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1
11
백명희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이가 기사에 실렸다고?”
기익. 거칠게 일어난 탓에 의자가 바닥에 긁혔다. 백명희가 급하게 강채영 쪽으로 다가갔다.
“그렇다니까···!”
“채영아. 잠깐만.”
핸드폰을 들이미는 강채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는 강채영의 어깨너머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오는 강석이 보였다.
“석아. 이게 대체 무슨 소리라니?”
“아. 그게요···”
설명을 좀 해주란 뜻에서 한 말이었으나, 강석은 코끝을 검지로 쓱 훑으며 시선을 피했다. 귓불이 살짝 붉어진 게 쑥스러워 보였다.
쑥스러? 도대체 뭐가? 백명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가득 떴다. 그때 강채영이 강석의 옆으로 가 팔꿈치로 배를 쿡쿡 쑤시며 말했다.
“설명해 드려. 오빠. 어서.”
보채는 강채영도,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강석도. 백명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보다 빨리 식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밥을 먹던 아들딸은 비밀 얘기라도 교환한 모양이었다.
차분히 기다리고 있자니 강석이 서서히 시선을 들어 백명희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백명희가 어서 설명해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시야가 하얀색으로 가려졌다. 강석이 불쑥 내민 봉투가 그 정체였다.
“봉투?”
백명희가 내밀어 진 봉투를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었다. 봉투는 묵직했다. 두껍고. 이게 뭐지? 백명희가 천천히 다물려 지지 않은 봉투를 내려다봤다.
“···어, 어마!”
돈이었다. 그것도 전부 신사임당과 세종대왕이었다. 백명희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대충 봐도 몇백은 되어 보이는 금액이었다.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백명희가 지난 몇 주를 떠올렸다.
겨울 방학이 시작된 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예고생들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할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강석의 태도는 이상했다.
가야하는 학원 특강도 마다하고,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며 아침부터 밤까지 나갔다 들어오는 게 마치 입시를 포기한 아이 같았었지.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누가 동아리 활동을 아침부터 밤까지 시키겠는가.
백명희가 합당한 의심을 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러 간 게 아니라 돈을 벌러 다닌 모양이었다.
학원 특강비를 아껴서 다행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집안 사정 눈치를 본 것일까 가슴이 미어지는 그때.
“벽화 동아리에서 받은 거에요. 알바 같은 거 안 했어요.”
강석이 꼬여가는 백명희의 오해를 풀었다. 백명희가 눈을 깜빡였다.
‘진짜?’
자기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엄마가 어디 있나.
그런데 강석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아니라는 눈빛이었다.
‘진짜구나······’
정말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니. 그러고 보니, 청화예고 동아리 활동은 미대 입시 자기소개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던 다른 학부모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다행히 집안 사정 때문에 입시를 포기하거나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백명희의 호흡이 깊게 가라앉았다. 안심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명희의 호흡이 다시 가팔라졌다.
“이거 얼마니. 아니. 도대체 무슨 동아리 활동을 한 거니?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가 어떤 거길래 이렇게 큰돈을···!”
궁금한게 너무 많았다. 백명희가 놀란 만큼 봉투를 꽉 움켜잡았다. 아들에게 어떤 부조리라도 가한 것이라면 이 돈을 그 사람들에게 찾아가 얼굴에 던져줄 의향도 있었다.
“엄마 이상한 돈 아니에요. 이번에 벽화 동아리에서 고교 벽화전에 나갔는데 우승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받은 거에요.”
“설명을 제대로 해줘야지. 엄마. 들어봐, 글쎄 우승상금은 원래 천만원인데 오빠가 제일 잘 그려서 학교에서 통 크게 오빠한테 오백만원을 몰아준 거래. 대단하지.”
“오백만원을 석이한테 몰아줘?”
뭘 얼마나 잘 그리면 상금 중 반절이나 석이한테 몰아준단 말인가. 들어보지도 못한 정산방식에 백명희가 주저앉았다. 풀썩. 의자에 깔아놓은 방석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엄청 잘했나 봐. 고교 벽화전 우승 때문에 기사가 났는데 다 오빠 얘기야.”
다리에 힘이 풀린 백명희와 시야 안으로 강채영이 건넨 핸드폰이 들어왔다. 강채영은 백명희가 받아드는 걸 확인한 뒤. 의자 옆 널찍한 창문턱에 걸터앉았다. 백명희의 왼쪽이었다.
강석 역시 백명희의 오른쪽 창문턱에 슬쩍 앉았다.
고교 벽화전에서 우승해서 받은 상금을 어머니한테 드리겠다고 몰래 말을 전하자 한참 동안 핸드폰만 들여다보니 갑자기 기사를 찾았다며 백명희한테 달려간 탓에, 강석 역시도 기사를 읽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디에 기사가···”
“더 내려봐. 더. 더. 더. 더. 어어. 거기!”
끝도 없이 내려가던 스크롤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석의 동공이 커졌다.
기사가 진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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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산그늘신문] 강하나 기자 = 16일, 청화예고가 이번에 열린 서울시 고교벽화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으로써 8번째 우승이다. 경이로운 우승 기록의 선장. 청화예고 벽화 동아리 담당 선생님 주사랑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녀는 어떻게 8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까?] [Q. 산그늘신문 강하나 : 대규모 공공미술 사업에서 벌써 8번째 우승이다. 좋은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어봐도 되나?] [A. 주사랑 : (웃음) 원래라면 내 공로가 크다고 했을 거다. 실제로 그랬었고. 결과만 좋으면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는 방임주의 덕이라면서. 그러나 오늘은 다른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원석이 내 보석함에 있었다. 덕분이다.] [Q. 그게 누군지 물어봐도 되나?] [A. 물론이다. 자랑하러 나온 거니까. 강석.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이번 년도에 벽화 동아리에 들어온 2학년 아이다.] [Q. 혹시 그가 르네상스 복합 쇼핑몰 8층에 를 그린 학생인가?] [A. 그렇다. 강석이 그렸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을 생각한 것도 강석이고, 그린 것도 강석이다. 너무 잘 그렸지 않나. 잘 그렸다. 난 그거 하나 보겠다고 집까지 한 시간을 돌아가기도 한다.] [Q. 방금 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라고 발언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A. 말 그대로다. 르네상스는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시대를 말한다. 인간이 르네상스의 관심 주제였다. 롤백 그리스 로마랄까.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천장에 4년간 불편한 자세를 한 채, 그림을 그려 완성한 예술의 구도자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간 예찬론 는 르네상스의 정신과 부합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Q. 강석이 그걸 다 알고 그렸을 거라 생각하는가.] [A.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왜 하필 를 그리는 거냐고. 강석은 내게 말했다. “전 인간이 처음 창조된 당시를 그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결백하고 죄악이 없이 생명의 선물에 감사해 하던······”미켈란젤로를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강석은 자신이 그 그림을 왜 그리는지 알고 있었다. 난 그때 직감했다. 강석이 를 완성하는 날. 우리의 우승은 확정될 거라고.] [Q. 강석은 혼자 그 그림을 다 그렸나.] [A. 그렇다. 주어진 시간은 촉박했지만 강석은 해냈다. 강석은 완성했고, 우리는 우승했다.](중략)
[Q. 인터뷰 내내 너무 강석 얘기만 한 거 같아 미안하다.] [A. (웃음) 괜찮다. 사실 그러려고 나왔다.] [Q.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다. 앞으로 강석이 어떤 미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A. (오래 고민하더니)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될 것이다.]—————————
– ‘이 내용은 꼭 실어줄게.’
실어주겠다더니 이걸 말하는 거였군. 백명희의 어깨너머로 기사를 몰래 읽던 강석이 실소했다.
가만 보면 주사랑은 이런 쪽으로 퍼포먼스가 발군이었다. 강석이 그렇게 주사랑을 떠올리는 사이.
기사를 한참 동안. 몇 번에 걸쳐서 읽은 백명희가 숨을 멈췄다. 코가 시큰해져서였다.
매일 밤낮으로 벽화 동아리 활동이 있다며 방학 내내 거의 바깥에서 살다시피 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기사의 내용을 쭉 읽어보니 알겠다.
기사에는 우승하면 가장 잘 그린 사람에게 오백만원을 주기로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 ‘담보 대출도 안 된다고 했다면서요. 당장 오백을 어디서 구해요.’
모를 수가 없었다. 백명희가 봉투를 구겨버릴 듯 욱여 쥐었다. 오백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게 자신이었으니까.
백명희는 눈에 힘을 꾹 주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당장에라도 눈물이 터질지도 몰라서였다.
‘이럴 때 석이 아빠도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눈물이 많은 자신으로서는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강현도는 아주 오랜만에 출장을 나간 상황이었다.
“엄마. 오빠 진짜 천재인 것 같지? 우승이 전부 우리 오빠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 봐. 진짜 우리 오빠 유명해지면 어떻게 하지? 사인 연습해야 하나?”
“사인 연습을 네가 왜 하냐.”
“그런가?”
의좋은 남매답게 강채영과 강석이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실 웃었다. 다 컸구나. 다 컸어. 백명희가 고개를 돌려 빠르게 눈가를 훑였다.
아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돈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자식들한테 좋은 걸 주는 부모는 되지 못할망정, 자식이 가진 걸 빼앗는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석아. 보니까 이 돈은 나한테 줄 돈이 아닌 것 같은데?”
“···예?”
“네 돈인데 왜 날 주니. 네가 써야지.”
어.
강석이 이건 예상 못 했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백명희를 쳐다봤다. 살짝 커진 눈과 다물리지 않은 입이 귀여웠다.
어릴적 구구단을 못 외웠을 때랑 표정이 똑같네. 백명희가 살포시 웃으며 봉투를 내밀었다.
* * * *
이게 아닌데. 강석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몸을 굳혔다.
오백이 필요할 텐데? 강석의 당황한 시선이 옆에서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거리는 강채영을 향했다.
강채영이 있는 앞에서 연임대료가 올라서 오백만원이 필요하잖아요, 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백만원을 구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만 했지. 받을 사람이 받지 않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강석이 어버버 말을 제대로 못 하고 할 말을 찾는 그 순간.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나타난 것은 강현도였다.
강현도는 눈물바람이 된 백명희와 달리 신이 잔뜩 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왔다.”
오늘따라 당당해 보이는 걸음걸이보다 강채영과 강석의 시선을 끄는 건, 강현도의 손에 들린 것이었다.
‘케이크다.’
‘케이크야.’
생일날 아니면 구경도 못하는 케이크가 강현도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것도 동네빵집에서 파는 생크림 케이크가 아니었다.
강채영이 당황한 얼굴로 케이크에 붙은 상표를 바라봤다. 사거리 대로변에 있는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파는 딸기초코 케이크였다.
‘아버지가?’
‘아빠가?’
백명희가 놀라서 강현도를 바라봤다.
“당신···어디서 난 케이크에요?”
“아. 이거? 하하. 아니, 오늘 출장 마치고 오는 길에 보여서 가지고 왔지.”
출장? 백명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 출장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출장을 간다고 아침부터 샘플들을 찍은 카탈로그를 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트럭에 올라타던 강현도의 모습이 선했다.
“음, 그게···”
질문을 받은 강현도가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다 재간둥이처럼 활짝 웃음을 지었다.
“대성공이야!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했어. 두 건이나.”
강현도가 영수증을 백명희에게 내밀었다. 천구백만원. 뭘 팔았는지 천구백만원을 한 번에 결제했다는 내용이 보였다.
이 돈이면 어떤 가구를 팔았는지는 몰라도 마진을 다 떼어도 오백은 남을 터였다. 백명희가 강현도를 얼싸안았다. 강채영 역시 잘은 몰라도 좋은 일인갑다 하고 와와 손을 흔들었다.
말 그대로 겹경사였다.
* * * *
그날 저녁.
강석은 한 번 더 사업에 보태시라며 강현도에게 오백만원을 건네었지만, 강현도 역시 백명희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완강한 거절이었다.
결국 오백만원은 강석의 수중에 다시 떨어졌다. 난감해하는 강석에게 이불을 펴던 백명희가 웃음꽃을 터트리며 제안했다.
– ‘우리 석이가 번 첫 돈이니까 석이가 쓰고 싶은데 쓰면 되지. 뭘 고민하니?’
쓰고 싶은 곳에 써라.
백명희가 건넨 말에 도대체 어째야 할까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강석은 며칠 뒤 결론을 내렸다.
강석은 온 가족이 보인 아침 식사 자리에서 오백만원을 턱 꺼내놓으며 말했다.
“병원에 가요,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다 말고 당황해서 되물었다.
“갑자기?”
12.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