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이로운의 연락이 온 건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나는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별일 없었지?”
-네. 전 괜찮아요.
“통화 괜찮은 거 맞아?”
-그 사람들이랑은 헤어졌어요.
나도 내심 걱정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로운은 멀쩡했다.
얘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는 아니긴 하지.
“오고 있는 거야?”
-다 왔어요.
“그래. 내 사무실로 올라와. 위에서 얘기하자.”
-넵.
간단하게 차를 두 잔 준비하자 이로운이 노크했다.
“들어와.”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일단 앉아. 넌 좀 잤고?”
내 물음에 이로운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거의 못 잤어요.”
“아이고. 이거 마셔라. 피곤할 때 좋은 거야.”
“감사합니다.”
나는 이로운이 차를 마시는 걸 보며 입을 열었다.
“너, 어제 클럽에 들렀었지?”
“엇. 그걸 어떻게…….”
“나가다 봤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로운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학교에서 시비를 걸린 일, 그리고 같이 일해 보자는 제안에 심부름을 해 주고 클럽에 놀러 간 것까지.
내 생각보다 스펙타클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주성재, 그놈이 싸움을 붙였다 이거지?”
“네.”
“이겼냐?”
“당연하죠.”
“그러니까 뭐라디?”
이로운이 잠시 말을 골랐다.
“합격이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더라고요.”
“따로 시킨 건 없고?”
“네. 그래서 바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늦은 밤이라 주무실 것 같아서 형들 있는 집으로 갔어요.”
지금 녀석은 후배 녀석들이랑 내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그래? 앞으로는 괜찮으니까 바로바로 와.”
“그럴게요.”
“흐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로운이 녀석이 성공적으로 잠입한 것 같긴 한데, 이대로 두면 어디까지 파고들지 모른다.
포장마차 아주머니한테 가져다줬다는 봉투 안에 과연 뭐가 들었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녀석이 범죄에 연루되어 버리면 난감해진단 말이지.
“어떻게 할래.”
“뭐를요?”
“계속할 수 있겠어?”
이로운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은 문제없어요.”
“네가 고생이 많다.”
부장님이 하도 걱정한다고 한마디 했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나도 별다를 거 없네.
“그래. 일단 쉬고 학교 갈 준비해. 특이사항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넵.”
이로운을 돌려보내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계속 녀석을 써먹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혼자 두기엔 영 석연치 않다.
걔가 베테랑 첩보 요원이면 모를까, 그건 또 아니니까.
내부에서 도와줄 사람이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
생각해 보니 그놈이 있었지?
덜컹.
사무실을 나선 뒤 휴게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젯밤 내내 술을 퍼마시던 배상훈이 소파에 누워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배상훈을 발로 툭툭 찼다.
“야. 일어나 봐.”
“어엉?”
비척대며 일어난 배상훈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뭐, 뭐야……?”
“정신 차려.”
“어. 차렸다……. 차렸어.”
“너, 클럽 좋아하잖냐.”
배상훈은 비몽사몽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한데…… 왜?”
“앞으로 매일 거기 출석 도장 찍어라.”
“매일 가라고?”
“어. 거기서 뭘 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고 보고해. 놀면서 쓸 돈은 줄 테니까.”
내 말에 배상훈은 웃는 듯 찡그린 듯 오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냥 생각 없이 노는 졸부 행세를 하면 된다는 소리지?”
“그래.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알았다.”
“해장부터 좀 해라. 얼굴이 초록색이다.”
“어우. 어제 분위기 타서 많이 마시긴…… 욱.”
배상훈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빠르게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저놈이 노는 걸 좋아하긴 해도,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완수하는 녀석이다.
강남파에 스파이로 들어간 전적도 있으니만큼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저렇게 망나니처럼 놀다 보면, 배상훈을 호구로 보고 빨대를 꽂든 약점을 잡든 액션이 있을 거다.
그때 어떻게 나오는지를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겠다.
‘주성재. 털어서 뭐라도 나오면 보자고.’
* * *
글라자의 킬러, 유현.
그는 수뇌부 중 하나이자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는 미하일에게 연락을 받았다.
[3일의 시간을 준다더군. 슬슬 마무리하는 게 좋겠네.]“…….”
유현은 미간을 좁히며 핸드폰을 노려봤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시간은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쯧.”
리신페이를 암살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데 3일이 충분할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고, 워낙 경계가 강해서 쉽사리 대면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후…….”
한숨을 내쉰 유현은 앉아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이 일이 끝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단 이후의 거취가 더 걱정이었다.
철컥.
유현은 협탁 위에 놓인 총을 집어 들었다.
이젠 정말 결단을 내릴 때였다.
우웅-
때마침 리신페이의 충실한 수족, 시커에게서 연락이 왔다.
[레이. 보스의 호출입니다. 11시까지 방문해 주십시오.]문자에 적당히 답장한 유현은 숙소를 나섰다.
그런 그의 허리춤에는, 그동안 들고 다니지 않던 권총이 들어 있었다.
.
.
.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경호원이 유현의 몸을 수색했다.
턱. 턱.
“그것도 잠시…….”
“보스에게 보고할 내용이다. 내용은 확인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 예.”
경호원은 유현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열어 본 뒤 다시 건넸다.
“확인되셨습니다. 올라가십시오.”
검문을 끝내고 들어가자, 카지노 관리자인 시커가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레이.”
“예.”
“거기 있던 문서는 다 가져오셨지요?”
“여기 있습니다.”
“좋습니다.”
두 사람은 리신페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문에 새겨진 금색 용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똑똑.
안으로 들어서니 자리에 앉아 있던 리신페이가 입을 열었다.
“가져오도록.”
“예.”
시커는 유현에게서 서류 봉투를 받아 들고 전달했다.
곧바로 봉투를 열어 확인한 리신페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가져왔군.”
탁.
리신페이는 종이를 내려두고 유현을 쳐다봤다.
“네가 저번에 제거했던 남자, 기억하나?”
“예.”
지난번 타깃이라면 글라자에서 넘어온 조직원이었다.
“러시아에서 넘어온 킬러 조직의 일원이더군.”
“그렇습니까.”
“글라자라고, 들어봤나?”
“처음 듣습니다.”
“그래?”
드륵.
리신페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형이 있었다.”
“…….”
“그리고 22년 전, 글라자에서 파견한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
유현은 이 공간 안에 몇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후로,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 형을 죽인 암살자를 찾아냈지.”
“…….”
그 순간 유현은 뭔가 미심쩍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암살자와 아내를 죽였지만, 자식이 살아 있다는 소문이 있더군.”
리신페이는 동요하는 유현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지.”
“……뭘 말입니까?”
“내가 그 자식까지 찾아내서 죽이는 게 좋겠나?”
유현은 혼란스러웠다.
아마 리신페이가 말하는 암살자는 그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아버지가 리신페이의 형을 살해한 게 먼저였다.
이 복수의 시작점이 아버지란 의미였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단지 아버지의 복수를 할 뿐이었다.
유현의 대답을 들은 리신페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 그놈의 이름이었다.”
스윽.
유현은 좌우를 슬쩍 둘러봤다.
안쪽의 공간에서 경호원 셋이 걸어 나왔다.
“……뭡니까?”
옆에 서 있던 시커가 뒤로 물러났다.
경호원들은 유현을 둘러싸려는지 양옆으로 움직였다.
유현은 뒷걸음질을 치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아무래도 상황이 꼬인 모양이었다.
“글라자의 레이븐. 내가 끝까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리신페이의 최후통첩에, 유현은 시커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권총을 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유현은 빠르게 시커의 목을 붙잡고 소파 뒤로 뛰었다.
“끄악……!”
퍽-!
소파에 총알이 박혀 들어갔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시커의 품을 뒤져 봤지만, 무기로 쓸 만한 것은 없었다.
유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신발의 밑창을 열었다.
딸깍.
한쪽에서 총을 꺼내고, 다른 쪽에서 탄창을 꺼냈다.
총의 사이즈가 작고 특수 제작한 신발이라 다행히 검문에선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걸 본 시커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거, 거기 숨겨 놨…….”
탕!
유현은 시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입을 다물게 했다.
세 명의 경호원이 총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은 살인 전문가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예!”
유현은 축 늘어진 시커의 몸을 잡았다.
그리고 총을 쏘며 옆으로 튀어 나갔다.
타앙!
“컥!”
정확한 사격 솜씨에 한 사람이 쓰러졌다.
빠르게 다음 타깃을 지정한 유현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탕! 탕! 탕!
하지만 리신페이가 빠르게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한 탓에 목적을 이루진 못했다.
퍼억!
“큭.”
시커를 잡고 있던 어깨에 충격과 함께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유현은 시커를 놓으며 경호원들을 쐈다.
탕! 탕! 탕!
경호원 둘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지만, 유현도 배에 총을 맞았다.
“커헉…….”
방탄조끼 덕에 총알이 몸을 파고들진 않았으나, 내장까지 욱신거리는 고통이 전해졌다.
유현은 땅을 박차고 책상을 타 넘었다.
그리고 시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그러나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어느새 총알을 다 소모한 탓이었다.
유현이 다급히 칼을 꺼내는 사이, 리신페이는 그에게 리볼버를 겨눴다.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타아앙-!
리신페이가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유현이 나이프를 던졌다.
“컥!”
“크악!”
쿠당탕!
뒤로 쓰러진 유현이 쿨럭거렸다.
폐에 들어 있던 산소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에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끅…….”
이를 갈며 겨우 몸을 일으키자, 가슴팍에 박힌 나이프를 붙잡고 있는 리신페이가 보였다.
“컥. 커헉!”
몸을 일으킨 유현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바깥에서 소란이 이는 게,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스윽.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본 유현이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군.’
유현은 피가 흘러나오는 배를 꾹 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 * *
글라자의 수뇌부 중 하나, 미하일은 소파에 앉은 채 담배를 태웠다.
“이제 레이븐은 알아서 제거되겠군요.”
그의 수하, 레프가 말했다.
하지만 미하일의 표정은 어딘가 오묘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리신페이에게 유현의 정체를 귀띔해 준 사람은 미하일이었다.
유현의 아버지가 숨어 지내던 곳을 흘린 이도 그였다.
“책임을 져 줄 사람이 사라져서 말이지.”
원래는 레이븐을 통해 지금 손잡고 있는 삼합회의 지부장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의 경쟁자인 리신페이가 죽고 난 후, 레이븐을 다시 러시아로 불러들여 마피아에게 제물로 던져 주면 끝이었다.
하지만 마피아들의 재촉으로 인해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었고, 결국 레이븐을 급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중국에서 살아남더라도…… 평생 마피아들을 피해 떠돌아야 하겠지. 안타깝군. 안타까워.”
버리자니 아깝다.
그렇다고 거둬서 쓰기엔 불안 요소가 많았다.
미하일은 마지막 한 모금 연기를 내뱉고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잘 가시게. 레이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