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기사 내습 (7)
오른팔이 없었다.
오른쪽 눈도 감겨 있었다.
계속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기 때문에 별로 깔끔한 모습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천상운……?”
“그럼 누구겠냐, 이현제.”
천상운.
팔부중 최강으로 꼽히던 계약자.
지난번 시나리오에서 강유진한테 패배한 뒤, 큰 부상을 입고 계속 잠들어 있던 그가…… 지금 이현제 앞에 다시 나타났다.
“어떻게, 깨어난 거지?”
“뭐야, 내가 계속 잠들어 있던 걸 바랐던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깨어나야지.”
믿을 수가 없었다.
기약 없는 잠에 빠져들었던 천상운이…… 지금 눈을 뜨다니.
“모처럼 의식을 회복했는데, 더 기쁜 표정으로 환영해 주면 안 되나?”
“천상운, 나는…….”
“그건 그렇다 치고.”
천상운은 고개를 돌려 아서를 쳐다봤다.
“엑스칼리버…… 그럼 역시 아서 왕의 계약자인가.”
“흠, 엑스칼리버를 알아보는 건가.”
두 사람은 분위기가 비슷했다.
이목구비가 수려했고, 기사처럼 올곧고 당당한 인상이었다.
그러면서 왕처럼 남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서 왕의 계약자.”
“아서라고 불러 주면 좋겠군. 그런 코드네임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러면 아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허가하지. 무슨 질문이지?”
“누구 마음대로…….”
천상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팔부중이 관리하는 수도권에서 이 난동을 피우는 거지?”
그 순간, 천상운의 몸에서 검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본래 검기는 손에 칼을 들고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천상운은 맨몸으로 검기를 펼쳤다.
그것을 동시에 십여 개, 마치 광탄계 마법을 난사하듯이.
“주군!”
“……!”
모드레드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고, 아서 또한 경직된 표정으로 엑스칼리버를 치켜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피할 수 없는 검기의 난무가 그들을 덮쳤고, 굉음과 함께 주위 벽까지 무너졌다.
“팔 한 짝 없는 사람한테 이렇게 중노동을 시키고 말이야. 이래서 되겠어?”
“천상운, 어떻게…….”
“나도 그냥 잠만 자고 있었던 게 아니거든.”
천상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현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역시…… 천상운은 천상운인 건가.’
하지만, 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먼지가 걷히며 아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훌륭하군.”
“……쯧.”
멀쩡히 서 있는 아서를 보고 천상운이 혀를 찼다.
“대단한 오라였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 이런 공격을 계속해서 펼칠 수는 없겠지.”
“…….”
정곡을 찔렸는지 천상운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너희의 미래는 패배뿐이다.”
그렇게 말하며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들고 다가왔다.
모드레드도 자기 검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음, 이건 좀 위험한데.”
“천상운…….”
“하지만, 상관없겠지.”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천상운은 여유로웠다.
“시간은 벌었으니까 말이야.”
“……!”
바로 그때, 깨진 창문을 통해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유진……!”
“늦어서 미안하게 됐어, 이현제.”
바깥에서 다른 적들을 상대하느라 오지 못하고 있다던 강유진이,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어?”
강유진이 천상운에게 시선을 향했다.
“당신, 언제 깨어난 거야?”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군, 강유진.”
천상운이 미소를 지으며 강유진을 쳐다봤다.
“다만 재회를 기뻐하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저놈들을 상대해야 하거든.”
“저놈들…….”
“강유진, 저 남자들은 아서와 모드레드의 계약자야. 실력이 엄청나.”
이현제의 말을 들은 강유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두 남자를 쳐다봤다.
“……여기까지 오면서 가웨인이니 퍼시벌이니 하는 놈들하고 싸웠는데, 당신이 그놈들 대가리인가?”
“네놈, 말조심해!”
모드레드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강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난리를 벌여 놓고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지?”
“책임?”
“그래, 이 땅에서 소란을 피웠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말하고 강유진은 천상운을 손가락질했다.
“참고로 저 남자는 저 꼴이 되는 걸로 책임을 졌지.”
“이현제, 강유진은 여전히 거침없네. 사람 마음을 쿡쿡 찔러.”
“천상운, 그냥 포기해…….”
천상운과 이현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유진은 계속 말했다.
“여기 말고도 네 부하들 습격 때문에 피해자가 꽤 많아. 팔 하나과 눈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이 자식이……!”
“재미있는 남자군.”
검을 치켜드는 모드레드를 제지하면서 아서가 입을 열었다.
“그런가, 네가 강유진인가.”
“맞아.”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 주다니, 고맙군.”
“고마워?”
“그래, 원래 가웨인이나 랜슬롯한테 양보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
“너를 쓰러뜨리는 건 좋은 경험이 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동작을 멈추고 창문 밖을 쳐다봤다.
“아쉽게 되었군.”
“뭐라고?”
“시간이 되었다.”
바로 그때,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다. 꽤 먼 곳에서 발생한 소리다.
“뭐지?”
“아발론.”
아서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의 본거지가 부상(浮上)한 것이다.”
* * *
한강 한가운데에 이변이 발생했다.
여의도에서 약간 서쪽에…… 하나의 섬이 솟아오른 것이다.
“아발론……!”
통신창에서 아르주나가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건 A급 성좌 ‘이상향의 여인’ 모건 르 페이의 성좌무구……!”
“저 섬이…… 성좌무구란 말입니까?”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었다.
아름다운 꽃밭과 나무숲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우아한 궁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물속에서 솟아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젖어 있지 않았다.
“설마…….”
나는 네모 선장의 성좌무구인 노틸러스호를 떠올렸다.
‘노틸러스호처럼 물속을 이동할 수 있는 성좌무구란 말인가?’
모건 르 페이는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요정 내지는 마녀다.
모드레드와의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은 아서 왕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이, 그녀가 지배하는 낙원의 섬 아발론이었다.
“그렇다면 저 섬은…… 라운드의 이동 요새인 거군요.”
“그렇겠죠…….”
라운드의 멤버들이 수도권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가 이제야 밝혀졌다.
그들은 저 아발론을 이용해 몰래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그동안 라운드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여 왔습니다. 저걸 이용해 작전 행동을 했던 거군요.”
“마법 같은 걸로 위장도 했을 테고, 발견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이번에는 정말로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르주나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귀추가 주목되는군요.”
“…….”
한강 한가운데에 나타난 아발론.
이 작은 섬은 그 아름다운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수도권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감케 했다.
* * *
“모드레드, 아발론에 귀환한다.”
“네, 주군.”
아서는 모드레드와 함께 자리를 뜨려 했다.
“멈춰!”
강유진이 목소리를 높이자, 아서는 발을 멈추고 강유진을 쳐다봤다.
“강유진, 우리 라운드가 이 땅에 온 목적은 두 가지다.”
“뭐라고?”
“하나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체를 소탕하기 위해 마녀 하민아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한국의 소체인 강유진을 토벌하는 것.”
“……!”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만약 그들의 목표가 소체의 말살이라면…… 강유진 또한 그 표적이 된다.
“처음에는 소규모 인원으로 하민아를 포획하고 강유진을 죽인 뒤 퇴각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늦어졌고, 그다음 작전을 시행할 시간이 되었지.”
“다음 작전?”
“이 땅을 무대로, 대규모 실전 연습을 시행하는 것.”
실전 연습.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우리 라운드는 소체 토벌과는 별도로 각지에서 실전 연습을 실시하고 있다.”
“실전…… 연습?”
“그래, 우리 라운드는 더 강해져야 하니까. 최후의 결전을 위해.”
“판데모니움과의 전쟁을 말하는 건가?”
강유진이 질문을 던졌지만, 아서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나?”
그때 이현제가 입을 열었다.
“우리를 얕보지 마라, 아서.”
“얕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연습 상대로 삼은 거다.”
아서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리 말해 두지만, 항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민아와 강유진을 진상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그 단계는 지났으니까. 최대한 전력을 긁어모아 맞서도록 해라.”
“아서……!”
강유진은 아서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아서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지?”
“사라졌어……!”
아서뿐만이 아니라 모드레드도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어디로 간 거지?”
“……아, 그런가.”
그때 천상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서 왕의 보물들 중에 투명해지는 망토 내지는 양탄자가 있었어. 아마 그런 아이템을 갖고 있는 거겠지.”
“투명해진 거라고? 그러면 지금 당장 찾아내서…….”
“관둬. 이미 멀리 가 버렸을 거야.”
고개를 흔들면서 천상운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예전에 그녀석이 얘기해 줘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네. 좀 더 빨리 생각해 냈어야 하는데.”
“그 녀석?”
“그런 게 있어. 어쨌든…….”
천상운이 이현제에게 시선을 향했다.
“뭔가 일이 커졌네, 이현제.”
“천상운…….”
“지금 수도권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이 자식…….”
이현제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천상운의 왼쪽 어깨를 꽉 잡았다.
“그렇게 큰일을 저질러 놓고……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염치없는 소리라는 건 알고 있어.”
“그래, 정말로 염치없다고, 너는…….”
“백의종군할 테니까 한시적으로나마 받아들여 주면 안 될까? 팔도 눈도 성치 않지만 그럭저럭 전력은 될 거야.”
“그럭저럭은 무슨, 아까 하는 것만 봐도, 너 정도면…….”
감정이 북받치는지, 이현제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현제를 보면서 천상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돕게 해 줘, 이현제.”
“……내가 할 말이야.”
이현제가 천상운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천상운의 왼손을 맞잡았다.
“잘 돌아왔어, 천상운.”
수도권 최강으로 꼽히던 팔부중의 일인자가, 오랜 침묵 끝에 복귀했다.
* * *
“이봐, 무명의 왕.”
그렇게 무서운 목소리로 말한 건, 다름 아닌 이아손이었다.
“나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났어.”
이아손은 무슨 일을 당해도 뻔뻔하게 웃고 있는 남자다.
그런 이아손이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물론 금양단 본부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태였고, 덕분에 인명 피해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가만히 넘어갈 수 없다고.”
“나도 이아손 말에 동감이야!”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이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에서 왔던 그놈들도 이렇게 굴지는 않았어!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놈들 대가리를 다 쪼개 버려야 해!”
이규도 화가 잔뜩 났는지 얼굴이 평소보다 더 시뻘게져 있었다.
“……저도 동감입니다, 무명의 왕.”
평소 거친 성격의 이규하고는 마음이 잘 맞지 않던 용길공주까지 이규 말에 동의했다.
“모처럼 강유진과 이죽헌이 합류해서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아주 초를 치는군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니, 화내는 포인트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대꾸하고 나는 허공에 떠 있는 관측기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다.
갑자기 수도권에 나타난 라운드의 이동 요새 아발론…… 여의도 근처에서 떠 있는 그 작은 섬을 노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다들 뜻이 같다니 다행이군요.”
“무영의 왕, 그렇다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 건방진 놈들 대가리를 전부 다 쪼개 버리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