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고인물 (3)
숲속을 걷고 있는 세 명의 50기.
그들은 다름 아닌 넬리 블랑, 파나 테일러, 이반 바스킨이었다.
아마 그 조합을 보고 몇몇은 의아한 눈빛을 했을 것이다.
넬리 블랑과 파나 테일러는 원래도 친분이 있었다지만.
어딘가 불량스럽고 사교성 없어 보이는 이반 바스킨이 그녀들과 어울린다고?
그 셋을 보면 누군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반과 파나는 지난번 월말 평가에서 작은 말다툼까지 한 사이.
하지만 놀랍게도 이 셋이 뭉쳐 다니게 된 건 파나와 이반 때문이었다.
지난번 월말 평가 이후로도 몇 번을 더 투닥거린 두 사람.
그 뒤로도 둘은 계속해서 티격태격했다.
그러다가 싸우면서 정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순간부터 붙어 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둘이 붙어 다니니 파나와 친분이 있던 넬리도 자연스럽게 일행으로 엮인 거였다.
“정말로 이쪽이 맞아?”
“그래, 이쪽으로 쭉 가다 보면 기관 돌파 퀘스트장이 나온다고 했다.”
“확실한 거야?”
“확실하게 알아봤다.”
“흐음?”
“그 의심의 눈초리는 뭐지? 지금 내가 알아 온 정보를 못 믿겠다는 거냐?”
“흐음?”
“…말없이 사람을 그렇게 노려보는 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다.”
“흐음?”
“하지 말라고…….”
오늘도 투닥투닥, 그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파나와 이반을 보고 넬리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둘… 안 어울리는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잘 맞는단 말이지?’
마냥 순할 것처럼 보이는 파나 테일러.
까칠하고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다닐 거 같은 이반 바스킨.
하지만 넬리가 파악한 바로는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비슷했다.
순해 보이는 파나에게는 숨겨진 까칠함이 있었고.
이반은 그런 파나의 까칠함을 의외로 잘 받아 주는 순한 면모를 보였다.
다만, 둘 모두 약간씩 까칠한 성향이 있기에 순간순간 어색해지는 상황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중재자로 나선 게 바로 넬리였다.
“흐흠?”
“내가 분명, 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째려보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든 넬리.
둘을 갈라놓은 그녀는 능숙하게 균형을 맞춰 나갔다.
“에이, 이반. 뭐 고작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 애도 아니고?”
“…애?”
“파나, 이반이 정보 모을 때 나도 옆에 있었거든? 늦잠 잤다고 늦게 온 사람은 그냥 입 다물고 따라오시지?”
“넵, 죄송합니다.”
넬리의 중재에 살짝 어색해지려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그들 세 사람을 묶어 두고 있는 구심점이 누구인지 명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가볍게 티격태격하며 숲길을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숲을 벗어난 순간, 저 멀리 높이 솟은 절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정보를 물어 온 넬리와 이반이 눈을 빛냈다.
“저긴가 보군.”
“들었던 대로 절벽이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에 넬리가 주변을 살폈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기관 돌파 퀘스트장?’
퀘스트 발급소에서 제공해 주는 기관 돌파 퀘스트에 관한 정보는 실로 빈약했다.
난이도가 2성에서 7성까지 유동적이라는 것과.
보상 역시 유동적이니 기관 돌파 퀘스트장에 가서 확인하라는 이야기뿐.
더 큰 문제는 요람에서 퀘스트장이 어디인지도 알려 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따라서 요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적응하기 바쁜 기수들에게 기관 돌파 퀘스트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퀘스트였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변했지.’
월말 평가가 있고 난 뒤.
[추방되지 않으려면 포인트가… 많은 포인트가 필요해!]포인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기수들의 인식이 변하며 퀘스트에 대한 인식도 변한 것이다.
하급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별 0개짜리.
즉, 무성(無星)급 퀘스트를 깨고 받은 1천 포인트에도 그럭저럭 만족하던 이들이 더 높은 등급의 퀘스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에게 걸려든 게 바로 2성에서 7성급인 퀘스트인 기관 돌파 퀘스트였다.
‘7성급이라면 얼마의 포인트를 벌 수 있을까?’
7성급 퀘스트로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
거기에 초점이 쏠리며 기관 돌파 퀘스트에 대한 관심도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로 인해 기관 돌파 퀘스트를 찾는 이들은 꾸준히 생겨났고.
최근 그와 관련된 정보를 우연히 접한 넬리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퀘스트장을 찾은 거였다.
물론 그들의 목적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7성급 퀘스트 보상이라면… 이번 달 월말 평가에서 충분히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거야.’
이번 퀘스트를 깨서 다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생각인 넬리.
그런 생각은 파나나 이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일확천금의 부푼 꿈을 안고 나아가던 이들.
그때였다.
“응?”
가장 앞에서 걸어가던 파나가 멈췄다.
덩달아 뒤따르던 넬리와 이반도 멈춰 서고.
“뭐지?”
“무슨 일 있어?”
그들의 질문에 파나는 미간을 좁히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좁아지는 파나의 미간.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사람이지?”
“뭐가?”
“저거.”
파나가 손가락을 들어 절벽을 가리켰다.
넬리와 이반의 시선이 파나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고, 곧 그들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절벽의 중간쯤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작은 인영(人影)을.
이에 넬리와 이반의 미간도 덩달아 좁아졌다.
“으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맞는 거 같은데?”
두 사람이 동의하자 파나는 더 의아해했다.
“그런데 저 사람, 왜 우리보고 손을 흔들지?”
“…글쎄?”
“우릴 보고 손을 흔드는 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그런가?”
그들이 막 그리 의문 섞인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절벽에서 검은 인영이 후다닥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들 셋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
“음?”
“어어? 이리로 오잖아?!”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한 세 사람.
그들은 곧 침착하게 각자의 무기 위에 손을 얹어 놓았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가 공격한다면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빠르게 다가오는 이의 모습이 점점 커지고.
마침내 그의 얼굴을 확인한 이들이 눈을 끔뻑였다.
“어? 저 사람?”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유리 홀랜드.”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사람.
그는 다름 아닌 흑룡패주라던 유리 홀랜드였다.
갑작스러운 유리의 등장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유리 홀랜드가 나타난 것도 이상한 일인데, 대화조차 나눠 본 적 없는 그가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질 않나.
거기다 더 이상한 건…….
‘왜 저렇게 반갑게 웃지?’
너무도 반가운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 유리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넬리와 파나의 눈이 살짝 풀렸다.
‘저 얼굴로 저렇게 웃으면… 반칙이잖아?’
‘아아… 치유된다.’
언제 무기에 손을 올렸냐는 듯, 두 소녀의 경계심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완벽한 무장해제였다.
그나마 이반이 흐트러지려는 경계심을 억지로 붙잡고 유리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시 뒤.
“오오, 안녕!”
먼저 인사를 건네며 세 사람 앞에 선 유리.
그는 너무도 그답지 않게,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어투로 물었다.
“너희도 기관 돌파 퀘스트 하러 온 거야?”
“어? 어어!”
“그, 그렇지?”
넬리와 파나가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은 살짝 경계하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에 유리가 웃으며 손짓했다.
“따라와.”
그는 그러고선 성큼성큼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
난데없는 상황에 유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세 사람.
그들은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악의는 없어 보이지?’
‘그런 거 같은데? 어쩌지?’
‘일단 따라가 보자.’
짧게 의견을 교환한 세 사람은 조용히 유리에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유리의 친절한 설명이 시작됐다.
“저기 저 건물 보이지? 저게 뭐냐면…….”
간이 건물의 용도와 순위판과 보상 등.
유리는 세 사람과 함께 이동하며 잠든 페터를 대신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약 15분 뒤.
“자자, 이번에는 이쪽으로.”
유리가 설명하는 것을 멍하니 듣던 세 사람은 다시금 자신들을 부르는 손짓에 홀린 듯 움직였다.
유리가 이번에 세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은 녹색 동굴 앞이었다.
“여기가 녹색 동굴. 2성 난이도의 동굴이라서 흔히 2성 동굴이라고도 불러.”
그러면서 유리는 동굴 안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들어가기 전에 시작 버튼을 누르고, 저어어기까지 쭉 들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서 시계를 정지시키면 되는 거야. 별로 어려운 거는 없지?”
“…….”
“함정이 좀 많기는 해도 동굴이 별로 안 깊으니까, 너무 걱정 마. 몇 번 하다 보면 너희도 충분히 감 잡을 거야.”
“…….”
유리의 너무나도 친절한 설명을 말없이 듣던 세 사람.
결국 치밀어 오르는 의문을 참지 못한 넬리가 세 사람을 대표해 물었다.
“저기… 있잖아?”
“응?”
“왜 이러는 거야?”
“뭐가?”
“왜 이렇게… 우리한테 잘해 줘?”
유리는 넬리의 질문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랬구나!’
저 질문은 자신 역시 테레시아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어째서 테레시아가 자신에게 잘해 주었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텟샤는 여기서 5개월을 있었댔나?’
고작 열흘을 있었던 자신이 이럴진대 테레시아는 얼마나 심심했을까.
새로 온 신입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당시 그녀의 심정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유리였다.
그랬기에 그는 당시 테레시아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답을 그대로 세 사람에게 들려 주었다.
“그냥.”
“…응?”
“그냥 잘해 주는 거라고, 딱히 이유 없어.”
“……?”
마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한 세 사람의 눈빛을 보고 유리는 웃었다.
그러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절벽의 가장 꼭대기를.
“아, 그리고 저어어기 위에 붉은색 입구의 동굴이 하나 있거든. 거기는 조금 위험한 곳이야.”
“위험하다고? 얼마나?”
“들어가면 못 나올 정도로?”
유리의 말을 해석한 파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 죽었다고?”
“응, 내가 본 것만 두 명인데,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고.”
“아, 아니, 사람이 죽은 게 중요한 게 아니면…….”
“에헤이, 원래 사람은 언젠가는 다 죽는 거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
“자자, 내가 좋은 거 알려 줄게. 이거 완전 고급 정보야! 원래라면 포인트를 받고 알려 주었겠지만, 오늘은 내가 기분 좋으니 공짜로 알려 준다!”
“…그게 뭔데?”
“잘 들어, 일단 저 녹색 동굴에 들어가면 시작하자마자 바닥이 꺼지고 0.3초 정도 뒤에 쇠공이 47도 각도에서 날아오거든, 그럴 때는…….”
신이 난 유리는 어떤 함정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발동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몇 가지를 세세하게 알려 주었다.
이 오랜만에 찾아온 신입들이 금방 떠나지 않게끔 말이다.
“그걸 피하면 0.2초 있다가 화살이 날아오는데 그건 좌측으로 15㎝ 정도…….”
장황하게 이어지는 유리의 설명을 듣는 세 사람.
그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저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아니, 함정이 몇 초에 무슨 각도로 날아오는지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계산하고 있어?’
그들은 도무지 들어도 모르겠다는 눈빛이었지만, 유리가 너무 친절하게 세세하게 알려 주니 그냥 듣는 척을 했다.
그렇게 대충 100개 중 5가지 함정의 발동 시간과 파훼법을 알려 준 유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때? 쉽지?”
“…….”
그 물음에 세 사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아들어서 끄덕이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 불편한 이 친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뿐.
그래도 그런 친절 덕분일까.
셋은 유리를 보며 똑같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유리 홀랜드,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닐지도?’
그런 크나큰 착각을 한 찰나.
“아, 이것 말고도 알려 줄 정보가 대충 한 95개쯤 되니까 또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찾아와. 다만 그때는 약간의 포인트를 받기는 하겠지만.”
…나쁜 애가 아닌 게 맞는 걸까?
찡긋 윙크하는 유리를 보며 세 사람은 자신들이 품은 생각을 빠르게 정정했다.
* * *
새로운 신입들이 온 이후.
그들이 새로운 정보를 사러 유리를 찾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유리의 친절 덕분일지.
혹은 새로 온 신입들이 특별했기 때문일지.
그들은 생각보다 진득하게 녹색 동굴을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이번 신입들은 좀 버티겠는걸?’
열심히 하는 신입들에게서 활력을 얻은 고인물 유리.
그는 의지를 불태웠다.
‘좋아,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유리는 불태운 의지의 불빛으로 말미암아 밤낮없이, 비어 있는 동굴을 모조리 돌며 도전에 도전을 반복했다.
그럴수록 유리는 10초의 벽이 점차 낮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했다.
그렇게 도전 12일 차.
오늘도 어김없이 녹색 동굴에 도전한 유리.
10번째 칸에 바짝 붙어 정지한 바늘을 확인한 그는 눈을 빛냈다.
‘거의 다 왔다.’
다음 도전에서 어쩌면 10초를 찍을 수 있으리라.
그리 확신하고 있을 때.
스륵- 탁!
점수지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199점이겠거니 싶어 별생각 없이 종이를 펼친 순간.
그곳에는 점수 대신 한 줄기 글귀가 적혀 있었으니.
[스벌놈아, 퇴근 좀 하자!]“……?”
난데없이 쌍욕을 먹은 유리가 눈을 끔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