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각인 (3)
51기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들이 복수를 꿈꾸며 모이게 된 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게 한 사람이 계획한 일이란 사실도 어이가 없었건만, 이 번거롭고 말도 안 되는 짓을 꾸민 이유가 고작 자신들이 일주일만 훈련하는 게 아니꼬워서란다.
거기에 야간 훈련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평범한 사고로는 쉬이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 51기들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특히 코반의 머릿속은 너무도 복잡했다.
‘이제 어찌해야 하지?’
자신만만하게 복수를 할 수 있다고 동기들을 부추긴 게 자신이었다.
그러니 현 사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그로서는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코반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침착해, 아직 기회는 있어.’
비록 자신들의 계획이 상당히 뒤틀렸지만, 희망은 있었다.
‘분명 아까 공격 제한이 한 사람당 열 번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사람당 공격 횟수가 10회인 것도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다.
코반은 머릿속으로 작전을 떠올렸다.
‘현재 우리 중에 쓰러진 건 무치뿐.’
그건 다시 말해 아직 자신들의 전력은 온전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지 않을까?
‘차륜전으로 간다면? 최대한 번갈아 가면서 공격 횟수를 허비하게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희망이 생기자 코반의 눈이 반짝였고 이를 본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왜? 차륜전이라도 해 보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덤벼 보려고?”
“……?!”
순식간에 생각을 간파당한 코반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으니.
“아, 맞다. 내가 그것도 얘기해 줬나?”
“뭘… 말입니까.”
“공격 횟수는 한 사람당 열 번인데, 내가 다른 놈을 작정하고 때리는 순간 초기화된다는 걸?”
코반의 머릿속은 잔뜩 헝클어졌다.
‘그런?!’
공격 횟수가 한 사람당 10회인 거는 맞지만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초기화된다는 게 무슨 말이겠냐.
사실상 공격 횟수가 무제한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대체 호랑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건데?!’
아니, 사실 코반도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단 한 사람이 호랑이와 1 대 1로 10회의 공격을 받아 내면 된다는 뜻.
다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호랑이랑 어떻게 1 대 1로 싸우라고!’
호랑이의 경지가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소 공인 4단급 이상인 것은 확실했다.
그런 호랑이와 1 대 1 대결에서 열 합을 버텨 내라니!
코반이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에 이를 악물었을 때.
그는 불현듯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가만… 아린 선배 말로는 분명 자신들이 호랑이를 잡았다고 했는데?’
그것도 눈앞의 유리 선배와 다른 한 선배까지 포함, 총 셋이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했다.
‘만약 그 말이 꾸며 낸 거짓이 아니라면?’
그럼 그 사람들은 호랑이를 어떻게 잡아 낸 거지?
고작 1년 차.
아니, 한 달도 되지 않은 기수들이 최소 공인 4단급의 흑검병에게서 열 합을 버텨 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코반은 의문 섞인 눈으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코반은 자신의 목에 바짝 붙어 있던 서늘한 예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그는 검을 회수한 유리를 얼빠진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달칵-.
그사이 유리는 아예 검을 검집에 집어넣어 버리는 게 아닌가.
이를 본 51기들이 술렁였다.
“어? 뭐야?”
“저 사람, 검 집어넣었는데? 그, 그럼 지금 공격해도 되는 거 아냐?”
“아직 기다려 봐.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까.”
51기들은 유리가 일부러 검을 거둔 데에는 무슨 저의가 있다 여기고 주춤거렸다.
그런 망설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리는 코반에게서 아예 등을 보이고 가볍게 걸어갔다.
그러고는 그가 맨 처음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 가 버렸다.
그 난데없는 행동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할 때.
“기회를 줄게.”
유리가 모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딱 열 번 공격할 거다. 그 열 번만 제대로 막아 낸다면 야간 훈련은 없던 거로 해 주마.”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공터에 은은하게 깔렸다.
이에 코반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긴 뭐야, 말한 그대로지. 아, 야간 훈련 빼 주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나? 그럼 이건 어때? 열 번만 버텨 내면 야간 훈련 제외에…….”
유리가 호랑이 조끼를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이것도 줄게.”
“……?!”
유리의 선언에 51기들은 술렁거렸다.
그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제안이었다.
이에 누군가가 유리를 노려보며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지금 그 말은… 열 합이면 저희를 모두 제압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살짝 불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배님의 그 발언은 실수이신 듯싶습니다만?”
“이 정도로 대놓고 무시하시니… 조금 화가 나려 합니다?”
그들은 유리에게 강한 적의를 보였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다수가 결국 유리에게 복수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지 않은가.
거기다 나름 사회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이들이 지난 며칠간 흙바닥에서 뒹군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아예 이렇게 면전에서 개무시를 당했으니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 어린 분노에 유리는 얼굴로 턱을 쓸었다.
“열 합이라…….”
잠시 신중하게 턱을 쓸던 그가 방긋 웃어 보였다.
“에이, 솔직히 칼질 다섯 번 정도면 끝날 거 같긴 한데… 내가 최대한 열 번에 맞춰 줄게. 그래야 니들도 쫀심이 덜 상하겠지? 그치?”
“…….”
51기는 깨달았다.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웃는데, 그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오오오-.
유리를 포위한 사방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숲 곳곳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움찔거릴 정도의 강렬한 살기.
하지만 정작 그 살기를 온전히 맞고 있는 당사자는 낄낄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오, 뭐야? 다들 의욕 넘치네?”
도무지 긴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한 말투.
이에 코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리를 노려보았다.
“좋습니다. 방금 한 말… 꼭 지키셔야 합니다.”
“그럼그럼, 내가 또 한 입으로 두말 안 하는 사람이라고!”
물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 여기저기에서 ‘저 뻔뻔한 새끼’라는 감정 실린 중얼거림이 작게 흘러나왔지만, 51기에게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그렇게 유리가 검에 손을 가져가려는 찰나.
“유리이이잉!”
한쪽에서 들려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아린이 기절한 무치를 나뭇가지로 콕콕 찌르고 있었으니.
“막내도 깨울까? 얘도 참여시켜?”
그런 아린의 물음에 유리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아, 됐어. 그 새낀 그냥 조금 이따가…….”
한데, 유리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핫!”
“합!”
여기저기서 기합성이 들려오며 다수의 인영이 유리를 향해 돌진해 든 것이다.
그 수가 족히 스물 이상.
살기등등한 그 모습에 유리가 눈을 빛냈다.
‘이야, 방심하고 있을 때 치시겠다?’
그래도 영 쭉정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자신의 교육이 빛을 발하는 걸까?
‘아무튼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거는 51기들이 상당히 의욕 충만하여 달려든다는 거였다.
유리는 그들을 보며 히죽거렸다.
‘귀엽네, 이것들.’
그러면 선배로서 귀여운 후배들을 정성껏 어루만져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는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도록.
‘이런 귀찮은 노동을 두 번 안 하려면…….’
유리의 손이 검 자루에 올라가고.
파츠츠츠-.
손끝에서 실오라기처럼 가는 푸른 전류가 일어났다.
그리고.
‘…한 번 할 때 제대로 짓밟아 둬야겠지.’
파즉-!
유리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런 그가 나타난 곳은 바로 소 떼처럼 달려들고 있는 무리의 정면.
한데, 유리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51기들은 여전히 그가 제자리에 서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극한의 움직임을 시각과 뇌의 인지력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달려오는 동작을 하는 사이 유리는 벌써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쿵-.
강하게 대지를 내디딘 유리의 오른 다리.
그때까지도 51기는 여전히 달려오는 동작이었다.
온 세상이 느릿느릿 흘러가는데 유리 혼자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기괴한 상황.
그때였다.
드르릉-.
유리가 강하게 발을 내디딘 지면이 꿀렁였고.
콰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지면과 발바닥 사이에서 푸른 전류가 번져 나와 유리의 다리를 타고 올라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뇌전에 휩싸인 유리의 상체가 살짝 앞으로 기울어지고.
달칵-.
검집에 고이 잠들어 있던 검신이 살짝 드러나며 황금빛 광채가 전방을 향해 쏟아졌다.
그 모든 게 찰나에 벌어진 일.
“어?”
“아?”
51기들이 인지한 것은 갑자기 눈앞에서 황금빛 광채가 자신들을 덮쳐들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콰릉-!
천둥이 치고.
황금빛 궤적에 스친 이들이 조약돌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커흑!”
“켁!”
“끄악!”
짧은 신음을 내며 허공을 날아가는 이들의 수는 무려 이십여 명에 달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란 거였다.
“으어?!”
“오, 오지……!”
콰아앙-!
황금빛 궤적에 스친 이들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날아간 게 문제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부지불식간에 휘말려 같이 날아간 이들이 십여 명에 달했다.
“……?!”
“아?!”
단 일격.
갑자기 번쩍인 황금빛 궤적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나자빠졌다.
그나마 2차로 휩쓸려 같이 튕겨 나간 이들 중 몇몇은 정신을 차리고 끙끙거리고 있었지만, 직접 황금 궤적에 닿은 이들과 그들에 정통으로 부딪힌 이들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싶었다.
‘저, 저게 무슨……?!’
첫 일격이 휩쓴 방향의 반대편에 있어서 운 좋게 살아남은 코반.
경악으로 치뜬 그의 동공에 정면에 펼쳐진 광경이 그대로 담겼다.
그곳 지면에는 초승달 형태의 거대한 검흔(劍痕)이 선명히 그어져 있었으니.
그와 같은 흔적을 만들어 낸 이가 누군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은은한 황금빛을 머금은 검과.
검을 늘어뜨린 채, 전신이 푸른 뇌전에 휩싸인 검은 머리 소년.
그가 바로 눈앞의 저 강렬한 검흔을 만들어 낸 존재이리라.
이에 51기들이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
조용히 뒤돌아선 유리가 활짝 웃으며 남은 51기들을 향해 선포했다.
“앞으로 9번 남았다.”
콰르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천둥소리와 또다시 퍼져 나오는 황금빛.
이를 본 51기들은 깨달았다.
그는 오만한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들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유리 홀랜드, 그는…….
‘그렇게 말해도 될 정도의…….’
강자였다.
그 절대적인 사실이 51기의 뇌리에 최초로 각인된 순간.
황금빛이 다시 그들을 덮쳤다.
한편.
두근두근-.
밀려드는 황금빛을 보며 리사 베르포트의 심장은 크게 맥동했다.
‘아…….’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이 온몸 곳곳으로 뜨거운 피를 퍼뜨렸고.
‘아아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뜨거운 열기로 찌르르 울렸다.
등줄기를 따라 오스스 돋아 오른 소름.
일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황홀경.
‘또…….’
그녀는 이와 같은 극한의 쾌감은 일생에 딱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의 백보 의식에서 말이다.
‘언제부터였지?’
처음 유리 홀랜드란 사람 보았을 때부터 그는 홀로 빛나고 있었다.
쓰러져서 기절한 척하고 있던 리사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에 영혼을 빼앗긴 기분을 느꼈으니.
이후 유리가 무치 슈넬을 지나쳐 검주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리사는 온 세상이 다채롭게 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그런 경험은 그녀의 일생에 처음이었다.
리사에게 세상은 언제나 회색 일색이었다.
간혹 누군가로 인해 일시적으로 색을 머금기는 했지만, 그건 그 사람만 색을 머금었을 뿐.
그렇게 온 세상이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는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리가 검주 앞에 당당히 섰을 때.
리사는 태어난 이래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목격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도달할 겁니다. 당신에게.]유리가 검주에게 내뱉은 말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리사의 귀에 맴돌았다.
그는 홀로 빛났고,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고 맑은 색을 머금고 있었다.
회색빛 세상에서 살던 리사에게 유리 홀랜드란 존재는 너무도 찬란하고… 너무도 아름다웠다.
자신이 좇는 아름다움의 궁극체.
이를 직면한 순간 얻은 극한의 정신적 만족감에 리사는 자신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그녀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간 리사가 지켜본 유리 홀랜드는 늘 빛났고, 그의 주변은 늘 색을 띠고 있었다.
또한, 지금 다시 한번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아름답게 물들며 영혼이 재조립되는 아찔한 황홀감이 몰아쳤다.
이에 발그레 홍조를 띤 리사.
‘찾았다, 내 영혼의 주(主).’
그녀의 눈은 정확히 유리를 좇고 있었으니.
“…내 사랑.”
한 소녀의 영혼에 한 존재가 선명히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