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27
00127 #6 – 일하면 지는 거다 =========================================================================
#6 – 일하면 지는 거다(14)
발드 마이저는 사색이 되어 방구석 천장에 매달렸다.
“오, 오지 마! 이 몸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그니까 넌 병 안 걸린대도? 뱀파이어는 질병 저항력 높으니까.’
“진짜로? 100%?”
‘어… 음… 10분에 한 번으로 감안하면 90%?’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아! 열 번에 한 번은 걸린다고!”
역병의 성소에 진입하려고 해도, 둘이서는 곤란하단 말이지.
루시는 역병의 권능 빼면 그냥 잉여이고.
애초에 날 들고 다닐 만큼의 근력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번에 새로 뽑은 전용 짐꾼을 데려가기에는 질병 저항력과 전투수행능력이 걱정된다.
그래서 짐꾼 대타로 끌려온 게 발드 마이저 되겠다.
‘꼴사납네. 마왕군 중간간부의 칭호가 울겠어.’
“윽.”
‘엘더 뱀파이어의 카리스마도 별 거 아니네.’
“으윽.”
‘발드 마이저도 결국 이 정도에 불과했나.’
“하, 하면 될 거 아냐! 마왕군 중간간부이자 고위법무관인 발드 마이저! 악신의 성소쯤은 무, 무, 무섭지 않아!”
일단 몸의 떨림부터 가라앉히고 말하는 게 어떨까.
진실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후요 못지않게 떨고 있잖아.
-쓰레기 : 진짜 저지를 생각?
-프랑 : 지난번처럼 풀리지는 않을 텐데.
-다스 : 성소에서는 악신도 힘의 제약이 없어요.
물론 나도 게이머니까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신은 기본적으로 초월자.
덤으로 칼과 마법을 아무리 맞아도 안 죽는 불멸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뭐.
악신이랑 칼부림 벌이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면전에서 정신이 띵해지는 폭언을 내뱉은 아이를 용서해달라고 교섭하러 가는 거니까.
…….
…….
…….
어째서 전자보다 난이도가 높아 보이는 걸까.
‘아무튼 이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야. 루시의 잉여스러운 권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질 테니까. 나중에 핵폭탄이 터지게 두느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실제로 셀레나도 이 논리에 납득해주었다.
오히려 따라오지 못하게 만류하느라 애먹었지.
아무리 악마족 출신 마왕후보자라고 해도 질병저항력이 높은 건 아니다.
굉장히 못미덥지만 이번에도 발드 마이저에게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다.
‘혹시 몰라? 이번 건을 잘 해결하면 셀레나가 너를 인정해줄지도 모르지. 나랑 H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이런 게 포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스스로도 미심쩍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발도 안 들이려던 녀석이 덜덜 떨면서라도 왔으니까.
‘자. 그럼 성소를 열기 위한 절차를 설명하지. 스티그마를 지닌 자가 [의식]을 진행하고 [제물]을 바치면 된다. 원래는 신앙등급이 높아야 퀴즈 풀듯이 찔끔찔끔 힌트를 던져주는데 난 모르는 게 없는 만능 지팡이니까 방법은 전부 알고 있다.’
“와아. 대단해요!”
‘뭐 절차가 별로 안 복잡하니까. 썩은 나뭇가지 백 장을 모아서 불을 지피고 짐승의 사체를 제물로 바치면 된다.’
“…굉장히 저렴하네요. 의식이라고 하셔서 거창한 걸 떠올렸는데.”
‘역병의 악신은 신자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해서 돈 드는 절차는 없다. 까놓고 말해서 금괴 10톤이 필요하다고 하면 못 구하잖아.’
저렴하다고는 해도 해보지 않고는 고작 이런 걸로 전송이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르지.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봉변당한 게이머가 한 둘이 아니다.
스티그마가 없어도 세계멸망 플래그 중에 [신위경쟁]이 도래한 이후에는 지상 곳곳에 신성이 충만해지니까. 위의 조건만 충족하면 악신의 영토에 발을 들일 수 있거든.
근데 이때는 성소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악신의 영토 내부에 무작위로 전송 당한다.
그 뒤에는, 뭐…….
[노래하는 흑사병 결정체]나 [매독 걸린 촉수], [부유하는 장티푸스]같은 끔직한 몬스터가 우와앙 하고 달려든다. 닥치는 대로 썰어 넘기거나 패배해서 H이벤트로 유린당하고.
자연스레 병이 중첩되어서 죽는다.
어째서 여기까지 상세하게 아는지는 노코멘트 하겠다…….
『나뭇가지 100개를 100p에 구매했습니다.』
『대형물고기 전용 떡밥을 100p에 구매했습니다.』
재료수배는 포인트 상점에서 신속하게 처리했다.
루시의 능력으로 나뭇가지를 썩히고 불을 지핀다.
그러자 여차저차해서 역병의 성소에 도착하였다.
“제일 중요한 부분의 설명이 지리멸절한데요.”
‘그런 거 어차피 아무도 궁금하지 않잖아. 뭔가 그럴싸한 이펙트가 일어나고, 흠 이번 사냥감은 존나 쌔군. 이러고 말 텐데 뭐 하러 신경 써?’
“에.. 그런 건가요?”
‘그런 거야.’
이걸로 역병의 성소에 발을 들인 것도 두 번째인가.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지.
몬스터 시체라도 구우면서 캠프파이어 분위기라도 내려다가 엉겁결에 역병의 영토에 전송 당했던가. 동행하던 용사가 빛의 신에게 스티그마를 받지 않았으면 수십 번도 더 죽었다.
그래봤자 죽는 건 한방이지만.
정작 성소에 도착하자마자 기가 허해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모처럼 신분은 귀족, 직업은 힐러가 걸렸건만 굉장히 허탈한 최후였었지.
…정작 악신이랑은 하나도 상관없이 죽었네.
“의외로 공기가 나쁘지 않네.”
“그러네요.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당연하지. 신들은 성소에서 주로 사니까.’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다.
“여기 사는 거 역병의 악신 아냐?”
“맞아요. 이미지 상으로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쓰레기를 쌓아올리고 사는 글러먹은 방구석폐인인걸요.”
‘…일단은 신이라고? 자기 사는 곳 정도는 깨끗해도 좋잖아. 애초에 쓰레기 더미에서 역병이 자라나려면 얼마나 더러워야 하는 거냐.’
그래서야 인간이 발도 못 붙일 정도로 유독한 환경이잖아.
게이머는 모험가 체질이니까 상관없지 않냐고?
확실히 모험가는 역겨운 하수구나 먼지투성이 고대유적지, 지옥의 구렁텅이 같은 곳을 제 발로 찾아가는 별난 족속이기는 하지.
근데 그건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 암흑전사 같은 암흑의 다크한 직업을 고르는 애들이나 쫓아다니는 거고.
대부분의 12년차 게이머는 요령이 붙어서 칼질 몇 번만 해도 랭크가 슥슥 오르고, 실력을 인정받아서 고위직에 오르거나 금방 진귀한 장비를 입수할 수 있다.
‘헛소리 말고 저쪽으로 가봐.’
제단처럼 보이는 곳으로 발을 들이자 무언가가 보였다.
취향 한 번 지독하네.
거기에 있던 건 생물체의 뼈를 녹여서 만든 뼈의 옥좌였다.
“확실히 악신의 위엄이 느껴지는 인테리어인데…”
“…아무도 없는데요?”
‘그보다 옥좌 말고는 제단밖에 없잖아.’
성소의 규모가 아까워질 정도로 로비는 텅텅 비었다.
있는 거라고는 로비랑 옥좌뿐이다.
‘아. 설마…’
“음? 뭔가 보이지 않는 함정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거창한 문제가 아니야.’
“애태우지 말고 말해봐. 뭘 눈치 챈 건데?”
‘이거. 평범하게 가난해서 인테리어를 준비하지 못한 거 아닐까.’
발드 마이저가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신이잖아.”
‘어.’
“불멸자이고.”
‘맞아.’
“그럼 초월자일 텐데.”
‘그렇지.’
그녀는 굉장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화를 냈다.
“근데 왜 이리 가난해!”
‘…그거, 화낼 만큼 중요한 문제야?’
“당연하지! 전리품으로 들고 갈 물건이 없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큰일 날 소리하고 있네.
역병의 성소잖아.
뭐 하나 잘못 들고나가서 저주라도 받으면 어쩌려는 거냐.
‘초월자나 불멸자라고 부자가 되라는 법은 없잖아. 애초에 숨만 쉬어도 뭐든지 다 부식되거나 원형을 상실할 테니까. 재산 같은 거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겠지.’
“빈곤한 신인가… 힘들겠구나, 역병의 악신도.”
‘악신도, 라니. 너도 가난한 거야?’
“당연하지. 돈이 많았으면 마왕군 중간간부 같은 거 할 리가 없잖아.”
‘돈 때문에 하는 일이었냐!?’
그보다 컨셉이 벗겨졌다고!
방금 건 어떻게 봐도 컨셉이 아닌 진심 100%잖아!
진실성이 과하게 느껴지고 있는 걸!
‘어차피 마왕도 봉인 당했고. 중간간부 일 같은 거 그만둬도 되지 않아? 모아둔 돈도 많을 거 아냐.’
“하하하! 이 몸을 무어라 생각하느냐. 무려 엘더 뱀파이어님이시다! 일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 쓸 곳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오오. 부족민들을 먹여 살리고자 애쓰는 촌장 같은 느낌인가. 폼은 안 나지만 가정적이네. 혈액 팩이라도 구매하는 거야?’
“파친코로 전부 날렸다!”
‘도박이냐!?’
이 녀석, 신비로운 외모를 해놓고는 취미가 막장이잖아.
머리가 은색이라거나 몸매의 라인이 갑옷 아래로도 드러난다거나, 멋들어진 망토라거나.
겉으로만 보면 굉장한 실력을 지닌 악의 조직 간부이면서 정작 생활력이 글러먹을 정도로 허접하다고.
도박에 쓸 돈이 부족해서 마왕군에 투신하다니.
이렇게까지 볼품없는 이유로 세계멸망에 이바지하는 녀석은 처음 봤다. 좀 더 빨리 뛰고 싶어서 석유 뽑고 지구에 먹칠하는 인간들이랑 막상막하잖아.
“찾았어요! 여기에 문이 있어요!”
루시가 가리킨 곳은 옥좌 한 편에 달인 출입문이었다.
뭐지.
옥좌는 거인족이 앉아도 넉넉할 만큼 커다란데.
정작 문은 평범하게 인간 사이즈로 작잖아.
가볍게 들어갈까 했지만 문이 덜그럭거렸다.
“아. 잠겨있어요.”
“비켜봐. 여기서는 엘더 뱀파이어의 실력을 보여주지!”
‘문따개 마법은 1써클인데.’
“정권! 격! 파!”
‘심지어 마법도 아니야!?’
발드 마이저의 위력적인 정권에 반동강 난 출입문.
이 녀석, 여기가 악신의 성소라는 자각은 있는 걸까.
괜히 얘기를 꺼내봤자 덜덜 떨기만 할까봐 말은 아꼈다.
‘썰렁하기는 이쪽도 마찬가지네.’
노예들이 거주하는 숙소 같은 건가.
그런 것치고는 제법 넓다고 생각하지만.
바깥쪽과 마찬가지로 실내는 텅텅 비었다.
뭔가 방문은 잔뜩 보이는데.
여는 족족 나타나는 건 빈방들이다.
입주자 유치에 실패한 망한 신도시 아파트단지 같다고.
-졸라 : 설마 노예들까지 역병 걸려서 다 죽은 걸까.
-퐁삽 : 의미 불명의 현실성이네.
-츳키 : 이쯤 되면 뭐라도 좀 나와 줬으면 하는데.
전적으로 동감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섹스라도 할래?”
‘태연한 얼굴로 사망플래그 꽂지 말아줄래…?’
공포영화에서 그런 소리하면 절대로 무슨 일 벌어진다고.
특히나 섹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구시대의 공포영화 보면 섹스 하는 애들은 제일 먼저 살해당하더라.
혹시 그건가.
공포영화를 촬영하는 시점에서 일단 만년솔로 남자감독이고, 어차피 연애를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비애를 느끼며 영화를 통해서 솔로의 서러움을 해소하는 건가.
“이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어요.”
“미약하지만 생명의 온기가 감지되고 있어.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좋아. 긴장하고 전진하자고.’
함정에 대비해 신중하게 전진했건만 특별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방심을 유발하려는 걸지도 모르고.
발드 마이저의 안내를 받아서 생물체가 있다는 방에 도달했다.
‘좋아. 들어가자.’
방 안에는 작은 촛불 하나가 소리 없이 타들어가고 있다.
숨 막힐 정도의 적막감.
그 중심에 누더기를 뒤집어쓴 괴인이 덜덜 떨고 있었다.
…응?
어째서 떨고 있는 거지.
“추, 추우어어.. 배, 배고파아아..”
달달달.
수전증 환자마냥 떨리는 손에 들린 건 썩은 고기 한 점.
촛불 위에 슬며시 고기를 올렸지만 역한 냄새만 번질 뿐이었다.
“우에엑! 내, 냄새 구려어어어…!”
…세상에.
불판도 없어서 손으로 집은 고기를 촛불에 굽다니.
심지어 고기는 썩었잖아.
뭐 저리 가난하게 사는 녀석이 다 있어.
왠지 모를 동정심에 나도 모르게 고기를 구매했다.
『잘 익은 돼지고기 100g을 100p에 구매했습니다.』
향긋한 냄새를 맡은 괴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우와.
입에서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잖아.
무진장 불쌍해.
진짜 매 맞고 사는 노예의 정석적인 면모이다.
“고, 고기! 그리고 침입자!”
“고기가 먼저 나왔어… 진짜 불쌍하다.”
‘얘기는 일단 끼니부터 때우고 하는 게 어때?’
괴인은 며칠 굶은 걸인마냥 정신없이 고기를 주워 먹었다.
왠지 착한 일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데.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루시가 잠잠하다.
아니, 잠잠한 게 아니네.
슬쩍 돌아보니 잔뜩 긴장해서는 교전태세까지 갖췄다.
‘저기, 루시?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무슨 느긋한 소릴 하세요.. 저 녀석. 저 녀석이라고요.”
‘………..설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
존나 가난해보이고.
거지꼴인데.
그러나 괴인의 머리 위를 보자마자 여유로운 마음이 싹 가셨다.
저기에는 분명하게 괴인의 정체가 적혀있었다.
그렇다.
이 녀석이 이번 여정의 교섭상대인 악신이었다.
…….
…….
…….
이거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상하잖아.
빈곤과 불행의 악신이 잘못 표기된 거 아냐…?
============================ 작품 후기 ============================
역병의 악신은 패시브스킬로 [초고속 부패]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수한 가공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물품은 전부 부식되기에 가구가 없지요.
덤으로 지금 맛나게 먹고 있는 고기도 위장까지 내려가기 전에 전부 썩어버립니다(…)
관심병자 신에 이어서 이런 막장 컨셉의 신이 탄생한 계기는 무엇이냐구요?
코멘트(여자 개복치를 다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요청이라 생각했지만 같은 컨셉의 캐릭터를 넣을 수는 없기에, 빈복 불행 컨셉의 캐릭터로 창조해봤습니다. 굳이 이런 컨셉이 된 이유는 한 독자분의 군대 입소 소식에 빈복하고 불행한 이미지(…)가 떠올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선추코 및 쿠폰, 많은 성원과 애정에 감사드리며
후기는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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