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21
00121 #6 – 일하면 지는 거다 =========================================================================
#6 – 일하면 지는 거다(8)
불타는 베이컨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위력은 없다.
기본적으로 베이컨이니까.
식품이고.
먹으면 영양분을 보급해주고, 시야가 가려도 그것뿐이다.
문제는 양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는 점이지.
잿더미가 되도록 타들어가면서 분출되는 가스는 개개로는 무시해도 좋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바닥이 잿더미로 뒤덮일 지경이다.
아무리 베이컨이라도 이 정도 숫자가 불탄다면 수도 전체의 거주민들을 질식사시킬 만큼의 위력을 발휘한다.
…100만 대군에도 굴하지 않았던 전투민족인데!
베이컨한테 함락 당하게 생겼다고!
‘이봐, 발드. 뭔가 필살기 같은 거 없니?’
“그리 거창하게 불릴만한 건 없지만…… 그래. 만 명의 피를 흡혈한 뒤에 발동할 수 있는 피보라와 함께 하는 저승행 특급마법 [장엄한 자의 피의 폭발]은 알고 있다?”
‘엄청나게 거창하거든!? 그거 충분히 필살기 맞거든!?’
“헌데 이걸 쓰면 생물체가 터지지, 베이컨이 터지지는 않아. 가스는 두말할 것도 없지.”
‘베이컨 진짜 까다롭네!’
애초에 뱀파이어는 생물체 상대에 특화됐단 말이지.
피가 없는 존재는 어찌 처리할 방법도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호흡할 필요가 없는 무생물이나 인공생물체, 독 저항능력을 지닌 고블린같은 쩌리 몬스터들이 생존에 유리하지.
기가 막히는 상황이지만 달리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몬스터 웨이브나 적국의 침략으로 포위당할 경우도 상정한 도시라지만, 애초에 불타는 베이컨한테 습격당해서 거주민이 몰살당할 위기 따위는 누구도 상정할 수 없다.
“역시 네놈들은 질병의 마녀와 한 편이었어!! 역겨운 고기. 유독한 가스. 이건 틀림없이 역병의 권능을 발현한 것이렷다!!”
신의 권능에 비견되었다는 건 나름 뿌듯하다만.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을 틈이 없다.
저 바크 노덤이 경각심을 지닐 정도의 유독성이라면.
앞으로 1분.
그 안에 가스를 어찌하지 않으면 진짜로 거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프랑 : 어차피 방법 없잖아? 랜덤마법 한 방 더 갈겨
-쓰레기 : 재수 없으면 베이컨x2 되겠지만ㅋㅋㅋ
-콜드애플 : 인생은 한 방이야 개복치야!
…솔깃하긴 한데.
역시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지.
게다가 방법이 랜덤마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무기.
내게는 [포인트 상점]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가스중화제.
이걸 대량으로 구매한다면?
발드 마이저가 마력으로 호흡을 차단하고, 중화제를 뿌리고 다니면 어떻게든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을 수는 있다.
근데 이게 오죽 비싸야지.
수도 전체를 감싸려면 개당 1,000,000p짜리 특급중화제를 물 쓰듯이 뿌려야 한다.
아무리 포인트가 많아도 어디까지 손실이 일어날지 감당이 안 된다.
‘역시 쓸 수밖에 없는가…!’
다시금 랜덤마법을 시전 하려던 순간이었다.
“불의 신이시여! 그대의 충실한 종복이 염원하나니, 이 영혼을 불사르는 대가로 사악한 자의 권능을 정화해주소서! 위대한 자의 숭고한 힘을, [정화선언]을 여기에!!”
천지를 무겁게 짓누르는 영압.
막대한 신의 권능이 발현되는 것이 느껴졌다.
작렬하는 열기, 부덕한 존재를 격멸하고자 하는 선신 특유의 독선적인 권능이 창공으로부터 거대한 불무리를 형성하였다.
쿠구구구구..
건물이 일그러지고.
대지가 짓눌리며.
천지가 뒤흔들린다.
콰가가가가!
살인적인 광량을 뿜어내는 적색기둥이 수도를 강타했다.
규모만 보면 수도 전체를 파괴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이 권능은 순수하게 선 성향의 생물체를 위협하는 요소만을 배제한다.
여기에는 불타는 베이컨이 뿜어내는 독소도.
마왕군 중간간부인 발드 마이저도 포함된다.
“이거.. 진짜로.. 위험하다고..!”
적이기는 해도 일단은 손을 잡은 관계.
일주일 남짓 지팡이를 지켜왔던 만큼, 발드 마이저가 협력관계를 염원한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런 녀석을 이대로 죽게 만드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
『특급 버프 [신성 거부]를 10,000,000p에 구매했습니다.』
고작 1분 남짓한 시간동안 지속되는 버프.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어떤 스킬이나 아이템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버프이다.
발드 마이저의 호감도가 적정수치를 넘어선 덕분일까.
그녀는 [파티원]으로 인식되어 버프효과를 함께 받았다.
은혜에는 은혜로, 신뢰에는 신뢰로.
서로를 믿고 상생을 추구하기에 도달한 결과였다.
“대단해! 이런 것도 할 수 있었구나!”
‘1분 이상은 못 버틴다? 이거, 쿨타임 있으니까.’
“그 정도면 차고도 넘쳐!”
발드는 당당하게 망토를 휘날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키이잉─!
대량의 흑마력을 상충시키며 발생하는 반발력.
그 힘을 한층 배가시키며 본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한 급 위의 마법시전에 도전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폭주하는 마나에 집어삼켜질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만 둬! 죽을 셈이냐!’
입을 열 여유조차 없는지 들은 체도 안한다.
솔직히 발드 마이저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다.
고위 뱀파이어는 피나 그림자, 모종의 상징물을 매개체로 삼아서 아공간에 본체를 숨길 수 있으니까.
설령 신의 권능이 아공간 자체를 부순다고 해도.
시간을 번다는 목적만큼은 충실하게 이뤄낼 수 있다.
“어째서..냐고?”
발드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현계에서 저항을 시도하는 이유.
“컨셉을 알아주는 동지.. 그건 너밖에 없었단 말야!!”
컨셉에 목숨을 걸었냐!
-옷아람 : 능력 있는 중2병이 이렇게나 굉장하다!
-위원장 : 갤질에 목숨 건 알파고랑 맞먹네;
-프랑 : 반해버릴 정도로 멋있네, 저 여자!
동지라는 의미, 그건 단순히 컨셉을 알아줬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왕군 중간간부가 그런 단어를 입에 담았다.
이유는 뻔하지.
진심으로 지팡이가 마왕군 결전병기라고 믿고 있는 거다.
그렇게나 사악한 아이템이라면 분명 신의 권능에 영향을 받고 파손되리라 여기는 것이리라.
“흑마법 8성 절대마법!”
버프의 지속시간이 끝나는 순간.
발드 마이저의 목숨을 건 최후의 저항이 개시되었다.
“꺼지지 않는 어둠. 마르지 않는 피. 뱀파이어들의 지상낙원, 흡혈귀의 축제(Vampiric Carnival)를 선포한다!!”
범인은 육안으로 보아도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흑마력이.
뱀파이어 특유의 흡혈과 동화, 사냥을 기원하는 종족본능이 기괴한 형상을 그리며 번져 나왔다.
‘마안 : 죽음을 직시하는 눈’.
일찍이 유령을 포착하고자 구매한 스킬이 [흡혈귀의 축제]에 담긴 진의를 간파했다.
이 스킬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발드 마이저 개인이 흡혈을 통해 수명을 늘리고,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며 축적해온 힘을 일거에 방출시킨다. 이를 통해 공간의 속성 자체를 바꾸는 자기희생마법이다.
‘컨셉 하나 따라줬다고 어디까지 고마워하는 거냐!?’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성녀가 따로 없다.
공간 일대에 영향을 미치는 필드장악마법.
이거라면 분명히 공간 일대를 정화하려는 불의 신의 [정화선언]에 대항할 수 있다.
──────!
인지조차 불가능한 파열음.
거대한 두 힘이 도시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부딪혔다.
검붉은 피보라와 선홍빛 불기둥의 충돌.
당장은 팽팽하지만 장기전으로는 절대로 승산이 없다.
엘더 뱀파이어와 불의 신.
힘의 우위는 명백하다.
초월자가 아닌 존재는 제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신을 넘어설 수 없다. 영혼마저 대가로 바친 바크 노덤의 [정화선언]은 사실상 신의 현신 못지않은 엄청난 출력을 발휘하니.
신실한 자의 영혼에 걸린 가치만큼 불기둥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제길… 밀리는가.’
이대로 무시하고 구경만 해도 살아남을 수는 있을 거다.
애초에 나는 평범한 아이템.
악명은 제법 있어도 불기둥에 정화당할 존재는 아니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까지 헌신한 여자이다.
제멋대로에, 막무가내에, 중2병 컨셉까지.
좋은 구석은 있는 지도 모르겠는 엉터리 녀석이라지만, 일주일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 동안 녀석은 필사적으로 지팡이를 지켜주었다.
……아니 잠깐.
지켜준 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뭔가 공격 받을 때 지팡이로 막고 있었잖아.
에에잇,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이 녀석을 지켜주고 싶다.
매력도 50 이상인걸!
그래, 귀축이 언제는 앞뒤 가리고 여자를 밝혔나.
갖고 싶은 여자니까 양보하지 않는다.
설령 신이라고 해도 내 여자를 잿더미로 만들 순 없어!
‘막는다. 뭐든지 막아낼 수 있는 힘이다!’
진실로 염원하는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랜덤마법의 신규마법으로 추가된다.
나올지, 안 나올지도 알 수 없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리 미세한 확률조차도 0%에 수렴하고 마니까!
‘랜덤마법에 걸겠다!’
불운에 강한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다.
고작 이 정도 위기.
이 정도 사태가 마지막일 리가 없다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는 내가 절망할 곳이 아님을.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랜덤 마법(10종/22종)의 열한 번째 마법이 확정됐습니다!』
『확고한 신뢰는 진실한 마법으로 이어지는 법. 당신의 의지가 새로운 마법을 습득했습니다.』
『습득한 마법은 [무효화]입니다.』
처음이다.
처음으로 쓸 만한 마법이 창조되었다!
‘랜덤마법 발동!’
이 기세, 운의 흐름에 맡기겠다!
가라, 다이스!
단숨에 끝장을 내는 거다!
『랜덤마법으로 [마비독]이 선택되었습니다.』
이 타이밍에 마비독이냐!?
분위기 좀 읽어!
여기서 마비독은 진짜 아니라고!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18』
『마법성공률 13%에 미달! 마법시전에 실패합니다!』
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부작용 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3』
『[부작용 No.3]의 효과로 마법이 의욕을 상실합니다.』
의욕을 상실한 마법이라니, 어떻게 되어먹은 마법이냐.
어이가 없어서 지팡이 끝을 노려보았다.
찔끔하고 마비독이 맺히더니…
주르륵.
지팡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딘가로 발사된다거나 하는 모습도 없다.
진짜로 의욕 없이 흘러내리고 있네.
…의미도 없잖아!
사태에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고 있다고!
“아”
갑자기 발드 마이저가 당혹스러워했다.
얘가 왜 이러지.
불의 신의 저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밀리는가 싶었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힘에는 아직 여력이 있다.
헌데 이상하게도 마법이 제대로 방출되는 것 같지가 않다.
마치 몸이 마비되어서 제대로 마법을 못쓰는 것처럼 말이다.
마비된 것처럼, 이 아니라 진짜로 마비 걸렸네!!
-옷아람 : 뭐하는 짓이얔ㅋㅋㅋ
-츳키 : 의문의 팀킬ㅋㅋㅋㅋㅋ
-폐급페도 : 이거 완전 개복치가 살해한 거 아니냐!?
-퐁삽 : 안정적인 0킬 0데스 1어시!
-프랑 : 잘 가라, 레이 펜버!
발드 마이저의 눈에 혼란이 어렸다.
이 녀석.
어째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냐!
믿었던 자에게 제대로 배신당하는 표정 짓지 말라고.
나라고 일부로 그랬던 건 아니라니깐!
그러니깐, 이건.
어…….
‘미안하다.’
달리 할 말이 없네.
헤헤.
“────!!!”
소리 없는 절규를 내뱉는 발드 마이저.
그런 그녀와 내 주변을 불기둥이 휩쓸어버렸다.
설마 히로인 후보군을 내 손으로 죽게 만들 줄이야…
망할 주사위.
정말로 의지할 수가 없는 녀석이다.
“어이, 지팡이. 뭘 얼빼고 있냐. 또 잠들었냐?”
헌데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뿌옇게 질린 시야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언제나 그렇듯 짜증을 내고 있는 켄이치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얘가 왜 여기 있지.
“셀레나가 말하더군. 신의 권능에 저항하는 힘이 우리들에게 부여되었다고. 네 짓이라는 걸 눈치 채자마자 바로 궁궐을 벗어났다.”
그런가.
특급버프는 비싼 만큼 적용범위도 넓지.
궁궐 내에서 [신성 거부]의 효과를 받은 셀레나와 켄이치, 란도멜, 후요와 털보, 난쟁이, 카심이 탈출했고.
셀레나와 켄이치가 마법으로 불기둥에 맞서는 사이, 난쟁이가 바크 노덤을 쓰러뜨렸다는 모양이다. 시전자를 잃은 마법은 위력을 상실했고, 란도멜과 카심이 나를 수색하다가 란도멜이 먼저 발견에 성공했다는 것 같고.
…근데 한 명 부족하지 않아?
‘루세트는?’
“그 녀석이라면..”
란도멜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니 말했다.
“노예는 재난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 한다고 켄이치가 책상에 묶어두고 나왔다. 지금쯤 울면서 일하고 있겠지. 아니면 졸도했거나.”
우와, 굉장히 불쌍해…
“지팡이야. 우리끼리 청산해야 할 일도 있지 않아?”
‘……!’
“너. 그토록 긴박한 상황에 날 마비시키다니…”
발드 마이저는 고운 은색의 머리칼만큼이나 새하얀 백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손을 치켜들고는…
나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까지 날 생각해줄 줄은 몰랐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마법시전을 완료하려는 걸 막고 싶었던 거지? 내가 죽는 게 그렇게까지 싫었던 거지? 응? 요 귀여운 녀석!”
‘…!! 그, 그렇다! 이건 전부 내 완벽한 안배인 거다!’
“후후. 덕분에 살았어. 지팡이는 내 생명의 은인이네. 이젠 뱀파이어 종족의 율법에 따라 결혼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율법 없거든!?’
“쳇.”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발드 마이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현재 호감도 45/100(두근거림)』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실로 바람직한 결말이 아닌가.
게다가 메인퀘스트를 위반하지도 않았으니 실로 완벽하다.
발드 마이저의 오해는 뭐.
무덤까지 가져갈 영원한 비밀로 해두도록 하자.
============================ 작품 후기 ============================
잠시 잊혀졌던 기믹입니다만 본작은 착각물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어머, 이런 선량한 의도가!!’하고 멋대로 착각해주지요.
물론 작가는 언제든 이단착각으로 개복치를 괴롭힐 의향이 가득합니다!(본심)
오늘도 선추코 및 쿠폰, 많은 성원과 애정에 감사드리며
후기는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즐거운 일요일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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