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내리 이어진 한숨 세례에 끙 신음하던 박회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이건 확실한 게 아니니까 일단 배제. 그냥 지금 자체의 상황으로만 생각합시다.”
마제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 낯선 세계에서 ‘적’을 추론하는 것도 까마득한 일이었다.
“그럼 단순히 이 흐름으로만 보자면. 여러분들은 오딘, 헤임달. 두 존재의 관계 여부. 그리고 교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디안이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들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모두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중 제일 먼저 레온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만 놓고 보면 답은 하나죠. ‘에긴’이나 다른 사제들이라면 헬하임이라 저도 지나가다 몇 번 봤고. 호기심에 말도 걸어 봤는데. 솔직히 죄다 미치광이뿐이었어요. 그런 걸 보면… 그렇게나 사이비 색이 뚜렷한 애들 말을 믿기도 좀 그렇죠.”
“하나의 대상을 미친 듯이 숭배하고 찬양하는 단체치고 좋은 곳은 못 봤어요.”
“저도 동감. 게임 내에서도 붉은 태양 교단 이미지 생각하면 껄끄러워서 영……. 근데 그 추앙 신이 헤임달인 건 의외네요. 전혀 생각도 못 한 인물이라서요.”
대장군에 이어 박회장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에 자동으로 모두가 박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빤히 쳐다보는 기대 섞인 시선에 박회장은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꺼냈다.
“보통 다른 사이비들이 대개 그렇듯 교단 내 실존 인물인 최고 권력 사제. 혹은 새로운 가공인물. 예를 들어 초월적 존재죠? 그런 존재들을 내세워서 대리자 행세를 하므로 저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설마 진짜 신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네요.”
자기가 말해 놓고도 신기한지 박회장은 미간을 좁힌 채 조용히 테이블만 바라봤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 보면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진짜로 헤임달이 그들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앞서 박회장이 말한 대로 ‘어떤 흑막’이 헤임달일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동굴에서 미미르가 헤임달을 언급할 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도무지 이어지질 않았다. 헤임달에게 정말 어떠한 문제가 있었다면 미미르가 분명 알려 줬을 거다. 그때의 미미르는 리디안에게 가능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전해 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당시를 상기하며 리디안은 자신의 추측을 설명해 봤다.
“저도 처음엔 갑자기 헤임달이라는 이름이 나와서 놀랐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헤임달은 무지개다리를 관리하는 신이잖아요? 붉은 태양 교단은 이단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단체고요.”
리디안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몇몇 사람으로부터 약간의 존경스러운 시선이 닿았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꿰고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대체로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는 박회장의 담당이었던 터라 박회장도 약간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짙어지는 관심에 리디안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음, 그리고 이단 마법사들의 시초는 이방인이잖아요. 이방인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왔으니, 신전에서는 ‘교단’이라는 종교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무지개다리와 연관이 깊은 헤임달을 연결해 포장한 게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우연히 맞아떨어졌고요.”
“그것도 그럴듯하네요. 뭐, 정말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엔 중단 다리에 놓인 붉은 태양 교단이 너무 신뢰성이 떨어지죠. 또 진짜 맞는다고 해도 그거대로 문제고요. 사이비랑 연관된 신이 정상일 리 없으니…….”
지난번 똑같은 얘기를 한 보리알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헤임달이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사이비는 그냥 사이비에 불과할 뿐이고.”
교단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 단체는 가치관이 중요하다며 백검이 낮게 혀를 찼다. 전반적으로 껄끄러운 반응이 대세라 레온과 마제스티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붉은 태양 교단 얘기는 더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하죠. 괜히 감언이설에 속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은 지켜보죠. 개인적인 추측이긴 한데, 침공전 시작되면 변수가 더 생길 것 같아서요. 우리한테는 대규모 이벤트일지도 모르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대규모 재앙에 가까울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사소하게 몇몇 변화가 있을지도 몰라요.”
크라이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상당히 새로운 시각에 박회장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덜컥 맞장구쳤다.
“맞네, 맞아. 게임 세계랑 원래 노르드 월드랑 섞여 가는 중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아, 그럼 소수라도 좋으니까 소통 가능한 NPC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지금 아무리 말을 걸어도 얻는 정보라곤 게임 세계 관련뿐이라. 가능한 미미르처럼 이쪽 세상 얘기 좀 자세히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주절거린 박회장이 한숨을 섞어 푸념했다. 소통이 가능한 NPC라. 미미르를 떠올린 리디안은 잠시 갸웃했다. 그러곤 사람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침공전에 나오는 몬스터들이요. 오딘이 주도하는 전쟁이니까, 당연히 오딘의 군대일 거잖아요?”
“그쵸.”
“지난번에 미미르한테 듣기로는 오딘은 생각보다 정상적인 상태라고 했잖아요. 지금은 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공간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보면 게임 시스템에 완전히 잠식당한 상태는 아닐 테니. 당연히 오딘이 거느리는 군대에도 미미르와 같은… 아니면 최소한 비슷한 존재들이 있겠죠? 당연히 군대니까 전투형일 테고요.”
다시 말해 침공 몬스터 중 지성체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 갔다.
턱을 매만지던 마제스티는 사색이 되어 크라이그를 쳐다봤다.
“잠깐. 이거 좀 소름인데? 무덤에 있던 마녀 자매 같은 애들이 우리처럼 자유자재로 행동한다고 생각해 봐. 그때 미미르처럼.”
이번엔 좀 더 현실적인 상상이 떠올랐다. 그에 저마다 가장 까다로웠던 보스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 추측대로라면 침공전의 난도는 더 높아진다. 정형화된 패턴에 구애되지 않는 몬스터라니. 그건 현실에서 야생의 맹수를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어, 음… 자자,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맙시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반대로 말하면 대화가 통한다는 거잖아요? 그럼 어떻게든, 말로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역시 박회장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와중에도 끝까지 밝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리디안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 물론 성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요. 보자마자 우릴 무조건 죽이려고 달려드는 놈도 분명히 있겠죠? 마녀 자매부터 오딘까지, 이방인이라면 치를 떠는 듯했으니까.”
바로 뒤이어진 말에 리디안을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합시다. 진짜 그런 애들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그 능력에 우리가 어떻게 비벼요? 최대한 말발로 회유해 보고, 안 되면 그땐 맞서 싸워 보는 거고. 그것도 안 되면 항복해 보죠, 뭐.”
마지막 말은 반쯤 농담이라, 백검이 유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쵸. 어차피 못 이길 것 같으면 차라리 말이라도 그럴듯하게 준비해서 설득하는 게 낫지. 그리고 우리, 생각보다 꽤 억울한 처지잖아? 말만 잘하면 그쪽도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글쎄. 일단 우리 앞에 나타나 봐야 아는 거지, 그건. 아, 아무튼 이 얘기 더 할 거면 나중에 따로 모여서 하는 게 낫지 싶은데. 얘기 길어지면 다른 사람도 들을 테니까.”
점점 작아지는 이노센트의 목소리에 다들 아, 하며 흘깃 곁눈질했다. 리디안도 바로 알아듣곤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자리가 썩 좋지 않았다. 리디안은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가렸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워낙 시끄럽기도 해서…….”
꼼꼼하게 분위기를 살핀 대장군이 옅게 웃으며 리디안을 안심시켰다.
오늘 캐티스의 80레벨 달성 건 때문인지, 주변은 잡담으로 시끌벅적했다. 당장 바로 옆인 세인트들의 테이블만 해도 얼마 전 대파당한 신세계 길드의 이야기로 정신없었다.
박회장은 살짝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선 교단 얘긴 흘려듣고 NPC들은 좀 지켜봅시다. 갑자기 변할 수 있는 NPC도 있을 테고. 또 수상한 NPC들도 예의주시해야 하니까. 아, 잠깐. 수상한 NPC!”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박회장이 리디안과 크라이그를 향해 검지를 내질렀다.
“와. 갑자기 그 다람쥐 생각났네. 리디안 님, 크라이그 님. 세계수 맵에서 라타토스크. 다람쥐 NPC 하나 봤다고 그랬죠?”
“아, 네! 맞아요. 말도 안 걸었는데 먼저 와서……. 아.”
순간 리디안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다람쥐도 어쩌면 미미르와 같거나, 약간 비슷한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미미르의 샘 갔다 와서 갑자기 걔가 생각나서. 제가 개인적으로 좀 찾아봤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좀 걸리는 NPC였고 그때 증표도 받으셨고 해서, 리디안 님이랑 다시 마주치면 혹시 뭔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근데 안 보여요. 아예 날 잡고 사람들 데려가서 맵 전체를 싹싹 뒤졌는데도 흔적도 없었어요.”
“진짜요……?”
“저는 솔직히 두 분이 잘못 보신 게 아닐까 했어요. 진짜 게임 땐 없던 애였거든요. 그래서… 이건 좀 죄송한 말이지만. 낚였다고 생각하고 여태 잊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좀 쎄하네요.”
박회장은 벅벅 머리를 긁으며 리디안과 크라이그를 미안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그를 이해했다.
노르드 월드 NPC에 대해 빠삭한 박회장이었으니, 이야기만 듣고선 라타토스크의 존재를 확신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그 다람쥐를 본 사람이 이후로 아무도 없다니. 그건 좀 충격적이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네요.”
크라이그도 찝찝한 듯 한마디 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백검은 오싹오싹하다며 이노센트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흠. 세계수 맵도 주기적으로 한 번 돌아봐야겠네. 나중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
진지하게 턱을 매만지던 마제스티가 그리 중얼거림으로써 싸해진 분위기가 조금은 수습됐다.
“길마님!”
덩달아 딱 알맞게도 대기업 길드원들이 나타났다.
시끄러운 그들의 등장에 리디안의 테이블은 하던 얘기를 잊고 새 손님을 맞이했다. 더욱이 오랜만에 보는 뚱이의 모습에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어 보였다.
“잘 지내셨어요, 리디안 님?”
“와, 되게 오랜만이에요. 뚱이 님! 일정 다 끝내고 쉬러 오신 거죠?”
“에휴. 그럴 리가요. 여러분! 갑자기 죄송한데, 저희 길마님 좀 데려갈게요!”
뚱이는 박회장을 쳐다보며 손가락 까닥했다. 나오라는 손짓에 박회장은 으으, 하며 괴로워했다.
“대기업은 쪼렙 쩌리 길마 사양합니다. 님 렙에 놀 시간이 어딨습니까. 빨랑 튀어나오십시오.”
함께 온 길드원 ‘말랑이’가 엄격한 표정과 말투로 진지하게 요구했다. 마초 같은 인상과 딱딱한 말투를 생각하면 몹시도 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아! 싫어! 싫어! 아까까지 계속 사냥만 했잖아! 나 진짜 토 나올 것 같은데?”
“그럼 토하고 따라오십쇼.”
대기업 길드원들은 단호했다. 그럼에도 박회장은 오늘은 좀 쉬고 싶다며 한참을 버텼다. 그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우락부락한 남자 길드원들이 동시에 달라붙어 박회장을 강제로 끌어냈다.
울부짖으며 질질 끌려나가는 박회장의 모습은 모두에게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
“그럼 리디안 님. 나중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