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05화
사기꾼의 승리법 (7)
-파지지지지직!!!
푸른 뇌전의 격류가 천우성을 덮쳤다.
그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던 검은 날개가 갈가리 찢어발겨 졌다.
훤히 드러난 몸.
“…아?”
빛무리에 휩싸인 천우성의 눈이 오진을 향했다.
“뭐…야?”
부릅뜬 두 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에 타오르는 푸른 뇌전을 응시했다.
“뭐긴 새끼야.”
망가진 창을 옆으로 집어 던지며 주먹을 쥐었다.
한계 이상의 마력을 응축하느라 짓이겨진 주먹.
팔을 타고 흐르는 아찔한 격통을 무시하며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엄마 만나러 가는 급행 티켓이지.”
푸우우욱!!
푸른 뇌전이 응축된 주먹이 천우성의 가슴을 꿰뚫었다.
등까지 꿰뚫고 나온 주먹 안에 붉은 핏덩이가 맥동했다.
“쿠, 쿨럭!”
심장이 통째로 뜯겨나간 천우성의 입에서 울컥울컥 핏물이 흘렀다.
“왜, 왜…?”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뜬 채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오진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엄마… 엄, 마….”
“…….”
바닥에 쓰러져 애처롭게 엄마를 찾는 천우성을 내려다봤다.
9성을 목전에 둔 각성자이기 때문일까.
심장이 통째로 뜯겨나갔음에도, 천우성의 삶의 한 줄기를 놓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쯧.”
입맛이 썼다.
진흙탕물을 맨발로 밟은 듯 질척한 불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그놈의 엄마가 뭐라고.’
태어날 때부터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 버려졌으니.
천우성이 이토록 애타게 엄마를 부르짖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엄….”
“시끄러 새끼야.”
흐느끼는 천우성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은 후.
오진은 한숨을 내쉬며 천우성의 품속을 뒤졌다.
‘역시.’
마마보이 아니랄까 봐.
품속에 고이 모셔둔 작은 수첩 안에 어머니의 사진이 보였다.
파마머리를 한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의 모습.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30초에 한 번씩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여인이.
천우성에게 있어선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정도로 큰 존재였던 건가.
‘변형.’
우드득, 우득!
얼굴을 바꾼다.
“…어?”
흐릿해져 가던 천우성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어, 엄, 마?”
“…….”
굳이 대답할 필요까지 있을까.
오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다봤다.
“하, 하하! 어, 엄마!”
천우성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 보고 싶, 었어…. 꼭… 꼭, 다시.”
덜덜덜.
떨리는 손이 애처롭게 오진을 향한다.
“미안, 해… 엄….”
툭.
애처롭게 뻗어오던 손은 오진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천우성의 눈에서 완전히 빛이 사라졌다.
“…….”
고요하게 내리깔린 침묵.
오진은 쯧, 다시 한번 혀를 차며 천우성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짓은 나랑 영 안 맞긴 하지만.’
뭐, 그래도 마지막 정도는.
환상 속에서 눈을 감아도 괜찮겠지.
“어디 보자.”
쓰러진 천우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흑천.’
꾸르르륵.
검은 먹구름이 천우성의 뻥 뚫린 왼쪽 가슴을 뒤덮었다.
심장이 뽑혀나간 상태에서 흡수가 되나 살짝 불안했지만.
-쿠르르륵.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듯 곧바로 검은 먹구름을 타고 아찔한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엄청나구만.’
같은 8성이었던 박건우와는 차원이 다른 농밀한 마력.
양 자체가 엄청 많다기보단 마력의 질이 훨씬 농후했다.
‘이런 짙은 마력이라면.’
동일한 양의 마력을 사용하더라도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다.
좁은 마력 회로 때문에 골을 쓰고 있는 오진에겐 더없이 반가운 마력이었다.
한층 더 먹구름을 내뿜어 마력 흡수에 박차를 가했을 때.
-우우우웅!!
오진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이 밝게 타올랐다.
성흔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빛무리가 오진의 몸을 휘감았다.
‘이건.’
아까 전 천우성과 비슷한 현상.
“크윽!”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오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고통도 잠시.
-띠링!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6성으로 격상합니다!]여섯 번째 획(劃)이 성흔 옆에 새겨지며 전신에 힘이 끓어올랐다.
“하아.”
육체의 성장.
골격이 단단해지며 근육이 질겨진다.
철근도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초월적인 힘이 몸에 깃든다.
‘그리고.’
오진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육체가 성장했다는 건.
그 내부에 흐르고 있는 마력 회로 또한 확장됐다는 의미.
-파지지지지직!!
“그렇지.”
오진의 손안에 푸른 뇌전이 사납게 타올랐다.
6성이 되면서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마력의 양이 부쩍 늘어났다.
‘뭐, 이래도 마력 양에 비하면 100톤 물탱크 안에 든 물을 정원용 호스로 뽑아 쓰는 격이지만.’
그건 그가 지닌 마력 양이 워낙 궤를 달리할 정도로 막대해서 그렇지 동급의 각성자에 비하면 적은 양은 아니었다.
‘우리 여신님이 알면 또 까부러치겠구만.’
성흔을 각성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6성.
게임으로 치면 돈 주고 점핑권을 구한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성장 속도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지.”
만족하긴 턱없이 이르다.
역천의 별.
인류의 구원자를 연기하기 위해선,
더욱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더 강해져야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감히 자신의 것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음?”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치직.
‘전승인가.’
익숙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반전했다.
오진은 머릿속에 흘러드는 천우성의 기억에 정신을 집중했다.
-…은 왜 필요하신 겁니까?
-홀홀홀. 네가 알 필요는 없으니 신경 끄거라.
정체 모를 숲속.
쭈글쭈글한 피부를 지닌 노인이 천우성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보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게냐?
-예.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협회를 통째로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예요.
-홀홀홀. 잘하고 있구나.
-…….
천우성의 눈빛에 갈등이 서렸다.
-아버지. 역시 이번 일은….
-우성아.
사랑스러운 보물을 쓰다듬는 듯.
노인은 천우성의 뺨에 손을 올렸다.
-어멈의 일을 잊은 게냐?
-…그, 그건!
천우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홀홀홀. 쓸데없는 건 생각하지 말거라.
노인은 자상한 손길로 천우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이 아버지의 말만 따르면 되는 게야.
-…….
마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듯.
천우성의 눈이 순간적으로 흐리멍덩해졌다.
-예… 아버지.
천우성이 깊게 허리를 숙이는 걸 끝으로.
-띠링!
[각성자 ‘천우성’의 일부 기록이 성공적으로 전승됐습니다!] [올빼미자리의 성흔이 흑천에 완전하게 종속됩니다!] [흑천의 신규 특성, ‘지배’를 습득했습니다!]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를 대상으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기억이 끊어졌다.
“오.”
오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도 올빼미자리 성흔만 흡수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건가?’
각성자를 상대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아직 시험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성능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꽤나 쓸모 있을 것 같은 능력이었다.
‘그나저나.’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천우성의 기억 속에 보였던 노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천도윤.’
올빼미의 왕.
‘그놈이… 천우성을 부추겼던 건가.’
어쩌면 천우성이 겉만 성장한 ‘소년’으로 남아 있었던 게 천도윤의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대화만 들어보면 천도윤이 뭔가를 찾고 있긴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앞부분이 잘려서 알 수 없었다.
“끄응.”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침음을 삼켰다.
한동안 고민을 이어갔지만 천도윤이 뭘 계획하고 있는지 추측하기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일단 최대한 조심하는 수밖에 없나.’
천우성은 그렇다 쳐도.
천도윤은 아직 자신이 넘볼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사벨라처럼 고위 각성자겠지.’
서열 3위와 6위이니만큼 아마 이사벨라보다는 수준이 낮겠지만.
그래도 흑성회의 일곱 파벌을 이끄는 집행관 중 하나니 엄청난 실력을 자랑할 것이다.
‘이사벨라를 이용하면….’
생각을 이어가던 오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나치게 리스크가 크다.
이사벨라는 자신이 통제하기에는 너무 강대한 존재였다.
‘그렇다면.’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으로는 천도윤이 뭔 짓을 저지르기 전에 최대한 힘을 쌓는 방법 말고는 없나.’
고위 각성자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강해지는 수밖에는 없다.
“흐음.”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뜬 채 생각을 이어갔다.
‘빠르게 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라.’
한 가지.
생각해둔 방법은 있다.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끙차. 일단 준만 씨한테 연락이라도 해볼까.”
오진은 몸을 일으키며 씩 웃었다.
‘이거 보상이 꽤 짭짤하겠는데?’
천우성을 붙잡는 작전을 계획한 것도 모자라 도망치는 천우성까지 잡았으니 공으로 따지면 다른 사람과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
협회장 성격상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에 걸맞은 보상을 챙겨줄 것이다.
‘대체 얼마를 주려나?’
흐흐흐.
오진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실실 웃었다.
돈이 급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많아도 나쁠 게 없는 게 돈이지 않은가.
“어디 그럼.”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기 위해 팔을 움직였을 때.
욱씬!
“크윽!”
팔을 타고 아찔한 격통이 밀려왔다.
눈살을 찌푸리며 내려다보니 만신창이가 된 팔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걸레짝이 됐구만.’
전투가 끝난 이후 워낙 정신없는 일이 연달아 몰아치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은 팔뿐만 아니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으.”
모르고 있을 땐 아픈 줄 모르던 상처도 막상 발견하고 나면 선명하게 통증이 느껴지지 않던가.
지금이 딱 그런 상황.
몸 상태를 자각하자 통증과 함께 짙은 피로가 몸을 짓눌렀다.
‘씨벌.’
털썩.
오진은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연락… 해야, 하는데.”
우우우웅!
물병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해 몸을 치료하려 했지만, 그마저 지금은 쉽지 않았다.
손끝에 맺힌 푸른 빛이 계속해서 흩어졌다.
‘더럽게 졸리네.’
긴장이 한 번에 풀려서 그런가.
미칠 듯한 피로와 졸음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딱… 5분만….”
폐허가 된 지하 통로.
오진은 통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딱딱딱!
높은 구두 굽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때렸다.
“어떻게 한 번도 문자도, 통화도 안 주실 수가 있죠?”
“그, 그게….”
다리를 꼰 채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여인.
황금을 녹여 만든 듯 아름답게 빛나는 백금발을 쓸어올리며 발 앞에 머리를 조아린 노인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제가 뭐 부족하게 챙겨 드린 걸까요? 쭉 옆에 붙어서 병간호도 해드렸고 직접 요리까지 만들어 드렸는데.”
“여, 여왕님께선 최선을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혹시 제 외모가 맘에 안 들었다거나?”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노인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저었다.
“여왕님의 아름다운 외모에 빠져들지 않을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인은 점잖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쳤다.
깔끔하게 정돈된 회색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면.”
여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였다.
짙은 핏빛 기운이 넘실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그그그긍!!!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저택 전체가 뒤흔들렸다.
“대체 왜 연락이 안 오는 거죠?”
“그, 그게.”
“이럴 땐 먼저 연락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고 했던 건 로베르토였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여왕님!!”
꿀꺽.
여인 앞에 머리를 조아린 노인, 로베르토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말끔하게 다린 집사 복이 땀에 젖어 들었다.
“뭐, 됐어요.”
여인은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은 채 매끄러운 다리를 꽜다.
드레스 자락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다리가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직접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녀는 혀를 내밀어 붉은 입술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