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78
77화. 가죽 모으기 (3)
끼익- 쿵!
뒤쪽에서 울린 소리.
동물의 숲 입구가 닫히는 걸 본 몇몇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거 시작의 숲 생각나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꾸몄으려나?”
300명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동물의 숲 외곽에 막 발을 들여놓은 찰나.
우뚝-.
50기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췄다.
그들을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노란색 견장을 찬 남자 기수였다.
“사, 사십구 기 선배다.”
“여, 여기에 왜?”
난데없이 등장한 49기 선배.
용패갈이의 악몽을 기억하는 이들은 절로 몸이 반응해 멈춰 버렸다.
하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이들은 금세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뭐냐, 저건?”
“…토끼 귀?”
49기 선배의 머리.
거기에는 길쭉하고 새하얀, 토끼 귀 장식이 달린 머리띠가 있었다.
모두가 그 기괴하고 이상한 광경에 눈을 끔벅이고 있을 때.
50기와 맞닥뜨린 토끼 귀의 49기가 시선을 모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며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까… 깡춍.”
“…….”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사이 또다시 내뱉어진 한마디.
“…깡춍.”
그걸 들은 이들의 눈에 온갖 감정이 떠올랐다.
‘저 새끼, 지금 부끄러워한 거지?’
‘아, 더러워.’
사방에서 날아드는 어이없다는 시선.
혹은 욕하는 게 분명한 눈빛 공세에 49기의 진짜 귀가 시뻘게졌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깡춍!”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몇 사람이 어이없다는 듯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49기가 토끼인 거야? 그… 49기가?”
“토끼면 분명 우리가 잡아야 할 사냥감인 거잖아?”
“…그렇지?”
그때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까 봤어?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던데? 토끼면 초식동물이니… 우릴 공격 못 하는 게 아닐까?”
“…….”
그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적막 속에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이거야말로 그날의 수모를 갚을 기회로구나!’
용패갈이 당시, 사냥감으로서 49기에게 괴롭힘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에 한 사람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저 새끼 잡아!”
곧이어 토끼 한 마리를 쫓아 수십 명이 우르르- 달려 나갔고.
“우오오오!”
“족쳐!”
알 수 없는 괴성이 허공을 수놓으며 본격적인 가죽 모으기가 시작됐다.
* * *
우와아아아아아!
마치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가는 사기 충만한 병사들처럼.
혹은 무언가에 씐 듯 50기들은 토끼남을 쫓아 숲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거는 아니었다.
동물의 숲으로 돌진해 들어간 이들은 100명 안쪽.
300명 중 200명 정도는 조용히 뒤에서 사태를 관망했다.
유리 또한 그 무리에 속했다.
‘요람에서 또 해괴한 짓거리를 시작했네.’
가죽을 모아 오라고, 짐승들을 풀어 놓은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짐승 분장을 한 사람을 풀어 놓은 거였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그 허술한 울타리가 말이 안 되지.’
유리의 짐작대로, 토끼 한 마리조차 막을 수 없는 그 허술한 울타리는 애초에 짐승을 가둘 용도가 아닌 경계를 긋는 용이었다.
‘흠… 그럼 결국 우리가 잡아야 할 건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는 건데.’
안경남은 이 동물의 숲에 다섯 동물이 있다고 했다.
토끼, 사슴, 늑대, 곰, 호랑이.
‘이거 딱 봐도, 쉽게 잡을 수 없게 판을 짰을 거 같은데?’
1,000포인트짜리 토끼가 49기였다.
그럼 그보다 상위 포인트의 동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특히 500만 포인트의 호랑이.
이건 어쩌면 애초에 잡지 말라고 하는 수준일 게 뻔했다.
‘그러면 그렇지, 요람 것들이 그리 쉽게 포인트를 뿌릴까.’
유리는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살폈다.
먼저 돌진한 이들을 제외하고도 슬금슬금 숲으로 들어선 이들이 많았다.
개별적으로 움직일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이미 다 빠졌고 남은 이들은 대략 100명 정도.
이제는 요람이 어떤 곳인지 깨닫고 조심성이 깊어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또 요람이 무슨 수작질을 부릴지 모른다고 여겨 무작정 돌진하기보다는 사태를 살피고 협력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하긴 개별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협력하는 게 안전하긴 하지. 하지만 문제는 협력한 사람끼리 포인트를 나눠야 한다는 건데…….’
유리의 입장에서는 딱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 녀석들은?’
주변을 살펴보니 아린과 뽀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삐졌나?’
아니면 이제 포기를 한 건지.
먼저 협력하자고 다가올 줄 알았더니 그들도 개별로 활동하거나, 그냥 둘이 붙어 다닐 모양이었다.
유리로서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니 나쁘지 않은 상황.
“좋아,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 볼…….”
더 늦기 전에 자신도 숲으로 들어가 보려던 유리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멈칫거렸다.
‘가만… 여기 투입된 동물들이 49기라면?’
그 순간 유리의 뇌리로 스치는 한 장면이 있었으니.
머뭇머뭇, 가죽 모으기 퀘스트에 관해 설명하기를 꺼리던 테레시아.
그러다 결국 대답을 회피하며 도망치던 그녀.
‘…설마?’
작은 의심이 피어올랐고, 이는 곧 확신이 되어 유리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피워 냈다.
“이야, 볼만하겠네. 우리 텟샤 선배 놀려 주러 가야겠다.”
그렇게 숲으로 나아가는 유리의 뜀박질은 마치 토끼처럼 경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 * *
한 명의 토끼남이 숲을 내달리고.
그 뒤로 수십 명의 50기가 따라붙었다.
눈깔이 뒤집힌 그들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반드시 잡아!”
“잡히기만 해 봐라! 확- 가죽을 벗겨 버리겠어!”
분명 가죽을 벗기는 게 맞기 맞지만, 상황이 이러니 참으로 살벌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됐으나, 토끼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토끼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십수 명만이 남았다.
“젠장! 토끼 새끼가 뭐 이렇게 빨라?!”
“원래 토끼는 빠르잖아?”
요리조리 숲을 내달리는 토끼남.
이대로는 놓칠 듯싶자 50기들이 포위망을 넓혔다.
‘한쪽으로 몰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포위망까지 만들어 가며 49기 토끼몰이에 집중한 끝에.
“잡았다.”
“흐흐흐, 이제 더는 못 빠져나간다.”
마침내 십수 명의 50기들이 토끼남을 포위망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49기 토끼남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까…깡춍.”
어떻게든 빈틈을 쫓아 빠져나가려고 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50기에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흐흐, 자, 선배님… 아니, 토끼님? 이제 고이 그 가죽을 넘기시지요.”
점점 더 촘촘하게 좁혀 드는 포위망에 49기 토끼남은 절망했다.
어딜 봐도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포기하려는 순간.
음메에에에-.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50기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반대로 49기 토끼남의 얼굴을 화색을 띠었다.
음메에에-.
다시금 들려온 소리.
그와 함께 포위망의 옆쪽, 수풀을 헤치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음메! 어허, 누가 감히 우리 귀여운 토끼를 괴롭히는 것이더냐!”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타난 이의 행색을 보곤 포위망을 구축한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뿔?”
새롭게 나타난 이도 역시나 노란색 견장을 한 49기였다.
우락부락, 울퉁불퉁, 근육질의 49기 남성.
다만 그는 나뭇가지 같은 사슴뿔 형태의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저거 사슴뿔인가?”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사슴이 왜 음메- 하고 울어? 그거 염소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사슴도 음메- 하고 우나 보지.”
갑자기 나타난 사슴남과 그 울음소리를 놓고 약간의 토론이 있었다.
이에 한 명이 일침을 가했다.
“멍청이들아, 그걸 문제 삼을 거였으면 애초부터 했어야지! 토끼가 깡춍 하고 우는 거 봤어?”
“…그러네? 너 좀 똑똑하다?”
울음소리 논쟁이 종식되자 그들은 새로 나타난 사슴을 경계했다.
“무기가 있어.”
토끼가 아무런 무기도 없던 것과 달리 이번에 나타난 사슴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다만 등장한 이래 그는 무기를 뽑지 않고 있었다.
그저 팔짱을 끼고 사태를 지켜볼 뿐.
그 시간이 조금 길어지자 50기들이 살짝 아리송한 얼굴빛을 띠었다.
“뭐지? 공격하지 않는 건가?”
그 말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가만, 토끼도 초식동물이고, 사슴도 초식동물이면……?”
전부를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면 둘 다 공격을 못 하는 게 아닐까?’
50기들이 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어쩌지?’
‘사슴 가죽은 5천 포인트라고 했었지?’
포위망을 구축한 사람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토끼를 쫓다 보니 다수가 떨어져 나가고 자신들만 남았기에 자연스럽게 남은 이들로 포위망을 구축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토끼 한 마리 잡자고 달려든 경쟁 관계였다.
그런 이들의 눈앞에 토끼보다 가치가 5배나 높은 사슴이 떡하니 나타났다.
이에 욕심에 못 이겨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도 당연지사.
포위망 중 사슴이 있는 곳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50기.
“사슴은 내 거다!”
그가 검을 휘두르며 사슴에게 덤벼들었고.
“깡춍!”
토끼는 그 틈을 노려 잽싸게 빠져나갔다.
“저 자식이!”
“이봐!”
“젠장, 선수를 치다니! 이렇게 되면!”
돌아가는 상황에 다른 이들이 당황한 사이.
캉-!
높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사슴과 그 사슴을 향해 달려들었던 50기였다.
50기는 크게 튕겨 나간 자신의 검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 뭐야? 고, 공격 못 하는 거 아니었어?”
그 같은 반응에 사슴남이 이죽거렸다.
“아무리 온순한 사슴이라고 해도… 선빵 맞으면 화가 나는 법이거든.”
검을 쥔 사슴남의 팔뚝에 핏줄이 불거지는 것을 본 50기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자, 잠깐만요…….”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슴의 성난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음메에에에에!
으아아악!
요란한 염소 울음소리에 사람의 비명이 섞여 숲속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 * *
몇몇 기수들이 성난 사슴의 뿔에 치여 날아다니던 그 시각.
숲으로 들어섰던 유리는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토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토끼는 노란색의 견장을 찬 남자 기수였다.
“와아, 토끼다.”
토끼남은 껄렁껄렁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오는 유리를 보고 흠칫거렸다.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도망치려는 게 분명했다.
이에 유리가 바닥에 침을 찍 뱉었다.
“거기 못생긴 토끼 아저씨? 알아서 가죽을 상납하시면 크나큰 유혈 사태는 없을 예정이옵니다. 그러니 피차 귀찮게 서로 힘 빼는 짓거리 하지 말고 고이 상납하시죠?”
어째 말하는 본새가 한두 번을 해 본 게 아닌 듯싶었다.
고작 한두 번을 했다고 하기에 유리의 대사는 발음과 억양, 강약 조절이 환상적인 수준이었다.
“자자, 어여 와요. 이리로.”
토끼를 향해 하얀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유리.
그러나 그런 친절에도 토끼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해 버렸다.
“까, 깡춍!”
후다닥 달려 나가는 토끼를 보고 유리의 얼굴에 짜증 가득 피어올랐다.
“거, 진짜 사람 귀찮게 하네.”
유리의 얼굴이 불량스럽게 구겨진 순간.
탓-!
그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지며 토끼를 따라잡았다.
순식간에 토끼의 뒤를 잡은 유리.
“내가…….”
그의 몸이 폴짝 뛰어올랐고.
“귀찮게 서로 힘 빼지 말쟀지!”
양발이 토끼의 등짝을 강타했다.
“꾸- 꾸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토끼가 앞으로 굴러갔고, 풀숲 너머로 사라졌다.
탁-.
“후우!”
공중제비를 돌아 멋들어지게 착지를 한 유리는 짧게 호흡을 내뱉어 앞머리는 정돈했다.
“하여간 좋게 말하면 말을 안 들어요.”
다시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유리가 전리품을 수거하기 위해 토끼가 날아간 수풀로 들어선 순간.
“음메! 나는 사슴이다!”
“…….”
“음메에에- 누가 감히 우리 귀여운 토끼를 똥 닦은 종이처럼 구겨 던졌…….”
수풀 너머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유리가 그 방향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고.
그 순간 사슴뿔을 단 49기와 정면으로 시선이 딱 마주쳐 버렸다.
“…….”
“…….”
둘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시발, 이 미친 토끼 새끼가.”
사슴뿔을 단 49기가 난데없이 제 앞으로 굴러와 기절한 토끼 귀 동기를 보고 쌍욕을 날렸다.
“뒈질 거면 혼자 나가 뒈질 것이지… 하필 달고 와도 미친 사냥꾼을 달고 오냐.”
한껏 짜증을 내며 미간을 찡그리는 49기 사슴남.
반면 유리는 그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쩨리 선배, 오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