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헤임달을 소멸시킨다니. 리디안은 오딘의 살기 어린 선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오딘은 헤임달의 죄를 알고도, 같은 ‘신’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은폐했다. 그만큼 오딘은 신이라는 위치에 상당한 긍지를 가진 존재다.
더욱이 이번 라그나로크 역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방인을 이용해 헤임달에게 대항하려는 하나의 수단이었을 터.
그 오딘이 현재, 스스로 최고신의 자리를 잃어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를 지키려는 구세주처럼 말이다.
어떤 영웅에게서나 들을 법한 발언이라, 리디안은 오딘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그의 진심에 대해 작은 혼란을 느꼈다.
“그 말은… 그간 당신은 할 수 없던 일이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인데. 헤임달을 제압하는 과정이 어떤 건지는 둘째 치더라도. 우리에게 위험하진 않습니까?”
신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오딘은 이번에도 즉답했다.
“침식과 같은 위험을 뜻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동의를 통해 이곳으로 소환하고 돌려보내는 것이라면 몰라도. 헤임달은 거울 세계의 지성체인 너희에게 물리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우리가 다른 차원의 생명체라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뜻인가요?”
차츰 분노를 가라앉힌 풍월주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에 바로 나온 오딘의 긍정에 곳곳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딘은 이방인들이 더 알기 쉽게 부연 설명했다.
“너희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수를 부린 게 ‘망자의 저주’다. 본디 망자의 저주는 살아있는 요정족을 에인헤랴르로 만드는… 신이 내리는 형벌이었다. 지금이야 전쟁 중인 탓에 에인헤랴르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만, 과거엔 죄인의 낙인이나 다름없었지. 그래서 저주라 이름 붙은 것이다.”
“말이 나와서 묻는 건데. 그 저주, 정확히 어떤 겁니까? 망자가 되어 귀속된다고 했는데, 설마 좀비… 드라우그처럼 사는 건 아니겠죠?”
신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뒤에 있던 이들도 ‘드라우그’라는 말에 낯빛이 창백해졌다.
“비슷하다.”
끔찍한 긍정이었다.
곧장 드라우그를 떠올린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질색했다.
“본디 망자의 저주는 산 존재를 강제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 뒤 부활시켜 신의 권속으로 만든다. 실제로 지금 이 땅의 있는 에인헤랴르 대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너희는…….”
“거기에 우리 세계의 시스템. 즉, 새로운 힘에 의한 규칙이 병합된 건가요?”
역시 박회장은 이해가 빨랐다.
“그렇다. 아마도 거기까지가 헤임달이 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간섭이었을 거다.”
“그러면… 헤임달은 우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거네요? 만약 우리가 필드 전투로 계속 페널티를 쌓았으면…….”
레온이 입을 막은 채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마제스티가 미간을 찌푸렸다.
“헤임달이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는 걸 고려해도, 이만한 저주를 걸 정도면 상당한 간섭 아닌가?”
“그쵸. 거기다 퀘스트로 우릴 유도하기까지 했으니.”
“그럼 여기서 헤임달의 시스템 조종이 더 완전해지면…….”
“우리한테 완벽히 불리해지겠죠.”
레온과 마제스티는 마른침을 꿀꺽 넘기며 오딘을 쳐다봤다. 그 긴장된 시선을 읽은 오딘이 이방인. 플레이어들을 향해 요청했다.
“그러니 너희, 이방인들이 헤임달의 핵을 찾아 파괴해 주었으면 한다.”
비로소 오딘이 본격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또다시 낯선 단어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핵? 핵이라고 하니까 뭔가 이상하네.”
“그러게요. 생명체… 아니, 몬스터 같은 느낌?”
백검과 이터널리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맞장구치며 웅성웅성 떠들었다.
“신한테 핵이 있어? 근데 신도 죽나? 신은 불로불사, 초월적 존재 아니었어?”
가만히 듣기만 하던 버베나도 이상한지, 레온을 쿡쿡 찌르며 쫑알댔다.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자 결국, 신사가 대표로 나서서 ‘핵’에 관해 물었다. 그에 오딘은 간단한 논리라며 설명했다.
“이곳과 너희 세계의 힘은 서로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이번 일은 두 개의 세계가 무리하게 접촉하면서 생겨난 이변. 헤임달은 그 과정에서 너희 세계의 힘 일부를 얻었지만, 너희 세계의 힘은 낯설고 방대하다. 애초에 힘의 성질도 다르지. 신, 헤임달이라 해도 원래의 육체로 다른 세계의 새로운 힘을 품기엔 벅차다.”
“그래서 새로운 육체를 만든 건가요?”
“그렇다. 그게 헤임달의 ‘핵’이다. 헤임달은 새로운 ‘핵’을 통해 두 세계의 힘을 융합시키고 진화해 가고 있다.”
“우리 세계의 힘. 그러니까 헤임달의 몸이 시스템의 힘에 더 최적화되어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군요.”
단번에 이해한 신사의 대답에 오딘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럼 그 핵이라는 걸 찾아 없애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근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찾아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마제스티가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아마 너희 세계에 맞게 변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찾아낸다면 바로 대응할 수 있을 거다.”
“우리 세계에 맞게 변형? 혹시 몬스터처럼 변해 있다는 뜻인가? 그럼 대강의 위치는요?”
“확실하지 않다. 헤임달의 핵이 있는 위치는…….”
“그 핵. 혹시 이쪽 인간계, 미드가르드 대륙에 있습니까? 그래서 당신이 간섭할 수 없는 거고요.”
오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회장이 뚝 잘라 물었다. 오딘은 계속해서 긍정했다.
“그렇다. 내가 핵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침식이 널리 퍼지고 나서였다. 손 쓸 기회가 없었지. 에인헤랴르를 통해 찾을까도 했다마는…….”
“침식당할 위험 때문에 못 했군요.”
신사의 대꾸에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흰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 너희는 거울 세계의 지성체. 게다가 너희는 이방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다. 그러니 너희 세계에 가까운 핵에 물리적으로 간섭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 말에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오딘은 플레이어만이 가능한 일이며 헤임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망자의 저주가 있는 한, 그 장점은 무한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앞으로 죽지 않고 목숨을 관리하면 문제없을 거라며, 태평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보장할 순 없었다. 그 찝찝함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음… 그러니까 핵을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이곳에 생겨난 시스템의 본체, 하드나 서버 같은 느낌인가?”
테세우스가 홀로 중얼거렸다. 뭔가 더 알기 쉬운 해석에 찌푸리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박회장은 말 잘했다며 바로 맞장구쳤다.
“그쵸! 헤임달이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고 있는 권력자, 관리자의 포지션이니 그게 가장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대체 어떻게 헤임달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건지. 여태 그게 이해 가지 않던 몇몇 플레이어들이 그제야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분위기에 오딘이 덧붙였다.
“융합 중인 핵을 파괴하면 헤임달은 새로 얻은 힘을 잃고 정지할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현재로서 우리만이 헤임달을 찾아 핵을 파괴할 수 있고. 파괴된 헤임달이 무력화되면 당신이 그를 제거할 것이고, 우리를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것까지요.”
“이제 서로의 요구가 다 나왔군요. 우리는 우리 세계로의 전원 무사 귀환을. 당신은 헤임달의 말살을 원한다는 걸요.”
레온, 신사의 말에 오딘은 말없이 리디안을 바라봤다.
신사는 그가 오른눈을 갈망하고 있음을 눈치채곤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곤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오른눈으로 당신에게 거래를 요청했지만. 당신이 먼저 헤임달의 처리를 우리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니 거래는 전원 무사 귀환과 헤임달 처리. 두 가지로 교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마음 약한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는 헤임달을 대신 처리해 주는 일이다. 전원 무사 귀환을 요구했어도 사실 플레이어가 밑지는 거래였다.
오딘은 헤임달과의 접촉에 있어 플레이어가 유리할 거라 말했지만…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딘에게 오른눈까지 순순히 넘기기엔 수지가 맞지 않았다.
오딘은 그 뜻을 읽어내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불쾌한 뜻을 언어로 내비칠 순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오딘은 플레이어들에게 부탁하는 처지고, 관계의 서열에 있어 철저히 아래다.
더욱이 냉정하게 말해, 지금 중요한 건 개인의 사적인 욕심이 아니라 세계의 존망이었다.
오딘이 뜻 모를 침묵을 유지하는 동안, 플레이어들은 리디안을 쳐다봤다. 어쨌든 현재 오른눈의 소유자는 리디안이니까. 아이템을 어떻게 할지는 그녀의 판단과 권한이라 신사도 리디안을 응시했다.
쏟아지는 시선에 리디안은 잠시 당황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솔직히. 당신이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걸 들었기 때문에 완전히 신용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조심스러운 리디안의 말에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니 이 오른눈은… 우리가 거래의 증표로 갖고 있을게요. 이 눈은… 우리가 무사히 돌아가게 되는 날. 그때, 당신에게 돌려줄게요.”
리디안은 오딘과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반응을 살폈다. 플레이어들은 잠시 생각하다 그게 가장 낫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찌 보면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오딘 역시 순응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실 오딘은 이방인들이 제 오른눈을 볼모로 삼아 패악을 부릴 거라 생각했다. 본인은 이방인을 이용하려 했고 그로 인해 실제로도 그들이 요정족들에게 배척받은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방인들이 앙심을 품고 오른눈을 돌려주지 않을 거라 믿은 것이다.
그런데 오른눈을 가진 이방인이 최후의 날, 순순히 돌려주겠다고 말을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란 눈으로 리디안을 바라보던 오딘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호의에 감사한다.”
물론 오딘에 대한 악감정으로 불퉁해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오른눈은 리디안의 소유이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헤임달! 헤임달 그 새끼. 어디 가서 찾으면 되는 거?”
분위기가 꽤 훈훈해졌을 무렵. 계속 다리를 달달 떨며 정신 사납게 굴던 다람이 빽 소리 질렀다.
“아,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서 조져버려야지!”
다람이 어린애처럼 투정 부렸다.
몇몇이 다람의 폭탄 같은 행동에 아찔해했으나, 다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항상 다람을 아니꼬워하던 먹구름조차 그러게, 라며 동조했다.
이어 헤임달의 행방을 묻는 발언이 하나둘 새어 나왔고 오딘은 한숨부터 지었다.
“무스펠하임 어딘가로 추정하고 있다. 수르트를 라피아 화산이 있는 이 무스펠하임으로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말에 리디안은 짧은 탄성을 뱉었다.
오딘의 추정대로, 헤임달의 핵이 무스펠하임에 있다면. 수르트의 폭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 경계의 숲을 지나서 간 파프니르 계곡. 그곳에 있던 몸은 뭔가요?”
“태양의 신전까지 찾아갔었나. 그건 헤임달이 버린 육체다. 헤임달은 비프로스트를 강제 개방함과 동시에 내 감시를 피해 침식으로 위장했지. 하지만 새로운 힘을 얻으면서 본래의 육체는 완전히 버려버렸다. 그건 이제 아무 힘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보리알의 물음에 오딘이 친절히 설명했다. 뭐라도 있을 줄 알았던 헤임달의 육신이 껍데기라니. 조금 황당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지만. 같은 신의 말이니 일단은 믿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난감해졌다.
“어쩌죠. 무스펠하임을 이 잡듯 들쑤셔야 하나?”
“그럼 몹 없는 지금. 침공 기간에 해야죠.”
“무스펠하임 도시에 보이는 몹들은 어떻게 하고요? 계속 도시에 머물 것 같긴 한데, 헤임달이 우리 방해하려고 밖으로 풀기라도 하면…….”
“흠… 클리어하면 안 되니까 피해가면서 찾아야 하나?”
다들 헤임달을 찾을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당장 어디부터 수색해야 할지, 길드 마스터들이 맵 구조를 떠올리며 고민하던 때, 리디안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오딘을 쳐다봤다.
“저…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헤임달은 왜 그런 짓을 한 건가요? 무슨 이유로 자신의 세계나 다름없는 이곳을 바꾸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서요.”
그 물음에 정신없던 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관심을 보였다. 헤임달의 의도라니. 그저 흔한 악역의 사연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세계 정복이라던가. 오딘 같은 최고신이 되고 싶은 욕구라던가……. 그런 흔해 빠진 악당의 마음에서 비롯된 욕구 아닐까요?”
리디안의 질문에 관심을 보인 괴자가 넌지시 말했다. 듣고 있던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에 헤임달을 향한 쓴소리가 하나둘 튀어나왔다.
별수 없이 방관하기만 하던 오딘도 점차 험악해지는 흐름이 싫었는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헤임달은 차원을 잇는 무지개다리의 파수꾼으로서, 수많은 세계를 지켜보며 모든 것을 꿰뚫었다. 하여 누구보다 차원에 대한 이해도 뛰어났으며 신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존재였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등장 이래, 오딘은 처음으로 쓴웃음을 지며 과거를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