툭.
바닥을 굴러다니던 고무탄이 황성빈의 발에 닿았다.
쓰러진 강유찬을 다시 뜯어보니, 얼굴과 몸이 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일단 이주혁의 계획대로 강유찬을 넘기는 건 성공했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니 뒷감당이 가능할까 걱정이 됐다.
‘X발……. 진짜 이래도 되는 거겠지?’
황성빈은 10분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
조금 전, 황성빈은 배상훈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배상훈이 말을 걸었다.
“야, 신입.”
“예?”
“이제 와서 묻는 건데, 진짜로 경찰은 왜 그만둔 거냐?”
그 질문에 황성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스파이로 들어간 경찰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유를 실시간으로 생각 중인 그를 물끄러미 보던 배상훈이 이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어휴. 이 새끼는 진짜……. 이쪽으로.”
“아, 예.”
황성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상훈을 따라갔다.
탁.
외진 곳에 있는 컨테이너의 입구 쪽에서 배상훈이 손짓했다.
“들어가 봐.”
어두컴컴한 탓에 왠지 불안했지만, 일단 시키니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황성빈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대, 대표님?”
“왔네.”
이주혁이 의자에 다리를 꼰 채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싶어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황성빈은 본능적으로 그게 총구라는 걸 느끼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다가온 배상훈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댄 것이다.
“왜 이러시는 겁니…….”
“너도 알잖아?”
태연한 얼굴의 이주혁을 보며 황성빈은 낭패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X발. 걸렸구나…….’
하지만 저게 함정 수사일 수도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몰라요?”
“모르면 안 될 텐데.”
“정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무탄 겨누면서 하는 위협이 통하겠습니까?”
황성빈이 당당하게 나오자, 이주혁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서 굴렸다.
짤그랑.
그에 미간을 좁혀 확인하니, 이주혁이 손에 쥐고 있는 건 실탄이었다.
그럼 황성빈의 뒤통수에 닿아 있는 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네 뒤통수에 꽂힐 게 진짜 고무탄 같냐?”
이주혁의 살벌한 말에, 황성빈은 등줄기가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게 느껴졌다.
“자꾸 간을 보네. 강 권사가 시켰지?”
“예. 맞습니다.”
강 권사의 이름까지 나왔다는 건 정말 다 알고 말을 꺼냈다는 거다.
황성빈은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털썩 꿇었다.
“살려 주십쇼!”
분명히 X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살아날 구멍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가 죽으면 집에 동생이 혼자 남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쇼!”
“보통 그런 말을 하면 죽던데…….”
피식 웃은 이주혁이 살벌한 말을 했지만, 황성빈은 더 이상 발뺌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이주혁은 이미 자신이 스파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니, 여기서 계속 부정하면서 심기를 거슬러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양아치 같은 친형 밑에서 맞으면서 몸으로 배운 진리였다.
그리고 여기서 죽을 바엔 차라리 투항해 버리는 게 낫다.
무릎을 꿇고 있던 황성빈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이주혁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황성빈 씨. 뭘 그렇게 쫄고 그래요? 누가 보면 내가 진짜로 사람 막 죽이는 미친놈인 줄 알겠어.”
“…….”
“내가 미션을 하나 줄게요.”
“예! 뭐든지 하겠습니다!”
“음. 그래도 상황 파악은 할 줄 아시네. 그동안 티를 너무 많이 내길래 영 맹탕인가 싶었는데.”
그 말에 황성빈이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그, 그렇게 티가 났다고?’
이주혁이 의자 뒤로 기대며 말을 이어갔다.
“원래는 황성빈 씨한테 정보를 좀 뽑아낼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고……. 우선 그 문제는 강 권사부터 잡고 이야기합시다.”
“아, 알겠습니다.”
“요새 안 그래도 바쁘니까, 내 뒤통수는 굳이 치지 맙시다. 사람 시체 뒤탈 없이 처리하는 게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흘러가듯 나오는 협박에 황성빈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별거 없어요. 제가 강 권사랑 박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중간에 들어와서 그놈 뒤통수만 후려갈겨 주면 됩니다.”
“뒤통수…… 말입니까?”
“네. 그래도 그놈이 황성빈 씨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황성빈은 순간 의문이 들어 물었다.
“강 권사는 살려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강 권사가 뱉어 내야 할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요.”
“음.”
“그리고 대충 알겠지만, 선생의 하수인들은 수틀리면 자살해 버리는 미친놈들입니다. 죽지 않게 제압하려면 황성빈 씨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아…….”
턱.
자리에서 일어난 이주혁이 바닥에 있던 긴 줄을 챙겼다.
그리고 옆으로 스쳐 지나가다 황성빈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황성빈.”
“예, 예.”
갑자기 싸늘해진 목소리에 황성빈이 움찔했다.
얼굴이 반쯤 그늘진 이주혁이 입꼬리를 슥 올렸다.
“잘하자. 나는 너 묻어 버리는 쪽이 더 편한데, 우재성 씨 부탁으로 살려 주는 거니까.”
“……넵.”
이주혁이 컨테이너를 떠나고, 뒤에서 총을 겨누던 배상훈이 황성빈의 뒤통수를 탁 쳤다.
“어유. 할 거면 제대로 하지…….”
황성빈은 뒤돌아 나가는 배상훈을 슬쩍 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냥 튈까?’
뭐 고무탄이지만 총도 있겠다, 그냥…….
그리 생각하던 황성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헛짓거리하다 걸리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잘 도망간다 해도, 임무를 실패한 황성빈을 그냥 둘 리도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아예 이주혁 편에 붙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이 선생한테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이유가 있겠지.’
이제부터라도 충실하게 이주혁을 따른다면, 자신과 동생을 선생에게서 지켜 주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적인 상상을 한 황성빈은 총을 고쳐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
“이야……. 시원하네!”
나는 황성빈이 강유찬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긴 걸 보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쓰러진 강유찬에게 다가가 발로 놈의 몸을 뒤집었다.
툭.
강유찬은 눈을 까뒤집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일단 독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볼까.
기절한 강유찬의 턱을 잡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금니 쪽을 살피다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 봤다.
쑥.
“오.”
그러자 어금니 하나가 빠졌다.
피 묻은 이빨을 눈앞에 들어 올려 확인해 보니, 뿌리 쪽에 시커먼 환 같은 게 붙어있었다.
수틀리면 뽑아서 이걸로 죽으려고 한 것 같은데, 두 번은 안 당하지.
나머지 이빨도 한 번씩 확인해 본 뒤, 주머니에서 마우스피스를 꺼내 강유찬의 입에 끼웠다.
혀를 깨문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미리 챙겨 뒀던 천을 입에 쑤셔 넣고, 놈의 팔을 뒤로 돌려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오케이.”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나자, 내 눈치를 보던 황성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대표님. 다 끝난 겁니까?”
“적 대가리를 붙잡았으니까, 뭐 그렇다고 봐야죠. 나머지는 우리 팀원들이 알아서 알 테니까, 황성빈 씨는 저랑 같이 이 새끼 밴까지 옮깁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쇼.”
“갑자기요?”
“제가 그동안 잘못을 저질렀잖습니까……. 지금부턴 정말 SA시큐리티를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이 새끼. 그래도 처신할 줄은 아네.
하긴 그러니까 전생에서도 잘 살아남았겠지.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니 황성빈이 우물쭈물거렸다.
“저도 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 권사의 말을 따르고 있었던 겁니다. 대표님이 동생의 안전만 보장해 주신다면, 정말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동생이라…….”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에 흥신소를 이용해 황성빈의 과거를 조사했었는데, 거기선 분명 조폭 행동대장이던 황성빈이 보스였던 자기 형을 죽이고 잠적했다고 적혀 있었다.
동생을 이렇게 아끼는 놈이 형을 죽였다는 건 좀 이상했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돌아가서 추궁을 좀 해 봐야겠어.
“그리고, 가족 얘기는 물어볼 때만 해.”
“예?”
“집에 노모가 계신다, 내년에는 여자친구랑 꼭 결혼할 거다……. 그런 말 자주 하는 애들은 꼭 일찍 죽더라고.”
“아……. 그렇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황성빈에게 손짓했다.
“일단 들어. 그럼.”
“예?”
툭툭.
“이 새끼 들라고. 옮겨야지.”
강유찬을 발로 차며 말하자 황성빈이 날 쳐다봤다.
“왜. 대표가 할까, 그럼?”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강유찬은 키도 크고 근육질이라 꽤 무게가 나갈 거다.
힘을 주며 강유찬을 들어 올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존나게 굴려 줘야겠네.’
저놈은 통영 후배 녀석들 직속으로 넣어 버릴 거다.
내 쪽으로 전향하긴 했지만, 어쨌든 스파이질을 하던 괘씸한 놈이니까.
그리고 전생에서도 나한테 싸가지 없이 군 적이 많았거든.
나는 얼굴이 빨개진 황성빈의 옆으로 지나가며 등을 쳤다.
퍽!
“억.”
“가자.”
“옙……!”
잠시 휘청대던 황성빈은 이를 악물며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
“와……. 어마어마하네.”
우리는 회사 창고에 가득 쌓인 상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격장에서 압수한 물건의 양이 너무 많았다.
여기 창고도 작은 편이 아닌데, 거기 있던 놈들이 쓰던 총과 탄창도 다 압수하니 무기만으로도 절반이 넘게 차 버렸다.
마약도 양이 보통이 아니라 처치 곤란이었다.
지금도 팀원들이 열심히 옮기고 있는데 아직도 한참 남아 있었다.
“흠…….”
이거 또 송 과장한테 넘기면 진짜 과로로 죽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요새 내가 부탁한 건으로 바쁠 텐데.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생길 뻔한 것도 잠시.
내가 경찰도 아니고, 이런 문제는 경찰인 송태석이 처리해 주는 게 맞지.
그래도 일을 더 얹어 주려면 이전에 시켰던 교회 건은 마무리해 주는 게 맞다.
지금은 성자와 정 목사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부장님. 노는 애들 데리고 여기 좀 정리해 줘요.”
“엉?”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저는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그, 그래.”
부장님도 대답은 했지만 좀 귀찮은 눈치길래, 나는 팀원들이 안 보는 사이에 조용히 속삭였다.
“애들 모이면 짬 때리고 풍원한정식으로 넘어가요.”
“그럴까?”
혹한 표정을 짓던 부장님이 바로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덩치! 애들이랑 같이 있지? 지금 당장 회사로 튀어온다. 실시!”
라세흠 부장의 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내 사무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뛰니까 피곤하기도 하니, 우리 팀원들이 고생하는 동안 좀 쉬어야겠다. 나는 대표니까.
달칵.
내 사무실로 들어와 소파에 털썩 몸을 눕혔다.
“하…….”
사실 지금 몸보단 머리가 피곤했다.
일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막상 내 신분은 일개 돈 많은 회사 대표다.
그러니 송태석 과장이나 서해결 검사 같은 사람들이랑 필수적으로 연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과정이 영 힘들단 말이지.
우재성을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과로사로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고 있었을 거다.
그때, 책상에 올려 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뭐야, 또.”
확인해 보니 수신인은 송태석 과장이었다.
늦은 저녁에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으니, 전화 너머로 송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주혁 씨.
“예. 어쩐 일이세요?”
-제가 정 목사한테서 USB를 하나 찾아냈는데, 좀 의아한 영상이 있어서요.
“의아한 점이요?”
-네. 영상에 찍힌 장소가 익숙해서요.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풍원한정식으로 바뀌기 전에, 풍원요정이었던 거 아시죠?
……거긴 뭔데 자꾸 증거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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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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