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여신의 손길, 신성한 축복!”
상황 파악이 빠른 페페는 쭉쭉 떨어지는 리디안의 HP와 주변 사태를 파악했다. 중독은 그리 급한 게 아니기에 페페는 급한 대로 이모탈의 디버프부터 풀었다. 다시 돌아온 쿨타임에 리디안도 이모탈의 마지막 디버프를 풀었다.
순식간에 자유로워진 이모탈 역시 사태를 파악하곤 재빨리 회복 스펠과 신축을 번갈아 사용했다. 순차적으로 풀려난 세인트들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곧장 다른 곳으로도 손을 뻗었다.
자유가 된 세인트가 많아질수록 리디안은 차츰 자신의 포지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장 바깥쪽에 있던 그레이스와 먹구름은 풀려난 즉시 뜀박질해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파티의 세인트들을 도왔다.
그렇게 세인트들이 먼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브륀힐드가 검기를 날렸다. 그러나 다행히 일회성이었고 마침 리디안이 있는 구역이어서 위험하진 않았다.
“자리 이탈하는 사람들 체크요!”
반경 제한 없는 디버프인 탓에 뒤처리가 오래 걸렸다.
괴자는 혼란으로 인해 자리를 이탈하는 원거리들을 쫓아다니며 신축을 사용했다. 워낙 인원이 많아 혼란스러웠지만, 세인트들의 연계는 빨랐다. 덕분에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체 저주……. 이거 위험하네요. 방금 건은 리디안 님이 운 좋게 심각한 디버프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지. 세인트 전부가 스펠 불가 상황이었으면 말짱 전멸했을 수도…….”
정신 차린 신사는 주변을 둘러본 후 식은땀을 흘렸다. 밀려오는 증언에 의하면 디버프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던 모양이지만. 혹시라도 브륀힐드가 그사이에 다른 공격 패턴을 보였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혹시 보랏빛 구체가 생길 때. 세인트들이 자기 자신한테 신축을 걸면 어떨까요? 짧지만 그래도 면역 효과가 적용되니 타이밍만 잘 맞추면 안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리디안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황해 아무런 생각도 못했을 텐데. 신기하게도 잔머리가 빨리 굴러간 것이 리디안은 다소 신기했다.
고맙게도 이트가 방금 그 말을 하려고 했다며 리디안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이어 다른 세인트들도 맞장구쳤다. 하지만 완벽한 대응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시간이 일정하다면 타이밍을 맞춰볼 순 있을 거예요. 근데 게임 때처럼 보스의 쿨타임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어지간히 감이 좋지 않은 이상 맞추긴 힘들 거예요.”
페페가 쓰게 웃었다. 리디안도 그걸 알아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대비책이 하나 생겨난 셈이다. 이 말이 세인트들에게 전해지니 호응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일반 랭커에 속한 일부 세인트들은 머뭇거리며 두려워했다. 중심부가 아닌 탓에 브륀힐드의 손짓을 눈여겨볼 수도 없으며, 경험이 적어 주변 상황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인트분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주 패턴 또 시작되면 앞에서 얘기해 줄 거니까 그때 브륀힐드 머리 위 주시하고요. 보라색 빛 움직이는 거 보면서 눈치껏 신축 쓰세요!”
이모탈의 제자답게, 노련한 무니가 듬직하게 일반 세인트들을 이끌었다. 허둥대고 있을 나쵸를 걱정한 보리알과 햄스터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검기 날아옵니다!”
브륀힐드는 다시 자리를 잡을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필이면 일반 랭커가 가득 몰린 방향으로 검기를 날렸다. 비명 일색에 리디안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쉼 없이 회복 스펠을 외웠다.
잇따른 검기 패턴에 세인트들이 힘들어하는 만큼. 딜러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근거리들의 경우 더 그랬다. 탱커의 도발 스킬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이 랭커들은 노련했다. 상대적으로 전투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일반 랭커들이 동선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하이 랭커들은 거침없었고 자기들끼리의 호흡도 척척 맞았다.
나이트들은 레온과 크라이그. 햄스터와 박회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서 검술류와 검기류를 구사했다. 공격기 구조상 목표에 바짝 붙을 수밖에 없는 파이터나 바바리안, 로그는 날쌔게 비집고 들어가 타격했다. 그러다 쿨타임이 다 되면 뒤로 물러나 일반 랭커들에게 눈짓해 대미지를 넣도록 유도했다.
특성상 목표의 뒤로 돌아가야 하는 섀도우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대장군과 페이지, 작약, 토토리아, 삼촌 등을 따라 차례대로 순환했다. 그러나 문제는 브륀힐드가 은신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었다.
일반 공격에 속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브륀힐드는 가끔 검으로 주변을 베거나 찔렀다.
은신한 섀도우 헌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공교롭게 브륀힐드의 곁을 지나던 대장군이 흠칫 놀라 공격도 못하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은신 효과는 그대로 먹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원래 이쪽 세계의 브륀힐드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게임 몬스터로 설계된 ‘브륀힐드’에 따라 움직이는 건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패턴만 봐도 까다로울 건 확실하네요.”
훤히 보이는 고생길에 대장군이 멋쩍게 웃었다. 다른 이들도 끄덕이며 한숨을 뱉었다. 여기서 또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 모두가 긴장하던 때였다.
HP 95%가 된 브륀힐드가 돌연 백 스텝 했다. 그 날렵한 몸놀림에 끊임없이 달라붙어 공격하던 근거리 딜러들은 엉뚱한 허공을 휘저었다.
보스가 물러설 경우, 보통 특정 패턴을 사용할 확률이 높다. 그랬기에 딜러들은 함부로 쫓아가지 못한 채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예상대로 브륀힐드는 휘두르던 검을 들어 대뜸 지면에 꽂아버렸다. 브륀힐드의 주 무기가 검인 만큼, 리디안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뭘 할까,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사이 브륀힐드는 공손하게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든 채 스르륵 눈을 감았다. 리디안은 어쩐지 대기 자세 같다며 갸웃했다.
“용맹한 신의 전사들이여. 우리의 적을 말살하라.”
브륀힐드에게서 주술과도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에 모두가 기겁했다. 누가 들어도 저건 소환을 뜻하는 말이었다.
설마설마했던 문제가 곧장 터질 줄이야. 낭패한 신사는 플레이어들에게 서둘러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
예상대로 브륀힐드의 발 앞으로 백색 소환진이 나타났다. 그 뒤, 마법진 위에서 나타난 건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악하게 웃는 작은 소년 요정이었다.
거짓말쟁이 레빈. 오전, 브륀힐드가 날린 무닌과 후긴을 무차별하게 공격한 존재였다.
용맹한 전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지만, 레빈은 ‘레빈의 숲’ 보스 몬스터다. 더욱이 알프하임의 네임드로 나타났기에 간부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뭐야. 네임드 하나만 소환한 거야? 다른 몹들은?”
보통의 보스가 10개 개체 이상의 하위 몬스터를 소환하는 편이라, 리디안도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생겨난 마법진은 하나였고 레빈 말고는 그 어떤 기척이 없었다.
“설마 하나씩 소환하는 건가?”
“시간마다 텀을 두고 차례대로 소환할 수도 있어요.”
보스전에 익숙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추측했다. 그 사이 브륀힐드를 살피던 파파가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검이요! 검 끝 색이 변해있어요!”
정말이었다. 리디안은 어느샌가 붉은빛을 머금은 브륀힐드의 검 끝을 보며 휘둥그레 눈떴다.
그 빛은 마치 맺혀 있는 이슬처럼 반짝였고 붉은 띠를 회전하며 불길하게 요동쳤다. 뭔가를 뜻하는 신호 같았다. 그에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했다.
신사는 뒤로 물러난 브륀힐드가 가만히 정지하는 자세에 주목했다.
“아무래도 대리를 내세운 것 같습니다. 군단장급 포지션답게 중간, 중간 부하 격 존재를 불러서 싸우게 하는 것처럼요.”
“헐… 혹시 그동안 혼자 회복하는 건 아니겠죠?”
“글쎄요. HP 게이지가 멀쩡한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붉게 빛나고 있는 저 검이 걸리긴 하네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겠다며 신사가 찝찝하게 답했다. 질문했던 테세우스는 일단 계속 주시하는 수밖에 없겠다며 한숨 쉬었다.
“지금부터 레빈 공략에 들어갑니다! 브륀힐드 움직임 주시하면서 신속히 레빈 처리하세요!”
공략 대상이 바뀌자마자 하늘에서 붉은 화염구가 떨어졌다. 거짓말쟁이 레빈의 특기 중 하나인 메테오였다. 그러나 붉은 태양 신전의 보스, 타락의 사제가 쓰던 것과 비교하면 별것 없다. 그래서 그런지 플레이어들은 떨어지는 화염구 세례에도 심드렁했다.
레빈은 화염 공격에 능한 요정족이다. 하나 공격 마법 대다수가 불 속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 속성에 약하다.
“매지션들! 수 속성 위주로 넣으세요!”
아직도 어리바리한 일반 랭커 매지션들을 위해 맥스비가 친절히 외쳤다. 게임 땐 공략대로 발 빠르게 대응하더니.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매지션들이 그제야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무속성인 서모너들도 질세라 재빨리 소환수를 조종했다.
“어? 색깔이…….”
떨어지는 메테오 속에서 여신의 손길을 외우던 때였다. 리디안은 얼핏 보인 브륀힐드의 검에 눈을 깜빡였다.
검의 끝부분만 붉었었는데, 이제는 그 붉은 부분이 한 뼘 더 올라와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눈치채곤 수군거렸다.
“야, 야! 저거 색 계속 변한다! 완전히 붉어지면 무슨 일 생길 것 같다!”
걱정 많은 삼촌이 호들갑 떨며 크라이그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한참 공격에 몰두하던 크라이그는 찌푸리면서도 끄덕였다. 그의 직감으로도 검의 색상 변화는 불길해 보였다.
술렁임이 번지자 딜러들도 초조해졌다. 시간제한에 익숙한 하이 랭커들은 레빈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리디안도 적당한 때에 다가가 쿨타임에 맞춰 여신의 영역을 사용했다.
다행히도 레빈의 패턴은 대체로 평면적이다. 마법 공격은 단순한 데다 크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성가신 디버프 역시 화염 상태 하나뿐이다.
적정 레벨대 플레이어에겐 골치 아픈 상대지만, 스펙이 화려한 하이 랭커들에겐 고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일반 랭커들에게도 레빈은 꽤 만만한 상대였다.
“참격난무……!”
마지막 레온의 일격으로 레빈은 처리됐다.
[알프하임] [일반 몬스터 : 57 / 999] [네임드 몬스터 : 1 / 9] [보스 몬스터 : 0 / 1] [도시 결계 : 미작동 중]네임드라 그런지 진행 카운트가 떴다. 리디안은 처리된 일반 몬스터의 숫자가 꽤 많아 쓰게 웃었다. 오전, 침식된 브륀힐드를 피해 귀환한 직후. 성문 밖에 남아있던 파티가 멋모르고 잡은 결과였다.
“후… 예상보다 빨리 잡았네요. 9분 10초 지났나요?”
시간을 확인한 레온이 힐끔 브륀힐드를 쳐다봤다. 브륀힐드의 검은 60% 이상 붉어진 상태였다.
거짓말쟁이 레빈이 쓰러지자, 브륀힐드의 검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간부들은 시간제한을 확신했다.
“정말 끝까지 붉어지면 뭔가 새 패턴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다른 소환이 이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맞는 모양이에요.”
그래도 실마리를 찾아 다행이라며 풍월주가 기뻐하던 순간이었다. 양손으로 검을 쥔 채 석상처럼 서있던 브륀힐드에게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입가에서 주르륵 피를 흘린 그녀는 비틀거리며 반쯤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브륀힐드의 HP가 10% 더 하락했다.
“어? 갑자기 85%?”
믿어지지 않는 널뛰기에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와, 뭐야. 설마 시간 내에 잡으면 HP 줄어드는 형식인가?”
정말 그렇다면 신선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한결 편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정보 없는 브륀힐드를 상대로 삽질하는 것보다 익히 아는 네임드들을 공략하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에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방금대로라면 공략이 빨라진다. 남은 네임드는 여덟 마리. 앞으로 브륀힐드 대신 네임드를 상대하며, 브륀힐드의 HP 80%를 더 줄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 전에 딜러들의 공격으로 HP를 더 줄인다면 그보다 더 빨리 잡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네임드를 모두 잡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잠깐… 반대로 생각해 봐요. 시간 내에 잡지 못하면 페널티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인데. 이후에 소환될 네임드들의 힘이 같다고 단정 짓기도 힘들어요. 오전에 우리가 본 네임드, 기억하세요?”
여태 조용하던 핑크푸크가 진지한 얼굴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잠시 좋아하던 리디안도 아차, 하며 오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브륀힐드와 함께 있던 네임드들의 등급을 나눈다면 레빈은 하급이다. 레빈부터 소환된 걸 보면, 브륀힐드의 소환에도 등급 순서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 마녀 자매나 고목나무 왕이 가장 마지막에 소환되겠군요. 오전에 본 네임드 중에 헬하임 출신은 그 셋밖에 없었으니.”
“걔들 마주치기 전에 분발해야겠네요.”
히죽 웃는 딜러들의 대화에 리디안은 신기해했다. 네임드 소환으로 HP를 깎는 전투라니. 그간의 노르드 월드에선 보지 못했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