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86
86
* * * *
신의 대리자.
미켈란젤로의 찬미자였던 바사리가 미켈란젤로 전기 서두에 그를 소개할 때 사용한 말이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는 이 땅에 내려온 신의 대리자로 인간들에게 도안 미술의 완벽함을 보여 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표현했다. 이 역시 그를 소개할 때 사용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스티나 천장화 속 를 두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아담의 아름다움과 자세를 보아라. 그 외형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의 붓과 도안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우주의 최고 창조자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것 같다.”
진실로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찬미자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말은 곧 미켈란젤로의 아담이, 신이 창조한 것과 구별할 수 없는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미켈란젤로를 감히 신에 비유했던 거다.
그 당시를 따져볼 때 이보다 더한 찬미와 찬사가 있을까.
* * * *
“눈이다.”
누군가의 혼잣말에 사람들 몇명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이 공간 속 밀집한 사람들에 비해 지나치게 한산한 동네와 거리 위로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12월 12일.
눈이 내리는 것이 이상한 날씨는 아니건만, 눈은 항상 내릴 때마다 시선을 끌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눈송이를 사람들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걸 지켜보듯 바라봤다.
그러나 시선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동자는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계속해서 한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울 중심하고는 살짝 거리가 있는 서울 외곽.
주말임에도 밀리지 않는 차, 한산한 거리 풍경, 그와 대조적인 이 공간 안을 차지한 사람들의 밀집도.
이곳은 르네상스 쇼핑몰 8층, 시스티나 카페 안이었다.
겨울의 한파를 뚫고 와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시선을 계속해서 잡아끄는 것은 강석이 그린 였다.
미풍에 나부끼는 망토를 걸치고 천사에게 둘러싸인 하느님이 바위에 힘없이 기댄 아담에게 손끝을 가져다대는 그 순간을 그린 천장화.
때 하나 끼지 않은 선명한 색감과 천장이 아니라 벽에 새겨져 고개를 꺾지 않아도 담을 수 있는 눈높이, 그리고 실제보다 더 클것이 확실한 크기.
사람들이 홀린듯 강석이 그린 벽화를 바라봤다.
강석이 그려넣은 프레스코 는 사람들을 홀리는 뭔가가 있었다.
이곳에 오면 시간의 흐름도 잊고 멍하니 작품을 감상하게 되곤 하는데 그게 홀리는 것이 아니면 뭐겠나.
평소에 서있는 것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서있어야 하는 사실에 불평 한 번 하지를 않으니. 이런 것이 바로 진짜 마력이리라.
까드득.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3분 40초도 안 되어서 창밖을 응시하던 모든 시선이 떨어져나가다니. 실내임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사람들을 관찰하던 분홍 입술의 여인이 사탕을 세차게 깨물었다.
대다수가 창밖을 안 보는 건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그녀의 통굽이 신경질적으로 발구름을 했다.
“으으. 아까워. 아까워 죽겠어.”
그녀.
관훈동 작약갤러리의 주인, 설여진은 를 노려보다시피하며 사탕의 막대 부분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림 한 점 잘 걸어서 엄청나게 챙겨가네.’
대형 미술관처럼 대형작품을 대여해서 전시회를 크게 벌이거나 오래된 유명 갤러리처럼 유명한 작가전을 빵빵 연속으로 터트릴 수 없는 평범한 갤러리스트들에게 유입력은 곧 돈이었다.
그걸 이런 허름한 쇼핑몰이 챙겨버리다니. 설여진으로선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심지어 공공미술사업으로 추진된 프로젝트라 실제로 가격을 제값에 치룬 것도 아니고, 강석에게는 이런저런 학교 선생님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오백이 돌아갔다고 들었다.
‘이게 오백?’
심지어 이거 말고도 십수개가 넘는 벽화가 이 르네상스 쇼핑몰에 존재했다.
그것들 모두 괜찮았다.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단 소리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하긴···벽화에 참여한 것이 청화예고 학생들인데···당연히 그래야지.’
실력 하나론 어지간한 전공자 성인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청화예술고등학교 재학생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 월등히 좋았지만. 어찌되었든 오백에 르네상스 쇼핑몰의존재하는 모든 벽화 더해서 또 오백. 합이 합쳐서 일천이었다.
‘겨우 일천 만원에 이 모든 걸 먹어?’
설여진이 상냥한 미소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했다.
자신이 사업가가 아니고, 밖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탁자라도 두들기면서 울분을 토해도 진작에 토했으리라.
아. 참느라 입가에 경련이 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심부름을 보낸 김윤서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설여진의 눈에 들어왔다.
김윤서의 얼굴은 사무적인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함께 해 온 세월이 이제 제법 되어가는 설여진은 단번에 상황을 눈치챘다.
‘원하는 대로 일이 안 풀렸나보네.’
설여진의 엄지 손톱이 중지의 손톱 사이를 파고들었다. 김윤서가 원하는 일이 설여진이 원하는 바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관장님.”
김윤서가 설여진이 앉아있는 자리로 와 고개를 슬쩍 숙였다.
“응. 윤서야.”
“죄송합니다.”
“왜? 건물이 이미 팔렸다니?”
“······네.”
설여진의 엄지 손톱이 다시 중지 부스러미를 긁어내리듯 건드렸다. 동시에 그녀의 말린 분홍 장미를 닮은 입술이 어여쁘게도 휘었다.
예쁜 웃음이었다.
“네가 왜 미안하겠어. 내가 늦은 거지.”
오늘 설여진과 김윤서가 르네상스 쇼핑몰을 찾은 이유는 건물의 구입을 위해서였다.
강석은 작품을 팔 생각이 없어보이니 강석의 작품이 포함이 된 이 쇼핑몰이라도 손에 넣으려고 했었는데···늦었다.
까드득.
설여진이 어금니로 사탕을 짖씹었다.
작약갤러리 최대 이벤트인 고두한 개인전 준비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뺀 게 실수일까. 의 빈자리를 대신할 작품을 컨택하느라 발품 팔아 돌아다닌 게 잘못일까. 강석의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비치 참여를 두고 블룸 미술관과 덩치싸움을 너무 오래 벌인게 패착일까.
까드득.
“그러면 건물을 산 사람은 누군지 알아봤니?”
“네. 산강그룹 오너일가의 막내 박선우 대표라고 합니다.”
“박선우?”
낯설고도 멀지 않은 이름이었다.
미술계에 전공자는 아니고, 발을 걸친 것도 아니지만, 이 미술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보면 어쩐지 다리 건너건너 몇 번씩이고 듣게 되는 이름. 그게 박선우였다. 설여진이 옆을 돌아봤다.
“그가 여길 운영하려고 사들였을 리는 없고.”
투자?
그렇다면 더 높은 값을 주고 사오면 될 일이었다. 강석의 작품을 사려고 모은 돈이 꽤 되었다. 따로 분리해놓은 돈의 액수를 떠올리며 설여진이 눈을 반짝였다.
“얼마면 판다니?”
“···이미 양도 준비중이라 거래는 어렵다고 전해달라고, 업무대리권자가······”
“양도? 언제 샀는데?”
“몇달 안되었다는데요.”
설여진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윤서를 바라봤다. 설여진 관장의 비서인 김윤서 역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설여진을 바라봤다.
둘의 머리가 까락까락 굴러갔다.
“당연히 연락처는 넘겨주실 수 없다 했을 테고.”
“네.”
“그러면 윤서야. 올라오는 길에 보니까 7층 점포가 정리 되고 있던데···거기라도 임대 놓을 수 있냐고 물어봐. 연락처 받았지?”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준비해야만 했다. 머릿속에서 플랜A를 치워버린 설여진이 플랜B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게···”
김윤서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여진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김윤서를 올려다봤다.
“그게 저도 관장님이 거기를 눈여겨 보신 걸 기억하고 7층 점포에 대해 물어봤는데···이미 자리가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거 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까득. 까득. 까득.
설여진이 사탕을 깨물며 주문한 카라멜 마키아토를 들이켰다.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수면 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김윤서가 말한 말들을 곱씹던 설여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상황을 좀 알아봐야겠어.”
“네.”
강석이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비치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생긴 일이었다.
* * * *
비행기 안.
강석은 블룸 미술관에서 준비해준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블룸 미술관의 진도욱 관장을 비롯해 다른 관계자들은 전부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었기에 강석은 누구의 방해 없이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5시간째였다.
“저 손님···괜찮으신 걸까요? 계속 창밖만 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주시하되 경거망동 하지마.”
“·········네.”
스튜어디스들도 주목할 정도로, 강석은 그 자신이 석상이 된 것처럼 미동 한 번 하지 않고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거의 모두가 잠에 빠져 조용한 퍼스트석.
강석은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움직이는 것은 오직 눈동자와 동공만이라는 점이 다를 뿐.
카메라 렌즈가 초점을 잡듯 강석의 동공이 창밖 너머의 세계를 쉴새없이 관찰했다.
강석이 이렇게까지 쉴틈도 없이 계속해서 창밖만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이었으니까.
비행기를 타는 것도, 해외에 나가보는 것도, 하늘 위에서 하늘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전부 처음이었다.
즉, 이것은 오롯하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하는 경험이란 소리였다.
강석은 제 시야로 들어오는 모든 장면 장면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중이었다. 앞으로 이것들은 강석의 작품을 한층 진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었다.
‘내가 이런 엄청난 신비와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신의 손을 훔쳤다 평가 받았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그의 손에는 완벽한 창조가 깃들어 있었다. 아직 배우는 중이었으니 앞으로도 강석은 지속해서, 지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이런 거대한 풍경도 제 손에 담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대자연을 내 손 안에서 탄생시킬 수 있을까.
···나도 할 수 있을까?
전생에는 밤하늘을 조각했지만 이름을 새겨넣지 않은 창조주를 향해 반성하였고, 이번 생에는 달을 조각한 신을 부러워하고 저 달처럼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였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강석을 찾아왔다.
호승심.
대자연을 향한 호승심이 강석에게로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하하···하!”
다시 두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는 물들어가는 주홍빛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다르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찍힌 사진들로 본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색감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것과 강석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인식할 수 있는 색감의 한계치가 달랐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강석이 기억했다.
사진을 찍듯 뇌에 어딘가에 저장하고 있는 듯 했다.
비행기는 빨랐고, 강석은 한 번 본 것을 쉽게 잊는 법이 없었다.
바람을 뚫고 내달려 구름 사이를 흩어지는 순간도 저 멀리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태양빛에 물결들이 잘게 빛나는 모습도, 뭉게구름이 하늘의 고래떼처럼 줄지어서 흘러가는 풍경도.
강석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고 있었다.
하늘의 공기. 색감. 바다의 색감. 잔물결. 반사되는 태양빛. 구름의 흐름. 멀리서 보면 두껍고 가까이서 보면 누에실처럼 풀어헤쳐지는 것 까지도···강석의 동공이 모든 걸 담아냈다.
조용한 비행기 안.
거인은 누구보다 조용히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한 첫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 * * *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비치.
그곳에 도착한 강석과 블룸 미술관 진도욱 관장을 포함한 일행들이 공항의 향기를 쭉 들이켰다.
공기는 한겨울의 대한민국과는 사뭇 달랐다.
26도에서 28도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마이애미 비치의 날씨는 멀리서 날아온 그들 일행의 지친 심신을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었다.
그 노곤한 공기에 몸을 맡기던 강석이 정면 조금 위를 응시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라는 광고판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스위스에서 처음 건너와 마이애미에 아트바젤이 들어왔을 2002년 당시 사람들은 과연 아트페어가 마이애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성공했다.
지역사회를 비롯해 남미계 이민자 출신 슈퍼 컬렉터들의 공격적이다시피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받으며 마이애미는 성장해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마이애미 미주 지역 내에는 튼튼한 아트 허브가 자리잡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개인 컬렉션이 미술관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이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를 사람들은 사랑했다. 관광객들에게는 물론, 유명한 부자들이나 연예인들도 이 시기에 마이애미 비치를 기꺼이 방문했다.
그럴 가치가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는 존재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라는 글자 아래에는 [38개국 290여개 갤러리 참가!]라는 영어가 당당히 박혀있었다.초창기 23개국 160여 갤러리가 참가했을 때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률이었다.
강석은 조용히 그 글자를 바라봤다.
자신이 처음으로 참가할 곳은 저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 있는 총 7개의 섹션 중, 190여 개 주요 갤러리가 포함되어 있는 갤러리 섹션이었다.
갤러리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있는 만큼 작품도 쉽게 감상되고 잔상에 빠르게 흩어지는 공간이었다. 지나가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섹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석의 입꼬리가 마이애미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씰룩 움직였다.
지나가는 동안 시선을 사로잡는 것.
그건 강석에게 가장 자신있는 것이었다.
가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강석이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강석 맞숩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 맞나?)”
어디선가 중후한 톤의 한국어와 영어가 들렸다.
강석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외국인 남성이 서있었다.
누구야.
강석의 눈동자가 무심하게 사내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투둑.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석이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얼굴이 붉어진 채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진도욱 관장이 있었다.
“······아서.”
흔하지 않은 초록색 눈동자.
다갈색빛이 섞인 더티한 블론드톤의 머리카락. 다비드와 에로스의 중간을 연상시키는 곱슬머리. 서글서글한데 다정한 눈웃음과 미소.
역삼각형의 상체와 길게 쭉 뻗은 다리.
같은 남자가 보기에 심히 짜증나게 생긴 사내의 이름은, 아서였다.
그가 말했다.
“만나서 반갑숩니다. 강석. 저는 아서야.”
87. 인사를 건네오는 사내를 강석은 멀거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