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21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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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신에게, 육신은 대지로 보내고, 그리운 피렌체로 죽어서나마 돌아가고 싶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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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이 내려가보니 손님들이 어정쩡하게 둘둘씩 찢어져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강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다가가려는데 부엌에 들어가있던 백명희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달려오다시피 걸어왔다.
“석아.”
“어머니.”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이 퍼져 있었다. 백명희는 강석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주다가 다시 강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과 당황이 서려있었다.
“어떻게 하니. 손님이 더 올 줄도 모르고 보쌈을 8인분밖에 하지 말았지 뭐야. 밥냄새 뻔히 나는데 밥도 안 먹이고 차만 내오기도 그렇고···”
“괜찮아요.”
강석이 단호하게 백명희를 다독였다. 가정집에서 같은 식단으로 8인분을 한 것도 대단한 거였다.
“약속 잡고 온 것도 아닌데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은 것이니 너무 힘주어 대접할 필욘 없었다. 정에 사는 한국인이니 밥은 대접해주겠지만 메뉴까지는···잠깐. 방금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지?
“어머니. 뭐 준비하셨다고요?”
“보쌈. 아까 채영이더러 말해놓으라 했는데 못 들었니?”
“아, 아뇨. 들었었어요.”
들었다.
– ‘엄마가 보쌈하니까 과일 먹고 천천히 내려오랬어. 그럼 나 간다아.’
강채영이 분명 말했었다. 그때 강채영이 무사히 돌아갔다는 생각에 젖어 딴 생각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치? 그나저나 어떻게 하니. 냉동실에 앞다리살 얼려놓은 거라도 우선 녹일까?”
보쌈 8인분을 해놓고도 집안에 보쌈이 더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어머니 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컸다.
“그게 좋겠지? 아슈라 왕자님도 마침 주무시니까 우선 밥을 하는 중이라 하고···”
“괜찮아요.”
“응?”
“보쌈은 진짜 더 안해도 괜찮아요.”
“············으응? 그래도 한국인 정이 있지. 어떻게 집에 왔는데 밥도 안 먹여.”
백명희가 남이 들을까 조심스럽게 속닥거렸다. 속삭이는 어머니의 눈에는 사람들을 대접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빌라에 살 때 집이 좁아 제대로 접대하지 못하고 살았떤 것이 한이 맺힌 듯, 어머니는 누가 집에 놀러오고 같이 밥먹는 걸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눈동자를 바라보며 강석이 뒷목을 긁적였다. 이걸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해야 할지 위기 모면이라고 해야 할지···강석이 고개를 돌려 강채영을 불렀다.
“강채영.”
“응?”
강채영이 저 부르는 소리에 재빠르게 다가왔다. 평소였으면 콧방귀 열번은 끼면서 걸어왔을텐데 걸음이 날래고 표정이 부드러웠다.
물감 선물과는 달리 재단가위 77 에디션은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낯설에 고운 표정을 짓고 있는 강채영을 바라보며 강석이 손으로 2층을 가리켰다.
“2층 내방에 가면 책상 위에 카드있거든. 그거 가져가서 정육점 좀 다녀와라.”
“정육점?”
왜?
강채영과 백명희가 동시에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거든요.”
그리고 단순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소고기나 양고기도 이슬람식 도축이나 할랄 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굳이 집밥으로 보쌈을 먹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으니···강석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해결책을 들이밀었다.
“한우를 먹읍시다.”
한우는 작년 초에 할랄 인증을 받아서 말레이시아에 수출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마 저 밑에 있는 큰 정육점이면 할랄 인증을 받은 한우도 팔 거다.
강채영에게 한우를 살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 알려준 뒤에 강석은 백명희를 바라보았다. 백명희는 빠르게 보쌈을 정리해서 냄새를 없앤 후, 과일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다.
물어보길 잘했다며 박수를 친 어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주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아버지를 향해 창문을 열라고 손짓하는 것이 다급해 보였다.
강석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지은 뒤에 소파에서 이쪽을 힐긋 쳐다보고 있는 넷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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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아.”
강석이 다가가자 양선구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특유의 달관한 표정을 내려놓고 미안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이거 괜히 이 시간대에 와서 불편하게 한 게 아닌가 싶구남.”
매일 밤낮없이 일하다 보면 시간 감각이 옅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대에서 살아가는데 그걸 깜빡해서 가끔 이렇게 무례 아닌 무례를 저지르게 되는 느낌이었다. 양선구가 멋쩍어하며 흰 수염을 길게 쓸었다.
“괜찮아요. 저도 작업 준비나 하려고 했었거든요.”
양선구가 그렇듯, 강석 본인도 남들의 시간 감각과 틀어져 살아가고 있었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양선구가 살짝 안심한 기색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양선구의 옆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그제야 보였다. 루카스 가르시아와 리엄 가르시아였다. 강석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어떻게 보면 양선구와 양선구가 데려온 사내보다, 가르시아 형제가 더욱 의외였다.
“(루카스? 리엄?)”
당신들이 여기는 어쩐일이냐. 강석이 놀랍다는 듯 악수를 건네었다. 가르시아 형제는 재빠르게 일어나 악수를 하며 어깨를 껴안았다.
“(손님이 많은 날에 와버렸네.)”
“(미안해. 강석. 우리도 급하게 너를 만나야했어서 말이야. 다른 날에 다시 오는 게 나을까?)”
“(굳이. 온 김에 한 번에 하죠. 대신 식사는 한국식일텐데 괜찮죠?)”
“(오. 물론이야. 식사자리인 줄 알았으면 와인을 가져왔을 거야. 진심으로.)”
“(괜찮아요. 잠시만 앉아있을래요?)”
일단 양선구는 영어가 되겠지만, 양선구가 데려온 사람은 영어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지만 정중하게 대해야 하니 소외감을 느끼게 둘 순 없었다.
가르시아 형제는 얼마든지 그러라며 팔을 펼쳐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강석은 갑작스럽게 정신이 없어진 현장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강석이 앉고 맞은편 왼쪽에는 양선구와 양선구가 데려온 사내, 그리고 오른쪽에는 가르시아 형제가 앉은 형태가 되었다.
‘아슈라 왕자랑 수행원이 방 안에 있는 게 감사할 지경이군.’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 분주하게 집안 고기 냄새를 빼고 있었고, 강채영은 정육점, 그리고 어머니는 주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강석은 손님맞이. 완벽한 역할분담이었다.
어머니가 급하게 가져다주신 음료수 잔을 들어올리며 강석이 왼쪽 대각선을 바라보았다. 양선구와 처음 보는 사내를 향해서였다.
“우선 미술대전에 작품 대신 내주신 거 정말 감사드려요.”
양선구 선생님과 고두한 선생님이 힘을 써주신 걸 알고 있다. 강석이 했어야 하는 마땅한 감사인사를 양선구에게 건네었다. 양선구는 손사래를 쳤다. 우리 사이에 그런 허례허식이 뭐 필요하겠냐는 뜻이었다.
강석은 옅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두 선생님이 매스컴에 말을 흘려준 덕분에 더욱 쉽게 대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이영훈이 집앞까지 찾아온 걸 보면 뻔하지. 강석은 나중에 고두한 선생님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면 갑자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양선구 선생님이 전화를 걸었다면 강석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온 거라면 급한 일일 터. 어서 말해보라는 듯 강석이 양선구를 바라보았다. 적갈색 눈동자에는 엷은 신뢰가 깔려있었다.
강석이 자신을 신뢰어린 눈으로 본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느꼈던 양선구가, 숨을 내쉬었다.
“그게 말이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양선구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먼저 그의 숨을 낚아채 옆에 앉아있던 사내 김세석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만나고 싶다고 양형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거든. 형님이 안 데려올 수가 없었을 거다. 도로에서 한복이 찢어지는 꼴이 될 순 없잖냐. 다 내 탓이니까 너무 뭐라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김세석이 고급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한 상자도 아니고 상자가 네 개였다.
“초콜릿 좋아하냐? 정장 한 벌 빼입으면서 생각나서 사와봤는데···거, 곧 빼빼로 그거잖아. 그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강석이 친척마냥 친근하게 구는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만 보면 양선구 선생님 못지 않게 연배가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양선구 선생님과 동년배라고 하기엔 또 젊어보였다. 멋들어진 지팡이와 용도를 모르겠는데 호두 두 알, 그리고 잘 차려입은 정장 밑으로 느껴지는 근육진 몸.
수양버들처럼 내려온 눈썹하고는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누구지? 어디서 분명 본적이 있었다. 강석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사내를 훑었다.
잔흉터가 진 손가락하며 손에 박힌 붉은 점, 검지 왼쪽에 붙은 굳은살과 약지에 굳은 근육. 그리고 엄지 밑에 박혀있는 눌린 자국.
자신감이 당당히 차있는 얼굴. 본 적 있다. 얼굴만은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강석이 기억을 열어젖혔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거리, 지나가는 사람, 한 번이라도 스친 사람, TV, 스크린, 신문, 책자, 포스터, 잡지···수십수만의 스쳐지나가는 얼굴이 사내 위로 겹쳤다. 그리고 한 명이 남았다.
꿰뚫어 그리는 사내.
김세석.
바늘로 면캔버스 위에 실을 꾀매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며 잡지에 실린 적이 있었다.
“김세석 작가님. 맞으시죠?”
“······호오? 날 본 적은 없을 거고.”
거기까지 말한 김세석이 옆을 바라보았다.
“형님이 말했수?”
그 말에 말했겠냐, 는 표정을 지은 양선구가 김세석을 눈빛으로 때렸다. 김세석이 입을 밑으로 끌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녀석이다 싶으면 일단 미국으로 데려가는 김세석에게 한국을 사랑하는 양선구가 뭐 좋다고 강석을 알려줬겠나. 말이 안되는 소리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세석이 관자놀이를 검지로 쓸었다.
“이거 그러면···내 작업에 관심이 있었을 리는 없고, 뭐지? 재밌게?”
이게 말로만 듣던 진짜 천재인가. 뭐 만화에서 보던 완전기억능력? 뭐 그런 건가? 김세석이 혼잣말을 하면서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굳이 제 암기력이 지나치게 좋다는 것까지 설명하기는 입이 아파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해달라는 눈으로 김세석을 쳐다봤다.
무례하지도 그렇다고 정중하지도 않은 무표정. 김세석이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살짝 벌어지는 입은 어쩐지 굶주린 호랑이처럼 사나워보이는 웃음을 완성했다.
어린아이가 봤다면 울었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이었다.
“아···이거···너무 마음에 드는데?”
이거 보게. 김세석이 활짝 웃었다.
김세석은 성깔을 독한 놈이 좋았다.
그런 놈이 재능도 출중하면 최고였다. 이 미술 시장에서는 에고가 강한 놈만이 살아남는다.
마치 나같은 놈 말이지. 잇몸을 드러낸 김세석이 신이 나서 호두알을 굴렸다.
예민하고 음습하고 괴짜인 놈들이 교미때 뱀처럼 뒤엉킨 이 미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에고가 강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몸 한 구석 스트레스로 앓거나, 망가지거나, 아니면 변두리로 밀려나는 거다. 적어도 김세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까드득. 까드득. 손가락 힘이 얼마나 좋은건지 김세석이 호두를 굴릴 때마다 호두의 겉껍질이 부서졌다.
강석이 잠깐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김세석이 입을 열었다.
“나랑 미국 갈까?”
이 놈이라면 돈단위가 다른 미국 시장을 접수할 수 있다. 김세석이 확신한다는 듯 다짜고짜 본론을 날렸다. 그리고 호두 두개가 빠드득,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번역기 어플을 돌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르시아 형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확하게 몸을 일으킨 것은 리엄 가르시아였다.
그의 핸드폰에는 마지막 문장만이 정확하게 해석이 되어 남겨져 있었다. 미국을 가자고? 리엄 가르시아가 외쳤다.
“(가더라도 피렌체부터 들렀다 가자!)”
피렌체에는 강석 네가 필요하다.
리엄 가르시아가 다짜고짜 외쳤다.
미국과 피렌체.
갑자기 들려온 두 국가.
적갈색 눈동자가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채가 돌았다.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가 리엄 가르시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리엄 가르시아는 그 눈빛을 받은 순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느꼈다.
단어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리엄 가르시아는 감정적으로 둔하다고 생각했으나 저 눈동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도 굉장히 들끓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리엄 가르시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탔다. 어쩐지 물이 마시고 싶어지는 눈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은 리엄 가르시아를 뚫을 기세로 응시했다.
피렌체. 피렌체. 피렌체.
분명히 피렌체라 하였다.
222. 우리 시대에, 지상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