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67
266화. 폭탄 돌리기 (1)
백여 쌍에 달하는 의문 섞인 시선이 유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유리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좌중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저 새끼 눈깔… 눈깔 이상해!’
‘무, 무섭게 왜 저러는 거야?!’
유리의 눈깔이 희번덕거릴 때마다 큰 사건·사고를 겪어야만 했던 50기로서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유리에게 칭찬을 받은 클라리스가 하얗게 질려 버렸을까.
“그… 내… 내가 잘못했다…….”
“네가 잘못한 게 뭔데?”
“…소리친 거?”
“에이, 뭘 그 정도로.”
“그, 그냥 내가 다 잘못했다!”
유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가려 하자 클라리스가 더 질겁하여 필사적으로 양손을 내저었다.
이에 유리가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내저었다.
“아냐, 넌 잘못한 게 없어. 오히려 아주 잘했지.”
“뭐얼……? 대체 내가 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줬잖아.”
유리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다시금 클라리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에 따라 클라리스의 낯빛이 시체처럼 변해 갔지만, 다른 생각에 빠진 유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 이 새끼 말이 맞아.’
50기와 대련을 해 온 지 어느덧 벌써 1년.
이제 녀석들의 눈빛만 봐도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이 갔다.
상황이 그럼에도 어째서 자신은 그동안 50기만을 괴롭… 아니, 상대해 왔단 말인가.
어째서 50기만 상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단 말인가.
‘정말 왜 이 생각을 못 한 거지?’
50기에 질려 버렸다면, 새로운 상대를 구하면 될 것을!
그 간단한 방법을 왜 진즉 떠올리지 못했을까?
심지어 그 새로운 상대는 이 요람에 널려 있었다.
‘선배들.’
그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51기나, 더는 나올 게 없을 정도로 착즙한 50기와는 달랐다.
50기보다 더 오랫동안 요람의 양분을 먹고 자란 열매들.
거의 완숙에 달한 싱싱한 열매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50기 녀석들의 마체술은 너무 빨아먹어서 더 먹을 것도 없지만, 선배들의 마체술은 아직 제대로 맛본 적이 없지.’
심지어 상위 연차일수록 상급의 마체술을 익히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 요람이 알아서 썩은 열매를 걸러 내고, 쓸 만한 것들만 남겨 놓았을 테니까.
그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돌았다.
츄릅-.
유리가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입술을 핥자 클라리스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싶었다.
하지만 그런 클라리스를 단번에 기사회생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한동안 너희는 자유다.”
“응?”
“너희, 자유라고.”
“…왜?”
“네가 나한테 알려 줬잖아. 어째서 너희만 괴롭히냐고.”
“그, 그랬지……?”
“그래서 이제 다른 사람들이랑 놀려고.”
“……?”
“난 간다! 나중에 보자!”
“…어? 그, 그래.”
유리가 클라리스의 어깨를 또 토닥이고는 크게 손을 내저으며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는 클라리스.
그렇게 유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50기들이 클라리스의 곁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가, 갔냐?”
“진짜… 갔어?”
“…정말 간 거 같은데?”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아직 파악이 덜 끝나 얼떨떨한 얼굴들.
그러다 아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면, 유리 쟤, 아까 분명 다른 사람들이랑 논다고 했지?”
그녀의 혼잣말 같은 물음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들었어.”
“…확실히 그랬어.”
여기저기서 증언이 쏟아졌다.
이후 다들 저마다 유리가 남긴 말의 뜻을 파악하느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마침내 넬리가 짧게 결론을 내렸으니.
“그럼 우리 진짜… 해방인 거네?”
“…….”
그 이야기에 또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이어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해, 해방이다아아아!”
공터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50기들이 좀비처럼 우르르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그러다가 클라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클라리스… 너 이 새끼!”
“클라리스으으!”
“클라리스! 클라리스!”
큰 목소리로 클라리스를 연호하며 그를 번쩍 집어 던지는 50기들.
쩌렁쩌렁 울리는 자신의 이름에 클라리스도 양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내가… 해냈다아아아!”
솔직히 말해 클라리스는 물론, 다른 50기들도 유리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딱 하나뿐.
그 가장 중요한 사항이 곧바로 이어진 클라리스의 외침에 들어 있었다.
“우리만 아니면 돼애애애애애!”
유리가 누구랑 놀든, 누구를 괴롭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만 아니면 되는 거지.
“우리만 아니면 돼애애!”
“우리만 아니면 된다고오!”
1년을 넘게 시달리다 마침내 해방을 맞은 50기는 광분하여 연신 괴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클라리스가 던진 폭탄이 데구루루 굴러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그 최종 목적지는…….
“저긴… 우리 애들 있는 곳인데?”
원형 경기장의 서쪽, 바로 3년 차의 거주 구역이었다.
와아아아!
계속되는 50기의 환호성 속.
49기 중 가장 먼저 재앙의 징조를 눈치챈 테레시아가 유일하게 할 수 있던 건.
그저 안쓰러운 시선으로 유리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는 것뿐이었다.
* * *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십 개의 낡은 천막.
그리고 천막에서 천막으로 연결된 줄에는 빨래들이 걸려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피난민 내지는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착각할 수도 있는 장소.
이곳이 바로 3년 차의 거주 구역이었다.
3년 차가 되어 겨우 갖게 된 거주지는 기대에 비해 너무도 열악했다.
하지만 2년 동안 대부분 지붕이 없는 곳에서 살아왔던 49기에 이보다 더 아늑한 보금자리는 없었다.
다만 2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이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으니 잡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야, 제리! 너지!”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소년이 성난 얼굴로 한 천막 앞에서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내가 쳐들어가기 전에 당장 튀어나와!”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천막이 스르륵 열리며 부스스한 몰골의 제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암, 뭔데?”
하품을 하며, 동시에 바지 속을 북북 긁으며 나타난 그는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자신을 불러낸 이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짧은 머리의 소년이 다시 화를 냈다.
“너 맞잖아!”
“내가 뭘?”
“내 속옷 훔쳐 간 새끼!”
“나 참, 난 또 뭐라고. 나 아니다.”
“너 맞는 거 같은데?”
“거참,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뭐가 아쉬워서 네 속옷을 훔쳐 가겠냐?”
“저번에도 내 속옷 훔쳐 갔잖아.”
“아,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때는 그냥 내 거랑 헷갈려서 집어 간 거뿐이라니까!”
“…대체 얼마나 헷갈리면 저어어기 걸린 빨래를 가져가셨을까?”
그리 말하는 소년이 가리킨 곳.
그건 제리의 천막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천막이었다.
사실상 제리의 천막과는 정반대편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리.
이에 제리가 턱을 번쩍 치켜들며 당당히 답했다.
“내가 길눈이 좀 어둡거든!”
“…….”
“그럴 수도 있지!”
뻔뻔하게 나오는 제리를 보고 소년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을 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까 봐.”
“뭘?”
“바지.”
“…뭔 미친 소리야? 내가 왜?”
“내가 이럴 줄 알고 속옷 한쪽 귀퉁이에다가 내 이름을 적어 뒀거든? 나만 알아볼 수 있게. 그러니까… 바지 벗어.”
“도, 돌았냐?”
당황한 제리가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런 제리의 당혹이 단순히 바지를 벗어야 한다는 것 때문만이 아님을 알아차린 소년은 득의양양하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제리를 바지를 붙잡아 당겼다.
“야!”
이에 질겁한 제리도 소년의 손과 바지춤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버텼다.
“벗어!”
“아씨, 이거 놓으라고!”
“벗어 보라고! 확인만 할 테니까!”
“너 같으면 벗겠냐,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벗기려는 자와 사수하려는 자의 실랑이가 한참 동안 이어지는 가운데.
“으엑?!”
난데없이 끼어든 제삼자의 목소리.
이에 제리와 짧은 머리 소년도 우뚝 멈춰 서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유리가 서 있었으니.
“…….”
“…….”
“…….”
한참을 말없이 눈빛만 교환하는 세 사람.
그러다가 유리가 먼저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방해해서 미안. 취향은 존중할 테니… 마저 일들 봐.”
취향은 존중한다면서 은근슬쩍 몸서리치며 뒤돌아선 유리의 모습에 제리와 소년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런 거 아냐, 미친놈아!”
“그런 거 아냐, 미친놈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터져 나온 외침.
그게 어찌나 컸던지 이전까지는 나와 보지도 않던 49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웬 미친놈?”
의문 어린 시선으로 모여드는 이들.
그러다가 몇몇이 유리의 뒷모습과 빨간 견장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50기?”
“50기가 겁대가리 없이 선배들 구역에 들어왔다고?”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그렇게 욕을 하던 이들이 유리가 다시 몸을 돌리자 그 얼굴을 확인하고 당황하여 소리쳤다.
“미, 미친놈이다!”
“아, 아니, 저 미친놈이 여긴 왜 있어?!”
50기를 제외하고 그 어떤 기수보다 유리에게 많이 데인 이들이 바로 49기였다.
그런 49기의 격렬한 반응에 유리는 씨익 웃어 보였다.
“이야, 환영 인사가 제법 거친데?”
히죽거리는 그 유리의 눈빛에 놀란 49기는 뒷걸음질 쳤다.
한편 그 사이에서 홀로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으니.
“여긴 무슨 일이야?”
의아한 얼굴로 나타난 건 바로 율리아였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만나러 온 거야? 네가 원하는 정보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유리가 3년 차 거주 구역에 나타날 이유는, 자신을 만나 정보를 얻으려는 것뿐이라 생각했던 율리아.
하지만 유리는 가볍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건 아니고, 오늘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목적? 무슨 목적?”
스르릉-.
율리아의 되물음에 유리는 아무런 말 없이 천천히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칼끝을 49기를 향해 겨누며 선포했다.
“한판 붙자.”
“…누구랑?”
“너희랑.”
“우리랑?”
“어.”
“저… 그… 그래도 우리가 선배인데…….”
“예, 이 못난 후배 놈이 49기 선배님들과 한판 붙고 싶습니다. 도전을 받아 주시죠?”
유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미친놈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 밑도 끝도 없지 않은가.
당황과 황당함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유리의 곁에 섰다.
제리가 실실 웃으며 연신 허리를 굽신굽신거렸다.
“아이고, 저어언하! 어찌 그런 말씀을?! 저희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제발 거두어 주시옵소서!”
“싫은데?”
유리의 매몰찬 반응에 제리가 슬쩍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하하, 우리 전하께서 오늘따라 진짜 왜 이러실까?”
“……?”
“에이,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체면 좀 세워 줘라.”
오늘은 이만하고 가라는 듯 유리의 어깨를 툭툭 털어 주는 제리.
이에 유리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쩨리. 그대가 고생이 많다.”
“고생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전하!”
“하하, 그런데 말이다… 혹시 그대가 이 말을 아는지 모르겠구나.”
유리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 주는가 싶어 신이 난 제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무얼 말이옵니까, 저언하?”
그리고 그의 귓가에 바짝 얼굴을 붙인 유리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권력에 취해 나설 때 안 나설 때 분간 못 하는 간신이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난다는 사실?”
“히익?!”
서늘한 살기에 놀란 제리가 귀와 목을 부여잡고 호다닥 뒷걸음질 쳐 율리아의 뒤로 숨었다.
그사이 유리는 다시 검을 까닥거렸으니.
“자, 이제 잡설은 집어치우고, 후딱 한판 붙자.”
유리의 생떼에 49기는 단체로 고개를 내저었다.
“시, 싫은데?”
“거절은 거절한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건데? 우리가 너한테 뭐 잘못했냐?”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럼 왜?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러니 한판 붙자!”
“…….”
“왜 대답들이 없을까? 쫄았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껄렁껄렁 칼을 까딱거리는 그 모습에 49기들의 미간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마지막 말이 그들의 자존심을 긁은 것이다.
거기에 유리가 쐐기를 꽂아 버렸으니.
“후배한테 쫄? 풉!”
계속되는 도발에 결국 참다못한 스무 명 정도가 분개하여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저 새끼가 진짜!”
“시발, 보자 보자 하니까!”
“오냐! 나 안 그래도 저 새끼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어디 한판 붙어 보자!”
“전부, 달려들어!”
분노한 이들이 호기롭게 달려들자, 이를 마주한 유리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들을 반겨 주었다.
“그래! 이래야 요람의 기수지!”
유리는 기뻐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로부터 정확히 30초 뒤.
콰강-!
“컥!”
“켁!”
커다란 폭음과 함께 대여섯 명이 달려들었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날아왔다.
그들이 하나같이 기절한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으아악!”
“자, 잠깐만!”
“도, 도망쳐!”
“후퇴! 후퇴에에!”
분노하며 우르르 몰려갔던 이들이 앞다퉈 갔던 길을 되돌아 도망쳐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꽁무니에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켠 유리가 바짝 붙어 있었으니.
“어허, 어딜 가시나?”
으아아아악!
끄아악!
곧이어 3년 차 거주 구역에 온갖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