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576
578 – 겨울의 땅으로 #2
“배 타는 건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단단한 철판을 덧댄 배가 빙판들을 으적으적 갈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글로리아의 중얼거림에 내가 묻는다.
“왜?”
“배 위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구만.”
글로리아는 여러 영웅들과 함께 배를 타고 원정을 뛰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배 위에서 선상살인이 벌어지고, 또 많은 이들이 서로 반목하게 되어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었나.
궁금했지만 별로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나의 눈에는 배의 맨 앞부분에 서서 조잘거리고 있는 숲과 산의 요정들이 보인다.
“저는 뭍에서 온 님프 패러노이인 것입니닷…! 배는 없지만, 커다란 개 점박이와 컹컹이를 산책시키고는 합니닷…!”
“그래-! 나는 이 겨울의 바다를 누비는 종횡무진의 강철비늘 씨리올 님이시다-! 바다의 보물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고 있지-!”
“바다의 보물이라니, 과연 대단한 것입니닷…!”
“너도 육지의 비늘 없는 님프 치고는, 세찬 겨울의 바닷바람을 잘 버티는구나-!”
“저 패러노이는 감기를 완전히 정복한, 위대한 요정이니 당연한 것입니닷…!”
“그래-!”
시끄럽구만.
인어는 님프의 해양 버전.
둘이 사는 곳은 다르지만, 어찌어찌 대화가 잘 되는 모양이다. 저 둘에서 시선을 돌린 나는 저 멀리서 손짓하고 있는 루나를 바라봤다.
“핫산-! 이거 봐-! 괴상한 뀡들이 있어!”
“괴상한 뀡?”
이 추운 겨울의 바다에 뀡 같은 새들이 살 수 있나 생각했던 것도 잠시.
“봐봐-! 저기-!”
루나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뒤뚱뒤뚱 걷고 있는 새들이 있었다.
얼굴과 등 쪽은 까맣고 배는 하얀색으로 작은 날개에 동그스름한 몸매가 인상적인 짐승.
펭귄이었다.
여기 북쪽 아닌가.
펭귄들이 왜 여기에 있지.
물론 남쪽에 펭귄이 산다는 건 어디까지나 지구에서의 상식. 가이아 대륙에서는 북쪽의 바다에 펭귄이 살아도 이상하질 않다.
“북쪽 바다에는 이상한 뀡들이 있네!”
“저건 뀡이아니고 펭귄이야.”
나는 남쪽 섬의 출신인 루나에게 저 새들이 펭귄이라는 것과 날 수 없이 뒤뚱거린다는 점. 대신 수영을 잘한다는 점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나가 묻는다.
“맛은 어떤데?”
“맛은-.”
펭귄 맛은 어떻지?
내가 아무리 많은 음식과 아스트럴한 재료들을 먹어왔다고 해도 펭귄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펭귄을 보면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나?
그 말에 히폴리테가 말했다.
“펭귄 고기는 아주 맛이 없다.”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조금 뜨악한 느낌으로 물었다.
“히폴리테님은 펭귄을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 먹을 게 정말 없는 임무였지. 이방의 사교도 우리에 있던 펭귄 말고는 먹을 게 없었는데. 며칠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맛이 없었다.”
물에 젖은 천막을 먹는 느낌이었다-라고 히폴리테는 펭귄의 맛을 평가했다.
다만 루나는 그런 끔찍한 맛에 오히려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그런 끔찍한 맛이 있다니-. 오히려 좋아-!”
어려서부터 비약을 다루는 영재훈련을 했던 루나는 혓바닥이 많이 맛이 갔다. 그래서 남들은 먹지 못하는 끔찍한 음식들을 혼자서도 맛있게 잘 먹고는 한다.
“기다려 봐-!”
“루나야, 잠깐-.”
내가 말릴 순간도 없이 루나는 빙판으로 풀쩍 뛰어내려 펭귄 한 마리를 손에 붙잡아 배 위로 돌아왔다.
루나의 손에 들려서 울부짖는 북극 펭귄.
━비에에엑-!
그 버둥버둥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루나랑 닮아서 불쌍하다는 기분이 든다.
“루나야, 그냥 놔 주자.”
“그래? 근데, 보기보다 살집이 없네. 날개가 있는데. 날지도 못하고, 이런 새의 날개는 먹어봤자, 내 비행에 도움이 안 될 거 같아.”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는 새라는 것에서 나름의 동질감을 느꼈는지, 루나는 의외로 순순히 배의 갑판 위에 펭귄을 내려주었다.
그러자 펭귄 녀석은 풀쩍 뛰어올라 바다로 풍덩-빠져버린다.
언젠가 은혜를 갚으려 오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끝도 없이 빙하가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봤다.
순조로운 항해였다.
선장인 씨리올이 소리치기 전까지는.
“뱀의 머리뼈, 좋아-! 모두들, 조심해-! 이제부터는, 외래종 놈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니까-! 이제부턴, 바다의 제왕 넵튠도, 가이아 대륙의 어떠한 신들의 가호도 통하지 않을 거야-!”
바다 님프의 하나 남은 눈동자는 거대한 빙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산맥처럼 거대한 빙산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산이 아닌, 어떠한 짐승의 머리뼈라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산맥처럼 우뚝 솟은 그것의 정체는 바로 뱀의 머리뼈였다.
존나게 거대한 뱀의 머리뼈.
그것이 반쯤 바다에 잠긴 채 윗부분으로 눈과 얼음이 뒤덮여 마치 거대한 얼음의 산맥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으로는 울퉁불퉁한 뼈들이 암초처럼 튀어나와 있어서, 자칫 부딪혔다간 배가 박살이 나는 건 아닐지 무서울 정도였다.
즈우웅, 즈우우웅-.
허리춤의 홀스터에 모셔둔 나의 망치가 전화 받기를 재촉하는 핸드폰처럼 징징 울린다.
그 진동과 울림은 어딘가 불길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됐다. 그 옆에서 히폴리테가 크게 감탄했다.
“이게 엘프들 사이에 유명한 세계의 뱀, 요르문간드인가. 신을 죽인 뱀이라지.”
히폴리테의 말처럼 엘프리데를 비롯한 엘프들은 종종 세계의 뱀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있었다.
엘프들의 땅 알브하임에는 세계를 휘감을 것처럼 커다란 뱀이 있었다고.
그 뱀은 강인한 번개의 신과 싸워서 자멸했다나.
요정들 특유의 허풍이 섞인 말일 줄 알았다만.
단순한 유골만으로 이 정도의 박력이라면, 과연 세계를 휘감는 뱀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쉣…. 엄청 큰 뱀이었나 봐-. 뱀술 만들면 엄청나겠는데-. 이미, 이 바다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뱀술인 거 아냐?”
루나의 말에 히폴리테가 작게 입을 벌리며 동의했다.
“히드라는 귀엽게 보일 수준이군. 이 정도면, 마물의 왕 티폰과 버금가지 않나 싶은데. 부활한 거신 타르타로스랑도 비슷하고.”
그러자 패러노이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이미 시체인 것입니닷…! 무서워할 것 하나 없는 것입니닷…! 깐프들의 죽은 뱀보다, 가이아 대륙의 살아있는 뱀이 훨씬 더 무서운 것입니닷…!”
무서워할 것 하나 없는 시체.
그것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글로리아는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게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시체라서 문제일 때도 있는 법이야. 이 뱀의 독기는 히드라 이상이니까. 그러한 뱀의 사체가 바다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니-.”
그 말을 끝으로 글로리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바다를 내려다봤는데.
두껍게 얼어붙어있는 빙하의 아래로 부글부글 끓는 기포와 함께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무언가가 풍덩-하고 얼음을 깨트리며 위로 치솟는다.
진짜 뭔가 있었네.
━프쉬이이이이-!
그것은 생선의 몸에 팔다리가 달린 존나 끔찍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씨리올이 옳게된 방향으로 진화한 인어라면, 저것은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방향으로 진화한 인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
풍덩, 풍덩-.
━프쉬이이이이-.
━피시이이이이이이-.
그런 녀석들이 빙하를 꿰뚫고 튀어나와 우리들이 타고 있는 배에 자신들의 넓적한 지느러미 손을 내뻗는다.
그 모습에 인어선장 씨리올이 외쳤다.
“데이곤의 끄나풀들이다-! 모두 작살을 들어-! 몰아 내-!”
그들에게는 이러한 반인반어의 습격이 꽤 익숙한 것 같았다.
나 역시 허리춤에서 망치를 뽑아내 내게로 덤벼드는 고등어 인간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박살낸다.
━피시이이-!
━프수에으으악-!
━스으에에아악-!
입을 뻐끔거리며 내게 찰박찰박 젖은 지느러미 벌을 뻗어 덤벼오는 괴물 새끼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새끼들 나한테만 덤비는 느낌이다.
“뒤져 이 어인 새끼들아-!”
물론 강력해진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루나나 히폴리테 그리고 글로리아를 비롯한 동료들도 있어서.
우리는 갑판 위를 침범해온 어인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쓰러트릴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촤르르르르, 퓌시이이이-.
죽은 생선 인간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부패하며 유독한 가스를 내뿜기 시작한 것.
루나의 비약보다도 훨씬 독하고 끔찍한 냄새가 나의 눈 코입을 강타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구역질이 날 정도의 역함에 선원들 모두 사방에 토를 해대며 시체를 치우기 바쁘다.
코를 막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씨리올이 말했다.
“깊은 바다의 놈들은 그리 강하지 않아-. 하지만, 그 사체는 고약하고 독해서 곤욕이지-! 몹쓸 외래종 인어 놈들-!”
그렇다는 모양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나 끔찍하고 구역질나는 괴물들이, 거대한 뱀의 독기 가득한 이 겨울의 바다에 가득하다고 한다.
바다의 생물들이 뱀의 독과 사체를 뜯어먹었기 때문에 정말 괴상망측할 정도로 뒤틀린 생물들이 되었다고.
실제로 방금 봤던 괴상망측한 어인들뿐만이 아니라, 뱀의 뼈에 바다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괴상한 촉수 괴물들은 도무지 정체가 뭔지 분간도 안 됐다.
꿈틀, 꿈틀-.
그 기이한 모습에는 루나마저 인상을 찌푸릴 정도.
“정말 이상하게 생겼다! 이데오페 늪지대에도 저런 건 없었는데! 독기에 오염된 바다라니, 배가 크고 튼튼해야할 이유를 알겠네!”
마치 방사능에 오염된 바다 그 자체다.
그에 글로리아가 말했다.
“상처 입은 히드라를 계속 내버려뒀으면, 델포이 인근의 바다도 이렇게 되었을 걸.”
“정말 님프 혐오적 바다인 것입니닷…! 이런 바다의 너머에, 요정들의 땅이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닷…!”
패러노이의 호들갑에 나도 말없이 동의했다.
정말 이런 괴상한 바다의 너머를 향해 엘프리데가 향했을까.
저 뿌연 안개 너머에 알브하임이 있는 걸까.
* * *
항해는 순조롭다면 순조로운 편이었다.
도중에 배를 습격해오는 끔찍한 해양생물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배에 탑승하고 있는 인원들이 충분히 강하고 노련했기 때문에 그리 상대하기 어려울 건 없었다.
오히려 견딜 수 없는 것은 끔찍한 멀미와 추위 그리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알브하임에 대해 기다리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엘프리데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문의 너머’라는 것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어수선하고 복잡해서 도무지 배 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주변 세상은 온통 순백의 빙하뿐.
어서 빨리 배가 요정들의 땅에 도착한다면 좋을 텐데.
그런 기분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찍이 마차에서 했었던 것처럼 시간을 뒤로 당겨보는 건 어떨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 알브하임에 도착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으로 자기 암시를 걸어본다.
스멀, 스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동그랗고 자그마한 탁상시계다.
그 뒤편에 존재하는 태엽을 돌리면 나는 며칠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터.
다만 명상에 집중하려는 나의 어깨를 누군가가 세차게 흔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좁은 선실의 방과 미간을 찌푸린 루나의 에메랄드 유리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뭐야, 루나야. 왜 그래?”
“핫산-!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없어? 우리 사이에, 이제 더 이상은 거짓말 같은 거 안하기로 했잖아-!”
갑자기, 거짓말?
무슨 소리인가 싶었을 때, 루나가 두꺼운 책을 내 앞에 촤르륵 펼쳐봤다.
“핫산, 여기 304년, 5월 24일에, 작년 봄에 소도모라에서 뭘 한 거야? …수, 술집 아가씨의 가슴 만지기는 왜 적혀있어?”
루나는 거의 반쯤 미쳐있었다.
대체 뭔가 싶어서 보니, 루나가 나를 향해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애꾸눈 록히드의 메모였다.
“핫산, 작년 봄에 공부한다고 했었잖아. 하지만 여기 적어놓은 건….”
“루나야, 그건 내께 아냐. 내가 적은 것도 아니고. 루나 네가 뭔가 착각한 거야.”
“핫산이 적은 게 아니라니, 거짓말-! 글씨가 닮았는걸. 핫산이 예전에 나한테 선물해줬던 신문, 몇 번이나 계속해서 읽은 나는 알 수 있어.”
“글씨가 닮아?”
“여기 봐. 동그라미를 그릴 때, 약간 타원형이 되잖아. 핫산의 글씨는 이렇단 말이야.”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패러노이에게 오늘 할당치의 벌꿀 비스킷을 주지 않았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것입니까…?”
“패러노이, 이거 봐-! 핫산의 글씨랑 똑같지 않아?”
루나는 펼친 책을 패러노이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패러노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핫산 님이 이렇게 일정을 정돈하시는 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과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렇게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계셨던 것입니닷…! 군주의 귀감입니닷…!”
“봐-!”
루나는 히폴리테에게도 노트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히폴리테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필체가 닮긴 했군. 조금 다르지만, 느낌이 비슷해.”라고 동의한다.
“핫산, 대체 작년 7월 22일에 지나가는 유부녀의 가슴은 왜 만지려했던 거지? 이런 계획표를 적을 남자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말이다.”
졸지에 나는 하지도 않은 행동들을 의심받아야 했다.
작년 7월 22일에 내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부녀 가슴을 만지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다만 그렇게 억울했던 것도 잠시였다.
━다들 나와-! 배가 정박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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