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94
00194 #9 – 마이 퓨어 레이디 ===============================================================
#9 – 마이 퓨어 레이디(12)
정복왕은 넴루드를 보며 노골적으로 조소했다.
“신이 무슨 일로 마왕군에 관심을 지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가난신 넴루드라면 딱히 두려울 것도 없지.”
“넴루드 가난하지 아나! 마마가 용돈 줘!”
“크하하. 젖내 나는 이유식이라도 사먹는 건가?”
“아니야! 쪼코랑 아이스크림이야!”
넴루드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주먹으로 발드 마이저의 어깨를 토닥토닥 때렸다.
그만둬.
자존심을 세워봤자 보는 내가 더 비참해지잖아.
‘내 아이를 괴롭히지 마라!’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어째서 신을 아이라고 부르는 거지? 저 여자가 뭔데 악신에게 엄마 취급을 받는 거냐.”
‘그야 내가 넴루드의 아빠이고, 발드 마이저가 넴루드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의 당당한 선언에 발드 마이저와 넴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에 한해서는 사이좋은 모녀가 된다니깐.
아이처럼 천진한 리액션마저 서로를 쏙 빼닮았기에 정복왕은 진심으로 경악하는 눈치였다.
“대체 어떻게 아이템 따위가 아이를 잉태시킬 수 있는 거냐. 심지어 아이는 저토록 어린 나이에 악신이 되다니.”
‘너야말로 어떻게 넴루드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지?’
“역병의 성소에 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또 흥미진진한 비화인데.
“전장에서 썩은 나뭇가지를 모아 시체를 불태우고 있자니 난데없이 군단과 함께 낯선 이계로 이동했지. 괴이한 역병생물체들이 보여서 전부 죽이고 신전을 약탈하러 들어갔다.”
‘…….와우.’
“헌데 딱히 털 것도 보이지 않더군. 대신 삼아 악신의 몸이라도 정복할까 했지만 강제로 추방당해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이 새끼가, 감히 내 딸을 범하려고 했었다고!?
나는 진심으로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정복왕을 죽여서 강간 미수의 죄값을 치르게 만든다.
놈이 저지르려고 한 짓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약해빠진 악신이 강림해봤자 두려울 건 하나도 없다.”
‘넴루드. 녀석의 말이 사실이냐?’
“우우… 나쁜 인간 싫어요…”
정복왕의 말대로라면 악신일 적에도 넴루드는 정복왕의 근접전투능력을 감당하지 못했었으니, 역병의 대마녀로 격하된 지금의 그녀가 초월자로 승급된 정복왕을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아닌 다른 수로 이기면 된다.
무력이 없었던 때라면 어떠한 허세도 통용되지 않았겠지만, 발드 마이저라는 강력한 패가 들어온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라면, 아니, 오직 지금의 나이기에 가능한 설득수단이 존재한다.
‘정복왕. 보아하니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망각한 것 같군.’
“가난신 따위에게 그렇게나 의지하다니, 네 녀석도 어지간히 인재 폭이 얄팍하군. 빈복한 것의 아비를 자처할 만하다.”
‘유감이지만 정복왕, 네 야욕은 넴루드에 의해 가로막혔다. 갑작스럽지만 놀이공원에 몰려온 관광객들의 출신성분과 성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정복왕은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꺼림칙해하며 대답했다.
“던전 출신의 미련한 보스몬스터와 빈민가 출신의 열등한 뱀파이어, 산골짜기 출신의 아둔한 악마들. 성향은 모두 악 성향이군.”
‘그렇다. 공교롭게도 이 놀이공원에 모여든 몬스터들은 전부 넴루드와 같은 악성향이다. 덤으로 정기회의 참석자들과 달리 일반 관광객들에게 초대장을 발송한 것은 넴루드였지.’
“그까짓게 뭐가 문제라는 거냐.”
‘이런. 이것도 잊고 있었나? 이 놀이공원에 초대받은 자들은 모두 절대자나 그에 준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
정복왕의 기세가 한층 더 흉험해졌다.
당장이라도 살초를 뿌려서 이 자리를 돌파하겠다는 심산이다.
나는 정복왕이 살초를 날리기도 전에 천리전음으로 그의 사기를 박탈시켰다.
‘소용없다. 밖이라고 네놈이 달아날 길이 있을 줄 알았느냐? 네 행동은 완전히 내 상정범위 안에 있다.’
“건방진 녀석… 잘도 여기까지 저질러주었군.”
‘순순히 투항해라. 남은 평생을 죽만 먹고 싶지 않다면.’
“허튼 소리를. 네놈은 보다 자각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누구를 상대로 협박을 하고 있는지. 전력으로 맞선다면 비록 목숨은 잃을지언정 네놈들의 반 수 이상은 길동무 삼아 데려갈 수 있다.”
‘꼭 피를 보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최선은 교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차선은 교전이 일어나더라도 반드시 그를 사로잡는 것이다.
차악은 생포에 실패하여 그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고, 최악은 정복왕이 살아서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미 오고 간 대화가 있는 이상, 정복왕을 놓치면 카이브스탄 제국과는 즉각 전쟁이 발발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너희가 나의 목숨을 정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대한 야망을 정복하는 것만은 불가능하다.”
죽어도 벌주를 마시고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의사였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군. 정 그렇다면 조금 더 주제파악을 하게 해주지.’
정말로 만에 하나의 경우를 고려해서 준비해둔 수가 있다.
만약 정복왕이 미친 척하고 공격하려 들 경우, 병력과 인재손실을 최소화하며 그를 제압하기 위해 마련한 안배였다.
나는 넴루드를 향해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넴루드. 그걸 꺼내라.’
넴루드는 놀란 듯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정말 그래야해요?”
‘무슨 소리야. 이걸 위해서 갖고 있으라고 했잖아.’
“우.. 우우.. 이건 넴루드 건데…”
‘아니, 그게 그렇게 소중해? 나중에 돌려줄게!’
“약속?”
‘그래. 약속이야.’
넴루드는 주머니에서 포장지도 안 벗긴 초콜릿을 꺼냈다.
-낭자아이 : 미친ㅋㅋㅋ 넴루드 졸귀
-츳키 : 엌ㅋㅋㅋ 뜬금포 사탕
-알파고 : 분하지만 알파고만큼 귀여운 생물체군요
아니, 귀여운 건 동감이기는 한데.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 초콜릿을 달라고 할 리는 없잖아!
무슨 단 걸 먹으면 전투력이 상승하거나 승리를 확신하는 트레이드 마크도 아니고!
‘초콜릿은 집어넣어둬. 초대장을 말하는 거다!’
“아!”
넴루드는 초대장을 꺼내들었다.
정확히 세 장이었다.
이걸 읽는다면 정복왕이라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순순히 투항할 수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던져줘.’
“에잇!”
넴루드는 눈을 질끈 감으며 초대장을 던졌다.
이리저리 나풀거리며 허공을 유영하던 초대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정복왕과는 정 반대편에서 으적으적 팝콘을 씹어 먹던 오드마이어 제국 1왕자 [시드너 펜하우어]의 발치로 말이다.
“뭘 봐. 하던 거나 마저 해.”
존나 쿨하게 제 알바 아니라며 팝콘을 씹어대는데.
알고 보면 좋은 녀석이지만 너무 얄밉잖아.
나는 엿이나 먹어봐라 하는 심보로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거 들고 정복왕한테 건네줘.’
“……뭐?”
‘들고. 전달해.’
“그딴 짓을 했다간 고정화된 클리셰에 따라서 100%의 확률로 내가 인질로 잡히잖아.”
‘전달하지 않으면 네게 평판을 하나 선물해주지. [정복왕과의 결전에 휘말려 사망한 용감한 왕자] 정도면 좋겠나?’
시드너는 죽을상을 지으며 초대장을 들고 정복왕한테 갔다.
정복왕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단숨에 시드너를 제압했다.
“눈과 입, 손은 움직일 수 있다. 초대장을 읽어라.”
시드너는 힐끗 눈을 내려 초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사색이 되었다.
“이딴 걸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역시 초대장에 교묘한 수작을 부려놨군. 분명 읽으면 자기최면에 걸리는 주문과 비슷한 것이겠지.”
제길!
그 방법이 있었군!
잠깐이라도 시선을 교란하는 데에는 그보다 적절한 방법은 없잖아.
진즉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고로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저 편지에 마법이나 기술적인 트릭 같은 건 숨겨져 있지 않다.
“그런 건 아니다.”
시드너도 눈이 있으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내용 그 자체에 있었다.
물론 적진에서 정당한 의심을 행사하는 정복왕은 그런 사정 따윈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제 알 바는 아니었다.
“읽지 않으면 네 신체가 1나노미터 단위로 검에 썰려가는 걸 보여주지.”
그만한 두께로 자를 수 있는 건가!?
위대한 검주가 아니라 위대한 요리사가 따로 없다.
그러나 정작 요리당할 처지인 시드너는 제 몸이 슬라이스 치즈보다 얇게 썰린다는 사실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차라리 날 죽여라. 어차피 이곳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구차하게 생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죽겠다.
이번 기회로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다.
정복왕의 거친 손속마저도 이승에서의 해방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삼다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용기를 지닌 녀석이다.
그렇지만 상대가 오죽 미쳐있어야지.
정복왕은 정밀기계마냥 옆의 책상에 대고 검격을 펼쳤다.
“허억..”
보기에는 멀쩡한 책상이 발로 툭 걷어차자 수많은 면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검술의 정확도는 확인했고, 내 잔인한 성미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겠지. 이번에도 지시를 불이행하면 본인의 고문실력을 온 몸으로 체감하게 해주겠다.”
검과 정복밖에 모르는 미치광이 패왕이라도 검술의 경지가 극치에 이르면 어지간한 고문은 검만으로도 펼칠 수 있다.
점혈을 펼칠 때 보여주었던 혈 자리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하면, 고통의 강도와 의식 상태를 조절하며 처절한 고문을 가하는 건 일도 아니다.
결국 시드너는 사색이 되어 초대장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새오. 넴루드애오.”
“장난 치냐?”
“난 써져있는 대로 읽을 뿐이다.”
“……계속 읽어라.”
“시발…….”
시드너는 차라리 자살할 걸 그랬나 하는 표정으로 초대장을 계속해서 읽어 내렸다.
“신생마왕구니 여러부늘 이해 노리공워늘 여러써오. 외로운 고갱님드르 이해서 조흔곳 추천해드러오. 잉간들 알바라 점고 싱싱해오. 24시간 개장해오. 쪼코 마시써요. 노리기구 도전 성공하믄 카탈로그 산품 드려오.”
“풉.”
심각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체르밀이 실소하였다.
뒤편에서 전황을 구경하고 있던 터라 미처 얼굴근육에 힘을 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듬더듬 초대장을 읽는 와중에 기어이 웃음보가 터진 체르밀 탓에 대치중이던 다른 이들마저 거칠게 일그러진 얼굴로 차마 처웃지는 못하고 끅끅거렸다.
“젠장, 역겨운 새끼. 듣기 괴로우니까 똑바로 읽어라.”
결국 듣다 못한 정복왕이 짜증을 내며 만류했다.
“시발. 왜 나만 이딴 굴욕을…”
시드너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탄식에 나는 화를 냈다.
‘지금 내 아이의 글솜씨를 모욕했냐!?’
“모욕은 너희 부녀가 했다! 맞춤법도 엉망진창인 글을 정상회의 참석장에서 읽는 기분이 어떤지 너희들이 알 수 있겠나! 정신을 강간당한 기분이다! 저 꼬맹이에게!”
‘어…. 잘은 모르겠지만 에로스한듯.’
“크흠. 뭐 애가 쓴 편지인데 그럴 수도 있지.”
“난 아무 것도 못 들은 걸로 함세.”
해적왕과 백색마탑주가 왠지 모르게 머쓱해하며 그리 말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는 사이, 한 사람만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알아요. 그 심정, 정말로 잘 알 수 있어요.”
“네가 내 고통의 뭘 안단 말이냐!”
“본 회의의 서기관이라 방금 말한 거 대화록에 전부 적고 있었다구요. 이런 거 받아쓰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알기나 해요?”
“뭐? 이런 시발! 대화록이라면 이걸 기록 삼아서 고위공직자들은 전부 내 병신 같은 대사를 읽는다는 거잖아!”
“아.”
레이첼은 괜히 푸념 한 번 하려다가 시드너의 절망만 키웠다.
미친.
내가 생각해도 존나 불쌍하기는 하네.
당장 이 회의록 우리 국가에서만 켄이치가 읽을 거고, 보관등급에 따라 정보열람 권한이 있는 녀석들도 접할 거고, 시간이 지나면 입소문을 타고 체르밀이 ‘엌ㅋㅋㅋ 읔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 존나 웃곀ㅋㅋㅋㅋㅋ’라고 했다더라는 내용까지 퍼질 거 아냐.
처웃은 체르밀과 웃음당한 시드너의 위엄이 깎이는 건 당연한 거고, 정식회의의 권위 자체가 급격히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그건 좀 곤란하지.
‘회의록은 적당히 수정해놔. 초대장 전문 읽음, 같은 걸로.’
마지막 자비심으로 시드너의 흑역사가 생기는 것만은 막아줬다.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지만 정복왕만큼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세 장의 초대장을 수령한 인물이 엄청난 거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수신자 악마군주. 수신자 데이워커 넘버 원, 챵. 수신자 다크로드.”
악마집단과 뱀파이어 무리, 각 던전의 보스몬스터 중 최강자들에게 초대장을 발송한 것이다.
막강한 악의 집단의 수장이 셋.
전원의 경지는 두 말할 것도 없는 초월지경이었다.
========== 작품 후기 ==========
사망플래그는 사망플래그로 격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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