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성유물 (1)
마지노선.
1936년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국경선에 설치한 요새다.
160억 프랑이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프랑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건설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마지노선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진격했다. 마지노선을 돌파하지 않고 우회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나, 마지노선은 판데모니움의 거점으로 부활했다.
악마들의 손에 개조되어 요새의 방어력은 극한까지 강화되었으며, 40개 군단이 요새 내부 및 주위에 배치되었다.
마침내 마지노선은 진정한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언제 봐도 놀라운 위용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벨리알이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악마가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무슨 용무로 찾아온 거냐, 벨리알.”
“그렇게 쌀쌀맞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스타로트.”
아스타로트.
판데모니움 72악마의 29번으로, 공작의 작위를 지녔으며 40개 군단의 지휘권을 갖고 있다.
강대한 힘을 지닌 악마로, 예전에는 판데모니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로 꼽히던 시절도 있었다.
현재는 판데모니움 서유럽 방면의 총책임자로서 이 마지노선을 본거지로 삼아 군림하고 있다.
“예전에 같이 타천했던 사이 아닙니까.”
“웃기고 있군.”
아스타로트는 루시퍼나 벨리알 등과 함께 천사의 자리에서 추락한 타천사다.
하지만 아스타로트의 눈빛에 동료 의식 같은 건 담겨 있지 않았다.
“배신자 주제에 그런 말을 하다니, 너는 정말 철면피로구나.”
“배신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레모리를 부추긴 게 너지?”
“그레모리? 아, 최근 중국에서 배신했었죠.”
아스모데우스와 사브나크가 죽은 뒤 중국 지역을 홀로 담당하고 있던 그레모리가, 얼마 전에 갑자기 판데모니움을 배신하고 인간들에게 붙었다.
현재 흑룡회 등과 연합하여 중국 지역의 주전파(主戰派) 악마들을 몰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근데 제가 그레모리를 부추겼단 말입니까?”
“너는 주화파(主和派)의 중진 아니었나?”
“그것도 옛날 얘기지요. 그레모리가 제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알다시피 저는 판데모니움 내부에서 힘이 거의 없습니다. 영토도 쥐꼬리만 하고 말입니다.”
“한반도 서해안이었나? 그곳은 그레모리가 배신하기도 전부터 인간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지?”
“교역이 활발했던 거죠. 알다시피 영토가 너무 작아서 외부와 교역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듭니다.”
“변명하지 마. 최근 들어서는 완전히 인간들과 어울려서 살고 있다던데.”
“알다시피 한반도의 계약자들은 요새 기세가 대단합니다. 알아서 몸을 낮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한반도 북부의 판데모니움 세력은 전부 토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리알이 지배하던 한반도 서해안 지역은 아직도 악마들이 남아 있다.
마태수를 통해 팔부중과 비밀리에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웃기는군. 네가 직접 나서면 인간들 따위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설마요. 요새 저는 아무런 힘도 없는 퇴물입니다.”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아스타로트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아스타로트.”
“뭐라고?”
“왜 마신총회는 가만히 있는 겁니까?”
“…….”
마신총회.
판데모니움의 72악마들만 참석할 수 있는 회의로, 먼 옛날 판데모니움을 만든 타천사들이 향후 방침을 의논하기 위해 개최했던 회의를 기원으로 한다.
지금은 판데모니움의 ‘의회’로서 상시 가동되고 있으며, 외부에 나가 있는 사령관들도 마신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72악마 전원의 의견을 취합하여 결론을 내는 일은 별로 없다.
발언력이 큰 일부 악마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페넥스, 중국에서 아스모데우스와 사브나크, 연해주에서 포르네우스, 프랑스에서 마르바스가 죽었습니다. 게다가 시베리아에서 크로셀도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지요?”
“…….”
“극동 방면은 완전히 괴멸되고, 그레모리가 배신해서 인간들에게 붙었습니다. 지금 판데모니움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마신총회는 왜 아직도 반격을 지시하지 않는 거지요?”
“이상한 얘기를 하는군, 벨리알.”
벨리알의 질문에, 아스타로트는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
“마신총회의 상황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요즘은 마신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웃기지 마라, 벨리알.”
아스타로트가 코웃음을 쳤다.
“지금 마신총회에 참석하면 주전파(主戰派) 악마들에게 붙잡혀 능지처참을 당할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 아닌가? 주전파도 주화파도 아닌 나라면 비교적 객관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이것 참, 당신에게는 못 당하겠군요.”
벨리알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요즘 저는 무척이나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다들 제가 그레모리를 부추긴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평소 행실을 똑바로 했어야지.”
“하지만 저는 결백합니다, 아스타로트.”
“네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아, 벨리알.”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로트는 팔짱을 꼈다.
“그래도…… 네 의문에는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요새 판데모니움이 조용한 건 바엘 전하의 의지야.”
“바엘의?”
바엘.
판데모니움 72악마의 1번으로, 루시퍼 사후 판데모니움의 사실상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악마다.
주전파도 주화파도 아닌 중립의 위치에서 72악마를 잘 통솔하고 있었다.
“몰렉을 중심으로 한 주전파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인간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 하지만 바엘 전하가 막고 있어.”
“어째서죠? 설마 인간들과 화평을?”
“그것도 아니야. 주화파가 이번 기회에 인간들과 평화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막고 있지.”
“그럼 대체 뭡니까?”
벨리알의 질문에, 아스타로트는 누군가 엿들을까 걱정된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바엘 전하는 성유물을 찾고 있어.”
성유물.
그 단어를 듣고 벨리알은 귀를 의심했다.
“기독교의 성인과 관계있는 물건 말입니까?”
“그런 어설픈 것들이 아니야. ‘신의 아들’과 관계있는 물건을 찾으려 하고 있지.”
“설마…….”
“성배, 성창, 성정…… 우리 악마들 입장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성물들이지.”
“……!”
‘신의 아들’의 피를 받은 성배.
‘신의 아들’의 옆구리를 찌른 성창.
‘신의 아들’의 손을 십자가에 박은 성정.
“알고 있나? 최근에 마르바스가 성유물의 파편이 봉인된 성검을 입수했지. 그것도 바엘 전하의 명령이었어. 뭐 이번에 마르바스가 쓰러지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모양이지만 말이다.”
“바엘은…… 그런 물건들을 찾아서 어쩔 생각인 겁니까? 우리들한테는 너무 위험한 물건 아닙니까?”
“적절한 의식을 수행하면 그 신성력을 반전시켜 마성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어. 마르바스도 그 의식을 완료한 뒤 바엘 전하에게 갖다 드리기 직전에 변을 당했지.”
“……혹시 바엘은 그 힘을 이용해 이 세상을 정복할 생각인 겁니까?”
“글쎄, 거기까지는 몰라. 하지만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인간들은 ‘성창’을 손에 넣으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뭐죠?”
“어쩌면 루시퍼 폐하를 부활시키는 데 쓰려는 걸지도 몰라.”
“…….”
“루시퍼 폐가 예전에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 거기 박혀 있던 에메랄드가 타천할 때 지상으로 떨어졌고, 그걸 가공해서 만든 잔이 성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지. 너도 들어 본 적 있을 텐데?”
“……네,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루시퍼 폐하 부활에 사용하려는 걸지도 몰라.”
“……인간을 개조하여 그분의 육체를 만든다는 계획도 있었을 텐데요.”
“그것하고는 별개로 진행되는 거겠지? 인간들한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잖아. 우리들 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야지.”
“…….”
“어차피 폐하가 부활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
“벨리알?”
벨리알이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스타로트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벨리안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그런 것 때문에 마신총회가 조용한 거군요.”
“그래, 현재 마신총회에서는 주전파의 목소리도 주화파의 목소리도 통하지 않아. 인간들에게 반격을 하자는 주장도, 인간들과 화평을 하자는 주장도 묵살당하고 있지. 최대한 방어적으로 조용히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의견이 마신총회를 지배하고 있어.”
“제가 마신총회에 한동안 출석하지 않고 있었던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번 얼굴을 내밀어 보든가?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그레모리를 꼬드긴 게 분명하다고 몰렉이 이를 갈고 있으니까.”
몰렉은 주전파의 리더로, 처음 판데모니움이 세워졌을 때부터 주화파의 대표였던 벨리알와 논쟁을 벌였던 앙숙이다.
“흠…… 어쨌든 대충 상황은 알았습니다.”
벨리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로트, 그러면 당신도 한동안은 이 마지노선에 머물면서 방어만 할 거라는 얘기군요?”
“그렇지, 마음만 같아서는 바로 군사들을 움직여 프랑스 북부를 탈환하고 싶지만 말이야.”
현재 프랑스 북부는 인간들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하지만 인간들도 마지노선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 북부를 넘겨주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안 되지. 벨기에 쪽으로 우회하려고 해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쪽도 요새화가 진행되어 있고, 상당한 병력이 배치되어 있으니까.”
“…….”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넘어가지 못해.”
아스타로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잘 알았습니다, 아스타로트.”
“이제 그만 가 보려고?”
“네, 조금 더 정보를 수집한 뒤, 마신총회에도 얼굴을 내밀어 봐야겠습니다.”
“흐음, 그래?”
“하지만 말입니다, 아스타로트.”
“뭔데?”
“너무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무슨 뜻이지?”
물음표를 띄우는 아스타로트 앞에서, 벨리알은 떠날 채비를 했다.
“이 마지노선을 지켜 내는 것……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요.”
“뭐라고?”
바로 그때.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위가 흔들렸다.
“뭐야?!”
“그러면…… 건투를 빌겠습니다, 아스타로트.”
그 말만을 남기고 벨리알은 자리를 떴다.
한순간, 무서운 눈빛을 보인 뒤.
* * *
“아하하하!”
A급 성좌 ‘최고로 잘생긴 기사’ 아스톨포의 웃음소리가 마지노선 상공에 울려 퍼졌다.
“어때요, 임금님!”
바람을 가르면서 아스톨포가 소리쳤다.
“제 성좌무구인 히포그리프, 꽤 괜찮지 않아요?”
지금 나는 히포그리프…… 말과 독수리가 섞인 것 같은 생물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히포그리프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존재지만,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샤를마뉴 기사를 소재로 삼은 『광란의 오를란도』에서 자세하게 묘사된 이후부터다.
여기서 히포그리프를 손에 넣어 타고 다니는 것이 바로 아스톨포다.
“별로…… 좋지 않아!”
“엥? 어째서?!”
아스톨포의 허리를 꽉 잡은 채, 나는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승차감이…… 별로라고!”
“으음? 기분 좋은데!”
내 계약자 중 한 명인 석태준은 키메라를 타고 다니는 키메라 라이더다.
그리고 강유진이나 이죽헌, 주민하도 석태준 뒤에 타서 잘만 날아다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한번 저렇게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톨포가 정찰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별생각 없이 나도 같이 가겠다면서 히포그리프에 올라탔는데…….
‘생각보다…… 무섭다고!’
생각해 보면 키메라는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렸을 뿐이었다. 사자처럼 뛰어다니면서 적을 공격하는 게 메인이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건 그냥 부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히포그리프는 몸 절반이 독수리다. 날아다니는 것이 메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가 키메라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빨랐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내려 드릴까요?”
“아니, 괘, 괜찮아…….”
떨어질까 두려워서 아스톨포의 허리를 꽉 잡으며, 나는 지상을 내려다봤다.
마지노선 주위에는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요새 자체의 방어력도 뛰어난데, 거기다가 방어 병력도 많은 것이다.
지난번에 루브르를 공격했을 때하고는 난이도가 다르다.
“어때요, 임금님?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겨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 무리의 집단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려고 위원회에 새 얼굴들을 잔뜩 보충했으니까 말이야.”