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무룡대전 (1)
12월 15일.
1~5년 차, 전 기수에게 하나의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에 모든 기수가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집합 명령이 하달된 건 무룡대전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이들뿐.
바로 상위 서열 5위권 내의 기수들이었다.
집합 명령을 접한 그들이… 동서남북 각자의 거주 구역을 벗어나 무룡대전이 열릴 원형 경기장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막내들답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50기였다.
유리를 필두로 군터와 뽀삐, 아린까지.
50기 상위 서열 명단에 늘 고정된 4명과.
거기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쟁을 뚫고 이번에 서열 5위가 된 클라리스 반까지.
가장 먼저 자리 잡은 50기의 옆에는 근소한 차이로 늦게 도착한 49기가 모여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는 무언가 묘했다.
동기들보다도 50기와 더 친해 보이는 49기의 수석 테레시아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49기 상위 서열들이 묘하게 50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50기 사이에서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있는 유리의 눈치를 말이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세 번째 무리가 남쪽 출입구에서 나타났다.
순서상으로는 48기일 듯싶었지만, 의외로 이번에 등장한 이들은 5년 차인 46기였다.
하얀색 견장을 찬 그들의 선두에는 프리츠 싱과 반젤리스 애니스톤이 있었다.
그중 반젤리스와 테레시아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마주쳤고.
“…….”
“…….”
두 사람이 묘한 신경전을 벌였지만, 별다른 마찰 없이 반젤리스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떠나갔다.
그렇게 46기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으니 이번에는 각각 파랑, 초록 견장의 47기와 48기가 동쪽과 서쪽 출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4년 차인 47기를 이끄는 이는 붉은 장발의 남자와 검은 머리카락의 음침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들을 흘끗거린 50기는 이내 48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아린과 딱 눈이 마주친 괴츠.
그런데 그가 이상했다.
휙-.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게 아닌가.
평소의 괴츠답지 않은 그 모습에 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유리 역시 48기를 보고 고개를 기우뚱거렸으니.
‘뭐야, 없네?’
서쪽 출입구에서 등장한 48기는 모두 4명뿐.
누가 없는지는 단번에 알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던 권터 라이더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유리가 그의 부재에 의아해할 때, 흑검병들이 들이닥쳤다.
이번에 모든 흑검병들을 이끄는 이는 유리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었다.
약 1년 전, 50기의 용패갈이를 주관했던 애꾸눈 사내.
흑검병단의 부단장 듀란 비코비치였다.
그는 정렬한 요람의 기수들을 앞에 서서 당찬 목소리로 외쳤다.
“현 시간부로 무룡대전의 시작을 알린다!”
그 쩌렁쩌렁한 외침에 한 발짝 뒤에 서 있던 도도한 인상의 여인이 한숨을 내쉬며 듀란의 귀에 속삭였다.
무어라 짧은 속삭임이 이어지고.
“아, 그래?”
볼을 긁적인 듀란이 다시금 소리쳤다.
“정정, 지금은 무룡대전의 조 추첨을 할 거다. 무룡대전은 이따가 오후부터 시작이란다!”
그렇게 조금 모자란 상관이 손을 휘휘 내젓자 똑 부러지는 부관이 한숨을 내쉬며 나머지를 챙겼다.
“…가져와라.”
드르륵-.
한 흑검병이 작은 칠판을 가져왔다.
그곳에는 24개의 빈칸, 총 12개 조의 대진표가 이미 그려져 있었으니.
이를 유심히 본 아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뭐냐.”
애꾸눈 사내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린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칸이 24개인가요? 총 25개 있어야 하지 않나요?”
“아아, 그거?”
질문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듀란.
그가 따로 분필을 들어 칠판의 꼭대기에 네모난 칸을 4개를 그렸다.
그리고 그중 하나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권터 라이더]탁-.
칠판에 점을 찍은 듀란은 별거 아니란 투로 답했다.
“작년 우승자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 줘야지 않겠냐? 권터 라이더는 준결승전부터 참여할 거다. 그리고 너희는 이 24강을 거쳐 최종적으로 준결승에 올라갈 3명을 선발하면 되는 거지.”
듀란이 나머지 칸 3개를 툭툭 건드렸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른 기수들은 당연하다는 듯 넘어갔고.
이제야 규칙을 알게 된 유리 일행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에 만족스럽게 웃은 듀란이 어느새 준비된 작은 상자를 탁탁 두드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조 추첨을 시작한다. 46기부터 나와서 뽑아라.”
그의 이야기에 46기가 앞으로 나섰고, 그중 반젤리스가 능숙하게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도록- 도록-.
반젤리스가 손을 휘젓자 상자 안에서 무언가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손에 들려 밖으로 나온 건 다름 아닌 나무를 깎아 만든 공이었다.
‘12’란 숫자가 쓰인 나무 공.
이를 흑검병에게 건네자 그는 칠판의 12조 중 하나에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그렇게 반젤리스를 선두로 46기가 능숙하게 조 추첨을 끝내고, 이후 다른 기수들도 차례차례 조 추첨을 시작했다.
잠시 뒤.
테레시아의 이름이 5조의 나머지 빈칸을 채우는 것으로 49기까지 모두 조 추첨이 끝났다.
마침내 50기의 차례가 돌아오니, 유리가 클라리스를 향해 손짓했다.
“자, 꼴등부터 가.”
“꼴등이라니. 5위다.”
“그래, 우리 중 꼴등.”
“…….”
“왜? 싫어? 양보해 주지 마?”
“…양보는 고맙군.”
불만은 있어도 양보는 받고 싶은 건지 클라리스가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그는 긴장된 얼굴로 칠판을 바라보았다.
‘남은 것은 1, 7, 9, 10, 11조의 한 칸씩.’
어디로 소속이 되든 전부 버거운 상대들뿐이었다.
‘1, 9, 10조는 48기, 11조는 무려 47기…….’
그나마 가장 괜찮은 곳은 49기가 배정된 7조뿐.
하여 클라리스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7조! 7조를 뽑게 해 주세요!’
한껏 염원을 담은 그의 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가고.
도록-.
남은 다섯 가지 공중 하나를 뽑아냈다.
동시에 그의 혼도 뽑혀 나갔다.
‘아…….’
그가 뽑아낸 공에 적혀 있는 건 다름 아닌 11이란 숫자.
다시 말해 하필 골라도 가장 어려운 상대를 골랐다는 뜻이었다.
‘제, 젠장 5분의 1 확률인데! 기껏 처음으로 고른 게… 하필… 하필 4년 차라니!’
2년 차는 그나마 해 볼 만하다고 여겼으나.
작디작았던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클라리스는 11조에 배정되는 자신의 이름을 반쯤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군터와 아린, 뽀삐가 쪼르르 연달아 1, 9, 10조를 뽑으니.
그 덕분에 유리는 자연스럽게 7조에 배정되었다.
타다닥-.
칠판에 자신의 이름이 적히는 것을 본 유리는 49기 쪽을 슥 훑었다.
그중 유달리 안색이 파리한 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유리는 씨익 웃어 줬다.
그 미소에 안 그래도 파리했던 49기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해 갔다.
“딸꾹-.”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하는 그.
그사이 듀란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끝났군. 자, 그럼 이따가 오후에 보자고!”
그렇게 말한 듀란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사라졌다.
“……?”
그 모습을 벙찐 얼굴로 바라보는 좌중.
그때 듀란의 부관이 한숨을 내쉬며 나섰다.
“무룡대전은 총 9일에 걸쳐 진행될 거다. 금일 오후 24강의 절반을 치르고, 내일 오후 24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정확한 일정은 나중에 공지할 테니 확인하고.”
“…….”
“너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보상일 테니, 그거부터 이야기해 주마. 우선 무룡대전에 참가하는 전원에게…….”
그녀가 딱 거기까지 말한 순간.
“잠깐잠깐!”
저 멀리 걸어갔던 듀란이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깜빡 잊고 이걸 이야기 안 하고 갈 뻔했군!”
“…깜빡 잊고 말씀 안 하신 게 그거 하나만은 아니신 듯싶습니다만?”
부관의 어이 없다는 타박에도 듀란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이번 무룡대전의 우승자에게는 검주께서 특별히 흑룡고의 개방을 허락하셨다.”
“…예?”
그 이야기는 부관조차 처음 듣는 것인지 놀라 되물었다.
그러니 기수들은 어떻겠는가.
“흑룡고?!”
“저, 정말?!”
여기저기서 경악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게 뭔데?”
유리를 필두로 아무것도 모르는 50기들이 연신 눈을 끔벅거렸다.
* * *
중천에서 해가 살짝 기운 점심 무렵.
객석에 가득 들어찬 이들이 원형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수군거렸다.
그들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젯거리는 하나였다.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이번 우승자한테 흑룡고를 개방한다는데?”
“미친… 진짜냐?!”
흑룡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도.
“흑룡고가 뭔데?”
“검주님의 전리품, 혹은 보물 창고!”
“그, 그런 게 있었다고?!”
그리고 흑룡고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도.
그들 모두가 이번 무룡대전의 보상으로 걸린 흑룡고를 놓고 연신 떠들어 댔다.
그 정도로 이번 무룡대전의 보상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무룡대전에 참여하는 이들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기보다는 지독한 긴장으로 인해 삭막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어차피 흑룡고는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난 내가 노릴 수 있는 보상을 손에 넣겠다!’
단지 무룡대전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이 주어지고.
12강, 6강, 준결승 등등, 더 놓은 곳으로 오를수록 보상 역시 좋아진다.
하여 어차피 임자가 정해진 것 같은 흑룡고는 포기하고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손에 넣고자 의지를 다지고 이들.
그렇게 요람 곳곳에 흩어진 무룡대전 참가자들은 승리를 위해 정신을 벼려 내고 있었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게 마련.
“아…….”
테레시아는 옅게 탄식했다.
5조로서 오늘 시합을 치러야 하는 그녀였기에 적당히 긴장감을 끌어올려 시합을 치를 몸 상태를 만들려 했지만…….
“…도무지 생기지 않아.”
이놈의 긴장감이란 게 도통 생겨나질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아…….”
테레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걱우걱-.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품 안 가득 건량 봉투를 끌어안고 열심히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뽀삐였다.
뭐, 이 정도는 그냥 평범한 광경이라고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
“아 왜 자꾸 따라다니냐고요!”
“제가 따라가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대가 흘린 향기에 저절로 저의 육신이 이끌릴 뿐.”
“…그럴 거면 차라리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지! 왜 그렇게 변태처럼 멀리서 숨어서 지켜보는데요?”
“당신의 향기에 취해 심장이 멎을까 싶어서…….”
싫증을 내는 아린과 그런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는 괴츠.
거기다 괴츠답지 않게 나무 뒤에 숨어 흘낏거리는… 그 이상한 수줍음은 정말이지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저 녀석 하나가 벌이는 짓만은 못하지.’
테레시아의 시선이 조금 멀리 향했다.
“아니, 왜 안 되는 건데!”
“그, 글쎄 안 된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왜!”
“규정이 그렇다니까? 무룡대전 참가자는 기본적으로 승부 예측 도박에 참여할 수 없어요!”
“아, 왜!”
“아니, 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하냐! 승부 조작을 벌일 수도 있으니까 안 된다고 말했잖아!”
“난 그냥 내가 이기는 데에 전부 걸 건데?”
“암만 그래도 안 된다! 이건 내가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도박장의 유서 깊은 규칙이다!”
“에이 씨,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내가 사장이다, 이 새끼야!”
도박장 사장과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 중인 유리.
그 사장이 무려 5년 차 선배 임에도 거리낌 없이 멱살을 잡고 흔드는 대담한 모습에 도박장 주변에 모여든 이들이 기함했다.
또한 테레시아는 한숨을 토했다.
“하아…….”
대체 이런 상황 속에서 어찌 긴장감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테레시아는 결국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걸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여전히 도박장 사장과 싸우고 있는 유리의 뒷덜미를 잡아채 질질 끌고 왔다.
그러고는 아린과 뽀삐까지 불러 모아 놓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러게요. 아씨, 하나만 줘 봐, 돼지야!”
“배고프다!”
건량 봉투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유리와 아린, 그리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을 쓰는 뽀삐.
한눈팔면 뿔뿔이 흩어지는 애들도 아니고, 기껏 모아 놨더니 또 딴짓하며 건성으로 답하는 세 사람에 테레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희, 경기 관람하러 안 가?”
“그거 관람을 하든 말든 어차피 자율이라며?”
“그렇지, 자율이긴 한데… 그래도 너희는 봐야지 않겠어?”
“왜?”
“왜요?”
“배고프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셋의 눈빛에 테레시아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첫 시합… 군터잖아.”
테레시아의 말이 있고 나서 세 사람의 움직임이 그대로 한 3초 정도 우뚝 멈췄으니.
“…엉?”
“아……?”
“…배고프다.”
그제야 군터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리, 아린, 뽀삐가 동시에 눈을 끔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