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다음 날, 경찰은 김우천의 집을 찾아갔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사도우미까지 연락을 받지 않아 그의 아들이 신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곳에서 시체 두 구를 찾아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2시경, 김우천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자세한 경위는 조사 중이며, 정황상 강도살인의 가능성이 크다고…….]유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만약 이 일의 범인이 그라는 게 밝혀진다면, 과연 그 아들은 제게 복수하기 위해 나설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저벅.
누군가의 발소리에 유현의 상념이 깨졌다.
그를 향해 다가온 경호대원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다음 목표입니다.”
“이봐.”
유현은 종이를 받지 않은 채로 물었다.
“이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
“내가 원하는 걸 알려줄 생각은 있는 건가?”
그 물음에, 경호대원은 책상에 종이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전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경호대장. 그자의 지시겠군.”
스윽.
유현은 경호대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현이 냉소를 지었다.
“내 인내심을 자꾸 시험하는군.”
끼익.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이 그에게 한 발짝 접근했다.
“나를 장기 말로 써먹는 것 정도는 넘어가겠는데,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둬.”
유현의 경고에 잠시 고민하던 경호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경호대원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유현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구체적인 기한도 없이 이렇게 이용당하고 있자니 심기가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유현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 길의 끝에서 어떤 끝을 맞이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좋은 결말이 아닐 거라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인생. 어떻게 죽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때, 바깥으로 향했던 경호대원이 다시 돌아왔다.
“받으십시오.”
그의 손에는 못 보던 핸드폰 하나가 들려있었다.
유현은 핸드폰을 받아 들고 귀에 갖다 댔다.
-반갑습니다. 레이븐.
“당신이 경호대장인가?”
-아뇨. 당신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 말에 뭔가를 눈치챈 유현이 눈을 크게 치떴다.
“설마, 당신은…?”
* * *
[자세한 경위는 조사 중이며, 정황상 강도살인의 가능성이 크다고…….]“허…….”
나는 뉴스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게 무슨 일이야?’
김우천.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광철이 아저씨의 은사로, 예전에 아저씨가 찾아가서 선생에 관한 정보를 여쭤보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마음이 영 불편하던 그때, 마침 광철이 아저씨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주혁아. 뉴스 봤냐?
“예.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그래. 장례식 참석하러 조만간 올라갈 것 같은데, 그때 얼굴 보자.
“저도 갈게요.”
-아냐, 아냐. 네가 뭐 안면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다녀오련다.
“네. 그럼 그날 봬요.”
그렇게 아저씨는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분명히 이번 일로 크게 상심하셨을 거다.
아저씨가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라고 들었으니까.
거기다 그냥 돌아가신 것도 아닌, 강도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니 더더욱 마음이 좋지 않겠지.
“흐음…….”
나는 소파에 기대며 생각했다.
과연 이 일이 정말 단순한 강도살인 사건일까?
그 집에 누가 사는지 파악하고, 저택에 침입해 금품을 턴다.
그리고 들킨 건지, 들킬 것을 대비해서인지 김우천을 살해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없진 않았다.
‘광철이 아저씨의 은사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니… 그래도 일의 인과는 확실하게 밝히는 게 맞겠지.’
몸을 일으킨 나는 이런 일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송 과장님. 바쁘세요?”
내 물음에 송태석이 불안한 듯 말했다.
-왜 그렇게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어봐?
“부탁드릴 게 좀 있어서요.”
-뭔 부탁.
“이번에 돌아가신 분 있잖아요? 강도살인.”
-어어.
“사건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데.”
그러자 곧바로 거절이 돌아왔다.
-안 돼. 그리고 우리 관할도 아닌데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과장님이 위에 말씀드려서, 현장 출입할 수 있는 걸로 적당한 증 하나만 만들어줘요.”
-또 무슨 짓을 꾸미려고.
“꾸미다뇨.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시네. 그냥 이번 일에 약간 미심쩍은 게 있어서 따로 조사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길게 항변하니, 송태석은 그제야 수긍하는 듯했다.
-확실하지? 일단 알았다.
“네. 늘 감사해요.”
-날 자꾸 이용해 먹는 것 같애….
송태석이 투덜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막상 부탁하는 건 어지간하면 다 해준다.
그래서 내가 전생의 일은 잊고 지금까지 챙겨주는 거기도 하다.
탁.
행거에서 겉옷을 챙긴 뒤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대걸레를 들고 달리며 청소하고 있던 덩치가 물었다.
“음? 행님. 어디 가십니꺼?”
“어. 볼일이 있어서. 근데 왜 청소를 네가 하고 있냐?”
“운동도 할 겸, 제가 한다고 했지예. 이거 보이십니꺼.”
덜렁덜렁.
대걸레 봉에 5kg짜리 추를 매달아 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해라.”
“옙!”
그렇게 신나서 달려가는 덩치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끼익-.
김우천의 저택.
그곳에 도착한 나는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주위에는 경찰차가 여러 대 보였고, 경찰은 펜스를 친 채로 구경하는 시민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저벅.
내가 그리로 다가가자 경찰이 막아섰다.
“현장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특수수사국 이주혁 계장입니다.”
“엇, 들어오십쇼.”
경찰이 치워준 펜스를 지나니, 이 동네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마포서 윤대준 경윕니다. 특수국에서 나오셨다고요?”
“네. 현장을 잠시 확인하려고 합니다만.”
자신을 소개한 형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 특수국은 조폭 전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여기에…….”
“조사할 게 있어서요.”
“설마, 이번 일에 조폭이 관련돼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아, 예. 일단 살펴보십쇼.”
아무래도 내 설명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고 저택으로 진입했다.
들어가자마자 느낀 건, 저택 내부가 꽤 어수선하다는 거였다.
안을 돌아다니는 감식반 탓도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누군가 한번 털고 간 듯한 광경이었다.
활짝 열려 있는 서랍과 찬장을 지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보이는 안방으로 향했다.
“흠….”
굳이 안으로 들어서지 않아도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엔 채 지우지 못한 혈흔들이 가득했다.
‘아마 저곳에서 살해당했겠네.’
가사도우미가 사망한 2층의 서재까지 확인한 뒤, 다시 바깥으로 나와 좀 전의 형사를 찾았다.
“형사님.”
“아, 예. 다 보셨어요?”
“혹시 근처에 CCTV 같은 거 있었습니까?”
“예. 이분이 집에 개인적으로 카메라를 하나 설치해놨더라고요.”
내 물음에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긴 했지만, 과학수사대도 아닌 내가 현장을 봐서 알아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하지만 CCTV를 통해 외형을 확인하면 단서라도 얻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번 일의 피해자인 김우천은 내 삼촌 같은 광철이 아저씨의 은사다.
굳이 이렇게 나선 것도, 범인을 최대한 빨리 붙잡아서 아저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니까.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보시려면 서로 가야 되고, 제가 메일로 복사본을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하며 생각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잡히면 징역으로 끝나게 두진 않을 거다.
.
.
.
내 차로 돌아와 노트북으로 CCTV 영상을 확인했다.
담장에서 저택의 현관문 쪽을 찍는 구도의 영상이었다.
“어디 보자…….”
빨리감기로 넘겨 가며 영상을 확인하던 나는 미간을 좁혔다.
“뭐야.”
분명 집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웬 시커먼 놈이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놓쳤나 싶어 다시 앞부분을 확인했는데도 이놈이 저택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창문으로 들어간 건가?’
저택에 현관 이외의 입구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창문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놈이 침입한 창문은 2층일 확률이 높았다.
김우천이 먼저 살해당했다면, 그 소란을 들은 가사도우미가 내려와 봤을 테니 말이다.
“…….”
나는 검은 실루엣의 범인을 유심히 살폈다.
절도범들은 웬만하면 덩치가 그리 크지 않다.
도망가는 데도 불리하고, 좁은 곳을 지나갈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이놈은 화면 너머로 봐도 꽤 균형 잡힌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가장 이상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이거였다.
‘너무 태연해.’
최근 이 일대에서 이와 유사한 강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었다.
그렇다면 이놈은 집을 털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보통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게 되면, 순간의 흥분이 가라앉고 난 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상 속의 이놈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태연하지.’
나는 여유롭게 저택을 걸어 나오는 범인의 모습을 노려봤다.
그리고 이 새끼, 실루엣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안 되겠네.’
탁.
노트북을 덮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탁.
“여보세요.”
-…번호를 바꾸든지 해야겠어. 또 무슨 일이야?
불만 가득한 고세운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영상 하나 보낼 건데, 거기 나오는 놈 한 명 찾아줄 수 있나?”
-그건 봐야 알아. 그나저나, 이제 너무 자연스럽게 날 부려먹는 거 아니냐?
“너한테도 필요한 일일지도 몰라서.”
-뭐?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그놈.”
씨익.
“어쩌면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 * *
삐-. 삐-. 삐-.
노인과 연결된 기계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그에 의사들은 수술대 위에 누운 노인의 팔에 꽂힌 관을 통해 약물을 주사한다.
삐-. 삐-.
하지만 노인의 주름진 눈꺼풀은 단단히 닫힌 채 열릴 기미가 없었다.
잠시 후, 수술실 바깥으로 나온 의사가 모자를 벗으며 진땀을 훔쳤다.
그런 의사에게 다가간 중년이 물었다.
“어르신의 상태는 어떤가.”
“그것이…….”
“상태가 어떻냐고 묻지 않나.”
“아무래도…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드실 듯합니다….”
그 말에 중년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든다.
“큭. 어르신….”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됐다. 물러가라.”
의사가 자리를 뜨자, 중년은 뒤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노인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된 이상, 삼합회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중년은 흰색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