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미국의 댈러스 주.
그곳에 지하로 깊숙이 지어진 한 건물이 있었다.
띵-
건물 최하층에선 DS컴퍼니의 수뇌부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사실 말이 회의지, 그들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현재 수상하게 돌아가는 컴퍼니 내부의 분위기였다.
원탁에 둘러앉은 9명의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백발의 노인, DS컴퍼니의 대표가 입을 열었다.
“다들 오늘따라 조용하군.”
“…….”
“크흠…….”
대표는 앉아 있는 임원들 몇 명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J 이사.”
“예. 대표님.”
“그 협상은 어떻게 되어 가나?”
“아, 그거 말입니까.”
이윤종 박사에게 DS컴퍼니의 지분을 양도하고, 생화학 무기와 각성제를 넘겨받기로 한 협상.
J 이사, 제이콥이 원래 담당하고 있던 것이긴 하나, H에게 대표 축출 계획을 들은 이후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보류하고 있던 차였다.
그 탓에 제이콥은 대표의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게, 긍정적인 결정이 나왔다고 전달했습니다.”
“뭐라던가?”
“조만간 물건을 준비해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손에 넣는다면 건방진 의원 놈들도 입 다물게 할 수 있겠어.”
“하하. 옳은 말씀이십니다.”
DS컴퍼니의 임원 한 명이 웃으며 동의했다.
그의 말을 들은 대표가 그 임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예, 대표님.”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부터 시간을 계속 확인하던데.”
스윽.
손을 들어 그의 손목시계를 가리킨 대표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난 또 한시 바쁜 용무라도 있나 했지.”
“…….”
임원은 조용해진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조금씩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M 이사. 지금…….”
대표가 미간을 좁히며 뭐라 말하려던 순간.
탕! 타다당!
회의실 바깥에서 갑작스러운 총성이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냐?”
그에 임원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젠장! 쿠데타인가!”
“문부터 막아! 경호원!”
회의실 내부에 자리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가구와 집기들을 옮겨 문 쪽을 막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응은 불가능했다.
DS컴퍼니의 내부에선 무장할 수 없다.
화기는 물론이고, 도검과 같은 냉병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경호원들은 임원들을 맨몸으로 보호해야 했다.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혹시…….”
임원들은 서로를 의심이 담긴 눈빛으로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쿠데타를 저지를 만큼 힘이 있는 사람은 임원급 이상밖에 없었다.
타다다당! 타당!
그렇게 바깥에선 총성이 울렸고, 안에선 소리 없는 눈치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
총성은 잦아들었지만, 회의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저벅. 저벅.
바깥의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쳤다.
-이봐, 대표! 오랜만이야?
“……?”
대표는 상대가 누군지 깨닫고 인상을 구겼다.
“……헨리?”
선생을 도우러 파견을 나갔다가 같이 실종된 H 이사.
그가 이 반란의 주모자였던 것이다.
“뭘 믿고 이런 일을 벌인 거지?”
-뭘 믿기는. 나 말고 더 있겠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대꾸한 H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열어!
대표는 그게 자신의 수하들에게 하는 지시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
“죄송하게 됐습니다.”
척.
안에 모여 있던 9명 중 2명의 이사와 그 경호원들이 막혀 있던 문을 열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채 굳어 버렸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건가.”
대표는 돌아선 인원들을 보며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덜컥. 끼익-
커다란 철제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활짝 열린 문으로 큰 덩치의 금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짜잔.”
뻔뻔하게 나타난 그를 보며 임원 하나가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H! 네놈이었나!”
“어. 나 맞아.”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
타앙!
총성과 함께 임원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쿠당탕!
“후.”
H가 권총을 내리며 피식 웃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철컥. 철컥.
사망자가 나오자, 대표의 경호원들이 권총을 빼 들고 겨눴다.
그런 경호원들을 H와 함께 진입한 용병들이 소총으로 조준했다.
H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무장 금지라더니, 본인 경호원들은 버젓이 들고 다니네? 권력 남용 아닌가?”
“헨리.”
“음? 과거에 내가 뭘 해 줬니, 이런 소리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겠지.”
“당연한 말씀을.”
“살려 줄 생각은 있나?”
“하하하.”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H가 고개를 까딱했다.
그와 동시에 H의 뒤에서 불이 뿜어졌다.
타다다다당!
“끄아악!”
“사…… 아아악!”
“크악!”
타다다당! 타다당!
대표에게 등 돌리지 않은 임원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
대표는 자신의 경호원들이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쓸려나가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그에게는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다.
“컥…….”
“크학.”
쿵.
권총 한 자루씩만을 들고 있던 경호원들은, 방탄복과 소총으로 무장한 용병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헨리.”
“남길 말은?”
“내가 죽으면 많은 비밀이 사라질 거다.”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
척. 탕-!
대표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휘청거렸다.
“……커어…….”
배에 총알이 박힌 대표가 무릎을 털썩 꿇었다.
“데려가서 치료해.”
“예.”
“헨리……. 이 개자식이……!”
대표는 피를 질질 흘리며 용병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렇게 회의실에 있던 이들은 모두 죽거나 무력화됐다.
H와 함께 쿠데타를 도모한 두 명의 임원과 제이콥을 제외하고 말이다.
“……미쳤군. 미쳤어.”
“어때. 생각보다 쉽지?”
입꼬리를 올린 채 다가온 H가 안색이 파래진 제이콥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평생 해 먹을 것 같던 대표도 사람이야. 총알 박히면 숨넘어가는 사람이라고.”
“정말 대책은 있는 건가?”
“설마 내가 생각도 없이 이런 미친 짓을 벌였겠어?”
“미친 짓이라는 건 알고 있군.”
툭툭.
“어쨌든, 잘 선택했어.”
“괜히 나섰다가 벌집 될 일 있나.”
제이콥은 머리가 복잡했다.
이런 정신 나간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를뿐더러, 이윤종 박사와의 협상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다.
‘돌겠군.’
H는 예전부터 내재된 광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이런 미친 방식으로 터뜨리곤 했다.
분명히 누군가 뒷배로 있는 건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DS컴퍼니의 근간 자체를 뒤엎는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대체 누구지?’
혼란스럽던 마음을 다잡은 제이콥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 상황에서 반란을 저지른 사람들을 붙잡고 따진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쿠데타는 어찌 됐든 성공했다.
그럼 체제가 붕괴한 틈을 타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함께 컴퍼니를 바꿔 보자고.”
H는 미소를 지으며 제이콥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던 제이콥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턱.
“좋다.”
“역시, 제이콥 너는 내 편이지.”
H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콥은 그걸 보며 속으로 다른 마음을 품었다.
어차피 당분간 힘을 가진 건 직접 칼춤을 춘 H다.
우선은 그의 편에 붙는다.
그리고 조금씩 영향력을 늘려 간다.
‘미리 사과하지. 헨리.’
언젠가는 갈라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손에 힘을 줬다.
***
인천광역시 동구의 화수동의 한 아지트.
그곳을 향해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연장을 들고 가는 중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인천의 야쿠자, 스가와라의 수하들.
보스의 복수를 위해 인천에 있는 삼합회를 박살 내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런 야쿠자들의 뒤를 따르는 두 남자가 있었다.
“쩝.”
“…….”
용병 출신 마종석과, 필리핀에서 온 한인 갱의 리더 춘식.
춘식은 과묵한 편인 마종석에게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대표, 그 양반 의도가 딱 보이죠? 칼 맞는 일은 외부 사람한테 맡기는 거.”
“……조용히 가지.”
“뭐, 돈은 받았으니 불만은 없지만서도…… 쪼금 섭섭하달까. 솔직히 생사고락을 함께했다고 할 수 있는 사인데. 안 그래요?”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뭐 어쨌든 간에. 결론은 열심히 해 보자는 거지요. 대표님이 돈은 많잖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한다.”
그렇게 그들은 인천 내 삼합회의 본거지에 도착했다.
아지트 앞에는 머리를 빡빡 민 남자 셋이 담배를 피우며 낄낄대고 있었다.
스윽.
선두에 서 있던 미우라는 징이 박힌 너클을 손에 끼우며 말했다.
“가자.”
그 말과 함께, 각종 연장을 든 야쿠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아지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춘식은 그걸 보며 마종석에게 물었다.
“저 양반이 뭐라는 겁니까?”
“가자고.”
탓!
마종석은 한마디를 남기고 가볍게 뛰어갔다.
“흠.”
뚜둑.
허리춤에 대놓고 차고 있던 마체테를 꺼내 든 춘식이 몸을 풀었다.
“우리 애들도 데려왔어야 했나.”
도와주러 오긴 했는데, 막상 몸을 움직이려니 귀찮았다.
춘식도 손목을 두어 번 돌리곤 발을 옮겼다.
.
.
.
“죽어라-!”
쩌억!
삼합회 조직원의 턱에 징 박힌 너클이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끄에에…….”
턱이 박살이 난 조직원이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후.”
미우라는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훔치며 주변을 돌아봤다.
“으아아!”
“죽어!”
“크앗!”
동료들과 삼합회 놈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사시미칼이 휘둘러지고, 야구 배트가 머리통을 내리친다.
삼합회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오야붕의 복수라는 명목하에 덤벼드는 야쿠자들에게는 확연히 기세로 밀렸다.
거기다 미우라라는 강자가 날뛰고 있으니 삼합회 입장에선 더 당황스러웠다.
“썅! 저것들이 여기 왜 있어?!”
“모, 모르겠습니다!”
“이런 미친…….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일단 다 죽여! 그놈도 깨우고!”
“예!”
조직원 한 명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타닷!
코너를 돌자, 소파에 누워 곤히 자고 있는 더벅머리의 남자를 깨웠다.
“혀, 형님! 형님! 큰일 났습니다!”
“으음……?”
한창 숙면을 취하던 남자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습격입니다!”
“하…….”
남자는 부스스한 머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 한창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향했다.
쿵! 쿠당탕!
그런 남자의 앞에 얼굴이 함몰된 조직원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허어.”
고개를 든 남자는 미우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미우라는 남루한 행색의 남자가 상당한 강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이 아니다.’
미우라가 주먹을 쥐었다 피며 다가가려는데.
“에헤이. 잠깐.”
서성거리며 한둘씩 처리하던 춘식이 미우라의 앞으로 나섰다.
“나름 지원으로 왔는데, 이렇게 잔챙이만 수확하다 가면 섭섭하잖습니까.”
휘릭.
춘식은 손에 쥔 마체테를 빙글 돌리며 씩 웃었다.
“이놈은 제가 잡도록 하지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거지꼴의 남자가 고개를 까딱하며 중국어로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그리고 바람같이 스텝을 밟으며 돌진했다.
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