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94
94
* * * *
– condivi, The Life of Michelangelo, p. 106.
“그는 바깥에서 하루 종일 입었던 옷과 장화를 벗지도 않고 그대로 입은 채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며칠 동안 그 차림새 그대로 입은 채 지내기도 해 살갗이 뱀 비늘처럼 장화에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 * * *
늦은 오후.
노을을 배경삼아 화려하게 장식된 거리를 차가 내달렸다.
모두가 향하는 커다란 교회가 있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이었다. SUV는 그렇게 아무런 방해없이 서울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려댔다.
“크리스마스에 봉은사라니. 이라니. 우리 오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특이했나.”
강채영이 놀랍다는 얼굴로 옆자리를 바라봤다. 옆자리에는 강석이 타있었다. 그러자 조수석에 타있던 백명희가 뒤를 돌아봤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강현도를 힐긋 바라본 백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왜. 엄마랑 아빠는 우리 가족들 이렇게 다같이 밖으로 놀러나오니까 좋은데? 차를 산 보람이 있어···!”
“그러게. 다같이 돌아다닐 SUV를 사야겠다고 너희 엄마가 노래를 부른 것치고는 쓸 데가 없어서 왜 샀나 싶었는데, 석이 덕분에 드디어 용도를 찾아서 쓰네.”
“뭐예요?”
“나 운전중. 운전중이야.”
“알아요. 참나. 내려서 봐요, 당신.”
“뭐···엄마아빠가 좋으면 된 거지. 저도 뭐, 싫은 건 아니예요.”
가족들의 말에 강석은 안대를 낀 채, 입꼬리만 씰룩였다. 강채영의 말에 귀찮아서 대답을 안했지만 다 듣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강석은 소란스러운 며칠을 보내다 이제야 좀 안정을 되찾고 가족들과 함께 봉은사로 향하는 중이었다.
.
.
.
봉은사.
강남 도심속에 자리잡은 천년사찰.
그곳에 도착하자 정문 진여문에서부터 봉은사의 주지스님 법경이 환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가시죠.”
“예.”
편안한 얼굴로 법경의 안내를 받는 강석의 뒤를 쫓아 가족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본래가 무교였기에 이런 행사날에 사찰을 찾는 것도 익숙치가 않았다.
“봉은사는 성탄절임에도 사람이 꽤 많네요.”
“그러게.”
“······모두 처사님의 은덕이지요. 이 이곳 봉은사에 임시 설치된 이후부터 이렇게 휴일이면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무려 봉은사이니 휴일에도 원래도 사람은 있었을 터이지만, 법경은 강석의 공로를 좀 더 높이는데 썼다. 강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걸 아는 강석이 못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모르는 강채영이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강석을 바라보았고, 강현도와 백명희는 그저 강석이 자랑스럽고 이 순간이 감격스러워 낯을 붉힌 채 걸음을 내디뎠다.
의 위치는 봉은사 정문, 진여문을 통과하여 법왕루를 지나쳐 우측으로 빠지면 있는 마당에 전시되어 있었다.
사방에는 선불당, 지장전, 매화당과 전통문화체험관이 세워진 마당 가운데.
이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작게 절을 할 수 있는 공간에 사람들이 주변에 서서 합장을 하고 있었다. 임시 설치였기에 소원함을 설치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늦은 노을.
사람들이 펼친 길 사이로 노을빛에 물든 을 보고 강채영과 강현도, 백명희가 순서대로 감탄을 삼켰다.
모두의 기도를 들어 빛을 받은 것마냥 빛이 나고 있었다.
“······위치는 여회루 뒤에가 더 넓직하나 아무래도 그 근처에는 미륵대불 광장이 있어 빛이 자연스럽지 못해 이곳에 두게 되었습니다.”
절대 대충 자리를 정한 것이 아니라며 거듭 설명한 법경의 말에 강현도가 웃으며 화답했다.
“낮에는 밤에는 인건가요? 하하.”
“그렇게 되네요. 다 봉은사의 복입니다. 감사합니다. 처사님.”
그 말에 강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미륵대불이 있는 광장과 달리 앞은 임시마당인 터라 소원함도 없고, 절을 올리는 공간도 협소하였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미륵대불과 달리 곧 태국의 백색사원으로 떠날거라 영구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소식 덕분에 더욱 그런 것이겠지만···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염진석 스테파노 추기경이 말하기를 저번 차담에서 아직도 강석 처사님께서 답변을 안해주신다고 하시던데요. 그간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하하. 제가 좀 바빠서요. 그나저나 성탄절이라 사람이 성당보다야 없을 것 같아서 광화여래불을 보러 온 건데 손님이 꽤 많네요.”
강석이 말을 돌렸다.
그 모습에 하회탈 같이 인자한 눈웃음을 지은 법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이 대답하기 싫은 것은 법경도 더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같은 신을 믿진 않으니까요. 모처럼의 휴일이고, 여기는 찾아오기 쉬운 도심 속 사찰이고, 이곳에 이 있으니 오고 싶지 않겠습니까.”
끝머리를 슬쩍 에 갖다대는 법경스님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지요.”
잔잔한 대화를 오가면서 차담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건네든 법경이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마침 딱 정당한 때라고 생각하며 법경이 웃어보였다.
“이제 가장 멋진 시간이 끝났으니 사람들도 곧 빠지겠군요. 차나 한 잔 하시겠습니까?”
차를 마시면서 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눠보시는 건 어떨지요. 법경스님의 나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강석을 바라보았다.
“······저, 일단 근처에 다녀와도 될까요?”
“아. 네네. 처사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법경의 웃음에 강석이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에 신이 나서 사진을 찍던 강채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빠, 갑자기 엔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순수한 호기심과 걱정을 담은 눈치에 강석이 고개를 저었다.
강석이 사실 오늘이 성탄절임에도 여기에 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가족과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SUV를 끌고 나들이를 나가고 싶은 어머니의 바램을 들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제 작품을 오랜만에 보고 싶은 마음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굳이 성탄절에 봉은사까지 와서 을 만나러 온 이유는 이것을 위함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못 찾는 것 같아서.”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강채영이 되묻기도 전에 강석이 주머니에서 초를 꺼내들었다. 봉은사 법왕루에서 파는 소원초였다.
저건 또 언제 샀대? 강채영과 강현도는 물론, 백명희와 법경까지 놀라서 강석을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은 소원초를 꺼낸 주머니 반대편에서 라이터를 이어서 꺼내 들었다.
“어머, 쟤가!”
백명희가 놀라 라이터를 가리켰다. 저건 또 어디서 났냐는 눈치였다. 그 사이에 강석은 칙칙. 손톱을 통해 쇠가 굴러가는 소리를 낸다 싶더니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어느새 강석은 앞에 선 채였다.
사람들이 벌써부터 몰려오는 어둠에 을 등지고 정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겨울이라 낮이 짧은 탓이었다.
강석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옆구리 쪽에 가서 섰다. 그리고 불이 붙은 소원초를 광화여래불 쪽으로 가져갔다.
지켜보고 있던 법경은 혹시라도 하얀 대리석에 그을림이라도 남을까 놀라며 발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이라도 하지 말아달라며 말려야 할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나 저 불상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찰나 동안 망설이는 사이.
강석이 피운 촛불은 절묘하게 광화여래불의 허벅지를 지나쳐 광화여래불을 받치고 있던 연화좌대와 허벅다리 틈을 지나쳐 빈틈으로 사라졌다.
“···허!”
법경이 놀라 삿대질을 해버릴 정도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가 파여있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긴 소원초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파여있다는 건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해가 지는 풍경 속에서 작은 불이 번져올라왔다.
강석은 촛불을 삼킨 것처럼, 거대한 화로가 된 것처럼 등불이 번져가는 을 바라보았다. 마치 불상이 연등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빛을 품기 시작했다.
이거지.
강석이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화이트 오닉스.
백자를 연상케 하는 하얀 대리석 화이트 오닉스는 겉에서 빛을 투과할때보다 안에서 투과할때 더 아름답게 빛을 투과하는 석재였다.
특유의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선화를 딴 것 같은 구름 무늬에 빛이 번져갔다.
스스로 빛을 투과하는 성질 그대로 가장 낮고 볼품없는 촛불이 을 양초 삼아 활활 타올랐다.
마치 보름달을 그 단전에 숨긴 것 같은 양상이었다.
“···이게 보고 싶었어요.”
광화(光華).
이름 그대로였다.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셨다.
강석이 천천히 놀란 얼굴의 법경을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찾아주길 바랬지만, 역시 의도는 말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었다.
임시 전시 기간이 끝나가는데 봉은사만 이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아쉬워서 굳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한 게, 오늘 나들이의 이유였다.
“아아······”
그런 강석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둠을 밝히는 지상의 달을 바라보며 법경 스님은 천천히 합장했다.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달을 머금어 스스로 등불이 되는 것이 진짜 의 모습이었다.
법경이 좀 더 촛불을 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곁에 있던 상좌를 불렀다.
“상좌.”
“네. 은사 스님.”
법경이 조용히 읊조렸다.
“마당에 모든 불을 끕시다.”
“···네? 하지만 은, 주지스님 그렇게 되면···”
“불을 끄는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상좌.”
“·········네, 네에. 알겠습니다.”
겁이 많은 법경의 상좌는 서둘러 걸음을 돌렸다. 이 작은 마당에 붙어있는 연등을 죄다 끄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훅훅, 빠르게 마당 근처에 걸려있던 연등들이 꺼지고 상좌의 지시 아래 마당 근처 건물둘의 불이 꺼졌다.
어둠은 빠르게 몰려왔다.
“뭐, 뭐야?”
“갑자기···정전인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불이 꺼지는 것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겨울답게 어느새 밤이었다.
그때였다.
천천히 검은밤에 삼켜진 땅바닥에 주홍빛 그림자가 늘어졌다.
“······촛불?”
“뭐지?”
사람들은 늘어지는 빛그림자를 쫓아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것이 어둠에 묻힌 밤.
모두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놓고 교회나 성당, 또는 집에서 즐거운 성탄절을 보낼 때.
시린 추위 속에서 겨울 바람을 피해 등불 하나가 피어올랐다.
모든 전등이 소각된 근처.
사람들은 작은 등불을 피어올린 주위로 몰려왔다. 둥근 원을 만들고 조용히 을 올려보았다.
묘한 감동이 이는 광경이었다.
법경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깊이 반성했다.
‘이런 장치가 숨어있는줄도 모르고···’
지나간 짧은 세월을 탓하기엔 모두 저의 부족함과 무심함이었다. 법경이 스스로 반성하며 사람들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이 순간을 느끼고자 눈을 감았다.
자등명 법등명.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그 가르침이 있었다.
애초에 불교에서 연등을 다는 것은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 자등명법등명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의미다.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혀서 진리를 깨닫고, 끊임없이 수행하고 되돌아보며 살아가라는 부처님의 말씀.
그것이 이곳에서 이렇게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기 이곳, 봉은사에서···’
이를 바라보던 법경이 아쉽다는 눈으로 숫제 글썽거리다시피하며 상좌를 돌아보았다.
“······이걸 보내줘야 한다니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그, 약속인데요.”
“약속이라도 말입니다. 아쉽지 않냐는 겁니다. 이럴 땐 혜총스님이라면 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을텐데 상좌는 정말···”
이럴 때가 아니다.
추기경이 강석을 만나고 싶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봉은사가 시급했다.
강석이 좋아하는 걸 뭘까.
법경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강석은 만족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가보겠습니다.”
“벌써요? 차담이라도 나누다 가지 않고요.”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작업하러 가기 전에 가족들하고 좀 쉬고 싶어서요.”
“···아.”
“차는 다음에 마시러 올게요.”
“네. 다음에라도 꼭 마시러 오세요. 그런데 처사님.”
“예?”
“새로운 작업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혹 어떤 작업을?”
“아아. 이번에 산강그룹의 박선우 대표님에게 의뢰를 하나 맡아서요. 그 곧 지어질 호텔 온천에 야외전시될 작품인데···”
강석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
박선우. 박선우.
법경은 하회탈을 닮은 잔주름진 웃음 속으로 그 이름을 되내었다. 산강그룹의 박선우라면, 법경도 아는 이였다.
초대회장 박은수가 이곳 봉은사에서 청화라는 이름을 받아갔듯, 산강그룹 오너일가는 모두 불교로 봉은사를 종교사찰로 두고 있었다. 조만간 신년행사에 온다고 하였던가.
법경의 눈에서 탐욕이 일었다.
그자와 이야기를 나누면 도대체 어떻게 처사님의 작품을 얻어냈는지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법경은 강석을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품고 마음속 등불을 밝히는, 그런 밤이었다.
* * * *
강석은 크리스마스를 보낸 뒤.
이틀도 지나지 않아 12월 27일에 곧장 양선구의 한옥으로 향했다. 방학도 시작했겠다, 정시를 볼 생각도 없겠다, 거칠 것이 없는 행보였다.
그리하여 강석은, 양선구의 한옥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라이브 방송을 켰다.
양선구가 눈이 와도 작품을 치우지 않고 방수천막으로 바닥까지 못을 박아가며 관리를 해주었기에 카메라세팅과 대리석 역시 그 자리 그대로였다.
[하이하이] [반갑다!] [계속 기다렸는데 뉴스로 소식접함.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굿즈 얘기해줬다면 갔을 텐데···나도 잉크 잘 사서 잘 쓸 자신 있는데···딥펜도 예쁘게 잘 나왔던데···나도 갖고 싶은데···제발 다시 재판매 좀·········] [아ㅠㅠ잉크ㅠㅠㅠㅠ] [라이브 지켜보는 팬들한테 잉크 굿즈 하나도 안 말해주고 가면···ㅠ]강석이 방송을 켜자마자 원통함을 채팅창에 쏟아냈다. 대부분이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100개 한정수량으로 풀린 잉크와 딥펜 세트를 말함이었다.
강석이 직접 본인의 작품 에서 모티브를 받아 수제작한 굿즈가 한정판으로 나왔었다는 소식에 대부분이 피눈물을 흘리며 잉크를 외쳐대었다.
[(난 가서 샀다. 첫날에 다 팔린 걸로 아는데 부스 입장 시작하자마자 검은 머리 무리가 한곳으로 뛰어가더라. 직감하고 나도 같이 따라 뛰어갔다. 한국인 네비게이션 엄청나다. 그리고 윗사람. 너도 그냥 첫날 왔으면 살 수 있었을 거다.)] [여기에 있다보면 실시간으로 외국어가 늘어나는 것 같아. 공부도 되고 교양지식도 쌓고 아주 일석이조네. 내일이 정시 면접날인데 이거 보고 있는 내가 레전드.] [그런데 여기 작업하는 곳은 대체 어디임? 저 멀리 숲이 보이는게 너무 멋있음. 설마 한국이 아닌 건가.] [한국인듯. 어딘지 대충 예상은 가는데 저번처럼 기레기 출동할까봐 말 안하겠음. 진짜 이번에도 찾아가서 훼방 놓으면 신고넣을 생각중.] [동의1111] [동의222]사람들이 채팅속에서 외치거나 말거나 강석은 작품에 집중했다. 강석은 잠에도 식사에도 매우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필요차원에서 해결하는 느낌으로 양선구의 마루에 놓아져있는 빵을 대충 우걱우걱 삼키거나 포도맛 탄산음료로 대충 입맛을 떨궈내었다.
옷과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마루에 대자로 뻗어자는 통에 양선구가 한복 차림으로 강석을 코 돌아가 죽을 일 있냐면서 불을 떼운 온돌방 안으로 들여보내는게 방송을 타기도 했다.
옷을 갈아입는 법이 없어서 양선구가 작업복을 주문해 입힐 정도였고, 강석은 머리에 떡이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작품에만 몰두했다.
마치 1분 1초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도 같았고, 이 집중력이 깨지는 게 싫어서인 것도 같았다. 어쨌든 범인의 그것으론 이해할 수 없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강석은 한겨울의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채팅창에는 강석은 얼음인간인거냐고 저렇게 한겨울에 작업을 하는데 어째서 손 하나 빨개지거나 갈라지는 법이 없냐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강석은 아픈 법도 없었고, 지치는 법도 없었다.
그 안에 용광로라도 끓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망치를 두들겼다.
강석이 무언가를 먹거나 자는 장면이 중간중간 라이브에서 가뭄에 콩 나듯이라도 나오지 않았으면 그들은 AI가 벌써 이정도까지 발전했구나, 오해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강석은 초인적인 기백으로 작업에 임했다.
정말 작품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묵묵하게···그렇게 강석이 작업에 집중한지 닷새째 되는 날.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한밤중에 채팅창이 천천히 올라갔다.
[제야의 종 기다리면서 이거 보는 중입니다.] [올 한해도 다들 고생 너무 많으셨습니다. 새로운 한 해도 파이팅입니다.] [좋네요. 요즘은 이렇게 다정한 커뮤니티가 없어서 소셜 활동을 아예 안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들어온 이 방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묵묵하게 작업을 하는 강석님을 보고 있으면 저도 오늘 하루를,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묵묵히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저도 제 인생에서 저런 멋진 작품을 만드는 날이 오겠죠.] [오. 윗분 예술가이신가요? 응원합니다.] [다들 한해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올해가 한 시간도 안 남았네요.]채팅을 볼 수 없는 강석의 작업을 지켜보며 얼굴을 모르는 이에게 덕담을 건네는 사이. 강석은 천천히,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강석은 조각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눈을 조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얼굴이 가려진 조각상을 카메라 렌즈 너머로 바라보던 이들이 채팅을 쳤다.
[진짜 눈을 뗄 수가 없는 작품이네요.] [너무 좋아요.] [근데 좀 궁금한게 선녀랑 나무꾼이랑 저렇게 되면 위치가 안 맞지 않나 싶긴 함. 나무꾼도 위를 향해 달리고 있고, 선녀도 위를 바라보고 있는데···설치 위치가 다른가?] [이건 진짜 실제로 가서 보고 싶네요.] [이 작품이 어디에 설치되는 작품인지 아시나요? 은 저번에 보니까 봉은사에서 임시 설치되고 있던데···진짜 실제로 가보니까 엄청나더라고요. 이것도 꼭 실제로 가보고 싶은데···혹시 아시는 분?] [아직 말씀 안하신 걸로 알아요.]오래 작품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채팅을 치는데 망설임이 없었지만, 금방 들어온 이들은 뭐라고 키보드도 두들기지 못하고 렌즈 너머로 멍하니 작품만 감상했다.
강석의 조각상은 묘했다.
전시에서 관심의 중심 대상이 되는 회화처럼, 강석의 작품은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그저 장식품으로 전락하여 ‘디피를 한 큐레이터가 실력이 없어 배치가 이상하게 되었다’고 변명하는 조각가들의 작품과 달리···강석의 작품은 항상 이렇게 시선을 잡아먹었다.
숭고하고 경이로워 바라보게 되었다.
영혼을 잡아끄는 것 같은 마력이 그곳에 있었다.
이해 못하는 이들은 렌즈너머로라도 저 작품을 바라보면 이해가 되리라.
상투를 튼 머리.
천으로 대충 동여맨 머리띠.
절망과 간절함으로 가득찬 표정.
풀어헤친 앞섶.
그 안으로 드러나는 상체의 다부진 근육.
펑퍼짐한 한복 바지.
전체적으로 달려가면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 한손을 쭉 뻗은 모양새. 선녀를 뒤쫓아달리는 나무꾼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돌에 가둬버린 조각상은, 그 어떤 배우가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기만 아니었다면 그냥 진짜 동화속에 등장하는 그 사람을 실제로 돌로 만들어버린 뒤 가져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기엔 근육이 너무 전투적이고 공격적이었지만. 아름답게 짜인 근육은, 화면 반대편에 있는 여성 대부분이 남몰래 얼굴을 붉힐 정도로 야성미가 넘쳐났다.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선녀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작품을 감상하느라, 또는 제야의 종소리 방송을 듣느라 조용해진 틈을 타서 강석은 섬세한 작업을 이어갔다.
눈동자를 통해 영혼을 본다는 소리가 있다.
강석은 조용히 돌에 마지막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했다. 눈물이 흐르진 않지만 무엇보다 절망과 경악과 간절함에 차오른 것은 영혼이었다.
영혼의 절규를 눈동자에 박아넣기 위해 강석은 끌을 눈동자를 조각하는 부위 위에 갖다대고 망치를 정말 섬세하게 두들겼다. 아주 섬세하게 민들레 홀씨보다 얇은 띠를 그려넣기 위해 강석의 망치가 아주아주 미약하게 끌을 두들겼다.
환한 드라마 촬영용 조명아래.
강석은 침묵 속에서 계속해서 그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왼쪽 눈동자의 한바퀴를 돌아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강석은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무려 4분 29초동안 숨을 참고 눈동자에 절망의 띠 하나를 새겨넣은 강석이 천천히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사다리를 치우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한걸음 한걸음 물러나는 강석의 발걸음에 양선구도 전기방석을 걷어차다시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른쪽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여성이, 왼쪽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여성을 붙잡으려는 남성이 완벽하게 조각되어있었다.
오른쪽은 여성이요, 왼쪽은 남성.
오른쪽은 부드러움이요, 왼쪽은 딱딱함이요.
오른쪽엔 희망과 자유를 향한 슬픔이, 왼쪽은 절망과 경악이 뒤섞인 갈망이 담겨있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희망이 들어찬 슬픔과 절망을 담은 갈망.
이렇게도 모순적인 작품이 있을까.
둘에게 들리지 않는 곳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는 그 시각.
이 완성되었다.
완성의 시점은,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사이였다.
강석은 작품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을 꿀떡 삼켜가며 작품을 바라보고 있던 양선구에게 말했다.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음. 어떤 부탁인감.”
이런 좋은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못 들어줄 부탁이 뭔가. 뭐든 들어주겠다며 양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학교에 있었던 대리석 옮길때 쓰셨던 것들 있잖아요. 그것 좀 여기로 불러주세요.”
“음. 아아. 바로 호텔로 옮기게?”
“옮기는 것도 옮기는 건데 그 전에 합쳐보려고요.”
“···음? 무얼 합쳐?”
강석이 작품을 가리켰다.
“이거 두개요.”
“으음?”
“말씀드렸었잖아요. 이번 작품은 하나이자 두개라고.”
95. 그려라, 안토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