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미미르의 샘물로 빚은 술 0 / 1] [빌 우드가 좋아하는 술. 미미르 산맥에 사는 이발디가 제조할 수 있다.]콧잔등을 찌푸린 리디안이 한숨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고. 긴 수다 끝에 결론이 나오니, 주변에서 딴짓하던 일행들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간 빌 우드를 보며, 노네임이 혐오스러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투덜거렸다.
“영감탱이, 고상하게 생겨서는 술주정뱅이인가 보네. 술 처먹고 싶었으면 초반부터 확실하게 얘길 하던가. 시간 아깝게 빙빙 돌려 말하고 지X이야.”
“그러게요. 어디 알코올중독자 설정이라도 넣었나. 웃기네.”
“그래서 어디로 가래요?”
“미미르 산맥, 이발디를 찾아가래요.”
곰곰이 생각하던 적혈구가 뭔가 생각난 듯 탄성을 뱉었다.
“아, 이거. 술 만들어 줄 테니까 재료 구해 오라는, 그 퀘스트 같은데? 예전에 지인이 한 번 한 적 있는 것 같다. 재료가 그때마다 랜덤으로 나올 거야, 아마.”
“미미르 산맥에 이발디면… 맵 끝에 있는 비밀 상점 아닌가?”
크라이그도 흐린 기억에 갸웃했다. 미미르 산맥은 저레벨 필드라, 그나마 최근 기억이 뚜렷한 노네임이 자신 있게 손을 들어 확신했다.
헤른과 파파도 뒤늦게 기억난 듯 아, 하며 맞장구쳤다. 리디안이야 언급된 시점부터 떠올렸기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덕분에 일행은 헤매지 않고 곧장 필드로 향해 이발디의 비밀 상점을 찾을 수 있었다.
“어서 와. 근데 돈은 있어? 돈 없으면 냉큼 꺼져.”
[지식의 연구자 이발디]이번에는 어린 요정족 소년이 일행을 거칠게 반겼다.
이발디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지저분한 창고 느낌이 충만한 공간이었다. 비밀 상점이라는 설정에 맞게 각종 물약을 팔던 곳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돈 있냐고 묻는다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어이없을 뿐이다.
이발디의 건방진 첫인사에 모두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하, 이 새끼. 이렇게 직접 보니까 더 싸가지 없네.”
게임 시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노네임이 주먹 쥔 손을 이발디의 머리통 위에 멈춘 채 부르르 떨었다.
이발디는 겉보기엔 다크서클이 심하게 내려앉은 삐뚤어진 소년상이었다. 물론, 요정족이라 겉보기와 달리 꽤 나이를 먹었겠지만……. 그래도 외모로만 보자면 거만한 꼬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별로 소지 골드가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말도 걸 수 없던 특이한 NPC였다. 그래서 플레이어라면 초보 시절 한 번쯤 이발디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었다. 그러니 모두의 시선이 고울 수 없었다.
“뭐야, 술? 우드 영감이 아직도 살아 있어? 끈질기네. 빨리 죽어버리지. 에잉, 술이라니……. 귀찮네. 물론 내가 빚은 술이 제일 맛 좋긴 한데.”
퀘스트가 진행 중인 탓에 이발디 역시 리디안에게 반응했다. 그러나 빌 우드처럼, 이발디도 사람처럼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자기 할 말만 지껄였다.
얘도 참 말이 많구나. 일행이 좁은 상점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사이, 리디안은 점점 길어지는 텍스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게 일기장은 뭐 하러 주워 와서 귀찮게 해? 혹시 엘로나가 숨겨 놓은 눈이라도 찾게? 그런다고 신의 노여움이 풀리겠냐? 뭐, 용기는 가상하네. 하여튼, 너희 인간들은 항상 사고부터 치고 수습할 생각을 한다니까. 그리고 이렇게나 늦게 찾아와 놓고 인제 와서 무슨 속셈이야? 그래 봤자 결말은 정해져 있는데.”
이발디가 가늘게 뜬 눈을 흘겼다. 동시에 혀를 차는 목소리에 리디안은 불편한 미간을 찡그렸다.
“에휴. 어리석다니까, 정말. 한심해, 한심해. 아, 그래서 영감에게 줄 술이 필요하다고? 멍청하긴. 내가 그걸 공짜로 줄 것 같냐? 받고 싶으면 합당한 노동력을 보여. 골드? 내가 너 따위보다 없을까? 그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게 좋겠어. 아, 그래! 마침 헬하임에 가기 싫었는데, 나 대신 숲 불개미 사체 좀 구해 와. 깔끔하게 분해해 오면 더 좋고. 그럼 술 줄게.”
[이발디의 요구 목록] [숲 불개미의 더듬이 0 / 50] [숲 불개미의 다리 0 / 50] [숲 불개미의 껍질 0 / 50]“와, 요놈. 되게 건방지네?”
마지못해 쭉 듣고 있던 리디안은 어이없어 실소했다. 빌 우드와는 다른 느낌으로 얄밉게 깐족거리던 이발디는 할 말이 끝나자마자 무표정이 되어 일행을 외면했다.
크라이그는 쭈그려 앉아 있는 리디안을 향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리디안은 한숨과 함께 일어섰다.
“요 건방진 요정이 무생숲에서 불개미 부위별로 50개씩 구해 오래요.”
“저런. 불개미면 A급 난이도로 가야 하는데, 50개씩이면 그냥 사냥 한 타임 돌게 생겼네? 무생숲 퀘템 잘 나오는 편도 아니잖아?”
찌푸린 적혈구의 목소리에 크라이그가 그러게요, 라며 동의했다.
‘무생숲’ A구역이면 평소 사냥하던 필드나 던전보다 수준 높은 곳이었다. 또 65레벨인 헤른이 서브 딜러로 크게 활약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적혈구는 해맑은 헤른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격수가……. 윤재, 너 혼자서 괜찮겠어?”
“흠. 그냥 올공 세팅으로 해보죠. 어차피 리디안 님 이제 스카디 힐러라 크게 위험하지도 않을 것 같고요. 그럼 퀘템 물약 따로 안 먹어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두 사람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이 리디안을 향했다. 오~ 하는 작은 감탄에 리디안은 웃으며 땀을 흘렸다.
* * *
파티는 신속하게 세팅을 마치고 이동했다.
노네임과 헤른은 처음 와보는 ‘무생숲’의 생명력 넘치는 풍경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반면 리디안은 길드 가입 전, 낯선 사람들과 파티 플레이 후 이노센트, 백검 부부에게 또 얽혀 한 번 경험해 본 곳이었기에 그들에 비해 꽤나 무덤덤했다.
그때 그랬었지, 하며 추억을 회상하던 중 문득 그날 ‘무생숲’에서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중에 헤른이랑 같이 와봐야겠다고 했었는데. 속으로 실소하던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헤른을 바라봤다. 거짓말처럼 헤른과 파티를 하고 이 자리에 서있었다. 의도치 않게 소원이 성취된 셈이었다. 그게 뭔가 웃기기도 해, 리디안은 혼자 몰래 웃음을 삼켰다.
“와……. 여기 70 초반에 개처럼 사냥할 때 틀어박히던 곳인데, 엄청 오랜만이네.”
파파가 추억에 젖어 말했다. 적혈구와 크라이그도 마찬가지였기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다들 설레는 분위기에 헤른이 갸웃했다.
“여기는 뭐 조심해야 할 거 없어요?”
“바닥에 있는 개미집?”
때마침 가까운 곳에 불쑥 산처럼 솟아오른 모래 더미가 있었다. 그걸 검지로 가리킨 리디안은 확인받기 위해 크라이그를 빤히 쳐다봤다. ‘맞죠?’하는 기대 섞인 물음에 크라이그는 곧장 수긍했다.
“맞아요. 저거 건드리면 개미 떼 나오니까 저것만 조심해 주시면 돼요.”
“넵, 형님!”
넉살 좋은 헤른이 씩씩하게 약속했다. 마찬가지로 초행길인 노네임의 약속까지 받아 내고 나서야. 본격적인 사냥을 위해 리디안과 파파가 바삐 스펠을 외웠다.
리디안은 신의 수호, 성스러운 은총, 보호의 빛, 그리고 영광의 손길과 여신의 손길까지 중첩되도록 시전한 뒤 딜러들에게 이속 증가인 성령의 축복까지 걸었다.
최근에 배운 여신의 손길을 제외하면 버프 자체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어쩐지 전보다 더 차분해진 리디안의 모습에 헤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리디안이 들고 있는 스카디의 영광이 몹시 범상치 않았다.
최고 존엄 무기답게 온통 금색으로 번쩍번쩍했고 괴자가 다양하게 들고 있던 것들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와… 누나, 뭔가 되게 고렙 같아요. 살짝 페페 님 느낌 난다고 해야 하나?”
그 소소한 촐싹거림에 리디안은 몹시 쑥스러워했다.
파파의 공격력 증가 버프까지 완료되자 대기하고 있던 적혈구가 앞장섰다. 베테랑 탱커답게 적혈구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개미들을 서슴없이 도발했다. 이족 보행이 특기인 붉은 개미들은 스킬에 이끌려 사납게 달려들었고 인정사정없이 적혈구를 물어뜯었다. 적잖은 고통에도 적혈구는 표정만 조금 구길 뿐 비명 한 번 없이 덤덤하게 방패로 후려쳤다.
이윽고 다섯 마리의 숲 불개미가 질서 있게 적혈구를 빙 둘러 포위했다. 진열이 완성되자, 뒤에 있던 노네임이 주섬주섬 디버프 필드를 깔았다. 모든 필드가 깔리고 나서야, 이번에는 크라이그가 솔선수범하게 뛰어나갔다.
자유자재로 검을 휘두르며 능숙하게 검기를 날리는 크라이그의 모습에 헤른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다. 프리피케에는 크라이그 같은 근접 딜러가 없어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나마 섀도우 헌터인 페이지가 근접이긴 하나, 용맹무쌍한 나이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래전 캐니와 비교하자니 격이 달랐다.
“여신의 손길.”
그래도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리디안의 전체 회복 스펠이었다. 최고 존엄 무기, 스카디의 영광을 장착한 덕분에 리디안의 회복력은 100%에 고정되어 있었다.
헤른은 적혈구와 크라이그의 HP가 순간순간 꽉 차오르는 광경에 쩍 입을 벌리며 희열했다.
“와, 진짜 효과 대박이네. 태양 애들이 왜 그렇게 물망초 찬양했는지 알 것 같다.”
집중하던 적혈구도 한 번의 힐로 HP가 가득 차는 현상이 신기해 중얼거렸다.
이전에도 리디안의 힐은 안정적이긴 했지만, ‘스카디’로 인해 더 완벽해진 느낌이었다. 탱커로서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더욱더 든든해진 지원에 적혈구가 싱글벙글 웃었다.
낯선 파티 플레이에 감탄만 하던 헤른도 부랴부랴 활을 들어 공격을 시도했다.
일반 공격인 화살과 스킬이 적절하게 쏘아지자, 크라이그와 적혈구를 비롯한 파티의 시선이 잠시 헤른에게 머물렀다. 리디안의 ‘스카디’ 힐 덕분에 잠시 한눈팔 틈도 생긴 것이다.
헤른은 크라이그의 공격으로 피가 가장 많이 빠진 개미부터 노렸다. 무조건 한 마리를 맡아 붙들려 하던 아이쿠와는 다른 성향이었다. 물론 아이쿠와는 달리, 헤른은 크라이그와 레벨 차이나 공격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서브 딜러로서 가장 현명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서모너인 도도와 함께 다녔다면 거진 쩔만 받아 파티 플레이에 미숙할 거라고 예상했건만, 헤른은 생각보다 눈치 있고 센스 있게 일점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크라이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저 예감이지만, 아이쿠처럼 사냥 스타일을 입 아프게 지적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숲 불개미의 더듬이 1 / 50] [숲 불개미의 다리 1 / 50] [숲 불개미의 껍질 2 / 50]딜러들이 개미를 처리할때마다 퀘스트 아이템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더듬이며 다리며, 괴이한 부위에 리디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잠깐 열어 본 인벤토리도 썩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아이템의 형태 역시, 이름 그대로 따라갔다. 정말 실제 개미 크기면 모를까, 개미의 크기가 성인 남자의 허리까지 오는 크기라 디테일에 있어서도 꽤 그로테스크했다.
윽, 신음한 리디안은 못 본 척, 인벤토리를 닫았다.
인벤토리로부터 시선을 돌린 리디안은 다시 힐에 주력했지만, ‘스카디’ 덕분에 힐에 있어 MP는 몹시 넉넉했다. 솔직히 그냥 적당히 타이밍 맞춰 한 번씩 쓰면 모두의 HP가 꽉 차올랐다. 바삐 연신 힐을 하던 지난날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쯤 되니 슬쩍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지만, 사람 목숨을 놓고 차마 그럴 수 없어 리디안은 다시 집중했다. 역시 아이템발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몹시 안정적이긴 하지만, ‘스카디’를 좀 더 효율적으로 쓰려면 관찰력을 높여 힐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이 경우에는 좀 더 어렵고 정신없는 던전이 연습 상대로 제격이긴 하지만……. 굳이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말 안 해도 분명 크라이그가 조만간 사냥 난이도를 올릴 테니까.
* * *
“맞다. 저 이노 언니가 집 팔아 준대요. 크라이그 님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내일 시간 나면 바로 옮기려고요.”
한바탕 몹을 휩쓸고 이동하던 때, 크라이그와 나란히 걷다 번뜩 생각난 리디안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때까지도 별생각 없던 크라이그의 눈이 잠시 커졌다.
크라이그는 문득 니플헤임에서 이노센트가 짓던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선물. 무심코 지나쳤던 그 단어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크라이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작게 신음한 크라이그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장난으로 던졌던 말이 꽤 당혹스럽게 다가오고 말았다. 그러나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무른다고 뜻대로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대로라면 이노센트는 분명 리디안을 3번 거리에 넣어버릴 것이다. 크라이그는 다소 심각한 눈으로 고민했다.
옆집, 이웃. 친해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그만큼 얼굴 볼 일이 잦아진다는 뜻이었고, 자주 만나다 보면 분명 지금보다 더…….
‘괜찮으려나?’
나지막이 한숨 쉰 크라이그는 슬쩍 리디안의 표정을 살폈다. 앞으로 닥칠 상황도 모르고 태평하게 실실 웃는 얼굴을 보니, 더욱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반대로 제 옆집인 것에 놀라 허둥지둥 당황할 리디안을 떠올리니, 그것도 나름대로 귀여울 것 같았다. 그에 작게 피어오른 양심적 고민이 홀라당 날아갔다.
벌써 그려지는 리디안의 맹한 얼굴에 절로 헛웃음이 흘렀다. 갑작스러운 웃음을 목격한 리디안이 의문의 시선을 보냈지만. 크라이그는 모른 척 시선을 회피해 버렸다.
원래, 굴러들어온 기회는 발로 차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