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예상대로 몇몇 사람들이 덥석 미끼를 물었다.
“오, 그럼 대장군 얘기도 있어요?”
“나도 궁금한데, 걔 얘기는.”
이노센트도 그 얘기엔 큰 관심이 있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짓다 일반인을 향해 눈짓했다. “그냥 풀어 줘요, 오빠.” 히죽 웃는 이노센트의 목소리에 일반인은 바로 손을 놓아버렸다.
손아귀가 느슨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테세우스가 바동바동 빠져나왔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매를 한 일반인이 바로 옆에 서있어, 리디안이 있는 테이블 근처로는 다가갈 수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입맛을 다신 테세우스는 가까운 테이블 위에 껄렁하게 걸터앉아 입을 나불거렸다.
“일단 대장군 복귀는 확실하다고 하네요? 여기 오고 나서부터 한동안 도시에 짱박혀 있었던 건 사실인데, 핑푸가 지속해서 보살폈나 봐요. 그래서 멘탈 회복하고 몰래 필드 연습하다가 이번에 복귀한 거래요. 지금은 핑푸랑 대장군이 합세해서 따거 특별 관리 중이라는데……. 원체 꼬장꼬장한 새끼라, 컨트롤이 쉽지 않은 모양인가 봐요.”
나름 신빙성 높은 정보였다. 그에 여기저기서 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장군 드디어 정신 차렸나 보네.”
“태양 입장에서도 솔직히 버려두기 아깝죠. 랭킹 3위짜린데.”
“그쵸. 대장군도 템발, 렙발이 있어서 그냥 가서 톡 쳐도 0.5인분은 할걸요?”
“궁금하다. 그 몸, 그 비주얼로 어떻게 사냥할지.”
“어우, 그냥 화보일 듯.”
대장군에 대한 화제로 소란스러워지자, 리디안은 미드가르드 게이트 앞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태양, 무법자, 슈퍼문으로 가득하던 게이트 앞에서 그는 유독 존재감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물론 자세히 본 것도 아니고, 그보다는 같은 길드인 하츠의 존재감이 더 커, 큰 관심은 없었다.
리디안은 대장군 실물 한번 보고 싶다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괴자를 보며 몰래 웃었다.
“그리고 갤럭시. 그 사람, 오늘 새벽에 몰래 태양으로 이적했대요.”
깜빡이 없이 곧장 튀어나온 이름에, ONE 길드원들의 표정이 싸악 굳었다. 게임 시절 갤럭시와 형, 동생 사이로 지냈던 규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와……. 아무리 그래도 태양에는 안 갈 줄 알았는데. 좀 충격이네.”
“그리고 사이도 태양으로 같이 이적했고요. 둘이 어제 죽사막 레이드에 껴서 같이 클리어했나 봐요.”
테세우스의 시선이 괴자에게 머물렀다. 그러나 괴자는 진작 알고 있어 별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그 인간, 결국 그럴 줄 알았다며. 씨근거리기도 했다.
“갤럭시에 사이면… 전력 보충 제대로 했네.”
“그 두 명 껴서 레이드 돌았으면 클리어할 수 있죠.”
“아~ 핑푸 이 새끼. 틈새시장 공략 쩌네.”
테세우스의 폭탄 발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제성으로 관심을 집중 받은 테세우스는 엣헴, 헛기침하며 좌중을 주목시켰다.
“그게 끝이 아님! 핑푸가 진짜 미쳐 돌아서, 지금 신세계까지 흡수하려고 하고 있대요. 동맹 아니고 신세계 해체 시키고 이적하는 형태로.”
“뭐? 신세계를?”
주위는 단박에 시끄러워졌다. 옆 테이블에서 따로 떠들던 플레이어들까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진짜? 하고 되물어 올 정도였다. 리디안도 마찬가지였다.
노르드 월드의 은둔형 플레이어였던 리디안에게도 신세계 길드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유명인들이 모인 곳이었다. 더군다나 그 이미지가 어떤지 알기에 더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어 모든 사람이 영화처럼 힘을 합치지 않는 이상, 타인과 낯 뜨겁게 섞일 리 없는 족속들이 바로 신세계였고 베누스였다.
그랬기에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요? 말도 안 돼. 그 무개념 베누스가?”
“걔도 태양, 무법자 애들한테 어지간히 시비 걸고 다니지 않았나?”
“싸우다가 친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죠. 특히 지금처럼 우리라는 공공의 적을 둔 상태면.”
“아니, 근데 거긴 뭐 별종 수용소야? 이상한 애들만 잔뜩 모아다가 갱생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베누스 사람 되고 따거도 개조되면 핑푸 리스펙이죠. 그럼 진짜 존경해야 함.”
진지한 규호의 말투와 표정에 모두가 실소를 터트렸다. 너무나도 현실성 없는 얘기라, 리디안도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베누스는 뭐, 우리 길드 조지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이던데요?”
갸웃하는 테세우스의 목소리에 이노센트가 픽 코웃음 쳤다.
“뭐야, 그때 섀헌. 걔 쿠렉인가. 걔 때문에? 지가 혼자 매너 없게 굴다가 윤재한테 처발린 거잖아?”
어이없다는 이노센트의 말에 테세우스가 검지를 세워 흔들었다.
“원래 베누스가 우리 길드 싫어했잖아요. 얇고 길게 가는 길드라고. 보편적으로 3위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남들 눈에는 3위라는 위치 자체가 1위나 2위에 못 미치는… 어중간한 포지션이잖아요. 베누스도 제 딴에는 우리 길드가 운발로 꿀 빠는 길드라고 생각하는 듯?”
“아, 하긴. 그 새끼 예전부터 우리 길드 얕잡아 보고 그랬었지?”
“그러다 길마 형이랑 윤재 형한테 개 처발리고 나서 좀 조용해졌죠. 아, 그때 누나도 햄스터랑 일대일 무승부 나지 않았어요?”
“야, 지금 다시 싸우면 100% 내가 이겨.”
이노센트가 호언장담했다. 다소 오만해 보일 수 있는 발언이었으나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게임 시절보다 지금의 컨트롤이 더 좋은 사람이라,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이노센트를 이겨먹던 마제스티와 크라이그도 지금은 이노센트 앞에서 쩔쩔매니…….
“어후, 근데 베누스 생각이 짧네. 지금 레기온 전력만 하더라도 우리 길드랑 맞먹을 텐데?”
가만 듣고 있던 규호가 그리 중얼거렸다. 길드 전투력에 관한 얘기라, 제법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캐티스나 그레이스 등, ONE 길드 사람들은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레기온의 세력이 확대되었다는 뜻이었다.
“말 나온 김에 이따 결장 가서 길드전 한 번 땡길까요?”
짓궂은 테세우스의 제안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눈이 빛났다. 길드끼리의 친선전은 게임 시절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무료하던 이들의 흥미를 건드렸고 승부욕을 부추겼다. 대인전을 좋아하는 캐티스도 금세 밝아져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럼 직업별로 1인씩 단체전 갑시다.”
“워로드 어쩔?”
“아……. 워로드 없이 가죠.”
“어, ANG 길드에 호드라 님이랑 중대장 님으로 대타 어때요?”
“올, 좋은 생각.”
“이럴 땐 또 내기가 빠질 수 없지. 얼마씩 걸까요?”
판은 금방 깔렸고 어느새 내기까지 언급됐다. 리디안은 불쑥 커져버린 판에 당황스러운 땀을 흘렸다.
“아니, 근데 넌 그 중요한 얘기를 왜 인제야 해? 진작 좀 하지.”
난투전 소식에 기대하던 이노센트가 대뜸 테세우스의 머리로 딱밤을 놨다. 딱, 하는 소리에 억, 소리 지른 테세우스는 제 머리를 살살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아, 진짜 누님! 저도 오늘 아침에 들은 거예요. 진짜 입 근질거려서 죽을 뻔했는데, 뒤풀이 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참고 있었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넌 소소, 걔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주워 들은 대로 다 떠벌리는데? 걔도 괜찮대?”
“에이, 괜찮으니까 하는 얘기죠. 그리고 어차피 벌써 다른 길드에도 알게 모르게 퍼졌던데? 그보다 우리도 빨리 다음 레이드 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걔네, 반복 클리어랑 드롭률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 산맥 준비 중이래요.”
산맥이라면 헬하임의 ‘붉은 산맥’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하 도시나 ‘죽사막’보다는 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헬하임에서 상급 맵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산맥은 ONE과 레기온이 정복하지 않은 맵 중 하나인 데다, 기존 정보로 따지면 가장 쉬운 곳일 확률이 높기에 가만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앵두군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욕설을 뱉었다.
“이런, 개쓰레기 새X들. 죽사막도 거저먹은 주제에 제일 쉬운 산맥을 채가려고 하네?”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걔넨 못 깨지 않을까?”
“에이, 이번에 갤럭시랑 사이 영입했다고 하잖아요. 그럼 충분히 깨죠. 아, 물론 따거 없는 전제로.”
“그 연합으로 또 레이드를 하겠다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나 보네?”
신기하다는 이모탈의 중얼거림에 테세우스가 곧장 끼어들었다.
“놉. 어제 진짜 개판이었대요. 그나마 리트라이 때, 직업별로 책임자 정해 놓고 잘 컨트롤해서 그 정도 버텼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따거는 빼고 했고요. 암튼, 산맥 공략으로 핑푸가 팀워크 맞춘다고 연습 준비 중이래요.”
“와, 핑푸 개X끼. 점점 치밀하게 준비하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태양 애들도 체계적으로 구성해서 치고 올라올 건 확실해요. 그만한 인원 데리고 레이드 하나 못 깨는 건 솔직히 문제 있는 거죠.”
결투장 건으로 불타올랐던 분위기는 태양 길드를 향한 비난과 뒷담화로 전환됐다.
어쩌다 보니 태양을 신랄하게 씹는 자리가 된 탓에, 리디안은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앉아 듣기만 했다. 점차 격해지는 주변인들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테이블마다 저마다의 화제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드롭 아이템 얘기로 정신없는 분위기에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침공 이벤트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장비가 대량으로 풀린 것도 모자라, 신스펠 및 스킬까지 떴으니 그럴 수밖에. 리디안도 자신의 스펠인 ‘여신의 영역’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주변을 한 번 더 두리번거렸으나, 이상하게도 크라이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 갸웃하던 때, 마침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크라이그를 발견했다.
리디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내려갔던 거지? 자세히 보니 그와 함께 있던 김팔라, 개복치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가신 건가, 싶어 갸웃하는데 공교롭게도 크라이그와 눈이 마주쳤다. 앗, 하고 난처해하자, 크라이그가 미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손을 들어 이리 오라 손짓하기 시작했다. 곧장 등 돌려 도로 내려가는 모습에 리디안은 갸웃하면서도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디안 님?”
조용히 빠져나가려던 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페페의 물음이 닿았다. 갑자기 어딜 가느냐는 눈짓에 리디안은 민망한 웃음을 삼켰다.
“아, 잠깐 밑에 내려갔다 오려고요. 크라이그 님이 불러서요.”
거짓 없이 순박한 대답에 페페의 입가가 천천히 굳어갔다. 간신히 표정을 유지한 페페는 쓴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총총 계단을 내려가는 리디안의 모습을 페페는 한참이나 불안하게 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