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5화
보물찾기 (4)
“하으으. 너무 좋다, 진짜~!”
하은은 기지개를 켜며 늘씬한 두 다리를 쭈욱 뻗었다.
결국 수건걸이라는 날카로운 일침(?)에 온천 밖으로 나가지 못한 오진은 온천물 위로 드러난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에 입술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아 참! 그걸 까먹고 있었네!”
두 다리를 쭉 펴고 있던 하은이 손뼉을 쳤다.
“…뭘.”
오진은 피로에 찌든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아까 텐트 치고 있을 때 미리 온천 안에 이걸 넣어줬거든!”
하은이 찰박거리며 온천 구석으로 헤엄쳐 갔다.
묵직한 돌덩이 아래서 꺼낸 것은 둥그런 바구니.
“뭐야 그게?”
“온천하면 또 이게 빠질 수 없지!”
미리 챙겨온 바구니에서 계란을 꺼내 들며 씨익 웃었다.
뜨거운 온천 안에 담겨 있던 계란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계란은 왜 가져온 것이냐?]“원래 온천에서는 삶은 계란을 먹는 게 국룰이거던.”
[…인간들에겐 그런 문화도 있는 게냐?]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진을 돌아보는 베가.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온천이 아니라 찜질방 아니야?”
“그게 그거지 뭐.”
하은은 바구니에서 꺼낸 계란 껍질을 벗겨냈다.
탱글탱글하게 삶아진 흰자위가 드러났다.
“어디 보자… 캬하! 딱 반숙이네!”
삶은 계란을 반으로 슬쩍 쪼개본 하은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여기에 소금을 좀 쳐서 먹으면….”
먹기 좋게 반숙으로 삶아진 계란을 입에 넣은 하은의 입가가 한껏 풀어졌다.
“개 맛있다 진짜!”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바구니 안에 든 계란을 꺼내 껍질을 깠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삶은 달걀 위에 하은이 준비해온 소금을 살짝 뿌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입 안 가득 녹진한 노른자의 맛이 퍼졌다.
“와, 씨. 식혜만 있으면 딱 좋았을 텐데.”
요리에 반 필수품으로 쓰이는 계란은 한가득 챙겨왔지만, 식혜까지는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
[…그렇게 맛있느냐?]“온천물에 삶으면 뭔가 달라지는 건가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는 두 사람이 신기해 보였는지 베가와 이사벨라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진은 바구니에서 계란 두 개를 꺼내 깔끔하게 껍데기를 벗긴 후, 소금까지 솔솔 뿌려 두 여인에게 건네줬다.
[어디 그럼….]옴뇸뇸뇸.
마사지를 받은 후 다시 작은 크기로 돌아온 베가가 겨울철 식량을 비축하는 다람쥐처럼 삶은 계란을 갉아먹었다.
옆에 있던 이사벨라도 소금을 뿌린 계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흐으으음. 미묘한 맛이구나.]“…그냥 뜨거운 물에 삶은 계란인데요?”
이걸 굳이 온천까지 와서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듯 바라보는 두 여인.
“에잉, 꼬레아의 문화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둘 다!”
쯧쯧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하은.
어째서인지 그녀의 머리 위에 쓰지도 않은 갓이 씌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천 계란은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먹는 거야 가슴!”
“…가슴이요?”
[어찌 가슴으로 먹는단 말이냐?]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는 두 여인.
빤히 가슴을 내려다보던 베가의 시선이 이사벨라의 가슴께로 슬쩍 옮겨갔다.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지,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이사벨라가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가슴이라는 게 그 가슴이 아니라….”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문화의 차이라는 건 한, 두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지나치게 난해했다.
“흐음. 그럼 이렇게 먹어 보는 건 어때?”
삶은 계란을 무슨 농구공 돌리듯 재주 좋게 손끝 위에서 돌리던 하은이 이사벨라 쪽을 슬쩍 돌아봤다.
입가에 맺히는 장난기 어린 미소.
하은은 이사벨라가 있는 곳으로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헤엄쳤다.
“에잇.”
“꺄악!”
파삭!
하은이 손에 쥔 계란을 이사벨라의 머리에 내리쳐 깼다.
“무, 무슨 짓이에요 언니?!”
우아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있던 이사벨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하은을 돌아봤다.
하은이 낄낄 웃음을 터뜨리며 삶은 계란의 껍질을 벗겼다.
“한국에서는 원래 이렇게 깨 먹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삶은 계란을 다른 사람 머리에 내리쳐서 깨 먹는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문화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진짜 그런다니깐?”
“흥! 제가 그래도 한국에 꽤 오래 있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에 속을 것 같아요?”
이사벨라가 오진을 돌아보며 진실을 요구했다.
“어… 그러니까.”
난처한 미소를 짓는 오진.
“온천이 아니라 찜질방에서 그러는 문화가 있긴 했는데.”
예능 프로그램이나 철 지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지 요즘에는 거의 사장된 문화였다.
“…한국은 대체 무슨 나란가요?”
이사벨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맛나게 계란을 까먹고 있는 하은을 바라봤다.
“자자, 그러지 말고 벨라도 한 번 해봐.”
하은이 자신의 정수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흐으음. 알겠어요, 저도 해볼게요.”
그녀는 삶은 계란을 손에 쥐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문화를 배우는 건 앞으로 오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일.
그들의 문화가 아무리 난해하다고 해도, 미래를 위해서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니. 뭐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하압!”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지는 팔.
이사벨라의 손에 쥐어진 계란이 하은의 머리에 부딪히며 산산이 박살이 났다.
아악!
하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야 이년아! 계란 껍질을 깨라고 했지 누가 계란을 박살 내라고 했냐?!”
“어, 어머?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나요?”
이사벨라는 손바닥 위에서 처참하게 짓뭉개진 계란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녀도! 본녀도 해보고 싶으니라!]삶은 계란을 다른 사람의 머리통에 내리쳐 깨 먹는 문화(?)에 흥미가 솟은 건지 베가가 눈을 반짝이며 계란을 들어 올렸다.
“…그만. 이제 그만.”
오진은 지칠 줄 모르는 여인들의 체력에 혼이 빠진 망자와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나도 순찰이나 돌걸.
괜히 이 자리에 없는 리아크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하아.”
폭풍 같았던 계란 사태(?)가 끝나고 난 후.
그제야 오진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 참, 오지나.”
귓가에 바짝 입술을 가져간 채 속삭이는 하은.
“아까 첨에 속옷은 입은 거냐고 물어봤잖아?”
“…스포츠웨어를 잘라 입었다며.”
“그건 벨라가 그런 거고.”
하은은 몸에 두른 수건을 살짝 끌어내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에, 보여줄까?”
아슬아슬하게 내려온 수건.
조금만 더 내리면 그녀의 새하얀 살결이 훤히 드러나게 될 정도가 됐을 때.
하은은 수건을 내리는 걸 멈추고 오진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그윽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뭐냐, 하이머딩거인가?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잖아. 관측하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고.”
“슈뢰딩거예요 언니.”
그리고 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고요.
“어, 어쨌든! 오지니 네가 직접 속옷을 입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은이 괜한 헛기침을 내뱉으며 오진의 손에 몸에 두르고 있는 타올 끝을 쥐여줬다.
“자자!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를 벗긴다는 느낌으루 확 벗겨봐!”
크리스마스 선물은 뭔 또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오진이 실소를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쥐여준 타올을 둘러 하은의 몸을 다시 가렸다.
“뭐야, 확인 안 해보게?”
“그렇게 당당한 걸 보니 대충 결과가 예상돼서 말이지.”
“에이, 뭐야.”
하은이 싱겁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한껏 오진을 골려줄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다음 수를 떠올린 하은이 별처럼 눈을 반짝였다.
“오지나, 오지나. 이리 와봐.”
하은이 그에게 손짓을 보냈다.
“왜?”
“빨랑.”
오진이 다가가자 잽싸게 팔을 끌어안은 하은이 배시시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따~ 좋다.”
어깨에 닿는 촉촉한 살결.
물에 젖은 적갈색 머리칼이 오진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지니 심장 소리 들린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 하은이 배시시 웃으며 한층 몸을 가까이 붙였다.
그녀는 이렇게 두근거리는 오진의 심장 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가 여기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오지나.”
“…응?”
“사랑해.”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감각.
돌직구로 파고든 그녀의 말 한마디가 두근거리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솔직히.
그녀가 속살을 보여준다고 유혹했을 때보다 몇 배는 가슴이 뛰었다.
“앗, 치사하게 언니만 그러기 있어요?”
꽁냥거리는 둘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이사벨라가 오진의 반대편 팔을 끌어안았다.
“저도 사랑해요, 오진 씨.”
“…….”
두 연인이 보내주는 낯 뜨거운 호의에 오진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으으.]아직 그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못한 베가만이 홀로 남아 부럽다는 듯 하은과 이사벨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오진은 양팔을 타고 전해지는 보드라운 감촉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얇은 수건 한 장만 걸친 상태에서 양옆에 하은과 이사벨라가 달라붙으니 온천을 즐기고 어쩌고 할 상태가 아니었다.
[다, 다들 너무 과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구나!]“에이, 뭐 어때. 남남 사이도 아닌데.”
[그, 그래도 여인으로서 지켜야 할 체통이라는 게 있지 않으냐!]베가는 뺨을 부풀린 채 오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여인을 노려봤다.
하은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베가를 바라봤다.
“글쎄에~? 난 누구랑 다르게 엉덩이를 때려달라는 부탁은 안 해서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에~?”
[이, 이익!]울상이 된 베가가 하은에게 달려들었다.
다시금 왁자지껄한 소란이 온천에 울려 퍼졌다.
“하아.”
오진은 지쳤다는 듯 돌벽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따듯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올려다봤다.
살짝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가슴 속에 따스한 감정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좋네.’
마경 한복판에서도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솔직히 마경에 막 도착했을 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랑 있는지가 중요한 거니까.’
비록 이곳이 지구가 아닌 마경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옆에는 하은과 베가, 이사벨라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의 곁에는 지금 누가 남아 있을까.
오진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갔을 때.
쿠우우우웅!
땅이 뒤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저긴….”
“리아크 씨가 순찰을 돌고 계신 곳이에요.”
오진은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굉음이 들려온 방향을 돌아봤다.
서로 티격태격 장난을 치고 있던 하은과 베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진중해진 표정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리아크의 울음소리.
“쯧.”
오진은 혀를 차며 온천 밖으로 뛰쳐나왔다.
달콤한 휴식 시간은 끝났다.
오진 일행은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