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3
332화. 종료 (6)
유리가 전력을 다한 뇌익의 수준을 요한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늘었구나.’
그가 마지막으로 유리를 보았던 건 두 번째 백보 의식 때.
당시 녀석은 공인 6단에 오른 상태였다.
그로부터 4년여 만에 만난 유리는 당시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자신은 조금 더 정확히 유리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녀석이 감추고 있는 그 모든 것을!
하여 요한의 칼이 움직였다.
스륵-.
그저 평범한 찌르기.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요한의 찌르기가 단번에 유리의 움직임을 끊어 냈다.
그건 유리의 움직임을 예측한 흐름 끊기였다.
“……?!”
단숨에 목젖 근처에 다다른 요한의 칼에 유리는 살짝 당혹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일 뿐.
순식간에 몸을 튼 유리.
그와 함께 1㎜의 간격으로 요한의 칼날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시에 유리의 칼이 요한의 가슴을 사선으로 베어 냈다.
챙-!
언제 칼을 되돌린 것인지 유리의 공격을 쳐 낸 요한.
곧이어 서로 닮은 두 사람의 외날 검이 어지럽게 얽히기 시작했다.
카가강-.
흐릿한 칼의 잔상.
날카로운 금속성.
튀어 오르는 불똥.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단순한 부상으로 끝나지 않을 공격의 연속.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를 향해 칼을 날렸다.
카가가가가강-.
팽팽하게 이어지는 공격.
유리의 수를 읽어 내는 요한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구나.’
처음 랄프의 숲에서 검술을 가르칠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유리의 전투 지능과 감각은 천재라 부르기 마땅했다.
하지만 기본기의 부재와 경험의 부족으로 가진 바 재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
‘무르익어 가고 있구나.’
부족한 기본기와 경험을 채우니 유리의 전투 재능이 서서히 꽃봉오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만개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라면…….’
그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난다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것인가.
요한은 살짝 기대가 들었다.
그렇게 그가 평가를 하는 사이, 유리는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내 모든 건 영감으로부터 시작됐다.’
운보와 뇌익.
마류와 검술.
심지어 사소한 습관마저 요한을 닮아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아무리 수를 짜내고 연계를 이어 간다고 해도 전부 읽힐 수밖에 없을 터.
지금도 봐라.
‘내 수를 훤히 알고 미리 끊어 내고 있어.’
자신의 공격이 요한에게 철저하게 막히고 있었다.
하여 요한에게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예측하지 못할 변수가 필요했다.
‘죽일 각오로 덤비라고?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줄게.’
속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유리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
‘과연 저 영감탱이가 이것도 할 줄 알까?’
샤아아악-.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영역장.
그리고 이를 요한이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이 몸에게 상쇄의 싸움을 걸어오는 게냐?’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친 그가 유리의 영역을 상쇄시켰다.
그 순간.
‘걸렸다!’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치며 그가 칼을 내질렀다.
이를 요한이 막으려는 순간.
유리의 칼이 기기묘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요한의 칼을 따돌렸다.
마치 요한이 그리 나올 줄 알았다는 듯한 움직임.
이에 요한이 처음으로 살짝 의아하다는 듯한 감정을 내비쳤다.
‘허?’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유리의 칼이 정확히 목의 경동맥을 끊어 내기 위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었으니까.
요한이 이에 즉각 회피 동작을 펼쳤으나.
쉑-!
유리의 칼은 그가 그럴 것을 예상했다는 듯 순식간에 공간을 선점하고 있었다.
이를 다시금 피해 낸 요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내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게냐?’
하지만 이는 말이 안 되었다.
‘분명 영역은 상쇄되었을 텐데?’
그러나 유리가 보이는 움직임은 영역을 사용했을 때와 유사하지 않은가.
요한은 몸을 놀리며 유리의 움직임을 분석해 나갔다.
반면 유리는 유리대로 놀라고 있었다.
‘미친, 이 괴물 같은 영감탱이가?!’
진:영역의 상쇄를 일부러 미끼로 던지고, 위:영역으로 회심의 역습을 준비한 유리.
하지만.
‘영역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그걸 전부 피해 내냐?!’
요한은 단순히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유리의 공격을 전부 회피하고 있었다.
이는 터무니없다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일을 요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척척 해내고 있었다.
‘부절검의 명성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거지?’
꺾이지 않는 검.
최강의 도전자.
검주를 제외하면 비할 자가 없다는 그 강함의 명성은 바로 이 터무니없는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여 유리는 가슴속에 흥분이 다시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영감이… 내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내고 있다.’
그건 다시 말해 그의 공격이 요한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러한 사실이 유리를 흥분케 했고, 그는 더욱 마나를 끌어올려 칼을 내질렀다.
그러던 바로 그때, 유리의 흥분을 단번에 가라앉히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허? 이 좋은 걸 꿍쳐 둔 채 네놈만 쓰고 있었다니.”
묘하게 들뜬 요한의 목소리.
그와 함께 유리의 위:영역이 사라져 갔다.
‘……?!’
당황한 유리가 훌쩍 뒤로 물러나 요한을 바라보니.
“이리하는 거였구나.”
비릿하게 미소 짓는 요한의 모습이 유리의 동공에 가득 담겼다.
이에 그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재수 없는 영감탱이.”
처음 살짝 당황했던 모습을 보아 요한은 분명 위:영역에 대해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위:영역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훔쳐 배웠다는 뜻이다.
‘아무리 영감이 마류를 익히고 있다고 해도…….’
그걸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건 요한의 재능이었다.
이에 유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게… 이런 기분이구나.’
자신이 대련을 통해 절기를 훔쳐 배울 때, 그 상대들이 아마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유리는 자신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요한은 유리를 보며 낄낄거렸다.
“덕분에 좋은 걸 배웠다. 잘 쓰마.”
네놈이 쓰는 걸 내가 못 할까?
거드름을 피우는 요한의 모습에 유리의 이마에 살짝 핏대가 올랐다.
자꾸만 씰룩이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킨 유리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요한을 향해 똑같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럼… 어디 이것도 따라 해 보시든가.”
두근- 두근-.
유리의 두 마나 핵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공명을 이루니.
우웅-.
유리의 전신에서 생겨난 황금빛 선.
그것이 모여 유리의 머리에 금빛 달의 왕관을 만들어 냈다.
찬란한 광채를 뿌리는 유리를 보고 요한이 감탄을 흘렸다.
“그게 네놈이 말했던 그 광인인가 하는 그거냐?”
“끝내주지?”
“호오, 확실히 그건 좀… 탐이 나는구나.”
머리에 빛의 왕관을 쓴 듯한 모양새가 꽤 멋들어졌다.
자신도 한 번쯤은 저런 왕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그런 요한의 감탄에 유리는 히죽거렸다.
“내가 써서 멋있어 보이는 거고, 영감이 쓰면…….”
뒷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흐려진 말끝 속에 무슨 말이 숨어 있는지는 굳이 깊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에 요한의 입꼬리가 씰룩였으니.
“네놈 대가리에 번쩍거리는 그게 겉멋만 있는 게 아니어야 할 게다.”
그런 요한의 경고 아닌 경고에 유리도 조소로 응대했다.
“확인시켜 줄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짝 마나를 끌어올린 유리.
두드 두드 두드-.
번갈아 박동하기 시작한 두 개의 마나 핵이 순식간에 마나를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그 거칠고 거센 마나의 힘이 칼에 고스란히 담겼고, 유리는 이를 요한을 향해 날렸다.
스각-.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비검에 요한이 고작 이거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순간.
그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유리의 검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스가가가각-!
유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황금빛 비검이 요한을 향해 수없이 날아들었다.
단 한 차례도 끊기지 않고 말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비검의 세례를 피해 내며 요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애송이가 이렇게 마나를 펑펑 쓴다고?’
유리에게 광인의 효과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 증폭값이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는 요한.
하여 마나의 효율이 높지 않은 비검을 펑펑 날려 대는 유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잠시 뒤.
‘이 애새끼……?’
요한은 경악했다.
‘대체 마나가 얼마나 는 게야!’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유리의 비검 날리기가 장장 10분여간 계속된 거다.
이는 요한이라고 해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수준.
그런데 자신보다도 마나의 총량이 떨어지는 녀석이 마나를 물 쓰듯 써 대고 있었다.
심지어 힘든 기색조차 없이.
또한, 요한이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나의 기질이 변했다.’
유리의 비검에 담긴 마나의 성질이 그가 알고 있는 녀석의 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고요하며, 지독히도 사납구나.’
레드너 가문의 마나 로드로 쌓은 마나는 자유분방하지만, 광폭한 뇌전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유리가 내비치는 마나의 성질은 흡사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어둠 속에 은신한 채 흉포한 살기를 품은.
언제든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준비가 끝난 듯한 사나운 기세.
그건 확실히 자신이 알고 있는 유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요한이 유리의 공격을 분석하던 찰나.
유리의 칼이 하늘을 가리켰고.
“저, 저?!”
곧 엄청난 기세로 치솟는 황금빛 기둥에 요한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무식한!’
유리의 칼을 따라 하늘로 치솟은 십여 미터에 달하는 금빛 기둥.
그건 다름 아닌 엄청나게 커다란 성검이었다.
‘애새끼, 마나가 아주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자신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황금빛 거대한 성검의 위용에 혀를 내두른 요한.
그러나 그런 놀람과는 반대로 그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이이잉-.
요한의 검에도 푸른빛의 거대한 성검이 순식간에 완성됐으니.
곧이어 금광과 청광이 거대한 잔상을 남기며 충돌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에 진동하는 숲.
그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힘과 힘의 싸움이었다.
콰앙- 콰강!
이후 몇 번의 충돌이 더 있고, 마침내 힘 싸움의 양상이 드러났으니.
“프하하하, 고작 이거뿐인 게야?”
승자는 근소한 차이로 유리의 성검을 밀어낸 요한이었다.
그 사실에 유리가 이를 악물었다.
‘마력은 물론… 마나의 순도마저 내가 딸린다.’
최근 급성장을 하였다고 해도 요한이 쌓아 온 세월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하여 유리는 방법을 바꿨다.
뒤로 물러선 유리의 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180도의 반원을 그리는 황금빛 잔상.
그에 따라 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흡!’
요한은 순간 자신의 눈앞에 거대한 달이 떠오른 듯한 환영을 보았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환영이 아니다!’
거대한 금빛 초승달.
그건 환영이 아닌 정말로 유리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쿠그그그-!
곧 어마무시한 속도로 초승달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요한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달을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으직-!
‘뭣이?!’
금빛 초승달에 닿은 자신의 성검이 속절없이 으스러지는 게 아닌가.
‘성검을 뛰어넘는 파괴력이라니!’
요한이 놀라는 사이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친 금빛 초승달.
그것이 결국 그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금빛 월광에 집어삼켜진 요한.
제삼자가 보기에 싸움은 그렇게 끝난 듯싶었다.
그런데.
번쩍-!
금빛 월광이 요한의 몸을 갈가리 찢어 버리기 전 그 찰나의 순간, 빈 허공에 투명한 선이 수직으로 그어지더니 공간이 좌우로 어긋났고.
쩌적-.
유리가 만들어 낸 초승달에 균열이 가다가 이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요한.
그를 응시하는 유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신검!’
자신의 작월(作月)을 단숨에 날려 버린 공간의 일그러짐.
그건 분명 일전에 요한이 보여 준 아신검이었다.
그렇게 흩날리는 마나의 빛 속에 선 요한이 유리를 향해 칼을 겨눴다.
“마지막이다. 그러니…….”
유리를 향했던 요한의 칼끝이 좌측으로 이동했고.
“요령껏 살아남아 보거라.”
수평으로 가볍게 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