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경호대가 왜……? 아니, 그게 사실인가? 누구의 명령이지? 지금 상황은……!
“궁금한 건 알겠는데, 나도 모르니까 당사자한테 물어보든가.”
뚝.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벨 소리가 울렸지만, 이 미친놈한테 더 설명해 줄 건 없었다.
‘J라……. 가명이라 추적하긴 힘들겠어.’
나는 쓰러진 마스크남을 보며 떨고 있는 오주찬을 향해 말했다.
“오주찬.”
“예, 예!”
“그 늙은이랑 꼬맹이. 네가 보낸 거냐?”
내 물음에 무릎을 꿇고 있던 오주찬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쇼!”
“누가 죽인댔어?”
“!”
“바로는 안 되지. 물어볼 게 많은데.”
잠시 희망을 품었던 오주찬의 얼굴빛이 거무죽죽해졌다.
일단 이놈을 심문하기 전에, 개판이 된 이 사무실부터 좀 어떻게 해야겠다.
‘부장님은 지금쯤 잡으셨으려나.’
사람 잡아 족치는 건 베테랑이니 그쪽은 금방 해결할 거다.
그럼 남은 건 내가 묶어놓은 이놈.
하도 밟혀서 모자랑 마스크가 다 벗겨진 놈에게 다가갔다.
슬슬 정신을 차리려는 것 같은 모양새에 오주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주찬 사장.”
“예?”
“혹시 아는 사람이야?”
머리채를 붙잡아 보여 주니, 오주찬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모,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 중얼거렸다.
“우선 팔다리부터 다 아작 내야겠네.”
그 말을 남기고 쓰러진 놈의 관절을 하나하나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뿌득! 콰직!
“어, 윽. 끄아아악!”
고통에 정신을 차린 놈은, 이내 그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뚜둑.
손목, 팔꿈치, 발목과 무릎.
마지막으로 어깨 관절까지 탈골 시키자, 놈은 거품을 물며 다시 의식을 잃었다.
“후. 끝났네. 오주찬 사장.”
사색이 되어 있던 오주찬은 내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데스크에 전화 걸어. 아무 일도 없다고.”
“아, 예!”
“딴소리하면 알지?”
꿀꺽.
나는 긴장한 얼굴로 땅에 널브러진 전화기를 주섬주섬 챙기는 오주찬을 향해 물었다.
“애들 킬러로 만드는 시설. 알고 있었지.”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오주찬이 흠칫했다.
“……예.”
“그래. 몰랐다고 했으면 죽였을 거야.”
“저, 저는 거기 관여한 적 없습니다. 그냥 한국에서 의뢰 중개해 주고, 기관에서 나오는 감사 적당히 돈 발라서 넘기고. 그게 답니다.”
“에이, 설마.”
“진짭니다! 전 그냥 바지사장 격입니다. 그…… 애들 건도 제 쪽이 아니라 위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도맡아 한 겁니다. 위치만 알지, 거긴 들어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급하게 항변하는 오주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흠.”
나 같아도 그런 중요한 일은 안 맡길 것 같은 관상이긴 한데.
“핵심은 그게 아니야. 오주찬 사장.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예?”
“내가 말한 시설은 박살 났고, 관계자가 모조리 죽었지.”
“……저, 정말이었던 겁니까.”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데. 어쨌든, J라고 했나? 그놈은 과연 오늘의 사태를 두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
“…….”
이젠 얼굴이 파래진 오주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턱.
“어디로 도망갔는지도 모를 사건의 범인? 아니면…….”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선생님.”
오주찬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뭐,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건질 수 있게 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좋네.”
지하실에 있는 복면남처럼 심지가 굳지 않아서 좋아.
“그럼, 오주찬 사장.”
“예.”
나는 오주찬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일단, 실종돼 줘야겠어.”
***
“마, 어떻노?”
“쿨럭! 씁.”
6호는 와사비가 잔뜩 든 초밥을 집어 먹고 기침을 내뱉었다.
“이, 이거 뭡니까……?”
“머긴 머고. 와사비지.”
“제 취향은 아닙니다.”
탁.
얼얼한 코를 부여잡은 6호에게 돼지가 우동을 밀어 줬다.
“아직 아네, 아. 이거나 무라.”
“감사합니다.”
후배들은 여전히 6호를 챙기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은 이름 모를 이 동생에게 꽤 정이 든 상태였다.
그동안 같이 지내 온 사람들이 모두 윗사람이기도 할뿐더러, 아는 게 없으니 순진해서 데리고 노는 맛이 좋았다.
킬러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같이 다니다 보니 그냥 또래의 애처럼 보였다.
“…….”
물론 6호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처음만 해도 틈을 노려 이들을 제압하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말이다.
-버러지 같은 놈.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렸던 자신을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겠다며 항상 체벌을 가하던 사람의 음성이었다.
그가 만약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평화에 찌들어 버렸군. 내일까지 밥은 없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평화에 찌들었고, 그 평화가 좋았다.
하루하루 굶거나 맞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건지 알게 된 이상, 다시 시설로 돌아간다 해도 예전처럼은 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최소한의 영양소가 든 음식 언저리의 무언가를 먹을 땐 삼겹살과 치킨이 생각날 것이고,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잘 때는 푹신한 잠자리가 떠오를 것이다.
“하아…….”
6호는 시설에 있을 적엔 함부로 내쉬지도 못한 한숨을 뿜어냈다.
그렇다고 이대로 여기 눌러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활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히 날 제거하려 하겠지.’
지금은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혹여 그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면?
그 즉시 6호는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이고, 그를 처단하기 위해 계속해서 암살자를 보낼 것이다.
거기다 자신을 두들겨 팬 그 남자.
이미 그는 6호의 조직이 노리고 있기까지 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 적이 거의 없던 6호는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런 6호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유심히 그를 지켜보던 난쟁이가 입을 열었다.
“니, 무슨 고민 있나?”
“…….”
절레절레.
“없긴 뭐가 없노. 얼굴이 우거지상이구만. 함 말해 봐라. 햄들이 다 들어주께.”
그 말에 6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은 이 사람들이 잘 대해 주지만, 과연 킬러로 키워지던 자신의 과거를 알고도 똑같이 반응할까.
6호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피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 그러나? 그라믄 드가자. 안 그래도 행님이 니 델꼬 오라 카드라.”
“행님이라면…….”
“대표님 있잖아. 주혁이 행님.”
“아.”
“퍼뜩 가자.”
얼떨결에 일어난 6호는 다시 그가 처음 잡혀 왔던 그 회사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회사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를 지나 네 사람은 회의실로 들어섰다.
끼익-
“행님. 저희 왔십니더.”
“어. 너는 앉아라. 나머지는 볼일 보고.”
“아, 예.”
6호를 자리에 앉히고, 세 사람은 회의실을 떠났다.
얼떨결에 혼자 남은 6호는 살짝 당황했다.
그동안 같이 돌아다니며 나름 정이 든 셋과는 달리, 아직 이 사람과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탓이었다.
절대 굽히지 않느니, 마음 바꿀 일 없다느니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 게 바로 어제라 더 얼굴이 화끈한 기분이었다.
“…….”
“…….”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말을 고르던 이주혁이 입을 뗐다.
“어떻게, 잘 지냈냐?”
“…….”
덕분에라고 할 뻔한 6호가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돌아간다고 하는 거야.’
여기 남아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
그리 생각한 6호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생각은 그대론가? 돌아가고 싶어?”
“그, 어…….”
막상 그렇다고 답하려니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뱉으려던 문장은 목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네가 있던 곳. 찾아가 봤다.”
“저, 정말입니까?”
6호는 깜짝 놀랐다.
자신과 ‘훈련생’들이 지옥 훈련을 받던, 그 강한 사람들이 있는 시설에 갔다니.
물론 눈앞의 이 사람도 6호를 쉽게 제압하긴 했지만, 특히 다른 교관들이 ‘영업사원’이라 부르던 그는 괴물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5명이 동시에 덤벼도 손대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다. 뭐부터 들을래?”
“나쁜 소식부터 듣겠습니다.”
“거기 있던 너랑 비슷한 애들, 다 죽은 것 같더라.”
“……왜죠?”
“다른 놈들이 와서 총으로 쐈더라고. 혹시 친했다면 유감이다.”
6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같이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으나, 서로에 대한 동정과 동질감만 가졌을 뿐.
실제로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노인이랑 얼굴에 칼자국 가득한 놈은 같이 죽어 있었다.”
“그럼, 나머지는…….”
스윽.
주먹을 들어 올린 이주혁이 씨익 웃었다.
“여기서부터 좋은 소식. 나머지는 내가 다 패 버렸다.”
“예?”
“전부 다 팔다리 하나씩은 분질러 놨으니, 아마 평생 몸 쓰는 일은 하기 힘들 거야.”
6호의 표정이 멍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해도 따라잡기 힘들던 그들을, 이 사람이 다 패 버렸다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짓했다.
드륵-
“표정 봐라. 못 믿겠으면 따라와.”
6호는 홀린 듯이 이주혁을 따라 ‘대련실’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맨 끝에 있는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갔다.
탁. 탁.
6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돌아가서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막상 돌아갈 곳이 사라진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하실로 내려온 6호의 눈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당신은?”
강한 데다, 무자비하고 냉정한 성격 때문에 모든 훈련생이 두려워하던 존재, 일명 영업사원.
“쿨럭…….”
그가 초라한 모습으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특유의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망가진 얼굴에, 지금 보니 관절 여러 군데도 이상한 곳으로 꺾인 채였다.
말 그대로 완전히 박살이 난 모습을 본 6호가 이주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긴. 쥐어패서 잡아 온 거지. 얘는 내가 팬 건 아니지만.”
“…….”
6호가 황망한 마음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이주혁이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어쨌든, 너 괴롭히던 새끼들은 다 뒈지거나 병신이 됐단 소리다.”
“아…….”
“이제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피식.
그리 짓궂게 말하며 웃는 그의 눈빛에서 언뜻 보이는 따뜻함.
6호는 그걸 느끼자 가슴이 조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 하하…….”
그동안 개고생을 하며 훈련한 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상황이었지만, 왠지 후련하기까지 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6호에게 이주혁이 말했다.
“갈 데도 없으니까, 그냥 여기에서 일해라. 몸 좋고 건강하니까 금방 적응…… 아, 너 아직 미성년자지? 이런……. 그냥 내가 보호자 하면 되려나. 그래도 상관없지?”
그 말에 6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식구가 된 걸 환영한다.”
턱.
이주혁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인력…… 아니, 식구는 언제나 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