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73
072화
이명준 회장이 책상 위의 서류에서 눈길을 돌렸다.
“이게 뭡니까?”
“확인해 보세요.”
“하.”
탁.
들고 있던 펜을 소리가 나게 내려놓은 이명준 회장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세요. 용건이 있으면 약속을 잡고 오는 게 예의 아닙니까? 아직 젊은 사람이 무례하군.”
“예. 죄송한데, 일단 그 서류부터 한번 보시죠.”
이명준 회장은 나와 서류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뭔…….”
서류에 적힌 명단을 읽어 내리던 이명준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멈칫했다.
이명준 회장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물었다.
“설마, 여기 적힌 투약 횟수가…….”
“처방전은 아니겠죠.”
“……마약인가? 이걸 왜 나한테.”
“쭉 읽어 봐요.”
내 말에 뭔가를 느낀 건지, 이명준 회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급하게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린 그가 잠시 더 명단을 읽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며 아무 말도 못 하길래, 이명준 앞에서 기웃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회장님. 괜찮으세요?”
“이거…… 사실인가.”
“제가 왜 굳이 이런 걸 들고 오겠어요?”
이명준 회장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골프채 하나를 들고 나왔다.
저게 아버지의 3번 아이언인가.
얌전히 얼음을 대고 있던 이명학이 그걸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명학아. 가까이 와라.”
“그게…….”
“이명학!”
이명학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자기 아버지에게 걸어갔다.
평소에 얼마나 처맞았던 건지, 이내 자연스럽게 엎드려뻗쳐를 시전했다.
훈육은 좋은데, 내 앞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조금 당황스럽네.
이명학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버지. 진짜 그게 아니라…….”
“이빨 꽉 깨물어라.”
“…….”
나는 가만히 보고 있기 난감한 상황에 이명준 회장을 만류했다.
“회장님. 사랑의 매는 나중에 드시고, 저랑 대화 좀 하시죠.”
“…….”
나를 노려보던 회장이 이내 골프채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하…….”
“그대로 있어라.”
“옙.”
자세를 풀려는 이명학을 한번 노려본 이명준 회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 누구요?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요?”
“음. 일단 이런 사람입니다.”
내 명함을 건네자, 회장이 그걸 받아 들었다.
“SA시큐리티? 보안 업체 사장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 명학이 얼굴 보니까 그쪽이 한 것 같은데, 아무리 죄를 지었다거니 이렇게 남의 아들을 때려도 되는 거요?”
“아이고. 아들 사랑이 지극하시네.”
자긴 골프채로 패려고 했으면서 내가 팼다고 뭐라 하네.
저런 것도 아들이라고.
나는 이명준 회장에게 용건을 말해 줬다.
“강남파랑 하는 거래 다 끊으세요. 이유는 적당히 둘러대시고.”
“뭐요?”
알아보니까, 이 푸른이라는 기업이 강남파와 연결 고리가 있었다.
이명학이 코카인을 들고 있던 것도 강남파를 통해 쉽게 구한 것 같고.
“강남파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진짜 몰라요?”
나는 품을 뒤져 사진 한 장을 더 꺼냈다.
팔랑팔랑.
“강남파에서 관리하는 업소에 어제도 들락거리셨던데…….”
“……!”
이명준 회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이명준이 나를 노려보더니, 자기 자리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어떤 발악을 하려는 걸까. 궁금하네.
회장은 전화기를 집어 들고 소리쳤다.
“당장 보안팀 불러서 침입자 제압해!”
“어이고.”
엎드려 있던 이명학도 고개를 슬며시 들어 나를 비웃었다.
마치 너도 한번 엿 돼 봐라 하는 표정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르 소리와 함께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회장실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같이 들어온 비서가 나를 배신감 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이명준 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다예요?”
이명준 회장은 내 말을 무시하고 경호원들에게 외쳤다.
“제압해!”
“예!”
달려오는 경호원의 손을 피하고 가볍게 발을 걸어 넘겼다.
쿠당탕!
“회장님. 마음이 너무 급하시네.”
“잡아!”
다른 경호원 하나가 내 옷깃을 잡으려고 하는 걸 흘려낸 뒤 무릎으로 옆구리를 올려 쳤다.
간에 충격을 입은 경호원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무릎을 털썩 꿇었다.
“커헉!”
“대화 좀 하자니까.”
“이 자식이!”
남은 경호원 여섯 명이 차례대로 덤벼들었다.
알 만한 분이 귀찮게 자꾸 왜 이러실까.
툭! 툭!
“억.”
“윽!”
나는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턱이나 머리를 쳐 경호원들을 쓰러뜨렸다.
깡패들도 아니니 크게 다치게 할 필요는 없지.
어느새 경호원들은 전부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명준 회장을 슥 돌아보자, 회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쓰러진 경호원들을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나는 옷을 툭툭 털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대화 나눌 준비는 다 되셨죠?”
***
라세흠은 고개를 우드득 소리가 나게 꺾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진입하자마자 둠칫거리는 음악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뭐야. 설마 나이트인가?’
일단 고광목이 앞에 서 있길래 들어오긴 했는데, 이런 가게일 줄은 몰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덩치 하나가 라세흠을 반겼다.
“잠깐. 신분증 보여 주쇼.”
“음?”
덩치가 갑자기 라세흠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서른다섯 위로는 못 들어갑니다.”
“뭐 이 새끼야?”
순간 열이 오른 라세흠이 덩치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억.”
덩치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새끼가……. 아직 서른 초반이구만.’
라세흠은 심기가 불편해진 채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라세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1층과 2층이 나뉘어진 넓은 공간.
홀에서 몸에 딱 붙는 짧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몸을 흔들고, 남자들이 그런 여자들에게 비비적대고 있었다.
2층에서는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이 뭔가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들이 전부 요상한 게, 아무래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냥 담배는 아닌 것 같은데?’
라세흠은 디제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며 스피커의 앰프들을 뽑았다.
뚝!
“뭐야!”
“음?”
음악이 끊기자 사람들이 디제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라세흠은 항의하는 디제이를 밀쳐내고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다들 나가!”
험악한 얼굴의 라세흠이 소리치자, 여자들은 겁을 먹고 슬금슬금 나갔다.
직원으로 보이는 깡패들이 오늘 장사를 망친 라세흠에게 건들대며 다가왔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뒤질라고 환장했나. 어디서 보냈어!”
딱 봐도 허접해 보이는 인상에 라세흠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기대하고 왔는데, 역시나 잔챙이들밖에 없었다.
그때, 고광목과 그 무리가 홀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쳐라!”
“가자!”
라세흠이 나서기도 전에, 고광목의 부하들이 깡패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퍽! 퍽!
“끄악!”
“이 쉐끼가!”
라세흠은 따까리들끼리 투닥거리게 놔두고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좀 치는 놈이면 2층에 사장실 이런 곳에 있지 않을까.
성큼성큼 올라간 라세흠의 눈에 화려한 명패가 하나 달린 방문이 들어왔다.
라세흠은 주저 없이 걸어가 문을 발로 뻥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X발! 깜짝이야. 너 뭐야?”
“허…….”
내부의 광경은 가관이었다.
옷이 반쯤 벗겨진 여자가 침대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고, 여기 관리자로 보이는 놈이 여자 위에서 내려오며 허둥댔다.
촥.
“이 X발럼이. 여기가 어디라고…….”
라세흠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칼을 뽑아 든 놈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퍼엉-!
“쿱.”
마치 대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남자가 바닥으로 스르륵 내려가자 벽에 피가 주욱 묻었다.
라세흠은 겉옷을 벗어 비틀대는 여자의 몸에 걸쳐 줬다.
그러다 소파 사이에 숨겨진 흰색 가루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여자의 술잔에 탄 게 아닐까.
“이런 개X끼가.”
뒤늦게 방 안을 둘러보니 숙소가 아니라 사장실인 것 같았다.
사장실에 떡하니 침대를 놓다니, 이 새끼는 미친놈이 분명했다.
라세흠은 방 한구석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책장을 유심히 살폈다.
공작원 출신인 라세흠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책들을 더듬거리자, 책 하나가 반쯤 뽑혔다 다시 들어갔다.
철컥.
“찾았다.”
안에서 뭔가 돌아가는 소리에 책장을 당겨 보니, 책장이 문처럼 열렸다.
라세흠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허, 이 새끼들 봐라.”
핸드폰을 꺼낸 라세흠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주혁에게 전송하려다 멈칫했다.
‘나도 여기 온 건 모를 텐데?’
하지만 고민하던 라세흠은 이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주혁이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뭐 상관없겠지.
***
다시 침착해진 이명준 회장과 마주 앉았다.
옆에는 이명학이 아직도 엎드린 채 팔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쉰 회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가.”
“드디어 대화가 통하네요. 회장님.”
“요구사항만 말해 주게. 더 이상 수치심을 줄 필요는 없지 않나.”
“뭔지 아시잖아요? 제가 원하는 거.”
이명준 회장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돈이 필요한가.”
씨익.
나는 책상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얼마까지 가능하신데요.”
그 말을 들은 이명학이 엎드린 채로 소리쳤다.
“아버지! 돈을 주긴 왜 줘요! 저 새끼가 우리한테 돈을 줘야지! 사람을 패 놓고 무슨…… 악!”
이명학이 이명준 회장이 던진 재떨이를 어깨에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닥쳐,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이명준 회장님, 진정하시고.”
이명준 회장이 당장이라도 뒷목을 잡을 것 같길래 진정시켰다.
“말씀드렸잖아요. 사랑의 매는 대화 끝나고 하시라고.”
“……1억 주겠네.”
고민하던 이명준 회장 이명준 회장이 내놓은 대답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 1억?
“그걸 누구 코에 붙입니까?”
“5억.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이 아저씨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생각보다 통이 작으시네요, 이명준 회장님. 그런 배포로 기업은 어떻게 운영하세요?”
이명준 회장이 나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10억. 그 이상은 안 되네.”
“아잇. 왜 이러시나, 정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제가 아는 방송국 관계자가 한 분 있는데, 혹시 CP수첩이라고 들어 봤어요?”
“…….”
“줄기세포 논문 조작한 황운석 박사. 그걸 누가 제보했을까요?”
내 말에 이명준 회장이 당황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에이, 설마가 사람 잡는 거 아시면서.”
핸드폰을 열어 CP수첩 신찬숙 기자와의 통화 기록을 찾아 보여줬다.
“고작 이런 걸로…….”
“아, 믿기 싫으면 치워요. 집 가서 공매도나 해야겠네. 앞으로 수직으로 하강할 텐데.”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이명준 회장도 슬슬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근데 어떡해? 다 팩트인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의 수신인은 라세흠 부장.
부장한테 전화만 오면, 이 트러블 메이커가 또 무슨 짓을 했을까 걱정이 됐다.
“이명준 회장님.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니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될 테니까.”
“…….”
나는 이명준 회장한테서 멀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네. 부장님. 뭐예요?”
-어. 주혁아.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 가지 예감이 들어서 라세흠 부장에게 물었다.
“갔어요?”
-으, 응?
“갔냐고. 사업장.”
-……어떻게 알았어?
“참 나.”
내가 몇 년을 봤는데, 그것도 모를까.
“제가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해요?”
-그렇지? 하하. 난 또 마음대로 갔다고 한소리 할까 봐.
“뭘 한 소리 해요. 대신 마음대로 간 거니까 뭐 사 달라, 이런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아.
실망하기는. 요새 점점 뻔뻔해지는 것 같다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엄청난 걸 찾은 것 같아서. 문자로 보낼게.
“오케이.”
띠링.
전화를 끊고 문자로 날아온 사진 한 장을 확인했다.
사진 안에는 필로폰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가 족히 1톤은 될 정도로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저건 대마초 같고, 주사기 같은 것도 있었다.
“부장님.”
-응?
“먹고 싶은 거 말해 봐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뭐든 사 줄 테니까.”
이걸로 주철수와 강남파를 나락까지 보낼 방법이 떠올랐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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