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
00004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4)
치이이이익.
근거리에서 폭발에 휩쓸린 괴조는 치킨이 되었다.
초고열에 노출된 피부가 바싹 익어서 음식이 된 거다.
‘웩. 우웨에엑. 조, 존나 끔찍해…’
치킨 말고 내 속이.
이런 괴로운 감각은 생전 처음 느껴본다.
오우거에게 몸이 찢기는 게 낫지. 이건 숫제 고문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시스템 알림에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괴조 니그문다(Nigmunda)를 사살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p를 습득했습니다.』
5,000p!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보상이 들어왔다.
5,000p는 대형급 몬스터를 죽일 때나 들어오는 수치다.
오우거와 막상막하의 상대.
그만한 상대를 단숨에 해치워버린 꼴이다.
‘과연, 그런 건가!’
시체를 보고 납득했다.
녀석의 표피가 먹음직스럽게 익긴 했지만.
정작 살갗을 뒤덮은 깃털은 조금 그을린 정도에 불과했다.
부리를 쪼아대느라 벌어진 입을 통해 열기가 들어가고 괴조는 내부에서부터 고열을 감당하지 못해 치킨이 된 것이다.
즉, 나한테 부리 들이대는 놈은 치킨이 될 수 있다!
‘덤벼라! 포인트 덩어리들아!’
다이스 게임에는 레벨이라는 게 없다.
능력치와 스킬, 포인트를 이용한 강화만이 있을 뿐이다.
10p면 최하급 스킬북을 한 권 구매할 수 있고.
100p면 하급 스킬북을 한 권 구매할 수 있으며.
1,000p면 중급 스킬북을 한 권 구매할 수 있다.
괴조 한 마리만 사냥해도 중급 스킬 다섯 개를 입수한다!
이건 그야말로 기연이나 다름없다!
한 놈만 더 잡아도 소지 포인트가 10,000p.
중급 스킬북도 목표로 할 수 있는 거금이 들어온다!
‘하하, 내친김에 부유마법이라도 익히면 저놈들도 도망 다니지 못하겠지? 말을 못하는 게 답답하니 전음마법도 익혀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도 좋고…….’
쓰레기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신의 한 수였는가.
생물체였다면 한 번 물릴 때 팔 다리가 떨어져나갔을 터.
무생물인 아이템이 된 덕분에 도리어 전투력이 상승했다.
이 기세로 이 근방의 괴조들의 씨를 말리면…….
『단기간에 내구도의 90% 이상이 하락했습니다. 상태이상 [참담한 균열(大)]이 부여됩니다.』
『근거리 화염폭발의 여파로 남은 내구도가 저조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사소한 충격에도 지팡이가 동강날지 모릅니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
90%라고는 했지만 역시 감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내구도가 떨어졌는지 상태창을 확인했다.
*내구도 : 4/37
으어어.
정말로 죽다 살아난 꼴이다.
이거 조금만 더 갔으면 그대로 즉사했을지도 모르겠다.
폭발은 예술이라지만 죽음으로 완성하는 유작 따위는 추호도 만들고 싶지 않다.
뭐냐 그게.
‘화려하게 분수(나무파편)를 뿜는 개복치.avi’를 만들 것도 아니고.
“끼에에엑!”
“꺄아아악!”
동료의 죽음에 자극받았는지 괴조들이 비명을 질렀다.
언뜻 봐도 서너 마리는 가볍게 넘어가는 숫자다.
무리지어 달려들면 단번에 데드 엔딩까지 직행이다.
아까워서 미치겠지만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나는 [포인트 상점]을 열어 스킬을 물색했다.
‘수리! 당장 내구도를 올릴 스킬을 찾아야 해!’
마침 대장장이 계열에 적합한 스킬이 있었다.
스킬명부터가 [무기 수리]다.
별반 고민할 것도 없이 스킬을 구매했다.
『중급 스킬 [무기 수리]를 1,000p에 구매했습니다.』
이걸로 구질구질한 내구도도 안녕이다!
발동해라, 무기 수리!
『스킬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무기를 수리할 수 있는 손이 없습니다.』
아뿔싸!!
다이스 게임의 어정쩡한 현실성을 잊고 있었다.
약식이기는 해도 이 스킬은 손에 수리용 망치를 들고 무기를 두들기는 모션을 취한다.
손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 지팡이로서는 자가 치유가 불가능한 셈이다.
“끼야아악!”
괴조 한 마리의 움직임이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이대로는 영락없이 강화에 실패한 무기처럼 깨져버린다!
잠깐, 강화라고?
그렇지! 강화가 있었다.
왜 진즉 이걸 생각하지 못한 걸까.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먹힐 거라고 확신했다.
『[아이템 강화서]를 1,000p에 구매했습니다.』
좋아.
1강으로 업그레이드만 하면 난 보다 튼튼해질 수 있다.
정작 강화서를 발동하려던 순간.
나는 중대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낭자아이 : 손이ㅋㅋㅋ없ㅋㅋㅋ네?
-쓰레기 : 눈 뜨고 못봐주겠다 진짜
-츳키 : 우리 개복치 안쓰러운 거 봐라
강화서도! 손이 없으면! 찢을 수가 없다!
으아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이템을 구매해도 쓸 수가 없다니!
“끼아아악!”
기어이 괴조 녀석이 나를 향해 활강했다.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도 제트기 뺨치는 미친 속도다.
눈도 감지 못하고 무서운 광경에 내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예상했던 고통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각, 후갸각.
찌직, 찌지직.
흥분한 숨소리와 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괴조 녀석은 치킨이 된 동족을 물어뜯고 있었다.
동료의 죽음에 자극받은 건 맞았다.
다만 복수심이 아니라 식탐이 자극받았던 거다.
이런 미개한 새대가리 같으니.
괜히 쫄아서 2,000p나 썼잖아!
‘근데 이놈……. 식사가 끝나면 어쩌지?’
애완동물만 해도 한 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맛이 까다로워진다.
하물며 괴조 니그문다는 엔간한 모험가는 한 끼 식사거리로 집어삼켜먹을 대형 몬스터.
치킨의 맛에 길들여져 동료 하나 잡아다가 통구이로 만들어달라고 들이댈지도 모른다.
붙잡힌 녀석이 발광하며 몸부림치다가 지팡이를 치면…
뚝, 하면서 반으로 동강 나지 않을까?
‘시발, 망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싸움이다.
이놈이 포식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모션이 필요한 스킬은 사용할 수 없다.
아이템은 애초에 손이 없으니 쓸 수도 없다.
스킬, 그것도 모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한다.
있다.
마침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자동수복]이라고 일정 시간마다 소폭 내구도가 상승하는 스킬이다.
원래는 몽크나 탱커 같은 근접계열 전투 직종이나 배우는 스킬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이템이라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건 이미 확인했다!
『중급 스킬 [자동수복]을 1,000p에 구매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자동수복]이 활성화됩니다. 시간당 1의 내구도가 수복됩니다.』
하하, 계획대로다!
이거라면 손이 없어도 내구도는 수복될 수 있다!
정확히 33시간만 지나면 신품처럼 말끔해지는 거다!
괴조 녀석의 덩치로 미루어보아 먹성이 대단한 건 걱정이지만 애초에 먹히는 쪽도 덩치가 7m나 되니까 충분히 여유가…….
“끼아아악!”
“꺄아아악!”
“꾸아아악!”
괴조 세 마리가 시체에 추가로 달라붙었다.
남은 수명이 1/4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 녀석들,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경쟁심에 불붙었다.
여기서 먹는 속도가 한층 더 가속한다.
33시간은 개뿔, 3시간 안에 끝장날 판국이다!
-낭자아이 : 개복치 일생일대의 대위기 어쩌나여~
-쓰레기 : 죽어야지 뭘 어째
-구아악 : 얜 진짜 뭘 해도 죽을 팔자인가보다.
갤러리들은 내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욕이라도 물씬 퍼부어주고 싶건만 내게는 입도 없다.
아, 쪼여 죽기 전에 암 걸려 죽을 것 같아!!
‘이대로 순순히 죽어줄 것 같더냐!’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거다.
내가 아직 모르는, 이 상황에 유효한 스킬이!
포인트 상점의 항목을 샅샅이 뒤지며 찾고 또 찾았다.
시체가 반절정도 남을 때, 물품을 십만 개도 넘게 훑었다.
시체가 바닥을 보일 무렵, 물품을 삼십만 개도 더 훑었다.
그러나 스킬에는 정말 잡스러운 게 많아서 아직도 못 훑어본 물품이 엄청나게 많았다.
기어이 괴조들이 포식을 끝마치더니 서로를 노려봤다.
이거, 분명 제물을 고르는 해적들의 눈빛이다.
이 녀석들 새 주제에 쓸데없이 굉장한 가오를 잡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피를 볼 작정이다!
‘으으,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냥 눈에 닿는 대로 아무 스킬이나 고르려던 그때.
기가 막히게도 혹시나, 싶은 스킬이 보였다.
이거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중급 스킬 [지독한 악취]를 1,000p에 구매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지독한 악취]가 활성화됩니다. 게이머의 육체로부터 반경 10m 이내에 언제나 악취가 진동합니다.』
“꺄아아악!!”
“꾸아아아!!”
“끼으으으!!”
괴조 니그문다들이 고개를 휘저으며 휘청거렸다.
단체로 술에 취한 듯 퍼덕이더니 기겁하며 달아났다.
허공에 날아오른 뒤로도 힐끗 노려보기를 얼마간, 지긋지긋 하다는 듯이 날갯짓을 하며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살았다…….’
불건전한(?) 스킬이기는 해도 효과만 있으면 장땡이다.
갤러리들은 기어이 살아버렸다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 양반들은 진짜 내 취급이 너무 험하다니깐.
모쪼록 살았다.
난데없는 시작과 동시에 사망 루트를 극복했다.
이런 제대로 된 플레이, 한 네 번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아이템이 된다거나 괴상한 스킬이라거나 전혀 제대로 되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쓸모가 있다는 게 어디인가!
‘아. 가만.’
당장에 괴조들을 쫓아낸 건 좋다.
그런데… 나중에 여기에 인간들이 오면.
지독한 악취 때문에 나 안 뽑아주는 거 아닐까?
괴조도 도망갈 체취인데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시발. 망했다.’
스킬 망각제라도 복용해야 하나?
아니, 그것도 손이 없어서 마실 수가 없잖아?
도대체 이 답 없는 망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참 허둥대던 도중, 웬 시선이 느껴졌다.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니 뭔가가 보였다.
고원 끝자락에 웬걸 사람이 한 명 있다.
오, 맙소사.
사람이다!
‘이봐! 여기야! 여기라고!’
손을 흔들지 못하는 게 한이었다.
그래, 맞다.
내친김에 전음스킬도 습득하려고 했었지.
이참에 바로 스킬도 구매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거다.
『중급 스킬 [전음]을 1,000p에 구매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전음]이 활성화됩니다. 게이머의 육체로부터 반경 25m 이내에 위치한 대상에게 뇌내음성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교신을 취할 수 있습니다.』
좋아, 이제 거리만 좁히면 된다!
얼른 이쪽으로 와라, 인간!
뭘 꾸물거리는 거야!
젠장, 망할 놈!
도통 이리로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지금껏 소모한 포인트가 4,000p나 되는데.
마지막 1,000p짜리 중급스킬을 구매해야 하는가.
예비용으로 아껴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저 사람을 놓치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기약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는 마법 따윈 성대가 없어서 발동되지 않을 거다.
같은 이유로 신체가 필요한 마법은 모두 제외했다.
이왕이면 패시브 효과로 자동성공을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조건은 모두 모였다.
상대가 다가오게 만들고, 몸을 쓰지 않고, 패시브 스킬일 것.
호기심을 자극하든, 욕망을 자극하든.
요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쪽으로 오게만 하면 된다.
‘아이템보고 못 지나칠 때가 어떤 때겠어?’
겁나 좋은 아이템처럼 보일 때겠지.
후광마법을 상시효과로 걸어둘까?
아니, 이건 너무 눈이 부셔서 곤란하다.
당장 집어 들어도 눈 아프다고 내던지면 답이 없다.
그냥 조금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선으로 타협하자.
『중급 스킬 [회색 안개]를 1,000p에 구매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회색 안개]가 활성화됩니다. 게이머의 육체로부터 반경 25m 이내에 언제나 안개가 발생합니다.』
왜, 그런 것도 있지 않던가.
전설의 아이템 같은 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실루엣만 보이는.
뭔가 이건 대단한 녀석이다, 하는 느낌!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인간이 날 보고 흠칫 놀랐다.
그래, 레어 아이템이 여기 있다고!
날 가져요!
“흐에엑”
아니, 잠깐 어딜 가는 거야?
어째서 도망치는 건데!?
『긴급퀘스트 ‘심각한 악명’이 발생했습니다.』
『일국에 명성을 떨친 유명한 모험가가 페르뒬 고원 정상에서 기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거대한 바위에 봉인된 한 아티팩트에서 악명 높은 괴조 니그문다마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안개가 방출된 것입니다. 모험가는 본국으로 돌아가 이 경악스러운 아티펙트와 관련된 망상을 최대한 과장하여 자신의 실적을 드높일 생각입니다. 시급히 모험가를 사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탐험대가 조직될 것입니다.』
『성공 조건 : 모험가를 제거하여 탐험대 조직을 미연에 방지한다.』
『실패 조건 : 모험가가 생환하여 탐험대 조직이 이루어진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무슨 마왕을 봉인한 봉인구라도 되는 줄 아나!?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모험가는 정말로 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다.
-낭자아이 : 이거 사망플래그임?
-구아악 : ㅇㅇ 한 달 내로 좆 될 듯.
시발, 망했다.
============================ 작품 후기 ============================
본 작품은 다소의 착각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덧> 다음 편은 내일 올라옵니다. 4편이 좀 노잼이었으니 5편은 기합을 좀 넣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