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정사대전 (9)
“그레모리,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무슨 뜻인가요, 사브나크.”
판데모니움 72악마의 일원이자 극동 제1지역 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그레모리는, 마찬가지로 부사령관을 맡고 있는 사브나크의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판데모니움의 대표적인 주화파(主和派)인 당신이 가장 먼저 침공을 개시하다니 말이야. 그것도 아스모데우스 전하의 작전 계획을 무시하고.”
“침공 작전은 이미 마신총회에서 승인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제가 며칠 일찍 움직인다고 해서 별문제는 없겠죠.”
“그러니까, 주화파인 당신이 그렇게 급하게 침공을 시작한 게 이해가 안 된다니까.”
그렇다.
이번 침공은 그레모리의 독단으로 시작한 것이다.
함께 극동 제1지역을 관할하는 아스모데우스, 사브나크는 관여하지 않았다.
“사브나크,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떤 거지?”
“어차피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제가 앞장서서 많은 영지를 확보하여, 그곳에 사는 인간들을 전부 제 관리하에 놓는 게 낫습니다.”
“오호라?”
사브나크가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런 건가? 아스모데우스 전하나 내가 인간들을 괴롭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자기가 먼저 인간들을 공격해서 포로로 만들겠다?”
“문제 있습니까?”
“아니, 좋아! 나한테는 이 상황이 더 좋지!”
“…….”
“그러면 앞으로는 경쟁이 벌어지겠군! 우리 셋 중에서 누가 더 빨리 인간들을 사냥하는지 경쟁하는 거야!”
“아스모데우스의 작전 계획은요?”
“당신이 먼저 작전 계획을 무시하고 움직였으니, 나도 그래야지! 아스모데우스 전하가 좀 기분 나빠 하실 수도 있지만 말이야!”
“……마음대로 하시죠.”
“하하. 그럼 나도 빨리 내 군단들을 다그쳐야겠군! 당신을 쫓아가려면 빨리 움직여야지!”
떠들어 대면서 가 버리는 사브나크의 뒷모습을 보며, 그레모리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김무명, 벨리알…… 이걸로 된 거겠죠?’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악마인 그레모리가 이번 침공을 시작한 건, 어디까지나 김무명과 벨리알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정사대전으로 정파와 사파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그레모리에게 병력을 움직여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덕분에 제 입장은 매우 난처해졌어요. 주화파 동료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사실 이번 일은 그레모리에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물론 많은 병력을 동원했다고는 해도 본격적으로 인간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고, 나중에 슬그머니 뒤로 빠질 계획이긴 했지만…… 주화파인 자신이 앞장서서 진군을 시작하는 거니까.
‘진정한 동반자가 되려면 공통의 적과 함께 싸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게 당신의 말이었죠, 김무명.’
김무명은 정사대전을 멈추기 전에 판데모니움이라는 공통의 적을 이용했다.
그레모리를 통해 예정보다 침공을 앞당기는 것으로, 정파와 사파가 급하게 화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주화파인 저한테 이런 역할을 맡기다니…… 정말이지 놀랍군요.’
계약자들 사이의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판데모니움의 마신급 악마를 움직인다.
대체 누가 그런 발상이 가능할까?
‘벨리알…… 김무명이라는 자는 정말로 무섭군요.’
손을 잡아서는 안 되는 사람과 손을 잡은 걸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레모리는 혼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이게 이번 일의 전모야, 양전.”
“믿을 수가 없군요…….”
내 얘기를 듣고, 양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로, 판데모니움 72악마의 일원인 그레모리를 포섭한 겁니까? 공작의 작위를 지닌 그 대악마를?”
“그렇다니까.”
“하, 하긴 벨리알과 손을 잡고 있었죠. 그렇다면 그레모리를 포섭하는 것도…….”
양전이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레모리의 군사 행동이 어디까지나 위협에 지나지 않고, 본격적으로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이 없다면…… 이건 정파와 사파 사이의 갈등을 봉합할 신의 한 수가 됩니다.”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0세기 초,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어.”
“네?”
“하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양 진영은 손을 잡았지.”
“……지금과 비슷하군요.”
“그래, 결국 심각한 위기 상황 앞에서는 서로 적대하던 조직도 급하게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거야.”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그 이후 다시 국공내전이 발생하여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서로 간의 유대가 발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현재 사파는 정파 쪽에 가까운 이념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처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도 아니다.
“하, 하지만 백림맹 상하이 지부 사건은 어떻게…….”
“확실히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갈등의 소지가 남지.”
“윽…….”
양전이 입술을 깨물었다.
백림맹 상하이 지부가 몰살당한 건 양전이 양산박 계열 성좌를 움직여 저지른 자작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면 양전의 이미지가 추락하게 된다.
“걱정하지 마. 당신의 대외적인 명예는 지켜 주겠다고 했잖아.”
“그, 그렇다면…….”
“그 일은 음모야.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며 말했다.
“인간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하민아의 음모였던 거지.”
내 말을 들은 양전이 입을 떡 벌렸다.
“하, 하민아의 음모라고요?!”
“그래,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설명되지.”
모든 건 판데모니움의 사주를 받은 하민아의 음모였다.
백림맹 상하이 지부를 몰살시킨 것도, 정사대전을 일으킨 것도…… 전부 하민아의 더러운 음모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민아라는 공공의 적을 내세우면, 정파와 사파의 동맹은 더욱 견고해질 거야.”
“그, 그렇군요!”
양전이 감탄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사실 저도 하민아에게 뒤집어씌우는 방법을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
“네! 이렇게 되었으니 모든 걸 하민아한테 몰아주는 게 낫겠군요! 그걸 통해…….”
“근데 당신도 죗값을 치르긴 해야지.”
“윽……!”
양전이 몸을 움찔했다.
“걱정하지 마. 대외적인 명예는 지켜 주겠다고 했잖아.”
양전은 큰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 몇몇 성좌들한테 이규나 브라다만테 등을 보낸 것처럼 직접적으로 단죄(斷罪)할 생각은 없었다.
양전은 이용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당신은 앞으로 우리들 일을 도와줘야겠어.”
“일을…… 말입니까?”
“당신은 계속 대일통회의 우두머리로 행동하면서, 대일통회를 이끌고 우리에게 협력해 줘.”
양전이 만든 대일통회는 중국의 계약자들을 움직일 때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대일통회는 정파와 사파의 동맹을 지지하고, 판데모니움과 싸우기 위해 적극 협력하는 단체가 될 거야.”
“……당신들과 발을 맞춰서 말입니까?”
“그렇지.”
물론 어디까지나 주역은 S급 성좌 ‘무명의 왕’이고, 대일통회는 그 들러리가 될 것이다.
자기가 주역이 되어서 중국을 통일하는 걸 꿈꾸던 양전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스럽겠지만…… 약점을 잡혔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거하고는 별개로, 앞으로 당신의 능력으로 몇 가지 일을 해 줘야겠어.”
“제 능력으로요?”
“그래.”
S급 성좌인 양전은 지상에 내려갈 수 있는 [화신 강림] 스킬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달기 이상의 둔갑술까지 사용할 수 있다. 남의 성좌무구조차 재현해 내는 실력이니, 그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나는 양전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민아를 붙잡으려면 당신 도움이 필요해.”
행방을 파악하기 어렵고, 어쩌다가 모습을 드러내도 금방 사라져 버리는 하민아.
그 신출귀몰한 여자를 붙잡기 위해, 나는 양전이 필요했다.
* * *
정사대전은 중지되었다.
흑룡회 회장 진가휘가 먼저 고개를 숙였고, 백림맹 맹주 양위정이 그걸 받아들였다.
지금 정사 연합과 사파 연합은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고 향후의 방침을 논의 중이다.
정사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백림맹 상하이 지부 몰살 사건은 하민아의 계략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정사대전 자체가 인위적으로 꾸며진 일이라는 게 밝혀지자 정파와 사파 양쪽 모두 분노하였다.
힘을 모아 인류의 배신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다들 목소리를 높였고, 정파와 사파 사이의 갈등은 빠르게 봉합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신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던 건가?”
“뭐 그렇지. 높으신 분들의 명령을 받아서 말이야.”
강유진이 묻자, 마태수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대답했다.
“진가휘 회장, 삼존…… 어르신들 모시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 설득하느라 많이 힘들었어.”
“…….”
“그래도 뭐,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만족스럽군.”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마태수는 벨리알의 지시를 받아 각지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진가휘가 양위정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 것도 마태수의 설득 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바빠질 거야.”
“판데모니움의 총공세가 시작될 테니까?”
“그래.”
마태수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진, 그레모리와 사브나크는 그렇다 쳐도 아스모데우스는 만만치 않아.”
“아스모데우스…….”
판데모니움 극동 제1지역 사령관, 아스모데우스.
‘왕’의 지위를 지닌 주전파의 거물.
“아스모데우스는 하민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아마 하민아는 그 밑에서 움직이고 있겠지.”
“……그러면 소체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일본의 사이온지 케이토처럼 딱 눈에 띄는 계약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는데 마땅한 계약자가 보이지 않아. 정사대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실력자가 없었고, 결국 정파에도 사파에도 소체는 없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소체는 정파에도 사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거나…….”
마태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판데모니움 내부에 있다고 봐야겠지. 하민아와 함께 말이야.”
* * *
자금성.
베이징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로, 현재는 판데모니움 극동 제1지역 사령관 아스모데우스의 거성(居城)이다.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교태전에서, 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흠.”
흉측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모습을 지닌 노인이었다.
피부색은 붉었고, 양쪽 관자놀이 근처에 커다란 뿔이 나 있었다.
“기분은 어떤가, 하민아.”
“……별로 좋지는 않군요, 아스모데우스 전하.”
그렇게 대답한 건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성…… 온 세상이 찾아다니고 있는 인류의 배신자 하민아였다.
“이렇게 끔찍한 고문 기구들에 구속된 채 지내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리가요.”
“흠, 그건 그렇다 치고.”
아스모데우스가 몸을 숙여, 고문 기구에 사지가 고정된 채 웅크리고 있는 하민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떤가. 이제 내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어쩔 수 없군요.”
하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아스모데우스 전하.”
“오오, 그렇다면……!”
눈을 빛내는 아스모데우스 앞에서, 하민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이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협력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