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자, 다들 환영해 줍시다!”
짝짝짝-!
회의실에서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격한 환영 인사에, 내 앞에 서 있던 꼬맹이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발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물었다.
“학생은 이름이 어떻게 돼요?”
질문을 받은 꼬맹이의 말문이 막혔다.
들어 보니, 그동안은 6호라고 불렸지 제대로 된 이름이 없었다 하더라고.
그걸 안 나는 분개하며 몇십 분 동안 좋은 이름을 하나 선물해 주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친구가 사정이 있어서, 이름이 새로 생겼거든.”
“아, 실례했습니다.”
내 설명을 이해했는지 사발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툭툭.
등을 두드려 주자, 꼬맹이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 로운이라고 합니다.”
“이로운? 특이한데 예쁜 이름이네요. 대표님이 지어 주셨을 리는 없고.”
“허허. 무슨 말을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부장님이 손을 들며 물었다.
“그렇게 지은 데 이유가 있는 거냐?”
“아, 예. 이제 이로운 일만 하라고 그렇게 지어 봤습니다.”
“그래? 성은 왜 이 씨야. 이름 지어 줬다고 벌써 아빠 된 거냐?”
나한테 농담을 던진 부장님이 꼬맹이, 이로운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다시 지어 줄게. 라 씨로. 어때?”
“괘, 괜찮습니다.”
우리 대화에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 어쨌든,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식구니까 잘 부탁하겠습니다.”
“옙. 그럽지요.”
“꼬맹이라고 너무 괴롭히진 마시고요.”
내 말에 배상훈이 피식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야. 쟤 덩치를 봐라. 나만 한데 어디가 꼬맹이라는 거야?”
“됐고, 다들 상황은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DS컴퍼니의 한국지부의 관리자를 붙잡았고, 킬러들을 키우던 시설을 파괴했다.
거기다 내 곱지 못한 스탠스를 확인했으니, 이젠 날 적대해도 이상할 게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위험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DS컴퍼니는 우리 살생부에 올라와 있는 곳입니다. 저를 족치려고 전면에 나선다면, 우리도 몸을 드러낸 놈들을 하나씩 박살 내면 되는 거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사발이 손을 들고 우려를 표했다.
“대표님. DS컴퍼니의 주요 사업 골자 중 하나가 살인 청부라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적대해도 되는 겁니까? 평생 발 못 뻗고 자는 건 사절인데요.”
“그놈들 본진은 미국이고, 한국지부는 바로 어제 망했으니까 당분간은 걱정 안 해도 돼.”
“음…….”
“그리고, 잘만 풀리면 DS컴퍼니의 세력을 쉽게 축소시킬 수 있을 것 같거든.”
그 말을 들은 우재성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뗐다.
“개입한 제3의 세력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네. 전 그놈들이 선생과 관련되어 있다고 90% 이상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증은 없지만, 정황은 놈들의 소속을 가리키고 있다.
전투 훈련을 받은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DS컴퍼니의 한국지부를 공격한 것도 그렇다.
분명 민지훈, 그 새끼가 이렇게 말했었다.
악의 축들을 전부 제끼고, 자기 손으로 그놈들의 악행을 통제하겠다고.
추론해보자면 이런 거다.
DS컴퍼니와 선생은 아는 사이다.
그건 아마 두 세력이 같은 ‘악의 축’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고.
또 선생의 동료인 이윤종 박사가 DS바이오테크의 세미나에서 얼굴을 비췄으니…….
‘민지훈은 교류가 있던 DS컴퍼니를 가장 첫 번째 목표로 잡았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솔직히 강남파가 급 딸리는 조폭들은 다 정리했고, 좀 치는 놈들은 선생이 흡수했다.
그런데 주철수랑 정광제 같은 거물 조폭은 둘 다 뒈지고, 민지훈도 사라진 상황.
구심점이 될 사람이 없으니 대한민국 땅엔 아직 제대로 된 조직이라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삼합회도 예전의 사건으로 대부분 쓸려나갔다. 남은 건 해 봤자 야쿠자들일까.
이 와중에 화기로 무장까지 한 놈들이 움직였다? 이건 선생 쪽 사람 아니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지.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놈들이 우리 눈에 띌 때까지 대기야?”
부장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정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았거든요.”
“정리? 누굴.”
스윽.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설명했다.
“호정기획의 박광훈. 그리고 야쿠자들.”
“인천에 그 사람? 임시지만 그래도 협력 관계 아냐?”
“그쪽 말고요. 국내에서 민지훈과 협력하던 놈들 말입니다.”
가칭 ‘모임.’
원래는 주철수, 민지훈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필리핀의 카지노 주인 등.
선생과 끼리끼리 놀던 시리즈들인데, 방금 언급한 놈들은 이미 진작에 삼도천 건넜다.
끝까지 남은 건 박광훈과 가네무라. 이 두 사람.
“얼마 전, 박광훈이 절 만나고 싶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협박을 가미해서요.”
“조져야겠네.”
“그렇죠. 그리고 한인 야쿠자 가네무라. 이 새끼도 절 만나고 싶다네요? 광철이 아저씨를 직접 찾아가서 말했다는데.”
“명백한 협박이군요.”
우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은, 이 두 놈 다 족칠 겁니다.”
“좋아.”
짝-
주먹을 손바닥에 부딪힌 부장님이 히죽 웃었다.
“그래서, 누구부터?”
“참을성이 더 부족할 것 같은 놈부터 가죠.”
가네무라 아키라. 한국명 김용수.
탁.
옆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놈의 사진을 붙이며 말했다.
“움직입시다.”
***
한편, 그 시각.
경호대의 대장, 육진모는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주찬 사장을 제거하러 간 대원 둘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연락 두절이라.”
“정황상 이주혁이 개입한 게 아닌지…….”
“흠…….”
그걸 듣던 남자, 민지훈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전체적인 인상은 전보다 조금 초췌한 느낌이었으나, 그 눈빛은 일상적인 모습을 가장하던 그때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이뤘네요. 시설에서 키우던 이들과 DS클린의 한국지부를 제거해 J의 전력을 감소시키는 것. 그거면 됐습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오주찬 사장은 이대로 둬도 문제없겠습니까?”
“어차피 오주찬은 오래 못 갈 겁니다.”
이유는 몰라도 굳이 불살을 고수하던 이주혁이 오주찬을 제거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던 J의 생각은 다르다.
맡은 바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처벌과 새어 나갈지도 모르는 정보 은폐.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J가 오주찬을 암살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알아서 사라질 사람에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J 이사를 타고 DS컴퍼니의 중추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제이콥 스태포드…….”
J 이사.
하필 시작점이 그인 이유는 있었다.
J는 수익 모델이 청부업인 DS클린의 사장.
어떻게 보면 DS컴퍼니의 근간이 되었던 업무를 맡은 것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룹 내부의 더러운 일과 오명을 모조리 뒤집어쓰는 위치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따로 용병 계열사를 꾸린 H 이사과 함께 인간 백정이라고 엮이고 있다.
그러나 J 이사는 이윤종 박사와의 거래를 진행하며 입지를 높여갈 터.
‘어떻게든 중역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거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곳곳에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전투원들도 양성 중이다.
‘이쪽에서 적당히 가지치기 중이긴 하지만.’
J는 DS컴퍼니의 가장 어두운 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앞으로 진행할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줄 수 있는 것이다.
민지훈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없이 옅은 미소만 짓고 있자, 조용히 대기하던 육진모 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죠?”
“이주혁은 계속 살려 두실 겁니까?”
“…….”
“몇 번은 이주혁에게 주의를 집중시키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혁이 아닌 다른 인물이 개입되어 있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그 타당한 의문에, 민지훈은 늘 그랬듯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육진모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난감했다.
그가 지키는 이 남자는 항상 자신의 계획과 뒤에 일어날 일을 그의 머릿속에만 넣어 둔다.
그 탓에 의중을 뒤늦게 눈치채고 경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선생’의 뜻을 꺾을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게 궁금했습니까? 육 대장님. 어째, 이주혁을 살려 두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선생님의 뜻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의구심이 담긴 그 말에 민지훈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당분간은 이주혁과 목표가 겹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
“뭐, 정 안 되면 다시 전면으로 나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주혁이 조금 앞당기긴 했어도, 어차피 내가 한번 몰락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그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척.
민지훈이 손가락 하나를 들며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내가 살아 있는 걸 들키는 건 상관없어요. 나중엔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중요한 건,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주혁이 떠벌리고 다니진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지금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한창 바쁘기도 할 거고.”
한국에 버려 두고 온 회원들.
비록 다 사냥당하고 둘밖에 남지 않았으나, 그 개들은 원래 주인을 찾기 위해서든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해서든 이주혁을 들쑤실 수밖에 없다.
“후우…….”
민지훈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선연히 일으켰다.
이제 다시 혼란에 빠져 있을 J 이사를 흔들 시간이다.
슥.
은신처의 창문 밖을 바라본 민지훈이 하늘을 바라봤다.
자신을 절대 이해하지 않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가시죠.”
“예.”
그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민지훈은 걸음을 옮겼다.
***
그날 밤, 나는 가네무라를 불러냈다.
만나고 싶은 건 그쪽이니 장소는 내가 정했다.
오늘은 누군가와 만날 때 자주 가던 풍원한정식으로 가지 않았다.
‘그놈 배 속에 들어갈 음식이 아깝지.’
그래서 그냥 폐공장으로 불러냈다.
“야, 여기 오랜만이다.”
나와 동행한 부장님이 낡은 공장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전생의 날 담갔던 정 상무를 역으로 보내 버렸던 곳도 폐공장이었지.
거의 10년이 넘게 언더커버로 살았더니, 조폭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폐공장의 분위기도 어색하지 않았다.
여기 온 사람은 나와 부장님, 그리고 배상훈과 백기준.
마지막 둘은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띄어서 잡아 왔다.
고상미도 데려올까 하다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굳이 데려오지 않았다.
‘섣불리 덤벼들면 골치 아프지.’
그렇게 대충 널브러진 의자를 가지고 와 주저앉았다.
의자 다리가 부러질 듯 소음을 냈지만, 어차피 보여 주기용이라 상관없었다.
그러고 잠시 기다리던 도중 멀리서 인기척이 났다.
저벅.
머지않아 공장 입구로 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턱.
180은 될 법한 체구에, 턱수염을 마초스럽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풀어헤친 정장 차림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은 사진과 똑 닮아 있었다.
나는 가네무라를 잠시 쳐다보다 물었다.
“혼자야?”
“아랫놈들은 바깥에 대기시켜 뒀다.”
“한국말 잘하네.”
가네무라, 김용수는 내 비아냥 섞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나고 자란 곳이 바뀌는 건 아니지.”
금니가 보이도록 씨익 웃은 김용수가 주변을 살폈다.
“내 의자는 없나?”
“어이. 가네무라 용수 씨.”
“음. 섞어 부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난 왜 찾은 거냐? 협력하자고?”
내가 툭 던진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주혁. 네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한다.”
피식.
나는 조롱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런데 아직 몸이 영 뻣뻣하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히죽 웃었다.
“뭐 해? 안 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