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중단도의 칼등으로 대머리의 머리를 후려쳤다.
딱!
대머리는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죽여.”
나지막한 말과 함께 날 지켜보고 있던 놈들이 달려왔다.
훅!
내 옆구리를 향해 섬뜩한 칼날이 날아온다.
손을 뻗자, 칼날은 처음의 공격이 페이크였다는 듯 뱀처럼 궤도를 틀며 목을 노려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 안에 있었다.
오른손에 있던 나이프를 거꾸로 잡고 휘둘렀다.
푸욱!
놈의 손목을 관통한 나이프가 벽에 꽂혔다.
“끄아악!”
몸을 회전하며 팔꿈치로 놈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콰직! 쿵!
허물어지는 놈의 옆에서 두 놈이 더 덤벼들었다.
나는 왼손에 쥐고 있던 중단도를 크게 휘둘러 거리를 확보했다.
그러자 맨 뒤에 서 있던 놈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 말에 한창 고조되던 분위기는 대치 상태로 돌입했다.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장에 안경. 왁스를 발라 넘긴 머리까지.
무슨 사업가 같은 차림새였다.
날 물끄러미 쳐다보던 안경잡이가 물었다.
“어디서 보낸 놈이냐.”
“내 마음이 시켰다. 네가 대장이냐? 애들은 어딨어?”
“……애들이라니. 무슨 소리지.”
“다 알고 왔으니까 괜한 소리 하지 마라. 어디로 빼돌렸냐.”
일자 복도는 마치 고시원처럼 문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감옥처럼 눈높이에 작게 난 구멍엔 창살이 있었다.
그 너머로 생활의 흔적이 보였다.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누군가 살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 그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
“아, 몰라?”
눈앞의 상대는 부상자 포함 총 4명.
저놈이 아니어도 말해 줄 사람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왼손에 중단도를 들고 돌진했다.
캉!
얼굴로 날아드는 칼을 쳐내고 가슴팍을 발로 밀어 찼다.
그리고 다른 놈의 어깨로 중단도를 내리쳤다.
퍼억!
“끕!”
그런데 놈이 쇄골에 박힌 칼날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크으……. 죽여!”
이어 뒤에서 누군가 양팔로 내 허리를 둘렀다.
콱!
“이 씹X끼!”
뒤를 슬쩍 돌아보니, 아까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킨 대머리가 피를 흘리며 어떻게든 날 잡고 있었다.
“5명이었나.”
나는 팔꿈치를 마구 뒤로 뻗었다.
퍽! 퍽!
“욱!”
체중을 대머리에게 싣고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날 붙잡은 놈의 손가락을 꺾었다.
뿌득!
“끄아……!”
비명을 지르는 대머리의 고간에 뒤차기를 날렸다.
-!
끔찍한 소리와 함께, 대머리가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후…….”
잠시 숨을 고르며 목과 어깨를 풀었다.
적은 여전히 4명 그대로.
나는 상대의 팔을 관통해 벽에 꽂혀 있던 내 나이프를 잡고 뽑았다.
쑤욱!
“끅!”
자유가 된 놈이 달려들었지만, 몸을 슬쩍 돌리며 손바닥으로 턱을 밀어 쳤다.
퍽!
“끅.”
단말마와 함께 놈이 쿵 땅에 엎어졌다.
다시 고개를 돌리다가 황급히 몸을 숙였다.
날카로운 사시미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턱.
사시미를 회수하려는 놈의 손목과 목의 깃을 잡고, 허리에 힘을 줘 그대로 메쳤다.
쿠웅!
“크학……!”
“흡!”
쉭! 쉬익!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칼날에 옷자락이 조금 잘려 나갔다.
뒤로 두 발짝 물러나며 내가 메다꽂은 놈의 목을 사뿐히 밟았다.
으직.
“이런 개새끼가-!”
눈이 붉어진 놈이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실용성도, 체계도 없는 마구잡이 칼질.
고작 이런 놈도 뽑아 쓰는 걸 보니, 어지간히 인재가 없는 모양이다.
있는 게 이런 놈들이니까 애들까지 데려와서 키우지.
“허접한 새끼. 너는 노약자 담당이었냐?”
“이 X발!”
흥분한 놈이 땅을 내딛는 순간, 발에 체중을 싣고 무릎을 향해 뻗었다.
콰직!
“……!”
놈의 무릎이 반대로 접혔다.
“끄, 끄아아아악-!”
뿌드득.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반대쪽 발목까지 잘근잘근 밟아 줬다.
놈은 바닥을 기며 고통에 악을 썼다.
“으아아! 아아아악!”
“시끄럽다.”
퍽!
축구공처럼 머리를 걷어찼다.
툭.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남은 건 안경잡이와 어깨에 박힌 칼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놈.
어느새 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야.”
“…….”
안경잡이는 굳은 표정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지친 기색도 없군. 괴물 같은 자식.”
스윽.
끼고 있던 장갑을 매만진 안경잡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그걸 보며 물었다.
“왜 안 도망가고 굳이 남아서 날 막는 거냐? 그렇게 의리가 있으신가?”
“어떻게든 의뢰를 완수하는 게 내 모토라.”
“그래? 이번엔 완수 못 할 것 같은데, 미안하게 됐다.”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지.”
“그래?”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쿵.
날 노려보던 안경잡이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움찔했다.
그러고선 설마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X발.”
“첫 인사가 X발이라니. 예의가 없는 친구네.”
2층으로 진입했던 라세흠 부장님이 복도 건너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밑에는 어깨에 칼이 박혔던 놈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채였다.
반대편에도 내려오는 계단이 있었나 보다.
“원래 있던 애들은 내가 들어온 쪽으로 다 나간 모양이더라고. 뒷마당으로 이어져 있던데, 흔적을 보니까 빠져나간 지 얼마 안 된 거 같더라.”
“아, 그래요?”
여유롭게 귀를 후비적대며 말하는 부장님을 본 안경잡이가 이를 갈았다.
“망할……!”
그러더니 몸을 돌려 나한테 달려오기 시작했다.
험악한 부장님보단, 조금이라도 지쳤을 내가 더 뚫기 쉽다고 생각한 건가.
“합!”
쭉 뻗은 발차기가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몸을 빼며 피하자 스텝을 밟으며 연속으로 공격해 온다.
태권도 베이스의 빠른 몸놀림.
이미 너무 눈에 익은 발차기들이었다.
몸통, 머리. 옆차기 후에 뒤차기.
훙. 후웅.
수가 다 읽혀 어렵지 않게 피했다.
빠르긴 하지만, 부장님은 빠른데 너보다 훨씬 강한 파워까지 가지고 있었거든.
그런 부장님의 발차기 콤비네이션에만 몇 년을 처맞으면서 배웠다.
“빠르기만 하고 실속이 없어.”
“닥쳐!”
“시범단이라도 하게?”
“이런 개……?!”
뭐라 지껄이려던 놈의 눈이 커졌다.
나는 눈치껏 옆으로 몸을 피했다.
뻐엉-!
안경잡이가 트럭에 치인 것처럼 몸이 꺾인 채 날아갔다.
쿵! 쿠당탕!
한참을 굴러가던 안경잡이의 몸이 벽에 부딪혀 멈췄다.
“끄으…….”
부장님은 내 옆을 성큼성큼 지나가며 정신을 차리려는 대머리의 머리통을 콱 밟았다.
그리고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야. 너 태권도냐?”
하지만 안경잡이는 바닥에서 꿈틀거릴 뿐, 부장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쿨럭. 커헉!”
비틀대며 일어난 놈이 얼굴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붙잡았다.
안경은 벗겨진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냐? 기본기는 있네.”
“후우…….”
타닷!
숨을 고르던 안경잡이가 내가 내려왔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솔직히 나 같아도 도망갈 것 같긴 하다.
“잡아 온다.”
“네. 전 애들이랑 연락해 볼게요.”
“오냐.”
부장님이 희희낙락 떠나고, 나는 무전기를 꺼내 주변을 수색 중일 팀원들에게 통신했다.
치직.
“살아 있냐?”
-……받아 주고 싶은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주혁아.
“음?”
배상훈이 이렇게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는 건 드물었기에 의문이 들었다.
“무슨 일이야?”
-와 봐야 할 것 같다.
“어디야?”
-나오면 데리러 갈 거야.
“어. 알았다.”
나는 미심쩍은 마음을 품고 계단으로 향했다.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었다.
.
.
.
잠시 후, 굳은 표정의 백기준의 안내에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부장님도 처참하게 박살 난 안경잡이를 질질 끌면서 따라왔다.
“뭔데? 뭐라도 찾은 거냐?”
“찾긴 찾았죠.”
백기준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문제지.”
“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뭐냐, 이거.”
부장님이 아연실색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며 경악했다.
“……다 죽은 거야?”
내 물음에 배상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확인 사살까지 했더라.”
“하, X발…….”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 거의 없는 작은 산길.
그곳에 차갑게 식은 몸뚱이들이 피를 흩뿌리며 누워있었다.
수는 대략 열댓 명 정도.
“사인은?”
“전부 총상.”
어느새 다가온 백기준이 설명했다.
“여길 지나가는 도중 양옆에서 쏜 거지.”
“…….”
꽈악.
나는 시신들의 얼굴을 보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지금쯤 바깥에서 후배 녀석들과 돌아다니고 있을 꼬맹이.
그놈보다 한두 살 정도 많을 듯한 나이 대의 애들이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들을 인솔하던 건지 나이 든 시신도 몇 구 있었지만, 그것도 일부였다.
“하……. 왜 우리가 찾던 사람들이 여기 죽어 있는 건지 아는 사람 있냐?”
“몰라. 발견했을 때부터 이 상태였어.”
“총성은 아무도 못 들었고?”
“어.”
그럼 피습당한 지 시간이 조금 흘렀다는 건데.
‘대체 어떤 놈들이?’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DS컴퍼니 측에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
그럴 거면 굳이 원래 있던 곳을 빠져나가 이런 산길에서 제거할 필요가 없다.
애초부터 키워서 써먹으려고 몇 년을 투자했을 테고.
그럼 남은 건 외부 세력인데.
‘이곳의 위치와 이들의 존재를 알 만한 사람.’
딱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설마…… 그놈인가?”
“누구?”
“민지훈.”
내 말에 부장님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놈이랑 이놈들이랑 한편이라면서. 근데 민지훈이 왜 이런 짓을 하겠어?”
“글쎄요. 그렇긴 한데…….”
어쩐지 그놈밖에 생각이 안 난단 말이지.
“이제 어떡할 거냐? 이대로 철수해?”
“흠……. 오주찬을 털어 봐도 뭐가 나올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한번 찾아가 보는 게 어때?”
“그럴까요.”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지하에 조져 놓은 놈들, 팔다리 하나씩 병신 만들고 와. 나랑 부장님은 따로 움직인다.”
“여기는 어떡하게?”
“……마음 같아선 그래도 수습해 주고 싶긴 하지만, 여기 오래 머물러서 좋을 건 없겠죠.”
“동감이다.”
배상훈이 좌우를 둘러봤다.
“아직 이 사람들을 죽인 놈들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어. 빨리 빠져나가는 게 맞아. 난 외진 산속에서 총 맞아 죽긴 싫다.”
부장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방탄복은 입고 왔지만, 저런 상황에 빠지면 아무리 잘 흩어져도 절반은 당할 거다.”
“그럼 복귀하는 걸로. 부장님은 저랑 같이 가시죠.”
“알았다.”
끄덕.
팀원들은 알아서 내가 말한 대로 잔당들 처리를 위해 움직였다.
“아.”
한 가지가 떠오른 나는 팀원들의 뒷모습을 보고 덧붙였다.
“정장 입은 놈은 데려간다!”
“확인.”
그래도, 꼬맹이한테 한 놈은 챙겨 가서 보여 줘야지.
너 가르치던 놈들, 사실은 X밥이었다고.
***
한편, 동성유통의 꼭대기 층 사장실.
그 안에서 오주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차가운 총구가 겨눠진 상태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아는 건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오주찬은 이를 악물고 애원했다.
모자를 눌러쓴 채 갑자기 쳐들어와 자신을 겁박한 이 두 남자.
분명히 로비에서 방문객은 철저히 확인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뚫은 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스윽.
잠시 시선을 돌려 서로를 확인한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주찬의 뒤로 와 그를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목적지는 창문이었다.
지익.
한 남자가 오주찬의 넥타이를 풀어 그의 목에 감았다.
오주찬은 상황을 파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X, X발! 말했잖아! 다 말했잖아!!”
울분이 담긴 목소리에도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살’ 준비를 이어 나갔다.
“이 개새…… 끅!”
꽈악.
숨이 막힌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시야가 점차 몽롱해졌다.
“끄륵. 커…….”
오주찬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던 그때.
콰앙!
잠겨 있던 사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러고 들어온 한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들은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