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파프니르의 계곡】
“이보세요.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세요? 뭐가 그렇게 당당하신 겁니까?”
“아니, 부길도 아니고. 길마가 그러면 안 되죠. 진지하게 보면 이게 진짜 사람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적반하장으로 나오지 마세요. 지금 이거 가볍게 넘어갈 일 아닙니다.”
마제스티, 풍월주, 신사가 성큼 나서 프루츠맨을 질타했다.
한편 레온은 이마를 짚으며 다 자기 잘못이라며 자책했다. 그에 포푸리가 쪼르르 달려가 레온을 위로했다.
“길마 오빠!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지 마세요! 저 병X이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보 빼먹은 거예요!”
흥분한 탓에 포푸리도 목소리를 높였다. 프루츠맨이 그걸 듣고 인상을 구겼지만, 당장 눈앞에서 튀어나오는 질타를 감당하는 것에 급급했다.
멈출 줄 모르는 거센 비난에도 프루츠맨은 자꾸 회피할 생각만 했다.
“아! 진짜! 다들 너무하시네. 난 정말 좋은 마음으로 도와준 건데. 실수 한 번 했다고 이렇게 몰아가면 저도 기분 나빠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안 죽었잖아요. 나도 죽는 거,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충분히 이해했어요. 근데 안 죽었으니까 된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진짜……!”
“아아~ 그래요, 내가 잘못했어요. 됐죠?”
일반 길드원이라 지켜볼 수밖에 없던 리디안은 그 뻔뻔한 태도에 저도 모르게 와― 하고 입을 벌렸다.
프루츠맨은 이 상황이 거북하고 불쾌하다며 피해자인 척 굴고 있었다.
“프루츠맨 님.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요? 님 귀찮고 어렵다고 대충대충 할 정도로 가벼운 일로 보이세요?”
신사의 눈빛이 더 냉담해졌다.
“그리고 지금 태도가 그게 뭡니까? 안 죽었으니까 됐다고요? 지금, 님의 부주의함으로 이쪽 세계에 갈 피해는 생각은 안 해요? 더 나아가서 그 피해가 우리한테 돌아오면 어쩔 건데요?”
“아, 뭘 또 그렇게 비약해서…….”
“진짜 이해 못 하셨나 보네. 다시 알려줘요? 우리가 도시 클리어해서 생기는 결계가 이쪽의 침식을 가속화하고 헤임달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본인이 지금 뭘 착각하고 있는지?”
프루츠맨은 잠시 입을 다물고 눈만 끔뻑거렸다. 어쩐지 그가 당황하는 게 보여 리디안은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구나, 하고 탄식했다.
“이거 괜찮을까요?”
문제가 된 프루츠맨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시끄러울 때. 크라이그가 옆에 있는 박회장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박회장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흠… 결계석 작동으로 생기는 효과가 사실 어떤 영향인지 몰라서요. 저도 확답은 못 하겠네요. 근데 브륀힐드나 오딘 반응 보면……. 확실히 침식에 빠른 영향을 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거네요.”
“글쎄요. 제 생각엔 이미 침식이 반 이상. 아니, 어쩌면 7~80% 이상 진행된 것 같거든요? 오딘의 군대도 보아하니 다 침식당하거나 그림자가 된 거 같고……. 더 침식될 존재들이 없다면 의외로 별 상관 없을지도 모르죠?”
“만약, 결계 때문에 헤임달 개인의 힘이 더 커졌다면요?”
대화를 듣던 리디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그럼, 말이 달라지겠지만… 결계 작동으로 헤임달 세력이 커진다면 벌써 뭔가 반응이 왔어야 해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침식을 가속하는 안테나 역할. 플러스로 라그나로크에서 도시를 지킬 진짜 결계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헤임달이 오딘을 밀어내고 이곳을 집어삼키려고 해도, 어쨌든 도시랑 주민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회장 님은 무스펠하임 결계 작동으로 큰일이 없을 거라 예상하시는 건가요?”
“네. 개인적으로는요. 저는 차라리, 그거보다 ‘클리어 보상’에 더 관심이 가네요. 저 문구대로라면 도시별 보상으로 지급되는 거 같은데. 어떤 보상일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저 보상은 어떻게 봐도 플레이어의 클리어를 유도하고 환심을 사려는 수작이었다.
지금이야 헤임달이 흑막이라는 게 밝혀져 클리어가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몰랐으면 보상에 이끌려 더 분발했을지도 모른다.
“흠. 아무 일 없다면야 괜찮겠지만… 여론은 이미 극악이네요.”
크라이그는 플레이어 무리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대부분 프루츠맨을 아니꼬워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프루츠맨이 레온의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어설프게 일 처리를 한 것에 모두 잘 걸렸다며 그에게 쓴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일반 길드원이 잔뜩 몰린 저 뒤에서는 들으란 식의 노골적인 욕설이 난무할 정도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뻔뻔하던 프루츠맨도 잔뜩 기가 죽었다. 레온이 점잖게 상황의 심각성을 짚어주니 과일박스 길드는 일동 침묵했다.
화를 낸 사람이 되레 이상하게 보이는 애매한 그림이었다.
마제스티는 이마를 짚으며 분을 삭였다.
생각이 짧은 프루츠맨을 상대로 화를 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계속 화내봐야 입만 아프고 프루츠맨을 계속 붙들고 대치하는 것도 분위기에 좋지 않다. 누구 말마따나 여기서 손절하고, 차라리 변수에 대응할 방책을 마련하는 게 나았다. 그 의견을 전달하니 레온도 깊이 동감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레온이 프루츠맨에게 딱 잘라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참 안타깝지만… 여기서 서로 얼굴 붉혀봤자 클리어가 무효되진 않죠. 어쨌든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요. 성의는 감사하지만, 앞으로는 저희끼리 움직이겠습니다. 그러니 과일박스분들은 이제 미드가르드로 귀환하시면 될 것 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정중하면서도 교묘하게 기분 나쁜 말이었다.
프루츠맨은 새빨개진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의 길드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실수를 지적당하고 퇴출당했으니 창피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100% 본인의 과실이라, 프루츠맨은 반박 한 번 못한 채 부들부들 어깨를 떨다 귀환을 알렸다.
그렇게 오 분도 되지 않아 과일박스 길드가 전부 사라졌다.
깨끗하게 정리된 무스펠하임 도시 앞에 남은 건, 헤임달을 찾으러 가다가 헐레벌떡 뛰어온 전투 길드원들뿐이었다.
몬스터의 시체가 다 사라지고 바람만 휑하자 그들은 망연자실 한숨만 뱉었다.
“아… 내가 괜히 저 사람 이름을 들먹여서…….”
처음 과일박스의 지원을 추진했던 샤봉이 여기저기 눈치를 살폈다. 길드 마스터들은 샤봉의 잘못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샤봉은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들 허무하시겠지만. 그래도 사망자가 없었다고 하니 다행 아닙니까. 무스펠하임 클리어는 예상치 못한 전개긴 한데……. 일단 당장 나타나는 변화가 없으니, 전원 무사에 의의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러니 결계에 관한 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헤임달부터 찾읍시다.”
허탈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제안을 한 이는 아퀴나스였다.
그에 사람들도 정신 차리고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럼 원래대로 다시 돌아가죠. 가는 길이나 도착해서 혹시 이상한 낌새 있으면 바로 연락 돌리기로 하고요.”
예로부터 빨리, 빨리 움직이길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신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죽박죽 섞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길드별로 헤쳐 모였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별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이 사고의 원흉인 프루츠맨을 욕하는 것으로 감정을 풀었다.
“아오, 진짜 그 인간은 하는 짓마다 밉상이냐.”
“대가리에 진짜 뭐가 들은 걸까요? 진짜 얼마나 생각이 없으면 내용 이해할 생각도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하지?”
“에휴. 명색이 길마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게 좀 짧네.”
“좀이 아니라 많이 짧죠.”
“그나저나 진짜 결계석 작동으로 우리한테 불리해지면 어쩌죠?”
“윤재한테 들어 보니까, 저게 아마 침식 증폭기 역할을 하는 거 같다더라. 근데 박회장 님은 여기서 더 침식될 애들이 없어서 이제 괜찮을 거라고 하던데?”
경계의 숲으로 돌아가던 중, 그새 크라이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노네임이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도 박회장이 아는 게 많고 추리력이 높지 않은가. 박회장의 의견이라 하니 사람들은 금세 끄덕이며 안심했다.
“저기, 길마님. 괜찮으세요?”
다리를 지나 백검의 파티와 갈라졌을 때였다.
조용히 걷던 리디안은 앞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한숨을 의식했다. 한숨의 주인은 마제스티였다.
그는 시종일관 허공을 두드리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무거운 한숨을 뱉었다. 원인은 아마도 무스펠하임의 결계석 작동 때문이겠지만. 도저히 그냥은 두고 보지 못할 모습이었다.
“아… 제가 너무 정신 사나웠나요?”
크라이그마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마제스티가 멋쩍게 웃었다. 리디안은 그런 게 아니라며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리디안의 옆에 있던 크라이그는 그런 마제스티를 향해 한마디 건넸다.
“회장님 말처럼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럼 좋지. 완전 다행이지.”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아까부터 누구랑 계속 연락하는 거예요?”
“아, 레온.”
리디안은 마제스티와 레온이 친하다는 걸 떠올리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일박스가 떠나고 무스펠하임 앞에서 각자의 목표지로 갈라서기 직전. 리디안은 레온의 어두운 표정을 봤다. 아무래도 프루츠맨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달한 장본인이니 그럴 만도 했다.
“왜요. 자기 탓인 거 같다고 울기라도 해요?”
크라이그는 약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제스티는 크라이그가 레온의 예전 성격을 알고 있어 피식 웃어넘겼다.
“안 그래도 사이 때문에 기죽어 있었잖아. 지금 자존감 떨어져서 금방이라도 굴 파고 들어갈 분위기다.”
사이. 그 이름이 나오자 크라이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암 군주를 상대할 때, 사이의 반응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고 과도했던 건 사실이다. 과거의 관계를 떠나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거부당하면 누구라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다 업보야, 업보.”
지나가던 삼촌이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다들 그에 동의하며 끄덕였고 마제스티는 쓴웃음만 지어야 했다.
* * *
다시 도착한 경계의 숲은 여전히 별 이상이 없었다. 레기온 길드는 파프니르 계곡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 앞에 멈춰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확인하고 올게요.”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삼촌이 비장한 눈으로 통로를 쳐다봤다.
장난스럽게 삼촌을 떠밀었던 마제스티도 막상 들어가려는 삼촌을 보니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에 씩 웃은 삼촌이 훌쩍 통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토의 짧은 비명과 함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리디안은 마른침을 넘기며 일렁이는 통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모두가 오만 가지 걱정을 하던 중. 이질적인 통로에서 삼촌의 머리가 쑥 튀어나왔다. 헤실거리는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괴이한 모습에 적혈구가 쌍욕을 입에 담았다.
“야이, 개시키야! 놀랐잖아!”
“앗, 나 지금 모습 이상한가? 어, 암튼 여기 완전 멀쩡해요! 진짜 신기한데? 분위기가 뭐라고 해야 하나……?”
이맛살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했지만, 마제스티나 다른 길드원들은 삼촌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일반인이 먼저 툭 튀어나온 삼촌의 머리통을 한 대 치곤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자자, 나머지 분들도 차례대로! 안에 들어가서 혹시 뭔 일 생기면 뒤돌아보지 말고 바로 귀환하세요. 알았죠?”
가볍게 공지한 마제스티가 먼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리디안도 쪼르르 크라이그의 뒤를 따라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와. 여기 뭐야? 진짜 신기하네?”
“공기의 질이 다른데요?”
“하늘 봐. 엄청나게 파래.”
더욱 더 상쾌한 공기, 더 생생한 시야와 현실감은 처음 온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낯선 미지의 구역이라 무서울 법도 한데. 워낙 풍경이 신비롭다 보니, 길드원들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감탄하기 바빴다.
“가다 보면 사슴 같은 동물도 나올 거예요.”
파프니르 계곡에 한 차례 와본 경험이 있는 도도가 웃으며 말했다. 그에 자토가 방방 뛰며 아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까지 살짝 들떠 새로워하는 모습에 리디안은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십여 분 후.
신전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위에서 헐떡이는 신음과 곡소리가 난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